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2
정도마신 11화
“뭐라고?”
확신에 찬 구득소의 음성에 영환 대사와 채보령, 사마소까지 그를 쳐다봤다.
“마지막…… 그 녀석이 왜 갑자기 우리를 노려보면서 덜덜 떨었는지 모르겠냐?”
사마소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구천살심공?”
“큭큭. 그래. 원래 저렇게까지 증상이 빨리 나타나지는 않지만…… 저놈이 내 구천살심공까지 다 가져가 버리면서 바로 시작됐나 보군. 녀석한테 고마워하자고. 까딱하면 우리 지금 다 죽을 뻔했다.”
영환 대사와 채보령, 사마소는 심장이 철렁했다.
그럼 아까 자신들을 충혈된 눈으로 쳐다본 것이 살심을 억누르고 있었다는 뜻이 아닌가.
채보령이 말했다.
“생각해 보니 내 탈정미혼공도 다 가져갔으면…… 호호, 완악이는 진정한 색마가 되겠군요. 좋아요. 천기자한테 자존심 상할 일은 없겠어요.”
사마소가 마침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렇군. 그리고 영겁사령환. 확실히 그 녀석 안에 어떤 영혼이 깃들어 버렸다면…….”
염라대사 영환이 중얼거렸다.
“이거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엄청난 악인이 탄생할 수도 있겠군. 그런데 사마소, 우리도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이 군림혼혈공 수법, 풀 수 있는 방법은 없나?”
사마소가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하늘을 바라보다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없다.”
염라대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 * *
사완악은 산골짜기에서 경신술을 힘껏 전개했다.
가끔씩 구득소와 함께 산골짜기 밖으로 나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산의 지리는 대충 알고 있었다.
‘이곳이 좋겠군.’
산 중턱, 사람 이삼십 명은 누울 수 있을 정도로 넓은 크기의 바위 하나.
사완악은 그 한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푸르르…….
전신(全身)이 떨려 오고 머리카락은 하늘로 솟구쳐 허공에서 촉수처럼 흔들거렸다.
지금 사완악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온몸의 모든 혈관들이 터질 듯 꿈틀거렸다.
일신에 흡수해 버린 내공이 폭발할 듯 들끓었다.
-킬킬. 양이 너무 많았나?
‘닥쳐!’
-너무 화내지 말라고. 그 중놈의 내공이 이렇게 막대할 줄 알았나?’
‘알았으니까 조용히 좀 해라.’
사완악은 자신의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일갈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지금은 저놈과 말다툼할 수 있을 정도로 한가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음산한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래도 다행이다. 너와 그 중놈이 익힌 이 극양(極陽)의 심법은 상당히 뛰어나. 아니, 매우 뛰어나다. 마기는커녕 명문대파의 내공 같단 말이지.
목소리가 말한 것은 물론 염화신공이었다.
이름 그대로 몸 안에 화기(火氣)를 쌓는 심공.
염라대사 영환이 비록 사대악인이었지만, 그가 익힌 무공의 뿌리는 정파의 태산북두 소림사였다.
염화신공은 전전대의 소림사 최고수 원공 장로가 창안했다. 그러나 불가의 무공치고는 너무 극렬하다고 하여 후대에 전수하지 않고, 비급 하나만을 조용히 남겨 놓았다. 그것을 영환 대사가 우연히 소림사의 장경각에서 발견하여 익혔던 것이다.
-근데 다른 연놈들의 내공심법은 너무 혼탁(混濁)하단 말이야.
-특히 그 계집년의 내공은 뭐가 이렇게 잡다한 거냐?
-만약 네가 주력해서 익힌 내공이 다른 거였다면 진짜 큰일 났을 거다.
목소리가 떠드는 사이, 사완악의 몸 안에서 채보령과 구득소, 사마소의 내공이 염화신공에 녹아들었다.
그러나 완전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사완악의 몸 주위로 무형의 기운들이 아지랑이처럼 넘실거리고, 작은 모래알들이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일견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였다.
“후우…… 이거 큰일이군.”
사완악은 도저히 내부로 갈무리되지 않는 기운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때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다가 네놈 근골(筋骨)은 그야말로 무골(武骨)이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온몸의 혈맥이 터져 버렸을 거다.
