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25
정도마신 124화
“아이고, 사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팔은 또 왜 이러십니까?”
사완악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자신에게 달려온 사내를 알아보았다.
“구 씨로군.”
“네, 저 구가입니다.”
“아들은 잘 있나?”
“덕분예요. 아주 잘 자라고 있습니다.”
사완악은 예전에 인근의 야산을 지나가다 멧돼지를 만난 한 소년을 구해 준 적이 있었다.
사내는 그 소년의 아버지였다.
“어떻게 왔지?”
“지금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설린 문주님과 사 공자님의 정유문에 웬 사람들이 들이닥쳐서 문주님과 공자님을 겁박하고 있다고요. 그 말을 듣고 어찌 오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고맙군.”
사완악은 씩 미소를 지었다.
‘소문이 돌고 있다? 왕 장주가 제대로 일을 하고 있군.’
사완악은 자신에게 길성객잔을 팔았던 하북성의 장사꾼, 왕주보를 떠올렸다.
왕주보는 일전에 사완악에게 주기적으로 쌀을 공급하겠다고 하며, 그 외 다른 부탁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하라고 했었다.
사완악은 그때 나중에 소문 하나만 내 달라며 전음을 날렸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언젠가 정유문에 큰 위기가 찾아올지도 몰라. 그때가 되면 하북성 곳곳에 소문을 내줘.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설린과 사완악이 위험하다고. 어서 정유문으로 가서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이야. 그 소문을 내야 될 때가 오면 내가 당신한테 신호를 보낼 거야.’
그 신호는 서찰이었다.
사완악은 자신이 미리 작성한 친필의 서찰을 하나씩 소지하고 있게 했다.
만약 이런 순간이 오게 된다면, 누구든 그 서찰을 왕주보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리고 개방의 방도들을 따돌리는 데 성공한 천화는 사완악이 미리 작성해 둔 친필의 서찰을 왕주보에게 전하고 돌아왔던 것이다.
왕주보는 많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고, 하북성에 수많은 인맥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가 작정하고 소문을 내기 시작한다면, 소문이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사 공자님!”
사완악의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또 다른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 중에는 사완악이 아는 얼굴도 있었고,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사완악을 위해 목숨을 바칠 기세였다.
정도맹의 고수들은 이 상황이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무공도 모르는 사람들이 왜 사완악을…….’
사완악은 사대악인의 제자였고, 사령문의 무공을 익힌 자였다.
그는 언제나 천방지축처럼 날뛰었고, 제멋대로 행동했으며, 예의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자였다.
그런데 어떻게?
평소 무림인을 보면 말조차 걸지 못하고, 화를 입을까 봐 자리를 피하기 바쁜 일반인들이 사완악의 앞을 막아서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일까?
정유문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져서, 이제는 장원의 마당이 꽉 찰 정도였다.
그런데 이때 누군가 외쳤다.
“아니! 저분은 만사무 어른이 아닌가?”
“뭐?”
“저, 저기! 묵영이랑 가종후도 있네!”
사람들이 발견한 것은 밧줄로 꽁꽁 묶여 땅에 쓰러져 있는 만사무와 묵영, 천화, 그리고 가종후였다.
기실 하북성에서 네 명의 귀령들은 사완악만큼이나 유명해져 있었다.
아무리 그들이 말끝마다 모든 것은 설린 문주와 사완악 공자의 은혜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위험에 처한 수많은 사람들을 구한 것은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정유객잔에서도 매일 같이 땀을 뻘뻘 흘려 가며 점소이로 일하고, 아무리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도 인상 한 번 찡그리지 않는 그들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어서 그분들을 풀어 주십시오!”
“풀어 주세요! 사람을 밧줄로 묶고 있다니? 아니, 당신들이 무슨 나랏님이라도 됩니까?”
“만사무 어른! 제가 풀어 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은 급기야 귀령들에게 달려가 손으로 밧줄을 풀기 시작했다.
이때 그들을 지키고 있던 제갈세가의 무인들이 순간 내공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제갈세가의 장로 제갈공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손짓을 하여 세가의 사람들에게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게 했다.
‘저들은 어차피 독왕의 독에 중독된 상태다. 풀어 주고 말고는 상관이 없다. 괜히 제갈세가가 일반인들에게 무공을 썼다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
제갈세가는 황실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가문이기에, 그러한 소문은 조심해야 했다.
만사무와 묵영, 가종후는 사람들의 비호를 받으며 사완악의 옆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때, 사완악은 때가 무르익었다는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 진정하십시오. 제가 할 말이 있습니다.”
사완악의 한마디에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여러분이 궁금해하시는 것을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들이 누구이고, 왜 이곳에서 이런 횡포를 부리고, 저와 우리 문주님을 위협하는지 말입니다.”
정도맹 고수들의 얼굴에 황당함이 일어났다.
‘이놈이 지금 무슨…….’
하지만 사완악은 그들의 눈빛 따위는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 저는 어려서 부모를 잃은 고아였습니다.”
순간, 사람들의 얼굴에 놀람이 스쳐 갔다.
‘저렇게 번듯하고 잘생긴 사 공자님이 고아였다고?’
사완악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고아였던 저를 거두어 주신 네 명의 사부님이 계셨지요. 저는 산속에서, 세상과 떨어진 채 사부님들 손에서 자랐습니다. 사부님들이 가르쳐 주시는 무공을 배웠고, 그분들을 부모처럼 믿고 따랐습니다. 그렇게 성년이 되었을 때, 사부님들은 저에게 하산하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살라고 하셨지요. 하지만 저는 강호로 나온 후, 한 가지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느새 모두 사완악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제 사부님들이, 강호에서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허어…….”
