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30
정도마신 129화
백신형의 차분한 얼굴에 잿빛 우울함이 드리웠다.
“아까 사부님께서 당신으로 인해 돌아가셨다고 말씀드렸지요?”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지.”
그러고 보니 사완악은 아직 그에 대한 해답을 듣지 못했었다.
백신형이 말했다.
“수호성의 기운을 봉인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천의문의 금지된 술법을 사용하셨고, 십이대 천기자께서 영겁사령존을 제압하며 기록해 둔 주선의 주술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사부님은 이러한 행동들이 하늘이 정해 준 운명을 거스른다는 것을 알고 계셨고, 그 형벌은 곧 자신의 영혼까지 파괴되는 죽음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백신형이 말을 할 때, 오군 연비려의 얼굴에도 큰 슬픔이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당신을 사대악인에게 넘긴 후, 사부님은 온몸의 기혈이 뒤틀리며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사부님은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바쳐서라도, 이 세상을 구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
백신형은 사완악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는 사부님의 그 숭고한 뜻을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악인이 되지 않는다면, 억지로라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사부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는 것이고, 그에 앞서 이 세상을 구하는 길이었습니다.”
사완악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물었다.
“그럼 왜 내가 사대악인의 제자라는 것을 빨리 밝히지 않았지?”
그것은 사완악이 태산에서부터 내내 궁금했던 의문이었다.
어차피 밝힐 거라면 왜 진즉에 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었다.
백신형이 답했다.
“그건 가장 쓰고 싶지 않은 방법이었습니다.”
“흠?”
“사부님께서 당신을 사대악인의 제자로 만든 이유는 당신이 그들의 심성을 보고 배우라는 뜻도 있었지만…… 이러한 경우를 대비해서였습니다. 사대악인의 제자라는 것이 밝혀지면 당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강호가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왜 빨리 밝히지 않았냐니까?”
“하지만 동시에 사부님과 저는 한 가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만약 강호가 당신을 먼저 죽이려 한다면, 그것에 대응한다고 해서 과연 ‘악’이라 볼 수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수호성이 악으로 물들기를 바랄 뿐이었으니까, 악이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흐음.”
“그럼에도 나중에 그 사실을 밝힌 이유는…… 우리는 당신 안에 아직 영겁사령존의 흉성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을 억울하게 몰고 가는 사람들에게 폭발하여 더 많은 살인을 저지른다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도맹의 죄 없는 사람들까지 당신에게 희생된다면? 그때는 그것을 악이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완벽한 확신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마지막 방도였던 셈입니다.”
사완악은 백신형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천의문의 행보에는 그야말로 어떤 사적인 감정도 없었다.
그들은 작은 것을 보지 않았고, 오직 큰 것만을 보고 달렸다.
세상의 멸망을 막는 것.
수호성을 악으로 물들여, 유례없이 강한 힘을 지닌 천살성의 성격을 바꾸는 것.
모든 초점은 그것에만 맞춰져 있었고, 그에 따른 희생은 자신의 목숨이든 남의 목숨이든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사완악은 돌연 씩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 그런데 내가 그 마지막 방도까지 보기 좋게 피해간 것이로군?”
백신형은 사완악의 웃음을 바라보다 말했다.
“당신은 지금의 상황이 즐거운가 보군요.”
사완악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아주 즐겁지. 네놈들이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고 생각하여 나를 강제로 악인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나는 결코 네놈들 뜻대로 되지 않았으니까.”
백신형은 잠시 사완악의 말을 곱씹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이내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 말대로 우리가 사부님과 사형제를 잃으면서까지 준비한 계획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당신은 생각보다 더 똑똑했고, 더 고집스러웠습니다. 어쩌면 수호성의 기운을 타고 난 영웅답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어떤 위협과 위기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모습이,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우리의 계획들을 모두 허물어 버렸지요.”
사완악이 물었다.
“그리고 지금 너희들이 나를 죽이려는 이유는?”
백신형의 음성에는 우울함이 가득했다.
“이제는 정말 아무런 방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지독할 정도로 우리의 뜻과는 반대로 행동했고, 도리어 우리를 악으로 만들며, 세상에 다시 없을 협행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아무도 하지 못한 생각을 해냈고, 사존의 힘을 얻고도 영혼은 어린아이처럼 똑같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보는 순간 한 가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미 당신 안에 있는 자미성의 봉인이 깨지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완악은 이때 자신의 심장에 박혀 있는 신비로운 기운을 떠올렸다.
‘그럼 이게 수호성의 기운인가?’
사완악이 한 번도 수련한 적 없지만, 사령지관을 통과할 때 저절로 생겨난 심장의 기운.
이 기운은 자색을 띠고 있었고, 그렇다면 자미성이라는 이름과는 확실히 어울렸다.
그리고 만약 수호성의 기운이라고 한다면, 정파의 내공과는 결이 다르면서도 사존의 힘에도 영향 받지 않는 이 신비로움이 설명될 수 있었다.
사완악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백신형의 말이 이어졌다.
“당신을 악인으로 만들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 무너졌으니, 이제는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게 나를 죽이는 거라고? 나는 아직 악을 행한 적도…….”
문득, 사완악은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렇군. 천살성이 아직 제대로 깨어나지 않았던 건가? 어쨌든 내가 사대악인의 제자로 살아왔으니 말이지.”
