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09
정도마신 108화
다음 날부터 사완악은 거리로 나갔다.
그는 삶이 풍족하지 못한 민초들의 터전을 돌아다녔고, 그러면서 눈에 띄는 대로 도움을 주고 다녔다.
“혼자 수레를 끌긴 힘들어 보이시는군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저는 정유문의 사완악입니다.”
“길을 잃어버렸다고? 엄마가 무슨 옷을 입고 있었냐? 내 이름은 정유문의 사완악이다.”
“가져가서 아버지에게 먹여라. 고뿔이 빨리 낫는 탕약이라고 하는구나. 나? 사완악이다. 그래, 정유문의 사완악.”
사완악은 누군가를 도우면 어떤 대가도 받지 않는 대신, 자신의 이름을 꼭 말하고 다녔다.
다만 어느 순간, 사완악은 한 가지 고민에 빠졌다.
‘할 일이 없네.’
말 그대로였다.
기실 하북성에서 정유문의 덕망(德望)은 매우 높아져 있었다.
사완악과 설린이 정유문을 떠난 후에도, 사령문의 귀령들이 매일매일 선행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특히 만사무는 다른 일은 낯간지럽다는 이유로 하북성에서 흑도(黑徒)라 부를 수 있는 패거리란 패거리들은 모조리 때려잡고 다녔다.
그 결과, 어느 마을에나 존재하는 건달이나 파락호들은 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물론 만사무가 정유문을 떠난 지 일 년이 지나 새롭게 나타난 자들은 있지만, 그저 별 볼 일 없는 한량들이었다.
하북성은 매우 평화로웠고, 그만큼 특별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적어져 있었다.
‘이 정도로는 부족한데…….’
사완악이 그렇게 생각하며 걷고 있을 때였다.
“아, 안 돼!”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소년의 절박한 외침이 들려왔다.
사완악은 눈을 반짝이며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바로 신법을 전개했다.
하지만 곧 그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감돌았다.
소년은 연날리기를 하며 놀고 있었고, 연의 실이 높은 나무에 걸려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던 것이다.
사완악이 원했던 것은 이런 시시한 일이 아니었으나, 곧 소년에게 다가가 말했다.
“연이 걸렸네.”
소년은 갑자기 들려온 음성에 깜짝 놀라 옆을 돌아봤다. 그러곤 울상을 지었다.
“네…… 어떡하죠? 아빠가 만들어 주신 연인데…….”
사완악이 부드럽게 말했다.
“아빠가 만들어 주신 연이라면 네게는 굉장히 소중한 것이지?”
“네.”
“하지만 너무 높은 나무에 걸려서 어른이라 해도 저 연을 가져올 수는 없어 보이는데?”
“아…….”
소년은 아쉬운 마음으로 나무에 걸린 연을 다시 쳐다봤다.
“아빠한테 다시 만들어 달라고…….”
사완악은 다시 말했다.
“아니. 네 아버지는 다시는 연을 만들어 주지 못할 수도 있다.”
“네? 왜요?”
“그건 나도 모르지. 오늘 갑자기 아버지가 사고가 나거나 병에 걸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 아니냐?”
“뭐, 뭐라고요?”
“세상일이란 그럴 수도 있다는 거다.”
“…….”
“하지만 누군가 저 연을 네게 다시 가져다준다면 아주 고마운 일이겠지?”
“네? 아, 뭐…… 그렇죠.”
“그래, 그럼 내가 가져다주마.”
“어떻게요?”
사완악은 대답 대신 땅을 박찼다.
그의 신형은 하늘을 향해 쏘아진 폭죽처럼 수직으로 솟구쳤다.
이러한 경신술의 형태를 어기충소(御氣衝溯)라 불렀는데, 절정의 고수들조차 이런 경신술을 발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사완악은 너무나 가볍게 하늘로 올라갈 뿐만 아니라, 심지어 허공에 발판이라도 있는 듯 가만히 서서 나뭇가지에 엉킨 연실을 풀어냈다.
그리고 그대로 다시 내려와 연을 건넸다.
“자, 여기 있다.”
소년의 눈은 휘둥그레져 있었다.
부잣집 사람처럼 생긴 형이 갑자기 나타나 이상한 말을 늘어놓더니, 마치 새처럼 하늘을 날아올라 연을 가져다 준 것이다.
