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34
정도마신 133화
정유문의 장원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방에서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난무했다.
설린을 비롯한 정유문의 무인들은 괴인들과 검을 섞는 순간, 아주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그들의 내공 때문이었다.
설린은 그들과 격돌할 때마다 차갑고 음습한 기운이 검을 타고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음습한 기운은 생전 처음 느껴 보는 종류의 불쾌감이었다.
뭔가 모르게 몸이 답답해지고, 진기의 흐름이 방해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게 마공이라는 걸까? 그나저나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
흑의 괴인들의 숫자는 스물.
정유문 측에서 그들과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여섯 명뿐이었다.
그리고 흑의 괴인들의 실력은 모두 만만치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아직 절정의 수준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비교하면 설린과 다른 귀령들, 그리고 육군 나양조보다 한 수 아래라는 뜻이었다.
문제는 이들이 사용하는 검법이 지나칠 정도로 실전적이라는 것과, 자신의 목숨을 지키려는 동작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죽자고 덤벼드는 상대는 가장 까다로운 법.
또한 이들은 매우 일사불란(一絲不亂)했다.
정유문 측의 상대가 여섯이라는 것을 인지하자, 마치 누가 명령이라도 내린 것처럼 삼 인이 한 개의 조를 이루어 한 사람을 합공하기 시작했다.
육군 나양조와 만사무는 세 명의 흑의 괴인을 그럭저럭 잘 상대하고 있었지만, 묵영과 천화, 가종후는 그렇지 못했다.
묵영은 장기가 은신술과 암기술이었기에, 가까이에 세 사람의 흑의 괴인이 붙어 버리자 자신의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가 없었다.
천화와 가종후 역시 전투에 적합한 무공이 아닌 사령문의 술법들을 익혔기에, 두 명까지는 간신히 상대를 해내다가 세 명이 되자 연신 뒷걸음치며 손발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저 상태라면 언제 치명적인 공격을 허용해도 이상해 보이지 않을 만큼 곤란한 상황이었다.
물론 사람들이 가장 걱정한 것은 설린이었다.
설린은 검술이 뛰어날지 몰라도, 내공이 약해 그들 중 가장 하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얼마 전까지의 그녀였을 뿐.
“……!”
설린을 향해 빠르게 검을 휘둘렀던 흑의 괴인은 자신의 초식을 가볍게 흘려버림과 동시에 날카롭게 자신의 허점을 찔러 오는 반격에 깜짝 놀라며 물러섰다.
자신의 안전 따위는 내팽개치고 덤벼들던 흑의 괴인을 물러서게 만든 것은 설린의 검이 처음이었다.
다른 두 흑의인이 곧바로 그녀를 공격해 갔다.
하지만 설린의 정유검법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물러서게 했다.
귀령들 중 가장 검술이 뛰어나고 쾌검술을 익힌 만사무조차 세 사람의 흑의인을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설린은 오히려 어렵지 않게 그들을 물러서게 만든 것이다.
이는 흑의인들의 검법과, 설린의 정유검법이 지닌 특성 때문이었다.
흑의인들의 검법은 실전적이고 오로지 공격 일변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천화, 가종후는 빠르게 궁지에 몰렸던 것이고, 만사무 역시 그들을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설린의 검술은 후발제인의 수법으로 상대의 공격을 흘려보내고 방어하는 데 특화되어 있었다.
또한 공격 일변도의 무공은 필연적으로 허점이 드러나기 쉬울 수밖에 없었다.
이 두 가지의 특징이 맞물려, 흑의인들은 날카롭게 자신들의 허점을 파고드는 설린의 검에 난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대환단과 사완악의 힘으로 임독양맥이 타통되며 설린의 내공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덕분이기도 했다.
‘몸이 너무 가벼워.’
설린은 그렇게 생각했고, 흑의인들은 설린의 검에서 심후한 내력을 느꼈다.
내공이 증진되면서 무공에 대한 이해도도 한층 깊어진 것일까?
설린은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흑의인들을 더 쉽게 물러서게 만든 이유를 깨달았다.
‘정유검법은 이들과 상성이 잘 맞는다. 내가 어서 이들을 쓰러뜨리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야 해.’
설린은 이제 오히려 흑의인들을 향해 전진했다.
흑의인들의 두 눈에서 살기가 쏘아져 나오며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불과 이십여 합 만에, 흑의인들은 다시 황급히 몸을 비틀며 뒤로 물러서야 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사람은 어깨를 부여잡으며 살기어린 눈빛으로 설린을 노려봤다.
상당히 깊게 베인 듯, 어깨를 잡은 손가락 사이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이때였다.
“너희는 물러서라.”
갑자기 하늘에서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동시에 한 사내가 설린의 앞에 떨어지듯 나타났다.
그는 짙은 푸른색의 무복을 입고 있었고,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처럼 차가운 인상의 중년인이었다.
그런데 그가 나타나는 순간, 장내의 기운은 또 한 번 바뀌었다.
흑의인들은 중년인의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숙이며 곧바로 뒤로 물러섰고, 다른 사람들과 싸우고 있던 흑의인들의 검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
무엇보다 설린은 그 중년인을 보는 순간 입안이 마르고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 사람은…….’
기도부터가 다른 흑의인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흑의인들의 반응을 봤을 때, 그는 이들의 수장으로 보였고,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좌중을 압도했다.
설린은 한눈에 자신이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신은 마교의 사람인가요?”
냉랭한 표정의 중년인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는 말했다.
“죽어라.”
동시에 검광이 번쩍이며 중년인의 검이 그녀의 목을 향해 쏘아졌다.
설린은 깜짝 놀랐다.
사실 그녀는 사완악이 이곳에 도착할 시간을 벌 생각으로 말을 걸었던 것이다.