백신형의 눈에 다시 한번 감탄의 빛이 떠올랐지만, 이제는 사완악의 이런 본질을 꿰뚫어 보는 면모가 당연하게 느껴졌다.
“맞습니다. 당신은 악인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본래 수호성에게 주어진 운명처럼 대단한 영웅으로 살지도 않았습니다. 저희는 천살성의 움직임을 주시했지만, 그 덕분인지 천살성도 잠들어 있었지요. 하지만 근래에 당신은 수호성다운 영웅이 되기 시작했고,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묵과할 수 없습니다.”
사완악이 그 말을 받았다.
“지금 나를 죽이면 천살성도 깨어나지 않을 수 있고, 설령 깨어난다 하더라도 힘이 아직 미비할 테니 너희들이 처리하겠다?”
그 말이 맞다는 듯 백신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에게는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래?”
사완악은 백신형에게 물었다.
“더 할 말은?”
“없습니다.”
“고맙군. 속은 아주 시원해졌어. 하하, 정말 시원하군.”
사완악은 어려서부터 자신의 운명에 대해 고민해 왔다.
어째서 천기자는 자신을 사대악인의 제자로 만들었는지 궁금했고, 강호에 나와서는 그 의문이 더욱 짙어졌다.
사완악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목표는 천기자를 만나 이 모든 의문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비록 지금, 이미 죽은 천기자를 만날 수는 없었지만 사완악이 갖고 있던 대부분의 의문을 백신형이 답해 준 덕분에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후련했다.
사완악은 고개를 돌려 오군 연비려를 바라봤다.
“이제 나한테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알 것 같네. 너의 행동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고민이었겠지.”
“…….”
연비려는 딱히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사완악은 그녀에게 말했다.
“이제 네가 했던 질문들에 더 정확한 답을 해 줄 수 있겠어.”
연비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사완악은 생각을 정리하듯 한 차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백신형에게 말했다.
“아주 엄청난 개소리야.”
“…….”
“왜냐고? 너희 천의문이 생각에는 아주 큰 오만함과 아주 큰 나약함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지.”
백신형이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무슨 뜻이오?”
“오만함부터 말하자면, 너희들이 읽는 하늘의 뜻이 무조건 진리라는 오만함이지. 음양천자의 제자라고 해 봤자 결국 인간이고, 인간이 하늘의 섭리를 완벽하게 읽을 수 있다고? 그렇다면 그건 더 이상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존재겠지.”
백신형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나야말로 그렇게 믿고 싶었소. 하지만 천의문의 예언은 틀린 적이 없고, 특히 수호성과 천살성에 관한 해석은 언제나 들어맞았소. 나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소. 하나는 그동안 증명된 천의문의 예언을 믿는 것, 다른 하나는 세상이 멸망할 위험을 무릅쓰고 천의문의 예언도 믿지 않으며 당신에게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 당신이 나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겠소?”
사완악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오만하다는 거야. 왜 너의 선택에 의해서 내 운명이 좌우돼야 하지? 누가 너에게 그런 자격을 줬지?”
“그건 하늘의…….”
“하늘이고 지랄이고, 하늘이어도 내게 그딴 짓을 할 자격은 없으니까.”
사완악은 고개를 돌려 연비려에게 말했다.
“대를 위한 소를 희생? 아름다운 말이지. 하지만 난 한 번도 그딴 희생에 동의한 적 없어.”
사완악은 다시 백신형에게 고개를 돌렸다.
“세상이 멸망한다고? 사람은 어차피 죽어. 이 세상이 멸망한다는 게 왜 잘못된 거지? 그게 만약 너희가 말하는 그 잘난 하늘의 뜻이라면, 멸망하게 두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건…….”
“평소에는 하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그 하늘의 뜻이 본인들 생각에 안 맞으면 금기된 술법이고 나발이고, 남의 인생까지 멋대로 조지면서 바꾸려고 하는 게 지금 너희들 아닌가? 네 사부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 수 없다고? 네 사부는 그저 오만함으로 가득 차서 헛짓거리 하다 제 목숨까지 잃은 얼간이일 뿐이야.”
백신형의 얼굴에 처음으로 노기가 나타났다.
“사부님을…… 사부님까지 욕되게 하지 마시오.”
사완악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네가 그 노망난 늙은이를 욕하지 말라고 했으니, 나는 더 욕해야겠다. 그 늙은이는 스스로를 신선쯤으로 착각한 게 아닌가?”
“……그만 하시오.”
사완악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만 하라니 더 하겠다. 네놈들은 오만할 뿐만 아니라 나약하다. 설령 천살성이 진짜로 존재해서 세상에 다시 없을 악마가 나타난다 한들 무슨 상관이냐? 힘을 합쳐서 그 악마를 이길 생각은 못하더냐?”
“원래라면 그랬을 것이오. 하지만 이번의 천살성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오.”
“그럼 네게 물으마. 하늘이 이번에만 유독 천살성에게 그런 기운을 허락한 이유는 무엇이냐? 그 잘난 천의문의 방식으로 해석해서 말해 봐라.”
“…….”
사완악은 백신형을 향해 돌연 일장을 내질렀다.
꽝!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라졌다.
백신형은 순간적으로 장법을 펼쳐 사완악의 일장을 막아 낸 듯했고, 두 다리는 그 자리에 굳건히 서 있었다.
그의 무공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사완악은 조금 가라앉은 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그것이 옳은 결과로 이어진다고 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나? 그것에 너희들이 말하는 정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