‘너.’
-지존이라고 불러라.
‘십 년째 그 말이군. 귀신 주제에 지존은 무슨.’
-무엄하다! 귀신이라니! 본좌(本座)는 사령문의 원혼(冤魂)들이 모여 탄생한 위대한…….
‘그게 귀신이야.’
-…….
영겁사령존은 사완악의 거침없는 말투에 기가 찬 듯 잠시 침묵을 지켰다.
사완악이 이 음성을 처음 듣게 된 것은 약 십 년 전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말을 걸어온 존재.
어린 사완악은 자신의 안에 또 다른 영혼이 있다는 게 그저 신기해서 친구처럼 지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영혼은 사완악에게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 주었다.
자신은 사령문의 술법으로 탄생한 혼령이며, 사완악에게 그를 주입한 것은 네 명의 사부라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사대악인이 각각 삼십 년의 내공을 사완악에게 주입해야 했는데, 그 덕분에 자신은 이 네 사람의 기운은 얼마든지 흡수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사부들은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것도 말해 주었다.
사완악은 그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했다.
눈치가 빠른 사마소를 제외하고, 다른 사부들이 방심하는 틈을 타서 여러 번 실험했다.
결과는 영겁사령존의 말 그대로였다.
사완악이 이 같은 사실을 사대악인에게 말하지 않은 이유는 신천마뇌 사마소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사람을 속일 때는 진실 속에 거짓을 섞어야 한다. 무공도 마찬가지다. 강호에서 자신의 실력을 지나치게 감추는 것은 상대에게 경각심(警覺心)을 불러일으킨다. 반대로 모두 내보이는 것은 상대에게 대비를 할 수 있게 하지. 그러니 적당히, 보여야 할 만큼 보여 주면서 비장의 한 수는 반드시 숨겨야 하는 법이다.’
또한 염라대사 영환도 말했다.
‘사람을 믿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 그건 부모와 자식 사이라도 마찬가지지.’
사완악은 그들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자신을 키워 준 사부들이라 해도 완전히 믿을 수 없다. 이 영겁사령존의 존재만 하더라도 사부들은 말해 준 적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그들의 내공을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의 비장의 한 수로 남겨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십 년 간, 사마소에게 수많은 심계(心計)를 배운 사완악은 이 비밀을 아무렇지도 않게 감추어 왔던 것이다.
‘그래서 너, 원하는 게 뭐냐?’
-원하는 것?
사완악이 피식 웃으며 속으로 말했다.
‘사부들 내공을 빨리 흡수하라고 매일 징징댔으면서, 원하는 게 없다고?’
-역시 네놈은 똑똑해. 근골부터 오성까지, 과연 본 좌의 몸이 될 자격이 있군.
사완악은 영겁사령존의 말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귀신 주제에 내 몸을 탐내는 거였냐? 헛꿈을 꾸고 있었군.
영겁사령존의 음성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크크…… 글쎄. 헛꿈인지 아닌지는 지켜보면 알 것이다. 이제 슬슬 다시 시작해 볼까?
‘뭘 다시 시작…… 큭!’
영겁사령존의 말을 한껏 비웃어 주려던 사완악은 급작스럽게 눈을 부릅떴다.
동시에 사완악의 머릿속에 한 가지 울림이 진동했다.
-죽여라. 가서 사부들을 모두 죽여.
‘이, 이거…… 네놈이 한 짓이었구나!’
사완악은 눈이 붉게 충혈되며 이를 악물었다.
영겁사령존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하. 구천살심공과 탈정미혼공. 둘 다 사령문의 무공었다는 건 너의 사부들도 모르더군. 나에게는 천운(天運)이었지.
사완악의 눈앞에 사부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당장 돌아가서 모두를 쳐 죽이고 싶다.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의지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네놈이 살의와 색욕에 미쳐 이성을 잃고 날뛰다 제정신이 돌아왔을 땐 내가 너의 주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사완악은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일어나 산골짜기로 돌아가려는 자신의 몸을 억지로 다시 앉혔다.
“으으…….”
갈증.
갈증이 찾아온다.
단 한 방울의 물이 간절한 순간처럼.
당장 사부들을 죽이지 않으면 이 답답함이 도무지 해소될 것 같지가 않았다.
