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23
정도마신 122화
사십오 인의 명문대파 고수들.
정유문의 장원은 마치 정도 무림을 축소해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물론 각 문파마다 차출된 인원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가령 곤륜파는 그 위치가 중원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기에, 급하게 호출한다 해도 수십 일이 걸리는 거리였다.
따라서 정도맹에 파견되어 직무를 맡고 있는 곤륜파의 장로, 영현 진인만이 함께했다.
점창파와 형산파, 하북팽가 역시 한 사람만이 합류했지만, 그들은 문파를 이끌어 가는 장문인과 가주가 직접 나섰다.
이렇듯 각 문파는 각자의 사정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었으나, 어쨌든 모두가 절정의 경지에 들어선 절대 고수들이었다.
설린은 단전에 힘을 주며 눈을 크게 떴지만, 그들을 마주하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설린과 달리 사완악은 태연자약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설린은 사완악이 오늘과 같은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눈앞에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엄청난 고수들을 목격하자 그 위압감은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만약 얼마 전 대환단으로 그녀의 내공이 급격하게 증진되지 않았다면,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완악이 그들을 향해 태연하게 물었다.
“내가 너희들이 찾는 사완악이다. 무슨 일로 왔느냐?”
사십오 인의 고수들은 사완악의 뻔뻔한 물음에 황당함을 느꼈다.
태연하게 정유문에서 생활하며 있다가, 무슨 일로 왔냐니?
이자는 정녕 본인이 무림공적이라는 사실을 잊고 지내는 것일까?
하지만 그들은 모두 한 문파를 책임지거나 이끌어 가는 자들일뿐더러 수십 년간의 강호 생활로 경험이 풍부한 만큼 쉽게 흥분하지 않았다.
무당파의 장문인이 말했다.
“무림에서 끔찍한 악행을 저질렀던 사대악인의 제자이자, 정도맹의 전대 맹주를 시해한 무림공적 사완악. 정도맹의 이름으로 자네에게 죗값을 물으러 왔네.”
사완악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일 년이 지나도 당신들은 발전이 없군. 아직도 똑같은 소리만 나불대다니. 하지만 어차피 시시비비를 가리러 온 것도 아니겠지. 제법 쓸 만한 놈들끼리 열심히 뭉쳐서 왔으니까.”
“…….”
상현 진인은 굳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사완악의 말대로 오늘 이 자리는 사완악의 항변을 듣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이 자리는 오직, 이 수많은 고수들이 체면 불구하고 힘을 합쳐 사완악과 그의 수하들을 제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두 마디의 교묘한 말로 바뀔 상황이 아니었고, 이렇게 모인 이상 설령 자신들이 틀렸다 하더라도 뜻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역사는 승자의 몫이다. 오늘이 지나면 세상 사람들은 사완악을 사악한 무림공적으로 기억할 것이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명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또한 아무리 사완악이 강하다 한들, 태산에서도 간신히 도망친 그가 이곳에 있는 사십오 인의 절대고수들을 이길 수 있다는 상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이때 개방의 용두방주 방욱은 밧줄로 꽁꽁 묶은 세 명의 사내를 땅에 내동댕이치며 말했다.
“순순히 항복한다면 네 수하들의 목숨은 살려 줄 것이다.”
사완악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세 명의 사내는 만사무와 묵영, 가종후였다.
사완악은 분한 표정으로 주먹을 꽉 움켜쥐며 방욱을 노려보았다.
“마지막 한 사람은 어디 있지?”
방욱이 말했다.
“어떤 수를 썼는지 용케도 빠져나갔더군. 하지만 그 한 명은 이곳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도망쳤으니 아마도 주인을 버리고 도망간 모양이다.”
순간, 사완악의 전신에서 강렬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사완악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고, 심호흡을 크게 하며 분노를 삭이려 애썼다.
사십오 인의 고수들은 비슷한 생각을 했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 더는 날뛰지 못하는구나.’
