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16
정도마신 115화
분노 가득한 남궁조의 모습에도 설린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꾸했다.
“저는 남궁세가에 아무런 감정이 없는데 어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럼 그날 나타났다는 소림사의 승려는 누구이지?”
“소림사 방장 대사의 사제이신, 현종 스님입니다. 현종 스님은 남궁 소협을 저지하고, 남궁세가로 데려가겠다고 정도맹을 떠났습니다. 저는 남궁 소협이 무사히 남궁세가에 돌아가 자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때 남궁조의 뒤에서 참혼중검 남궁우가 말했다.
“형님, 현종은 사완악 저자가 태산에서 도망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승려입니다. 두 사람은 친우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남궁조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 승려와 너, 그리고 정유문주 당신까지.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으라는 거지? 세 사람 모두 한통속이라는 것을 모를 줄 아시오?”
남궁조는 사완악에게 다시 따졌다.
“어서 진실을 고하라. 네놈은 내 아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어찌 네놈이 강호로 돌아옴과 동시에 피 묻은 옷이 도착한단 말이냐?”
“나 참, 지랄도 가지가지네. 됐다, 됐어.”
“뭐라?”
사완악은 남궁조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생각 없지?”
남궁조는 대답 대신 조용히 사완악을 노려봤다.
사완악은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일 년 전에 사라진 아들은 돌아오지 않고, 마찰이 있었던 것은 사대악인의 제자이자 무림공적이고, 피 묻은 아들의 옷이 도착함과 동시에 강호에는 내가 돌아왔으니 말이야. 그냥 내가 당신 아들을 죽였다고 결정내린 거잖아. 거기에 지금 내 말을 들어 보니 만약 당신 아들이 정말 그런 짓을 했다면 남궁세가로서는 있을 수 없는 수치이니 더더욱 나를 그 범인으로 만들어야 하는 거잖아. 안 그래?”
“…….”
매우 빠르게 이어진 사완악의 말은 무애신검 남궁조가 지니고 있던 생각을 꿰뚫고 있었다.
사완악은 습관처럼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냥 덤비라고. 보아하니 날 정도맹으로 데려갈 생각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남궁조는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사완악을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남궁세가의 검사들에게 명령했다.
“남궁세가의 소가주를 죽인 무림공적 사완악을, 오늘 이곳에서 목숨을 걸고 처단한다. 창궁호검대(蒼穹虎劍隊)는 창궁검진을 펼쳐라!”
스-릉!
우렁찬 외침과 동시에, 서른 명의 청년 검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는 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그리고 청년 검사들은 하나의 대형을 만들었는데, 그들이 진형을 완성하자 예사롭지 않은 기세가 느껴졌다.
창궁호검대라는 이름에 관일성이 놀라며 사완악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조심하시게. 창궁호검대는 남궁세가에서 자랑하는 검사 부대일세. 특히 저들이 펼치는 창궁검진은 오대세가의 수장인 남궁세가가 구파일방의 수장인 소림사의 십팔나한진을 뛰어넘기 위해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졌다고 하네.”
그와 같은 경쟁심으로 만들어졌다면 보통 진법일 리는 없었다.
사완악은 창궁검진의 대형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알겠습니다. 호법님은 물러나 있어요.”
관일성은 자신이 있어 봐야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기에 얼른 뒤로 물러섰다.
사완악은 재밌다는 듯 중얼거렸다.
“호검대(虎劍隊)라…… 내 눈에는 양떼처럼 보이는데 말이지.”
사완악의 비아냥거림에 자긍심 높은 창궁호검대 청년 검사들의 눈빛에 독기가 어렸다.
“누가 호랑이인지 한 번 볼까?”
사완악은 조금도 시간을 끌지 않았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신법을 전개해 질풍처럼 창궁호검대의 검진을 향해 달려갔다.
“이런 무식한!”
창궁호검대 검사들의 얼굴에 황당함이 어렸다.
