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32
정도마신 131화
그는 분명히 현종이었다.
이 상황에 다른 사람도 아닌 현종이 나타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사완악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현종도 고개를 돌려 사완악을 바라봤다.
“완악!”
현종의 얼굴에는 반가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의 눈빛에서 강호로 무사히 돌아온 사완악에 대한 안도감이 느껴졌다.
반면, 사완악은 애매한 기분이었다.
사완악은 백신형에게 분노를 쏟아 내며 오늘 이 자리에서 그의 목숨을 거둘 기세로 무공을 펼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진법이 깨지면서 현종이 나타나니 황당하면서도 반갑고, 해후를 즐겨야 할지 백신형과 계속 싸워야 할지 어정쩡해진 것이었다.
“야, 반갑긴 한데…… 지금 상황이 좀 그런데?”
현종은 주변을 쭉 훑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강호로 돌아오자마자 싸움인가?”
사완악이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이놈들이 그 천기자 제자 놈들이다. 저놈이 수장이고. 천의문의 문주는 원래 다 천기자라고 부른다는군.”
순간, 현종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의 고개가 백신형에게로 향했다.
백신형은 현종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한 마리의 범을 보는 것 같구나.’
이때 현종이 물었다.
“그럼 남궁세가의 소가주를 시켜 설린 문주에게 몹쓸 짓을 하도록 유도한 것이 당신들이오?”
백신형은 대답을 망설였는데, 보다 못한 이군 백신우가 앞으로 나섰다.
“그건 저 혼자서 꾸민 일입니다.”
현종과 사완악이 백신우에게 눈길을 돌렸다.
“너 혼자?”
“그렇습니다. 형님과 다른 사형제들은 전혀 몰랐던 일입니다. 설린 문주에게 서찰을 남긴 것도 저였고, 남궁준휘를 찾아가 은근히 그의 감정을 건드린 것도 저였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
백신우의 눈이 자신도 모르게 부릅떠졌다.
사완악과 함께 있던 현종의 신형이 어느새 자신의 바로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현종의 얼굴에는 평소의 부드러움이 씻은 듯 사라져 있었고, 모든 감정이 사라진 사람처럼 안색이 굳어져 있었다.
현종의 입에서 낮고 메마른 음성이 흘러나왔다.
“왜 그랬소?”
천의문의 이군, 백신우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이 사람은 도대체…….’
백신우가 현종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멀리서 본 그와, 가까이서 마주한 현종의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큰 키와 넓은 어깨, 그리고 횃불 같은 두 눈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지금껏 그 누구에게서도 느껴 본 적 없었다.
심지어 사완악이 사존의 힘을 발휘하여 무적천검 사도준을 압도할 때에도 이런 위엄은 느끼지 못했다. 또한 그를 바라보는 현종의 눈빛에는 은은한 분노가 깔려 있어 가슴이 서늘해졌다.
“다시 묻겠소. 왜 그랬소?”
백신우는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
“그에 관련된 이야기는 당신의 친구에게 듣는 것이 빠를 것이오.”
현종은 몸을 돌려 사완악을 바라봤다.
설명해 달라는 뜻이었다.
사완악이 얼굴을 작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간략하게 말할게. 그러니까…….”
하지만 사완악의 말은 꽤 길게 이어졌다.
현종은 처음에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야기를 들을수록 깊은 생각에 빠졌고, 마지막에는 침묵을 지키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현종은 사완악에게 물었다.
“완악, 너는 이들을 어떻게 할 생각이지?”
“원래는 끝을 볼 생각이었는데…….”
사완악은 머리를 긁적였다.
“너 때문에 김새 버렸잖아. 하지만 내 생각이 중요한가? 지금 상황은 저놈들이 날 죽이러 온 거라고.”
그러나 현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제 저들은 너에게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거다. 그럴 이유가 없을 테니.”
“무슨 말이야?”
현종의 말에 사완악뿐만 아니라 천의문 제자들의 얼굴에도 의아함이 일어났다.
현종은 백신형을 향해 물었다.
“나는 수호성이나 천살성, 이러한 운명과 예언을 쉽게 믿지 못하겠소. 하지만 만약 그대가 주장하는 말들이 모두 사실이라고 해도…… 이미 천살성이 깨어났다면 어떻게 하겠소?”
현종의 말에 천의문 제자들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천의문주 백신형이 말했다.
“이미 깨어났다는 말씀처럼 들리는군요.”
“나는 그것을 정확히 판별할 능력이 없소. 다만 지금 강호에는 엄청난 일이 발생하였소.”
“엄청난 일이라면?”
현종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말했다.
“마교가 나타났소.”
“……!”
현종이 내뱉은 한마디에 백신형, 백신우 형제는 큰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교…… 마교라 하였소? 오백 년 전, 그 마교를 말하는 것이오?”
“그렇소.”
“그들이 아직도 명맥이 이어지고 있었단 말입니까?”
그들과 달리 사완악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툭 내뱉었다.
“어, 맞아. 나도 만났어.”
이번에는 현종이 놀라 사완악을 바라봤다.
“만났다고?”
“응. 웬 늙은이. 무슨 십대마공인가 뭔가 익힌다면서 어린아이를 죽이려 하고 있더라고.”
현종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어린아이들을? 혹시 그가 아이들을 죽인 장소가 아무도 없는 오두막이었나?”
“맞아. 그래서 마교 놈이냐고 물어보니까 덤비더라고. 그래서 뭐 싸우다 죽였지. 현종, 너도 마교 놈들을 만난 거야?”