하긴, 자신들이 사완악의 입장이라 해도 여기서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이때 사완악의 입에서 그들이 생각과 똑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좋아. 나는 내 무공에 큰 자부심이 있지만…… 당신들 전부와 싸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
“그렇다면 투항해라.”
“투항? 어떻게?”
그러자 사십오 인 중 한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내가 너에게 하독을 할 때 아무 반항도 하지 않으면 된다.”
그는 바로 사천당문의 제일 고수이자, 강호에서는 독왕이라 불리는 당온추였다.
당온추는 천하 팔대고수에 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만약 팔대고수에게 가장 싸움을 피하고 싶은 사람을 한 명만 고르라고 하면?
십중팔구 같은 팔대고수 중 한 사람이 아닌, 독왕 당온추를 꼽을 것이었다.
그만큼 독(毒)이란 무공의 고수들이 가장 꺼려하고 무서워하는 수법이었고, 독왕 당온추는 천하에서 가장 독을 잘 쓰는 사람이었다.
“이 독은 네 목숨을 해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하루 동안 사지가 마비되고 내공을 사용할 수 없게 되지. 네가 이 독을 순순히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네게 금제를 가할 뿐 목숨을 해치지는 않겠다.”
사완악은 침중한 눈빛으로 사십오 인의 고수들을 바라보다가 자포자기한 듯 깊은 한숨을 토해 냈다.
“좋아. 당신들이 이렇게까지 철두철미하게 나온다면 나로서도 방도가 없군.”
독왕 당온추는 무감정한 어조로 말했다.
“그럼 하독하겠다.”
사완악이 다급히 손을 들었다.
“잠깐.”
“무엇이냐?”
“하지만 나에게도 억울함을 풀 기회는 주었으면 좋겠군.”
하북팽가의 가주, 팽일해가 눈에 불을 켜며 위압적으로 말했다.
“이제 와서 억울할 일이 무엇이 있느냐?”
사완악은 말했다.
“있지. 있고말고. 만약 내가 억울하지 않았다면 나를 죽이러 온 남궁세가의 사람들을 살려서 돌려보내지도 않았을 거니까.”
“…….”
사실 그것은 정도맹 측에서도 의아함을 품고 있는 부분이었다.
어째서 사완악과 남궁세가의 싸움에서, 사완악은 단 한 사람도 살행을 저지르지 않았을까?
사완악이 말했다.
“내가 만약 남궁세가의 사람들을 죽였다면, 다른 오대세가는 물론 정도맹 전체와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지. 당신들도 알겠지만 내 목숨을 노리는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서 제압하는 게 보통 힘든 일이야? 심지어 무애신검과 참혼중검은 그렇게 사정을 봐주면서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고. 내 목숨을 걸고 노력한 결과가 중상으로 끝나는 거였지.”
이곳에 모인 사십오 인의 고수들은 평생 진심으로 무공에 매진한 고수들이었다.
따라서 사완악의 말은 그가 무림공적이든 아니든 간에, 한 사람의 무인 입장에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었다.
‘확실히 그건 대단한 일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완악이 말했다.
“내 노력이 얼마나 눈물겨운지 알겠지? 그리고 사실 나는 무림공적으로 선포되었음에도 도망가지 않고 정유문에서 머물렀어. 그 이유가 뭐겠어?”
이 질문 역시 정도맹이 사완악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사완악은 그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듯 말했다.
“내가 그렇게 나쁜 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였지. 그리고 그 방법은 단 하나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어.”
모용세가의 가주, 모용백은 자신도 모르게 사완악의 말에 빠져 질문을 던졌다.
“그 방법이 무엇이지?”
사완악은 물어봐 줘서 고맙다는 듯 말했다.
“내 사부님들을 당신들 앞에 데려오는 것이지.”
“……!”
순간, 이 상황을 엄격히 지켜보고 있던 열 명의 소림사 원로들의 눈에서 무서운 안광이 번뜩였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버럭 소리 질렀다.