-큭큭. 애쓰지 마라. 네놈은 그 늙은이와 요녀의 내공을 통째로 다 삼켜 버렸다. 인간의 의지로 구천살심공과 탈정미혼공을 제어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젠 돌이킬 수 없느니라.
‘웃기지 마……!’
사완악은 주먹을 꽉 쥐었다.
부르르…….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고통 속에서 약간 정신이 맑아지는 듯했다.
‘귀신 나부랭이 주제에 날 어쩔 수 있을 거 같냐?’
영겁사령존의 감탄과 조롱이 뒤섞인 음성이 들려왔다.
-……지독한 놈. 부질없는 짓을 하는구나. 그럼 이래도 버틸 테냐?
“흐읍……!”
사완악은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켰다.
갑자기 몸 안에서 뜨거운 기운이 맴돌며 그의 하복부 아래로 모두 쏠려 갔다.
아랫도리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팽배해지며 목이 타들어 갔다.
폭발할 듯한 양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사완악의 눈앞에 다시 한번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다.
영환 대사와 구득소, 사마소를 죽이고…… 채보령,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그 마녀를 범하고 싶은 욕구가 정신을 지배했다.
사완악은 그대로 하늘로 솟구쳤다.
그의 승광신법이 사부들이 있는 산골짜기를 향해 펼쳐졌다.
질풍 같은 속도.
그러나 그 빛줄기는 다시 방향을 틀어 본래 자리로 돌아와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쿠쿠쿵!
사완악의 신형이 바위를 뚫고 삼 장 깊이까지 처박혔다.
-쯧쯧, 미련한 놈.
영겁사령존이 혀를 찼다.
사완악은 지금 모든 의지를 모아 구천살심공과 탈정미혼공의 유혹과 맞서고 있었다.
그러나 소용없다.
영겁사령존이 아는 한, 이 구천살심공과 탈정미혼공을 견뎌 낸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사령문을 멸문(滅門)시킨 도사(道士).
그러나 그 도사는 신선(神仙)처럼 도력(道力)이 높고 깨달음이 바다처럼 깊은 자였다.
억지로 욕구를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사의 모든 감정을 흘려보낼 수 있었던 자였다.
그러나 사완악은 아니다.
그는 제어하고, 억제하고, 내리누른다.
그리고 구천살심공과 탈정미혼공은 억압할수록 더욱 강한 본성의 욕구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휘이익!
사완악은 더욱 붉게 물든 눈빛으로 허공으로 치솟았다. 이미 이성이 사라진 듯한 마귀의 눈빛. 그 시선은 산골짜기를 향해 있었다.
영겁사령존이 조소(嘲笑)를 흘렸다.
-클클…… 거봐라. 소용없다니……!
쿠쿠쿵!
사완악의 신형이 다시 땅으로 곤두박질친다.
이번에는 바위를 더 깊게 파고들며 처박혔다.
휘이익!
그러고는 다시 공중으로 솟구쳤다.
또다시 땅으로 곤두박질친다.
콰콰쾅!
바위가 통째로 무너지며 돌덩어리들이 사완악의 몸 위로 무덤처럼 내려앉았다.
영겁사령존의 당황한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허…… 이, 이런 미친놈을 봤나?
파사삿…… 콰쾅!
사완악의 몸을 뒤덮은 바위들에 거미줄 같은 실금이 생겨나더니 산산조각이 나며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그 한가운데서 사완악은 입술을 질끈 깨문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방법이 없나.’
사면초가(四面楚歌).
그야말로 불가항력이었다.
삼켜 버린 사부들의 기운은 튀어 나갈 듯 요동쳤고, 내부에서는 구천살심공과 탈정미혼공이 마구 헤집어 댔다.
이제는 자신이 정말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건지도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게다가 저 재수 없는 영겁사령존의 음성은 계속해서 뇌리에 울려 퍼졌다.
-이놈, 제법 고집스러운 놈이라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이제 그만하는 게 좋을 거다. 구천살심공과 탈정미혼공을 억제하다가는 아무리 네 근골이 뛰어나도…… 봐라, 벌써 시작되는군.
사완악은 영겁사령존이 더 설명하지 않은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