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31
정도마신 130화
사완악의 말에 백신형은 괴로운 듯 표정을 찡그렸다.
이것은 그가 유일하게 마음속에 갖고 있던 짐이었고, 애써 외면하는 죄책감이었다.
사완악의 말은 비수처럼 날카롭게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네놈은 알고 있겠지. 내가 영겁사령존의 악령을 이기지 못했다면, 내 손으로 사부들을 모두 죽였을 것을. 뭐, 그건 그렇다 치자고. 우리 사부들은 내가 봐도 언제 죽어도 마땅한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너희는 나를 정유문으로 인도했지. 그리고 그곳에서 내게 탈정미혼공을 자극하는 음독(淫毒)을 사용했지. 만약 그 계획이 통했다면? 내가 색에 미쳐 날뛰면서 정유문의 문주를 겁간하고, 날 방해하는 자들을 모두 죽였다면? 그래, 바로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진정한 악인이 되는 것이었겠지. 하지만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사람들은?”
사완악은 이어서 말했다.
“그뿐인가? 정도맹에서는 남궁준휘를 시켜 설린 문주를 간살하려 했지. 내가 그것을 발견하면 분명히 남궁세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고, 남궁세가는 정도무림에서 중요한 위치이니 그들을 돕기 위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끼어들면 싸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거라는 생각이었겠지?”
“그, 그게 정말인가요?”
갑자기 어디선가 홍안의 소년이 나타나 말했다.
정유문에서 구휘로 지냈던 팔군이었다.
이때 백신형의 표정이 묘해졌다.
남궁준휘에게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든 것은 백신형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백신형은 그것이 누구의 생각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신우……!’
이군이자 자신의 친동생.
그 녀석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사완악의 비수는 계속해서 그의 심장을 헤집었다.
“태산에서는 내 손으로 죄 없는 후기지수들을 죽이도록 음모를 꾸몄지. 심지어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사형제를 희생시키면서까지 말이야. 어때? 너희들의 행동이? 세상을 구하겠다는 목적 아래, 세상에서 하면 안 되는 일들을 모두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 과정에서 누가 희생을 당하든, 어떤 비참한 일을 겪든, 그것으로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다면 괜찮다는 건가?”
사완악은 얼굴 가득 이죽거리는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그렇게 해야 살 수 있는 세상이라면 차라리 멸망해야 되는 거 아니야?”
“…….”
사완악은 돌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아무런 대답이 없지?”
“…….”
그러머에도 백신형이 침묵을 지키자 사완악은 땅을 박찼다.
강호제일의 경신술, 승광신법이 극성으로 발휘됐다.
사완악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마치 공간을 뛰어넘듯 홍안의 소년, 팔군의 옆에 나타났다.
“헉!”
팔군이 놀라는 순간, 사완악은 손을 뻗어 팔군의 뒷목을 움켜쥐고는 다른 손으로 그의 혈도를 몇 군데 점혈했다.
그러자 팔군의 입에서 지옥에 떨어진 듯한 비명 소리가 흘러나왔다.
바로 군림혼혈공의 고문수법이었다.
“끄아아아아!”
백신형과 연비려는 사완악이 설마 이런 짓을 할 줄 몰랐는지 아연실색하여 그를 바라봤다.
사완악은 조소를 지으며 물었다.
“연비려. 이 팔군이라는 녀석, 속마음이 순진하고 착해 보이거든. 너의 생각은 어떻지?”
연비려는 안타까운 듯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 아이는 우리 중 가장 마음이 여리고 순수한 아이에요. 그 아이에게만큼은 부디 그러지 말아 주세요.”
그 말에 사완악의 미소가 더욱 짙어지더니, 백신형에게 말했다.
“이 녀석이 그렇게 착하다면, 내가 이 녀석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만드는 건 악행이겠군. 그렇다면 당신은 기뻐해야 하지 않는가? 당신 소원대로 수호성의 기운을 타고난 내가 악행을 저지르니 말이야. 어때? 즐거워?”
사완악은 말과 동시에 팔군의 혈도 몇 군데를 다시 짚었다.
그러자 팔군은 온몸을 덜덜 떨어가며 발작을 일으켰다.
마치 죽기 직전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듯.
군림혼혈공에는 세 가지 수법이 있는데, 첫 번째가 일반적인 고문이고, 세 번째는 상대의 단전을 파괴하는 것이라면, 이 두 번째 수법이야말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심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지? 내가 악행을 벌이고 있으니 당신도, 그리고 이 녀석도 기뻐야 하는 게 아닌가? 그래야 노망난 네 사부가 지옥에서라도 뿌듯해하지 않겠나?”
백신형은 두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그만, 그만하시오.”
“아직도 나를 모르는군. 그만하라 그러니 이 녀석이 죽을 때까지 더 해야겠구나.”
이때 갑자기 하늘에서 한 음성이 울렸다.
바로 진법을 펼치고 있는 이군의 목소리였다.
“지금 그 아이의 모습을 설린 문주가 본다면 더없이 슬퍼할 것이오.”
멈칫.
사완악의 몸이 잠시 멈칫했다.
그러곤 고개를 들어 허공을 쏘아보다가 중얼거렸다.
“확실히 가장 재수 없는 놈이군.”
사완악은 그러면서 팔군의 혈도를 몇 군데 다시 짚었다.
그러자 팔군의 몸이 축 늘어지며 정신을 잃었지만, 더 이상 고통은 느끼지 않는 듯 조용해졌다.
사완악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나는 너희가 원하는 대로 했을 뿐인데, 이번에는 또 그만두라고 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군.”
사완악은 이어서 말했다.
