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12
정도마신 111화
“당신이 혜성같이 나타나 정유문을 구하고, 그다음 바로 흑사방에서 그런 사단이 일어났기 때문이오. 당신이 그럴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왕주보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 차분히 말을 이었다.
“이것은 두 번째 이유이기도 한데, 사 공자, 당신이 무림공적이기 때문이오. 천하 팔대고수인 정도맹주까지 죽일 수 있는 실력자이니, 흑사방의 방주 둘을 죽이는 것쯤은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이 아니겠소?”
“역시 알고 있었군?”
물론 왕주보는 강호와는 관련이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무림의 정보와 소문에 언제나 귀를 기울였고, 그것이 그가 여러 장사를 하면서도 큰 화를 피해 가는 비법 중 하나였다.
사완악은 씩 웃으며 말했다.
“내 이름을 들은 순간부터 당신은 매우 불안해 보였지.”
왕주보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당신이 내게 길성객잔을 빼앗고자 했다면, 내 목숨을 위협하거나 여차하면 이 자리에서 나를 죽이는 것은 숨 쉬는 일처럼 간단했을 것이오. 하지만 당신은 내가 끝내 객잔을 팔지 않겠다면 포기하겠다고까지 하는데, 내 어찌 당신에게 팔지 않을 수 있겠소? 하물며 당신 덕분에 흑사방의 갈취에서 벗어나 수많은 이득을 보았는데 말이오.”
사완악이 말했다.
“그럼 내가 소문처럼 그렇게 나쁜 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겠네?”
“나는 그것을 오늘 직접 확인했소. 그리고 당신과 다른 정유문의 문도들이 하북성의 힘없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베풀었다는 소문도 익히 들었소. 당신이 무림에서 어떤 오해를 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시오. 내 힘이 닿는 일이라면 나서 보겠소.”
그의 호의 가득한 말에 설린의 표정이 밝아졌고, 사완악 역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것 참 고마운 말이로군. 좋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지. 하지만 지금은 길성객잔을 팔아 주는 것만으로 충분해.”
* * *
길성객잔을 매입한 이후, 사완악의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사완악은 길성객잔의 주방장을 그대로 채용했고, 대신 몇 개의 고급 요리와 술을 추가하게끔 지시했다.
만사무와 묵영, 천화, 가종후 네 사람도 오래 지나지 않아 정유문으로 돌아왔다.
사완악은 그들에게 지시했다.
“너희는 이곳에서 점소이를 해라.”
절정 고수들이 할 일이 아니기는 하지만, 영겁사령존이 명하는데 감히 불만을 가질 귀령들이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절정고수 네 사람이 점소이로 일하는 사상 초유의 객잔에는 ‘정유객잔(正柔客棧).’이라는 현판이 걸리게 되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하북성 곳곳에는 매우 기이한 벽보(壁報)가 붙었다.
-밥 먹을 돈이 없어 굶는 사람은 묘시(卯時)와 신시(申時)에 정유객잔으로 오십시오. 신분이나 남녀노소(男女老少)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무상으로 식사가 제공될 것입니다. 정유문주, 설린.-
벽보의 내용만 봤을 때 그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세상에 어떤 미친 객잔이 돈이 없고 신분이 하찮은 사람들에게 공짜로 밥을 준단 말인가?
어지간한 부자들도 하지 않는 짓이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마지막에 적힌 한 명의 이름.
‘정유문주?’
하북성의 민초들 사이에서는 구파일방보다 더 높은 명성을 지닌 문파가 정유문이었다.
‘이 말도 안 되는 벽보를 정유문에서 붙였다고?’
그게 사실이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심지어 얼마 후, 한 가지 놀라온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정유객잔의 벽보는 사실이었다!’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정말 공짜 밥을 준다!’
발 없는 말은 하루에도 천 리를 가는 법.
여전히 그 소문을 믿는 사람들은 적었지만,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정유객잔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서 오십시오.”
“헉.”
귀신같이 음침하게 생긴 남자의 인사에 중년의 여인이 놀란 듯 숨을 들이켰다.
그녀는 매우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고, 양쪽으로 자녀로 보이는 어린 소년, 소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여인은 점소이의 얼굴이 매우 무섭게 느껴졌으나, 양손에서 느껴지는 아이들의 존재에 용기를 내어 말했다.
“혹시 이곳에서 정말…… 밥을 주나요?”
귀신같은 인상의 점소이, 가종후는 중년의 여인과 아이들의 행색을 살피고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편하신 곳에 앉으십시오.”
“예? 아, 예…….”
가종후의 미소에 여인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배가 고팠기에 그 불안함을 가라앉히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해가 막 뜨기 시작하는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객잔 안에는 벌써 열 명 정도의 손님이 있었고,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그들의 행색은 모두 초라했다.
그런 그들에게 가종후가 다가와 물었다.
“돼지국밥과 돼지고기 볶음밥, 둘 중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아…….”
중년 여인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구, 국밥 하나랑…… 볶음밥 하나…….”
가종후는 중년 여인 옆에 앉아 있는 두 아이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
“식사는 한 사람당 한 가지씩 주문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인데도…… 각자 하나씩 가능할까요?”
“남녀노소 상관없습니다.”
“그럼 국밥 하나랑 볶음밥 두 개…… 부탁드려요.”
“예, 알겠습니다.”
가종후는 주방에 가서 외쳤다.
“국밥 하나, 볶음밥 두 개 있습니다!”
잠시 후, 중년 여인 앞에는 정말 세 가지의 식사가 나왔다.
‘어머!’