창궁검진은 무애신검 남궁조와 참혼중검 남궁우가 일평생을 바쳐 만들어 낸 진법이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무재가 부친인 검제 남궁명조를 결코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고, 대신 다른 방면에서 남궁세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연구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창궁검진이었고, 실제로 남궁조와 남궁우 두 사람이 힘을 합해도 창궁검진을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물며 지금은 창궁검진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남궁조와 남궁우, 그리고 다른 장로들 네 사람이 위치해 힘을 보태고 있었다.
당금의 강호 팔대고수 중 누가 온다 하더라도 이러한 창궁검진을 정면 돌파로 뚫을 수는 없을 거라고 그들은 자부했다.
그런 창궁검진을 향해 사완악은 검조차 뽑지 않고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차차창!
요란한 쇳소리와 함께 사완악의 머리 위로 수십 개의 칼날이 떨어졌다.
동시에 사완악 역시 빠르게 여러 개의 장력을 날렸다.
땅땅땅땅땅!
사완악의 장풍에 쏟아지는 칼날이 튕겨져 나가며 검명이 웅웅 울려댔다.
그러나 그들의 검이 튕겨져 나간 자리에 곧바로 다른 검들이 사완악의 전신 대혈들을 찔러 왔다. 하나의 검을 쳐 내면 다시 그 자리에 새로운 검이 나타나니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소나기 같았다.
그 모든 검을 막기 위해서 사완악은 사방팔방으로 정신없이 장법을 펼쳐야 했다.
하지만 정작 사완악의 입가에는 오히려 미소가 가득했다.
“그때 생각이 나게 해 주는군.”
사완악이 떠올린 것은 현종과 함께 소림사의 십팔나한진을 상대했던 기억이었다.
전우와 함께 자신이 지닌 모든 무위(武威)를 발휘해 녹초가 될 때까지 싸워 살아남았던 일.
그것은 사완악의 인생에서 가장 짜릿하고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동시에 그 전우를 떠올렸다.
‘그 녀석은 어디서 뭐 하고 있나?’
사완악은 현종을 생각하며 자신의 심장과 옆구리, 등을 노려오는 세 개의 검날을 다시 한번 쳐 냈다.
어쨌든 일 년 전과 지금은 명백히 달랐다.
그때는 목숨을 맡길 수 있는 전우가 있었으나, 지금은 혼자였다.
십팔나한진은 열여덟 명이 펼쳤으나, 눈앞의 창궁검진은 서른다섯 명이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달라진 것은, 사완악의 무공이었다.
“으윽!”
“헉!”
검을 휘둘렀던 청년 검사들 중 두 사람의 입에서 당황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다른 창궁검호대원들은 순간 의아한 생각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지?’
창궁검진은 소림사의 십팔나한진과 마찬가지로 한 명의 절대고수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진법이었다.
이러한 진법은 상대가 아무리 강한 내공을 지니고 있어도, 그 공격의 힘이 모두에게로 분산되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로 인해 지금까지 사완악의 장법을 막아 낼 수 있었던 것이고, 만약 사완악이 그와 격돌한 무사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올 정도로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면 다른 대원들도 그 충격을 느낄 수 있어야 했다.
그렇기에 오직 두 사람의 입에서만 비명이 흘러나온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억!”
“크읏!”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다시 한번 일어났다.
사완악과 격돌한 다음 두 대원들의 반응도 똑같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우연일지 몰라도, 반복될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대원들은 그들이 왜 신음을 내뱉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때 처음 비명을 질렀던 대원 중 하나가 말했다.
“조심! 그의 장법과 격돌하면 몸이 굳어진다……!”
대원들은 더욱 의아했다.
장법과 부딪치면 몸이 굳어진다니?
이때 다른 대원도 몸을 덜덜 떨며 말했다.
“어, 엄청난 냉기…… 마치 얼어붙은 느낌이다……!”
창궁호검대의 대원들은 그들의 말뜻을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검진의 중앙에 뛰어 들어온 적에게 공격을 하지 않는다면 진법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공격을 한다면 사완악의 장법과 격돌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대원들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아니, 진법 자체가 혼란에 빠졌다.
물론 창궁검진은 고수를 상대하는 도중, 만에 하나 한두 사람이 화를 입게 되더라도 다시 그 자리를 메울 수 있도록 설계된 진법이었다.