“고맙지?”
“네! 감사합니다!”
“그래.”
“그런데 어떻게 하늘을 날아가신 거죠?”
“난 무공을 익혔기 때문이다.”
“와, 정말요?”
“그것도 아주 뛰어난 실력이지.”
“그렇구나…… 정말 대단해요.”
소년은 감탄을 터뜨린 뒤 말했다.
“그럼 전 이만 가 볼게요. 생각해 보니 묘아에게 밥을 줄 시간이에요.”
인사를 꾸벅하고 등을 돌리는 소년을 사완악이 황급히 멈춰 세웠다.
“잠깐!”
“네?”
“넌 내가 누군지도 안 물어보냐?”
“아…… 제가 알아야 하나요?”
“당연하지. 너에게 큰 도움을 준 사람의 이름이라도 알고 있어야 나중에 은혜라도 갚을 것이 아니냐?”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그런 건 보통 제가 물어야 하지 않나요?”
“알면서 왜 안 물어봐?”
“죄송해요. 묘아 때문에 마음이 급했어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름을 알려 주시면 아빠에게도 말씀드릴게요.”
사완악은 그제야 씩 웃으며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나는 사완악이다. 정유문의 사완악.”
그런데 정유문이라는 이름을 듣자 소년의 눈이 동그래졌다.
“정유문이요?”
“그래. 왜?”
“정유문은 저도 알고 있어요! 엄마랑 아빠도 말씀하신 적 있거든요. 정유문의 무사 분들은 힘없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준다고요! 그게 정말이었군요!”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면 정유문을 찾아와라.”
“그럼 아저씨가 그 유명한 사완악 공자님이겠네요?”
“아저씨가 아니라 형이다. 내 이름이 유명해졌나보군?”
“네. 정유문이 위험에 빠졌을 때 나타나 흑사방을 물리쳤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사람들을 돕기 시작한 것도 사 공자님이 온 이후부터라고요.”
사완악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다 내 덕분이다.”
“네? 아…… 네!”
소년은 사완악을 보며 생각했다.
‘아까부터 느낀 거지만 되게 칭찬받고 싶어 하는 사람 같다.’
하지만 그 생각은 속에만 담아두고는 다른 것을 물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
“아저씨, 아니, 사 공자님은 왜 사람들을 돕는 건가요?”
“도우면 안 되냐?”
소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아니지만, 누군가를 돕는다고 밥이 나오는 건 아니잖아요. 엄마가 아빠한테 항상 말하거든요. 돈이나 밥이 나오지 않는 일은 하지 말라고요.”
사완악은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설명했다.
“사람은 누구나 삶의 환경이 다른 법이지. 내게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여유가 있으니 도울 뿐이다. 많이 가진 사람이 베푸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사완악은 그렇게 말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이 구절을 어느 책에서 읽었더라? 협객 노릇을 할 때 생각보다 도움이 되는군.’
그 말에 소년이 밝아진 얼굴로 감탄했다.
“아!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맞아요, 그게 당연한 일이라 다행이에요.”
사완악은 소년의 말이 조금 이상하게 여겨졌으나 다시 말했다.
“그리고…….”
사완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사람은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라고 했다. 내가 누군가를 돕는다면,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그들도 나를 도우러 오지 않겠냐?”
“그건 맞아요. 저도 만약 사 공자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반드시 도와드리겠어요. 제가 도와드릴 일이 없겠지만요.”
“아니. 그건 모를 일이지. 언젠가 너의 도움이 꼭 필요한 일이 있을지도.”
“그렇다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바로 달려갈게요. 아무튼 이제 진짜 가야겠어요. 묘아가 절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렇게 돌아가려는 소년을 사완악이 다시 붙잡았다.
“아까부터 그 묘아가 도대체 누구지?”
“묘아는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에요.”
“고양이?”
“보름 전에 골목에서 쓰러져 있던 고양이에요. 처음에는 죽은 줄 알았는데 꼬리가 꿈틀 움직이더라고요. 그래서 집 앞으로 데려와서 숨겨 놓고 손가락에 물을 묻혀서 먹여 줬어요. 그러니까 아주 힘겹게 눈을 뜨더라고요? 원래 저는 죽을 무척 싫어하는데, 엄마보고 해 달라고 해서 식힌 다음에 아주 조금씩 입에 넣어 주니까 점점 살아났어요. 하지만 엄마가 이 사실을 알게 돼서 크게 혼이 났죠.”
