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3
정도마신 12화
“으……!”
온몸의 실핏줄이 하나둘씩 터져 나갔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치 거대한 압력이 가해지는 것처럼, 뼈마디 하나하나가 비명을 질렀다.
영겁사령존이 웃으며 말했다.
-만약 조금 전이었다면 굳이 사부들을 죽일 필요는 없었겠지. 그런데 이제 시간이 없구나. 특히 너는 여인이 필요하니…… 다시 사부들에게 돌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방도다. 음?
영겁사령존은 순간 의외라는 듯 말끝을 올렸다.
-웃어?
인간이라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사완악이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있던 것이다.
‘이 정도 고통은 지난 육 년간 매일 버텼다, 귀신아.’
지난 세월 사완악과 함께였던 영겁사령존은 그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군림혼혈공의 고통이 그 정도였는가. 확실히 네놈은 보통 인간이 아니구나.
영겁사령존은 잠시 사완악이 고통에 저항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하지만 진짜 고통은 이제 시작이다.
“헉!”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완악은 비명을 지를 뻔했다.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가려움.
사람을 죽이고 싶은 욕구가 심해지면서 이제는 온몸이 가렵기 시작했다.
마치 수천 마리의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가려움이었다.
사완악은 자신도 모르게 손톱으로 피부를 긁어 댔다.
그의 손이 지나간 자리로 핏물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긁으면 긁을수록 가려움은 더 심해져서, 뼛속까지 긁어 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염화신공이라면……!’
사완악은 염화신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염라대사 영환의 내공까지 모두 흡수한 그의 염화신공은 실로 심후했다.
화(火)의 기운이 거세게 올라오자 가려움이 완화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사완악의 결정적인 실수였다.
“끄아아악!”
사완악은 피부부터 오장육부까지 타들어 가는 느낌에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군림혼혈공의 지옥 같은 고문 수법으로 단련한 사완악으로서도 도저히 견뎌 낼 수 없는 통증.
그 위로 영겁사령존의 음성이 들렸다.
-크큭. 그 심공은 극양의 심법. 그러나 탈정미혼공의 마지막 구결은 몸 안의 양기를 폭발시켜 음기를 끝없이 요하게 되니 자멸의 길을 걸었구나.
“크르르…….”
입안에서 거품이 끓고, 눈동자는 허옇게 뒤집혔다. 영겁사령존은 이제 끝났다는 듯 경고했다.
-이건 단순한 고통이 아니다. 더 이상 버텼다가는 정말 네 몸이 녹아내릴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네 여사부(女師傅)는 타고난 음기가 강하니 어느 정도 널 안정시켜 줄 수…….
“……죽여.”
-뭐라고?
“죽이라고 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안 할 거니까, 차라리 죽여.”
영겁사령존은 황당한 듯 잠시 말을 잃었다.
이 녀석은 도대체 뭐 하는 놈인가?
정의심이 넘치는 협객도 아니고, 수양을 쌓는 도사나 승려도 아니다. 오히려 악인들에게 교육받아 어떤 일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을 법한 녀석이다. 그래서 손쉽게 몸을 탈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버텨 내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사부들의 내공까지 뺏은 네놈이 그들을 이토록 절절하게 생각하는지 몰랐군.
“큭큭……! 멍청한 놈. 역시 귀신…… 큭…… 귀신 나부랭이라…… 멍청하기 그지없…… 크윽……!”
-뭣?
사완악은 비웃음과 신음이 뒤섞인 채 말을 이어 나갔다.
“클클…… 사부들을 생각해서가 아니야…….”
-그럼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것이냐?
“그냥.”
-……?
“그냥 싫어.”
-너 제정신이냐?
“아니. 돌아 버릴 거 같다…… 큭…… 그래도 싫어. 사부들을 죽이건 살리건…… 내가 정한다. 너 따위가 뭐라 씨불이든 알 바 아니야.”
온몸의 핏줄이 터져 버린 사완악의 무복은 이제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느낀 영겁사령존이 다급히 말했다.
-이 미친놈! 그러다 네놈이 진짜 죽는단 말이다!
사완악은 문득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너…… 이상하다?”
-……?
“내가 죽는다는데…… 왜 네가 난리지?
-…….
사완악은 뭔가 깨달은 듯 물었다.
“너 혹시…… 나 죽으면 같이 죽냐?”