여인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국밥과 볶음밥은 양이 푸짐할 뿐만 아니라, 돼지고기도 적지 않게 들어가 있었다.
게다가 돼지 특유의 잡내가 나지 않고, 향만 맡아도 군침이 돌 정도였다.
심지어 식사와 함께 나오는 반찬 세 가지도 비싼 재료의 반찬은 아니지만 매우 정갈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보자 두 아이의 눈에서는 이성이 사라졌고, 그녀의 뱃속에서도 아우성이 들려왔다.
“천천히 먹으렴.”
물론 두 아이가 그 말대로 천천히 먹을 리가 없었다.
여인도 그것을 예상하여 아이들에게는 뜨거운 국밥이 아닌 볶음밥을 시켜 준 것이니까.
그렇게 입안에 음식을 넣는 순간, 세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맛있어!”
“너무 맛있어!”
아이들의 말대로였다.
공짜 음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요리는 너무나 맛있었다.
세 사람은 허겁지겁 음식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다 문득, 밥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중년 여인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녀는 남은 음식을 모두 먹고 가종후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잘 먹었습니다.”
“아, 예. 안녕히 가십시오.”
“정말…… 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예. 먹고 그냥 편히 가시면 됩니다.”
중년 여인의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다.
그녀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남편이 병으로 죽고 난 후, 갈수록 생활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밥 한 번 먹이지 못했는데…… 덕분에, 덕분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가종후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말을 정정했다.
“감사할 분은 제가 아니라 문주님과 사완악 공자님입니다.”
“아…….”
“문주님은 당연히 정유문의 설린 문주님이시고, 사완악 공자님은 정유문에서 이 객잔을 맡고 계신 분입니다.”
“설린 문주님, 사완악 공자님…….”
그녀는 반드시 기억하겠다는 듯 두 이름을 중얼거렸다.
“예. 두 분께 마음속으로 감사하시면 됩니다. 너희들도, 알았지?”
가종후의 말에 어린 소년과 소녀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네! 마음속으로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가종후는 자신도 모르게 음흉한 미소를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다.”
그리고 여인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무상 식사는 매일 묘시와 신시마다 한 번씩 진행됩니다.”
여인이 놀라며 물었다.
“또…… 와도 되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사정이 괜찮아지기 전까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여인은 그야말로 지옥에서 구원받은 사람 같은 표정으로 다시 한번 눈물을 뚝뚝 흘리고야 말았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가종후는 미소를 지으며 재차 두 사람의 이름을 언급했다.
상대방의 뇌리에서 잊히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예. 이 모든 것은 설린 문주님과 사완악 공자님이 베푸시는 것입니다.”
* * *
천의문의 회의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입을 연 사람은 천기자의 네 번째 제자, 사군이었다.
그의 땅굴같이 중후한 음성에 다른 여섯 사람들은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이토록 참담한 분위기에 빠져 있는 이유는 강호로 돌아온 사완악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돌아온 사완악이 벌이고 있는 행동 때문이었다.
“하! 객잔을 매입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식사를 제공한다니…….”
얼마 전, 현종과 만나고 돌아온 노파, 칠군은 당황스러운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것은 그녀의 인생에서 보고 들은 모든 협행 중 가장 뜻깊게 느껴지는 일이었다.
문제는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이 사완악이라는 것일 뿐.
이때, 육군 나양조가 그녀의 말에 덧붙였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완악이 사령문의 귀령들을 시켜…… 가난한 자들의 마을에 의원을 데려가 진료를 보게 하고, 석 달에서 길게는 일 년치의 약들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때 한 여인이 말했다.
“천의문도 생각하지 못한 선행들을 하고 있군요.”
그녀는 천기자의 다섯 번째 제자, 오군이었다.
오군은 평소 벙어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과묵했고, 천의문의 회의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낸 적이 극히 드물었다.
사군이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지?”
“…….”
하지만 오군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때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홍안의 소년, 팔군이 말했다.
“사완악. 그 사람은 앞으로 더 많은 협행을 하고 말거예요. 그렇겠죠, 이군?”
창백한 얼굴의 이군은 한숨을 내쉬며 힘겹게 말했다.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 때문에?”
사군의 말에 이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우리가 그를 악인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에 대한 응수이지요. 그는 우리가 자신의 앞에 나타날 때까지 협행을 멈추지 않을 사람입니다.”
칠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지독한 놈이군.”
잠시간의 침묵.
사군이 탁자를 내리치며 말했다.
“그래서 보고만 있을 생각이오?”
이군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일단은 그렇습니다.”
사군이 이번에는 이군을 노려봤다.
이군은 그 사나운 눈초리에도 아랑곳 않고 담담히 말했다.
“저희가 임시 정도맹주를 화산파의 장문인에게 맡긴 이유가 무엇입니까?”
“화산파는 소림, 무당과 마찬가지로 구파일방 중 사대악인에게 가장 원한이 깊기 때문이오.”
이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러니 사완악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든, 정도맹에서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더 많은 고수들이 사완악을 처단하기 위해 나서겠지요. 과연 사완악이 그 많은 고수들을 상대로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음…….”
사군은 이군의 말에 수긍했다.
제아무리 사완악이 대단한 고수라 해도, 그건 정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때, 일군이 말했다.
“하지만 그 역시 이런 간단한 사실을 모르지는 않겠지.”
이군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사실 그 점이 풀리지 않는 의문입니다. 그가 무슨 꿍꿍이로 자신의 존재를 그리 당당하게 알리는지 말입니다.”
이군은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조금만 지켜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맹에 남궁세가로부터 서찰이 도착했으니까요.”
그 말을 들은 칠군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남궁세가에서? 무슨 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