사정을 상세히 다 들었지만, 사완악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혼이 났지?”
“귀한 쌀죽을 길고양이에게 줬다고요. 그래 봐야 요만큼밖에 안 된다고 했지만, 그래도 다음부터는 주지 말라고 하셨죠. 우리는 고양이를 키울 형편이 못된다고요.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지금은 알게 됐어요. 사실 그 이후로 그 고양이가 배가 고파지면 제가 숨겨 놓았던 장소로 찾아와 슬프게 울거든요. 저는 그 아이에게 묘아라는 이름을 지어 줬어요. 이제는 제가 묘아라고 부르면 자기 이름을 알아듣고 저한테 애교도 부려요.”
소년은 고양이를 떠올리기만 해도 너무나 사랑스럽다는 듯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저는 고민이었거든요. 엄마가 돕지 말라고 했는데 계속 밥을 줘야 하는지 모르겠어서요. 하지만 조금 전 사 공자님의 말씀을 듣고 확신했어요. 제가 먹을 밥을 조금 아끼면 묘아에게 밥을 줄 수 있으니, 돕는 게 당연하겠죠?”
사완악은 그제야 소년이 자신에게 왜 사람들을 돕는지 물어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머릿속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래, 그런 방법이 있겠군!’
사완악은 소년의 이야기에서 마음속에 갖고 있던 고민의 해결책이 떠올랐다.
“너 이름이 뭐냐?”
“호(浩)요. 성은 장이에요.”
“장호. 멋진 이름이군. 네게 보답을 해야겠다.”
“보답이요? 제가 공자님께 하는 게 아니라요?”
사완악은 손가락으로 장호의 이마를 톡 때리며 말했다.
“그런 게 있다. 너무 자세히 묻지 말고, 나를 너희 집으로 안내해라.”
“네?”
“부모님도 나를 아신다며? 그 고양이를 네가 기를 수 있게 말해 주마.”
“정말요?”
“그래.”
“그게 가능할까요? 저희 아버지는 몰라도 엄마는 정말 무섭거든요.”
“걱정 마라. 엄마도 흔쾌히 허락하실 테니.”
“알겠어요!”
장호는 신이 나서 사완악을 집으로 안내했다.
장호의 부모는 아들과 함께 나타난 사완악의 고급스러운 옷차림을 보자 다급히 달려나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희 아이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습니까?”
“아닙니다. 저는 정유문의 사완악입니다. 두 분께 부탁할 게 있어서 왔습니다.”
정유문의 사완악 공자.
그 이름에 부모의 얼굴에는 구름이 걷히고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아니, 사완악 공자님께서 저희 집은 웬일로…….”
“장호가 길에서 거둔 고양이를 기르게 해 주십시오.”
“네?”
사완악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부모의 얼굴에 어리둥절한 빛이 떠올랐다.
하지만 곧, 그들의 입에서는 장호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대답이 튀어나왔다.
“물론입니다. 장호가 심성이 착해서 고양이를 정말 예뻐하거든요. 가장 비싸고 좋은 것만 먹이면서 잘 키우겠습니다.”
물론, 이때 장호의 어머니 하 씨의 손에는 두 개의 황금 구슬이 들려 있었다.
“공자님, 이건 너무 과분한…….”
손사래를 치며 말을 꺼내던 아버지 장 씨는 뒷말을 꿀꺽 삼켜야 했다.
부인이 마치 살인귀처럼 사나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 감사히 받겠습니다.”
사완악은 자상한 얼굴로 장호에게 말했다.
“그럼 나는 이만 가 보마. 그리고 아까 그 말 고마웠다.”
“네?”
“내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달려오겠다고 한 말.”
“아, 네. 물론이에요. 약속해요.”
장호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사완악은 씩 웃으며 같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걸었다.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장호의 맹세였다.
사완악은 그 집에서 나와 더 이상 거리를 돌아다니지 않고 정유문으로 돌아왔다.
해야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후, 하북성에는 한 가지 기이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