“음…….”
사완악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에게는 정말 큰 충격이었습니다. 제 사부 중에는 여인을 겁간한 사람도 있었고, 다른 사람을 죽인 사람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강호에서는 그분들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지요. 그런데 문제는…… 그 원한을 지닌 사람들이 사부님들이 아니라 저에게 앙갚음을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놀란 얼굴로 무의식적으로 정도맹의 고수들을 바라보았다.
사완악이 말했다.
“예. 바로 저들입니다. 그들은 저에게 사부님들이 어디 있는지 물었지만, 저로서는 정말 그분들의 행방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저들은 사부 대신 저보고 죽으라고 하더군요.”
“…….”
“여러분,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시 사완악을 쳐다보았다.
“여러분 중, 부모를, 환경을, 신분을, 원하는 대로 정해서 태어나신 분들이 계십니까?”
“……!”
“아니지 않습니까? 저 역시 그랬습니다. 저는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았고, 제 의지와 상관없이 사부들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이제 세상은 제 사부님들이 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저를 죽이려고 합니다. 저는 비록 아무 잘못이 없지만, 사부님들이 지은 죄를 조금이나마 대신 속죄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그럼에도 이 세상은, 모든 것을 갖고 태어난 저들은 저를 죽이려고 합니다. 제가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사완악의 눈이 붉어지며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힘없고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사완악의 말에서 자신들의 삶에서 느낀 고통을 느꼈다.
동병상련의 아픔이 그들의 가슴을 안타깝고 뜨겁게 만들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몸을 돌려 정도맹의 고수들에게 말했다.
“사부의 죄는 사부에서 끝나야지, 왜 애꿎은 사 공자님을 죽이려 하시오?”
그게 신호가 된 듯, 다른 사내도 외쳤다.
“아니, 산속에서 도를 닦으면 뭐 하는 거요? 이렇게 억울한 사람의 사정은 신경도 쓰지 않으면서, 그러고도 도사나 스님이라고 할 수 있는 거요?”
정도맹 고수들은 사람들의 말에 반박을 하고 싶었으나,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사완악의 말에서 틀린 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사완악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사대악인을 불렀다는 것은 이들이 찾아올 시간을 번 것이었구나!’
심지어 사완악은 자신을 측은히 여기는 사람들 앞에서 눈물까지 흘리며 감정을 호소하고 있었다.
정도맹의 사람들은 사완악의 눈물이 연기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가 더 간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이들을 다 쓸어버릴 수도 없고.’
하북팽가의 가주 팽일해는 자신의 대도를 쥐었다 폈다 하면서 어떤 행동도 하지 못했다.
만약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무림인이었다면 멱살을 잡아 집어던져 버렸을 터였다.
하지만 무공을 모르는 민초들에게 그런 짓을 한다?
평소 협을 부르짖고 대의명분을 앞세우는 정파인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건 사대악인에게 가장 큰 악감정을 지니고 있는 소림사의 원로들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승려가 왜 사람을 죽이려 하냐는 사람들의 물음에 그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아직도 그렇게 칼을 들고 서 있을 것이오?”
사람들은 정도맹의 고수들을 향해 물었다.
“정말 끝까지 우리 사 공자님을 겁박할 생각이오?”
그런데 이때, 갑자기 한 소년이 대뜸 욕을 했다.
“야, 이 나쁜 사람들아!”
정도맹 고수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 소년을 바라봤다.
사완악 역시 소년에게 고개를 돌렸는데, 이때 소년과 사완악의 눈이 마주쳤다.
사완악은 소년의 눈빛을 보고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챘고, 자신도 모르게 씩 미소를 지었다.
‘꼬마 놈, 약속을 지켰군.’
소년은 바로 사완악의 뇌물과 부탁으로 고양이를 기를 수 있게 된 장호였다.
장호는 사완악과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한 적이 있었다.
사완악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달려오겠다고.
장호는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 공자님은 우리 묘아의 은인이다! 만약 당신들이 우리 사 공자님을 해치겠다면, 나는 목숨을 걸고 사 공자님을 지킬 거다!”
장호는 정도맹 고수들의 앞으로 달려가 짧은 양팔을 활짝 벌렸다.
마치 지나갈 거면 자신을 먼저 죽이라는 듯.
“…….”
정도맹 고수들이 할 말을 잃고 있을 때.
장호의 말은 마치 잔잔한 호수에 떨어진 돌멩이처럼, 사람들 사이에 파장을 일으켰다.
갑자기 한 중년의 여인이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엄마!”
“엄마!”
그녀의 뒤를 어린 소년, 소녀가 따라왔다.
여인은 장호의 옆에 서서 무당파의 장문인 상현 진인에게 말했다.
“저는 이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상현 진인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중년의 여인이 다시 말했다.
“그리고 저와 이 아이들은 돈이 없어 굶어 죽을 뻔했습니다. 만약 정유객잔이 없었다면 말입니다.”
“…….”
“정유객잔에서 저와 아이들은 매일 밥을 먹었고, 왕주보라는 분이 일자리를 주셔서 조금씩 돈을 벌어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유객잔은, 그리고 사 공자님은…….”
여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제 생명의 은인입니다. 그리고 제 아이들의 은인입니다. 만약 저분을 해하려 하신다면, 저부터 죽여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