“지금 뭐라 했느냐!”
사완악은 답했다.
“말 그대로야. 사대악인. 내 사부들을 이곳에 데려오겠다는 거야. 물론, 소림사의 영환 사부도…….”
“갈! 감히 누굴 소림사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냐!”
그 음성에서는 폭발하기 직전의 분노가 느껴졌다.
사완악은 빠르게 정정했다.
“내 말이. 소림사의 이름에 먹칠을 한 염라대사 영환을 불렀지.”
염라대사 영환.
스승을 죽인 사형제.
꿈에도 잊기 어려운 그 이름 앞에서 소림사 원로들은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사완악은 태극신검 상현 진인을 향해서도 말했다.
“채 사부도 올 거고.”
상현 진인과 무당칠자의 안색이 굳어졌다.
사완악이 채 사부라 칭한다면, 요희요검 채보령이었다.
소림사가 염라대사에게 원한이 있는 것처럼, 무당파는 전대의 장문인을 죽게 만든 채보령에게 비슷한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당신들은 내 사부들에게 깊은 원한을 갖고 있지. 내가 사부들의 행방을 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를 사부들과 같은 편으로 생각했고. 하지만 내가 사부들을 당신들 앞에 대령한다면, 그러한 오해는 풀리는 것 아닌가? 물론 정도맹주를 죽인 것은 내가 맞지만, 그건 엄연히 무인대 무인의 대결이었다고. 이건 증인들도 있는 거잖아?”
“…….”
“그러니까 한 시진만 기다려 줘. 한 시진 후면 사부들이 도착할 거니까.”
“너는 그들을 어떻게 이곳에 오게 한 거지?”
“그건 나와 사부들만의 비밀이지. 당신들 입장에서 중요한 건 사부들이 이곳에 온다는 거잖아?”
사십오 인의 고수들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며 침묵을 지켰다.
사완악의 말은 틀린 부분이 없었다.
만약 그가 정말 사대악인을 이 자리에 오게 만든다면, 사완악을 무림공적이라고 할 명분이 희석되는 것이었다.
이때 무당파 장문인 상현 진인의 귓가에 제갈세가의 장로, 철파섭선 제갈공의 음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완악, 저자를 살려 둘 수는 없습니다. 저자는 무공이 너무나 고강하고, 분명히 어떤 형태로든 후환이 될 것입니다.
상현 진인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제갈공을 쳐다봤다.
어찌하면 좋겠냐는 눈빛이었다.
제갈공의 전음이 다시 들려왔다.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상현 진인은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음성에 힘을 주어 말했다.
“제갈 장로께서는 저자의 말을 어찌 생각하시오?”
정도맹의 고수들은 상현 진인이 제갈공에게 의견을 묻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공은 지략이 뛰어나고 언변이 훌륭하다는 것을 모두 알기 때문이었다.
제갈공은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사완악, 너의 말은 잘 들었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너를 신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사완악은 고개를 돌려 제갈공을 바라봤다.
제갈공이 말했다.
“사대악인이 이곳으로 오게 된다면, 네가 그들과 힘을 합세하여 우리를 상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아!”
그의 한마디에 잠시 이성을 잃었던 소림사 원로들과 무당칠자의 눈에도 냉정함이 돌아왔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었다.
제갈공은 다시 말했다.
“하지만 네 말도 일리가 있으니…… 내게 좋은 생각이 있다.”
사완악은 빨리 알려 달라는 듯 되물었다.
“좋은 생각?”
제갈공은 자신의 쥘부채로 손바닥을 한 차례 탁,치고는 말했다.
“우선 독왕 당 장로의 독을 받아들여라. 그럼 사대악인이 도착했을 때, 너는 힘을 쓰지 못하겠지. 우리가 사대악인에게 지닌 원한을 처리한 후, 너를 해독해 주겠다.”
물론 제갈공은 이때 속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그때가 되면 넌 독이 아니라 목숨을 잃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