현종은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처음에는 개방에서 실종된 아이들과 마공의 흔적을 발견했다. 나는 사형의 밀명으로 그곳을 조사하러 떠났었지. 그리고 추적 끝에 십만대산에서 그들의 꼬리를 잡을 수 있었다.”
현종은 자신이 조사한 것들을 보고하기 위해 중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때 사완악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된 것이다.
무림공적 사완악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과, 남궁세가가 그 사완악 한 사람에게 패배했다는 기상천외한 소문이었다.
또한 정유문이 하북성에서 객잔을 세워 가난한 자들을 돕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현종은 사완악이 정유문에 있다면 설린도 함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남궁세가를 무너뜨린 다음에는 정도맹과 싸우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이 앞서 현암 방장에게 서찰로 보고를 대신하고, 곧바로 정유문을 향해 온 것이었다.
“설린 문주와 인사를 나누고 너를 찾으러 갔는데, 네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네 방에서 누군가 급하게 신법을 펼친 흔적이 있더군.”
사완악의 경공술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현종이 발견한 것은 팔군이 경신술을 펼칠 때 생긴 흔적이었다.
“그 흔적을 따라와 보니 이곳이었고, 나는 이곳에 기이한 진법이 펼쳐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자세하게 알아보려는 찰나에 갑자기 진법이 저절로 풀어졌던 거다.”
“저절로 풀어졌다고?”
사완악은 이군을 바라봤다.
이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진법을 해제한 게 맞습니다.”
이군 백신우는 자신의 진법 안에서조차 백신형이 사완악의 상대가 될 수 없음을 느끼고 큰 절망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절체절명의 순간, 백신우는 절묘하게도 현종이 이곳에 나타난 것을 발견했다.
백신우는 진법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자신의 형이 죽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현종의 등장이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기를 바라며 진법을 해제한 것이었다.
“그래서 네가 아직 멀쩡한 거군.”
백신우는 심장에 박힌 환을 이용해 진법을 펼치고, 그 진법이 깨지면 자신의 생명도 위험해진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경우에는 그가 스스로 진법을 해제한 것이니 무탈한 듯 보였다.
사완악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전후 사정은 이제 알겠는데, 마교가 나타난 게 무슨 상관이지?”
“마교가 단순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면 상관없겠지. 하지만…… 내가 알아낸 바에 의하면 마교의 교주가 탄생했다. 무려 오백 년 만에 말이야. 마교의 교도들은 이미 그를 마존이라고 부르며 숭배하고 있더군. 그의 무공은 이미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었다는 말도 있었지.”
현종은 사완악에게 말을 하면서도 눈은 백신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그가 바로 당신들이 우려하던 천살성의 인물이 아니겠소?”
“마교의 교주…….”
백신형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사부가 예언했던 전례 없는 대흉성이 이미 깨어나 버렸다면?
현종이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물었다.
“만약 이미 천살성이 깨어난 것이라면, 당신들이 지금 하고 있는 모든 행동들에 어떤 의미가 있소?”
백신형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사완악의 운명을 좌우하려고 했던 것은, 오직 천살성의 발현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천살성이 벌써 깨어나 버렸다면?
이제는 그 운명을 바꾸거나 돌이킬 수 있는 방도가 없는 것이다.
현종이 말했다.
“그리고 어차피 당신들이 힘으로는 완악을 어쩌지도 못할 것이오.”
현종은 사완악을 보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사완악은 일 년 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천의문이 아니라 현종 자신이라 해도 사완악을 어찌할 자신이 없었다.
천의문의 문도들은 현종의 말을 인정한다는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만약 현종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사완악의 손에 어떤 일을 당했을지 몰랐다.
현종은 다시 강렬한 눈빛으로 이군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 역시 당신들의 생각에 조금도 동의하지 않소. 당신들에게 참기 어려운 분노도 느끼고 있소. 하지만…… 지금은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닌 것 같다.”
현종은 마지막 말을 내뱉을 때 고개를 돌려 사완악을 바라봤다.
사완악은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참으라는 소리지?”
“아마도.”
“내가 왜?”
“저들의 사상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그들의 능력은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
“뭐에 도움이 된다는 거지?”
현종은 사완악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고수들이 정유문에 왔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그때 너를 도왔던 사람들이 모두 죽어도 괜찮나?”
“뭐? 그 사람들이 죽긴, 왜 죽어?”
현종은 다시 말했다.
“정유문의 식구들과 설린 문주, 그리고 나까지, 너에게는 모두 죽든 말든 상관없는 사람들인가?”
“…….”
사완악은 이제 현종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현종은 이어서 모두가 들으라는 듯 말했다.
“수호성이나 천살성, 그렇게 인간이 알 수 없는 영역의 일들을 나는 알지 못하오. 하지만 마교는 바로 우리 눈앞에 다가온 악마들이오. 지금은…… 우리끼리 어떤 감정과 원한이 있다 해도, 그것을 모두 묻어 두고 힘을 합해야 하는 것이오.”
그리고 현종은 사완악에게 말했다.
“마교에 교주가 탄생한 이상, 그들은 반드시 중원으로 온다. 오백 년 전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마공은 상상을 불허할 만큼 강하고 악독하다. 너도 봤으니 알 테지, 고작 내공을 익히기 위해 어린아이들을 피를 산 채로 뽑으려 했던 것을. 나는 그 아이들의 시체를 직접 보고 왔다.”
현종의 눈에서는 슬픔과 분노의 빛이 절절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완악. 그들이 세상에 나오면…… 그런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사완악은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뭐, 그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군.”
그런데 이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