순간, 영겁사령존이 처음으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사완악은 고통도 잊은 듯 크게 킬킬거렸다.
“맞구나! 내가 죽으면…… 네놈도 함께 소멸되는 거…… 크윽…… 맞지?”
-이, 이 정신 나간 놈! 그게 어쨌다는 거냐! 네가 죽는다니까!
“크크…… 좋네, 좋아. 나 사완악이 귀신 따위한테 굴복 당하느니…… 콱 죽어 버리지, 뭐.”
그 순간 사완악이 한 움큼의 피를 토해 냈다.
이미 그의 몸은 내부에서 회오리치는 구천살심공과 탈정미혼공, 그리고 과흡입된 내공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너도 죽고.”
이렇게 되자 초조해지는 것은 영겁사령존이었다.
지나치게 영악한 인간들은 두려움이 많다. 자신이 피해받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최후의 순간에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남는 쪽을 택하는 부류.
영겁사령존은 사완악이 그런 종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놈은 다르다.
세상에 다시없을 만큼 영악한 놈이 무식하기까지 하다.
영겁사령존이 초조한 듯 소리를 질러 댔다.
-너……! 진짜 죽는단 말이다! 당장 일어나!
“헤헤…… 왜? 같이 죽을 생각하니 똥줄 타냐? 죽여 봐, 죽여 보라고, 크큭…… 컥!”
사완악은 살갗이 터져 나가는 듯한 느낌과 더불어 양손이 피로 범벅되었다.
“제길…… 꼭 알아내고 싶은 게 있었는데…….”
사완악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느꼈다.
군림혼혈공을 익힐 때도 매번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느꼈지만, 그때는 한편으로 사마소가 절대 자신을 죽이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자신의 몸은 진짜 죽어 가고 있었다.
영겁사령존은 이제 사완악의 머리가 웅웅거릴 정도로 발악하듯 외쳐 대기 시작했다.
-좋아! 내가 졌다! 알겠다! 네놈 몸을 빼앗지 않으마. 함께 공존하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내가 힘을 빌려 주마. 어서 사부들에게 돌아가야 돼!
순간, 사완악은 자신의 몸에 기이한 기운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음산하고도 죽음의 냄새가 풍기는 기운이었다. 사완악은 이것이 영겁사령존의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마 사부가…… 악(惡)은 락(樂)이라고 했는데…… 확실히 난 악인으로 자란 게 맞나 보군…… 자신만만해하던 네놈이…… 이렇게 다급해하는 걸 보니…… 즐거워…….”
사완악은 특유의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가만히 들어 올렸다. 그의 손바닥에 무형(無形)의 검은 기운이 맺히기 시작했다.
-너, 너, 뭐 하는 거냐!
“네놈 힘 따위…….”
쏴아아앙!
검은 기운이 하나의 돌풍이 되어 옆에 있는 산벽(山壁)으로 쏘아졌다.
굉음과 함께 자욱한 먼지가 걷히자, 산벽에는 마치 거대한 동굴 입구처럼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실로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반면, 기운이 용솟음쳤던 사완악은 탈진하여 제자리에 쓰러졌다.
영겁사령존의 힘을 모두 긁어모아 쏘아 버린 것이었다.
“안 써.”
-야 이 미친놈아! 이 미친놈, 미친놈, 미친놈!
영겁사령존이 절규하듯 외쳤다.
사완악은 축 늘어진 채 온몸의 고통을 느끼며 그 절규를 음미했다.
“크크크…… 크큭…… 속 한번 시원하군…… 재밌구나, 재밌어. 사부들, 나 훌륭한 악인이 된 거 같습니다.”
사완악이 미친 듯 웃어 댔다.
영겁사령존은 분통이 터지다 못해 황당할 지경이었다.
사령문의 모든 원념이 모여 만들어진 자신보다, 저 미친놈이 더 사악하고 정신 나간 놈 같았다.
사완악은 씩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당장이라도 심장과 두뇌가 터져 나갈 듯한 고통.
아무리 용을 써도 구천살심공과 탈정미혼공의 부작용을 막을 방법은 없는 듯했다.
-어떻게…… 인간이 구살기(九殺氣)와 탈정기(奪情氣)를 자신의 의지로 거스른단 말인가…… 아아……!