하지만 진법을 이루고 있는 대원이 자리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아예 동상처럼 굳어져 움직이지를 못하자 그 정교한 톱니바퀴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이때 사완악이 전광석화같이 손을 뻗어 굳어진 청년 검사의 멱살을 쥐고 들어 올려 다른 청년 검사를 향해 집어던져 버렸다.
“헉!”
날아오는 자신의 세가 사람을 검으로 찌를 수 없는 청년 검사는 하는 수 없이 양팔로 날아오는 대원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실수였다.
날아온 대원의 뒤쪽에서 사완악의 신형이 귀신처럼 번쩍 나타나 주먹으로 그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컥!”
창궁검진에는 점점 틈이 생겨났다.
사완악은 눈에 보이는 대원들을 닥치는 대로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걷어찼으며, 번쩍 들어 아무렇게나 던져 버렸다.
그것은 사완악이 말했던 대로, 마치 양떼로 뛰어든 한 마리의 범을 보는 것 같았다.
“으윽!”
“컥!”
창궁검호대의 대원들이 하나둘씩 쓰러졌다.
그런데 이때였다.
번쩍!
두 줄기 섬전(閃電)과도 같은 검광(劍光)이 사완악의 양쪽에서 쏟아졌다.
사완악의 눈에 처음으로 이채가 떠올랐다.
전혀 예기치 못한 날카롭고 위력적인 공세였다.
사완악은 손바닥을 뒤집어 양쪽으로 각각 일장을 날렸다.
까앙!
까앙!
고막을 찢을 듯한 금속성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사완악은 몸을 살짝 움찔했을 뿐, 그 자리에 굳건히 서 있었다.
하지만 사완악을 동시에 기습했던 두 명의 절정 고수, 무애신검 남궁조와 참혼중검 남궁우의 표정에는 경악이 어려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체면과 자존심을 내려놓고 합공으로 기습을 가했음에도 이리 허망하게 막혔다는 것에 자괴감이 밀려올 정도였다.
그리고 그들이 놀란 또 하나의 이유.
‘이 냉기는 도대체……!’
그들은 자신의 검과 사완악의 손이 격돌했을 때, 어떤 폭발음이 아니라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들의 검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한 줄기의 냉기!
두 사람은 비로소 창궁검호대 대원들의 몸이 굳어진 이유를 느낄 수 있었다.
뼈가 시리고 몸이 떨릴 정도로 지독한 냉기였다.
‘사대악인의 무공 중 이런 것이 있었나?’
사완악은 사대악인의 공동 제자였다.
하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사대악인의 무공들 중에는 이런 성질의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식견이 넓은 두 사람이지만 강호에 이런 무공이 있다는 것을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이때 무애신검 남궁조의 머릿속에 한 가지 황당한 이름이 스쳐 갔다.
‘그럴 리는 없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전설 속에나 등장하는 문파의 무공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이 상황이 설명되지 않았다.
남궁조는 더듬거리며 사완악에게 물었다.
“설마 그 장법은…… 북해빙궁의…….”
사완악은 흡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눈치가 없지는 않네. 맞아, 빙백신장.”
“헉!”
남궁우와 다른 장로들의 눈도 불신으로 물들었다.
북해빙궁의 빙백신장이라니?
그것이 과연 실존하는 것이었던가?
존재한다고 해도 어떻게 사완악이 그 무공을 익히고 있단 말인가?
사완악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실전에서는 처음 써 보는데 꽤 괜찮군. 이런 차륜 진법을 상대할 때는 최고겠어.”
무애신검 남궁조는 사완악이 즉흥적으로 진법에 뛰어든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사완악은 처음부터 빙백신장을 사용하면 이런 결과가 될 것을 예측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도대체 이자는…….’
문득, 남궁조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의 검 끝이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결코 빙백신장의 냉기 여파가 아니었다.
이때 사완악이 씩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마무리를 지어 볼까?”
* * *
얼마 후.
온 강호를 그야말로 충격에 빠뜨릴 소식이 정도맹에 전해졌다.
무림공적 사완악이 홀로 남궁세가를 무너뜨렸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