“제멋대로 남의 인생을 파괴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어떤 희생도 강요하고, 그것 모두 다 대의를 위함이라 꾸미는 게 너희 천의문이다. 문득 의심이 드는군. 일군, 혹시 네놈이 그 천살성을 타고 난 것은 아니냐?”
사완악은 누가 대답하기도 전에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놈이 천살성이었구나. 그렇지 않다면 어찌 이 모든 행동을 계획하고 허락할 수 있을까? 네놈 선조 중에 수호성을 타고난 사람이 있다 했으니, 천살성을 타고난다 해도 이상할 건 없는 일이지. 이군, 연비려, 어서 이놈을 죽여라. 너희들의 대사형이 천살성이다.”
“…….”
사완악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백신형을 보며 비웃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 순간 그것은 허탈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별 시답지 않은 것들 때문에 지금까지 이런 개고생을 했다니. 어이가 없네.”
이때 백신형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만일, 만일…… 말이오.”
사완악이 그를 쳐다봤다.
“당신이 사랑하는 가족들과 집에 있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큰 위험이 닥치니 어서 도망가라고 하고 사라진다면 말이오. 그리고 당신은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도저히 알 수 없다면 말이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소? 그의 말을 온전히 믿을 수 없으니 집에서 있을 것이오, 아니면 혹시나 모를 위험에 대비해 가족들과 함께 피할 것이오?”
사완악은 어렵지 않다는 듯 곧장 답했다.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면 피해야겠지. 확률적으로.”
백신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 나는 그런 선택을 한 사부를 믿었고, 나 역시 그런 선택을 한 것이오.”
“하지만.”
사완악이 말했다.
“만약 집에서 도망치기 위해 가족의 팔다리 하나쯤 자르고, 기르던 동물을 버리고, 다른 집 사람을 의심해 죽이고, 내가 도망치기 위해 누군가 대신 죽어야 한다면 말이지. 나는 그의 말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집에서 모두 함께 죽는 방법을 택할 거다. 그리고 죽기 직전까지 살기 위해 어떤 방도를 찾아 노력하겠지.”
“…….”
“너와 나는 다른 게 아니야. 네놈은 틀렸고, 내가 맞다.”
확신에 찬 사완악의 말.
이내 백신형은 긴 한숨을 토해 내며 말했다.
“이미 돌이키기에는 너무 많은 강을 건넜소. 나는…… 세상을 구할 생각이오.”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네가 미친놈인건 이미 잘 알았다. 그냥 네놈이 얼마나 멍청한 새끼인지 말해 주고 있는 거지. 그래. 나도 할 말을 다 했으니 이제 더 이상 말은 필요 없겠지.”
“그런 것 같소.”
웅웅-!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땅이 진동하며 백신형의 옷자락이 하늘로 솟구쳤다.
사완악의 눈에서 이채가 흘렀다.
백신형의 전신에서 터져 나오는 기세는 결코 무적검천 사도준의 아래가 아니었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심후한 내공에 백신형의 옷자락에 태풍에 휩쓸린 듯 펄럭이고 있었다.
사완악은 일부러 크게 감탄하며 말했다.
“역시 천살성이구나! 대가리는 멍청해도 힘은 제법 대단하네.”
백신형의 이마에 주름이 그어졌다.
이 와중에도 사완악은 비아냥을 멈추지 않았고, 그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과거의 영겁사령존도 천의문의 무공 앞에 무릎 꿇었소.”
“그때 얻은 주선의 주술을 사용해 네 사부가 뒈졌지.”
“갈!”
백신형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사완악을 향해 날아갔다.
그의 손에서 천의문의 권법, 천강성권(天罡性拳)이 유성처럼 사완악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산을 무너뜨리고 바다를 뒤엎을 것 같은 배산도해(排山倒海)의 위세가 그를 덮쳐왔다.
하지만 이때, 사완악의 손에서도 가공할 만한 위력의 장세(掌勢)가 일어났다.
꽝!
땅이 왕왕 울릴 정도의 거대한 폭음이 터졌다.
두 사람은 서로 비슷한 거리를 물러섰다.
하지만 사완악의 안색은 평온했고, 반면 백신형의 안색에는 파리한 기색이 엿보였다.
‘엄청난 내공이구나.’
백신형은 사완악이 사존의 힘을 얻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직접 겪어 보니 그야말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위력이었다.
‘진법 안에서도 이럴진대…….’
이군이 펼친 진법 안에서 천의문의 내공은 배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은 사완악의 일장에 담긴 거력을 이겨 내지 못했던 것이다.
바깥이었다면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
‘이렇게 끝이 나는가? 하지만 그렇다면 강호의 운명은 어찌 되는 것인가?’
백신형은 그런 생각에 잠겨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완악은 더 이상 지체할 생각이 없었다.
“안 오면 내가 간다.”
사완악은 다시 한번 내공을 일으키며 땅을 박찼다.
이번 한 수로, 모든 것을 끝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쿠구궁!
갑자기 그들이 서 있는 돌산의 바닥에 지진이 일어나고, 쩍쩍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성가신 녀석이 진법을 변화시키는 건가?’
사완악은 그렇게 생각하며 어기충소의 신법으로 하늘로 솟구쳤다.
땅이 갈라지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사완악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났다.
“아미타불.”
돌연 들려오는 하나의 불호.
하지만 그 순간 사완악의 눈에 처음으로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 불호를 외는 음성이 너무나 익숙했던 것이다.
“이건?”
와르르.
산이 무너지며 원래의 풍경이 되돌아왔다.
그리고 사완악은 본래 도착했던 야산의 중턱에 서 있었다.
맞은편에는 백신형과 이군 백신우, 오군 연비려와 기절한 팔군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큰 키와 넓은 어깨에 조각 같은 이목구비를 지닌 범상치 않은 기운의 한 승려가 서 있었다.
사완악의 유일한 벗.
현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