지금까지는 마치 사람처럼 말을 하던 영겁사령존의 음성은 흡사 귀신의 흐느낌처럼 변해 있었다.
-지독한 놈……! 지독한 놈……!
영겁사령존은 분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대로…… 이대로 사라질 수는 없다. 좋아. 이번엔, 이번엔 내가 물러서마.
별안간.
영겁사령존의 기운이 수십 갈래로 나뉘며 사완악의 몸속 구석구석 퍼지기 시작했다.
‘이게 뭐지?’
사완악이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사완악의 몸속을 휘저으며 모든 걸 파괴하던 구천살심공과 탈정미혼공이 영겁사령존의 기운과 만나자 부드럽게 서서히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었다.
-이게 끝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 기다려라……!
영겁사령존은 마치 마지막 유언처럼 한마디를 남기며 사완악의 몸속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구천살심공과 탈정미혼공은 마치 자신의 뿌리를 만난 듯 영겁사령존의 기운에 순응했다.
그리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세 가지의 마기가 한 줄기가 되어 사완악의 온몸으로 퍼져 나가더니, 이미 회생불가 수준이었던 사완악의 몸이 서서히 재생되는 것이 아닌가.
터져 버렸던 핏줄들이 회복되고, 산산조각 난 뼛조각들은 더욱 단단하게 붙었다.
그 기운들은 멈추지 않고 사완악의 모든 혈도를 순회(巡廻)했다. 혈도를 막고 있던 혼탁한 기운들은 그 흐름에 함께 휩쓸려 사라졌다. 그러자 갈무리되지 않던 사대악인의 내공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 사완악의 단전으로 자리 잡았다.
“커헉…….”
사완악은 물에 빠져 익사하기 직전 구출된 사람처럼 숨 트이는 기침을 터뜨렸다.
그리고 충만해졌다.
온몸이 새것처럼 가볍고, 모든 혈관이 깨끗한 물로 씻어 낸 듯 상쾌했다.
구천살심공과 탈정미혼공의 기운이 염화신공 안으로 녹아들었고, 내공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구천살심공을 대성했을 때 나타난다는 효능이었다.
마귀의 눈빛처럼 붉게 충혈되었던 사완악의 눈동자가 어린아이 같은 광채를 반짝였다.
이 모든 기사(奇事)는 불과 일각 안에 일어난 일.
고통의 순간들이 모두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사완악은 놀랍다는 듯 핏물로 범벅된 자신의 양손과 몸을 내려다보았다.
“야, 귀신.”
-…….
“갔냐?”
-…….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진짜 갔나 보네.”
사완악은 신기한 듯 자신의 몸을 관조(觀照)해 보았다.
몸 안에 혼탁한 기운이라곤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은 듯한 느낌이었다.
사완악은 그제야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
“고맙다, 귀신아. 네가 구천살심공과 탈정미혼공이 사령문의 무공이었다는 걸 말 안 해 줬으면 이런 모험은 못 했을 거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이때, 사완악은 입가에 승리의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사라져 버린 영겁사령존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너 아직 듣고 있지? 네가 사령문 최고의 보물이니까 어쩌면 두 기운을 제어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와, 진짜 죽을까 봐 엄청 쫄았네.”
말 그대로 모험이었다.
그리고 대결이었다.
먼저 죽음의 두려움에 굴복하는 쪽이 패배하는…….
사완악은 영겁사령존이 조금만 더 버텼으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하자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하지만 상관없다.
결과적으로 모든 일이 잘되었으니까.
아니, 잘된 정도가 아니었다.
“그런데 내숭이 심한 귀신이었군. 죽여 보라니까 오히려 기연을 주네. 이 정도면 사부들이랑 다시 붙어도 할 만하겠는걸? 핫핫핫!”
사완악의 마지막 웃음소리가 산 전체에 메아리쳤다.
그 음성에는 이전의 사완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심후한 내공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건…….
터질 듯 팽배해져 있는 아랫도리였다.
사완악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 혈기왕성해졌군.”
사완악의 신형이 제자리에서 하늘로 솟구쳤다.
그러고는 허리를 활처럼 굽혔다가 앞을 향해 빛살처럼 날아갔다.
사완악의 나이 약관.
약 이십 년에 가까운 세월, 골짜기에 틀어박혀 사대악인의 제자로 길러진 그는 강호로 향해 첫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