흑의 괴인들이 암살자 같은 느낌이었다면, 중년인은 어떤 특별한 신분이 있는 사람 같았다.
강호의 무인이라면 이런 경우 응당 어떤 말이라도 주고받기 마련이었는데, 상대는 설린이 자신보다 더 약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의 방심도 없이 속전속결로 검을 날린 것이었다.
설린은 본능적으로 황급히 고개를 꺾으며 보법을 밟고 허리를 비틀었다.
“……!”
설린은 그야말로 모골이 송연해졌다.
중년인의 검은 그야말로 머리카락 한 올의 차이로 설린의 목을 스쳐 갔던 것이다.
중년인은 자신의 검이 빗나갔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무표정했던 얼굴에 처음으로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제법이군.”
그러나 그의 한마디 감탄이 끝나기도 전에, 중년인의 검은 이미 설린의 가슴을 꿰뚫을 기세로 찔러 오고 있었다.
그는 마치 진짜 실력을 선보이듯 보법을 밟으며 매우 확실하게 초식을 전개했고, 설린은 그 검 끝을 보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너무나 빠르고 절묘한 찌르기.
이번만큼은 설린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피해 낼 방도가 없었다.
‘사 공자님…….’
갑자기 주마등처럼 사완악과 있었던 모든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설린이 두 눈을 질끈 감았을 때였다.
째앵!
귀를 찢을 듯한 날카로운 금속성이 그녀의 눈앞에서 터졌다.
그리고 너무나 익숙한, 장난기 가득한 음성이 들려왔다.
“싸울 때 눈을 감으면 어떡해?”
설린은 그 목소리에 너무 놀라며 눈을 떴다.
백의장삼을 입고 중년인의 검을 막아 선 뒷모습.
사완악이었다.
그리고 하나의 불호가 장내를 흔들었다.
“아미타불!”
동시에 천화에게 막 살초를 날리려던 흑의인 두 명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날아갔다.
소림사의 절학, 백보신권.
현종의 바다처럼 넓은 등을 보며 천화가 중얼거렸다.
“스님이 이렇게 남자다우셔도 되나요?”
현종은 이십여 명의 흑의인들을 횃불 같은 두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등 뒤의 천화를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덕분예요.”
“뒤로 물러나 계십시오.”
그리고 현종은 사완악에게 외쳤다.
“완악. 이들은 마공을 익힌 것이 틀림없다.”
그 음성은 은은하게 울려 퍼졌는데, 기이하게도 흑의인들의 마공에 가슴이 답답해졌던 정유문 측의 사람들은 현종의 내공이 실린 목소리를 듣는 순간 속이 매우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때 사완악은 씩 웃으며 푸른색 무복의 중년인을 향해 말했다.
“왜 갑자기 가만히 있지?”
중년인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사완악을 보고 있었다.
사완악이 이곳에 나타난 경신술과, 그 찰나의 순간에 검을 뽑아 자신의 검을 막은 동작은 실로 범상치 않은 것이었다.
“너는…… 너는 누구냐?”
사완악이 피식 웃으며 중년인의 말투를 따라 했다.
“그러는 너는…… 너는 누구냐?”
“……감히.”
중년인의 얼굴에 노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의 검이 움직였다.
조금 전 설린을 상대할 때와는 또 다른 힘이 그의 검에 실렸다.
그는 사완악이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고,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그의 진심을 다한 검과 사완악이 대충 휘두른 검이 허공에서 격돌했다.
까앙!
검이 깨질 듯한 엄청난 소리.
중년인의 얼굴에 이번에는 경악이 스쳐 갔다.
손목에서 전해지는 찌릿함.
고작 약관이 조금 넘은 듯한 청년이 지닐 수 있는 내력이 아니었다.
이때 사완악이 말했다.
“한 번만 더 묻겠다. 너는 누구냐? 마교의 사람인가?”
“…….”
중년인은 침묵을 지켰다.
그러자 사완악의 표정이 묘해졌다.
여전히 입가로는 평소의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매는 얼음처럼 차갑고 안색은 굳어졌다.
“대답.”
“……!”
그 순간, 중년인은 대경실색(大驚失色)하며 번개같이 옆으로 몸을 비틀었다.
사완악의 안색이 굳어지더니 돌연 그의 신형이 잔상을 남기며 자신에게 돌진해 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중년인의 응변(應變)은 신속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사완악의 동작은 더욱 빨랐다.
“큭……!”
중년인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광풍에 휩쓸린 듯 신형을 휘청이며 뒷걸음질 쳤다.
사완악의 일장이 그의 명치에 작렬한 것이다.
물론 쓰러지지 않고 버텨 낸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볼 수 있었지만, 사완악은 이제 시작이라는 듯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막, 막아라!”
중년인은 다급히 외쳤다.
동시에 가까이에 있던 흑의 괴인들 여섯이 번개같이 사완악을 덮쳐 갔다.
그들은 목숨보다 명령이 더 우선시되는 듯 동귀어진의 기세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사완악의 입가에는 그저 차가운 냉소만이 떠올랐다.
백의장삼의 흰 소매가 허공에 원을 그리며 펄럭이는 순간에 심후한 내력의 수많은 장풍권영(掌風拳影)이 부드럽게 일어나며 흑의인영들을 덮어 씌워 갔다.
“윽!”
“으윽!”
짧은 신음이 연달아 터지는 가운데 흑의 괴인들은 맥없이 튕겨져 나갔다.
중년인은 사완악이 사용한 무공에 두 눈을 부릅떴다.
“태, 태극권…….”
그러나 그가 눈을 부릅뜰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느새 사완악이 싸늘한 기색으로 그의 앞에 당도해 있었기 때문.
“말해라. 네놈의 누구인지. 마교인인지, 신분이 무엇인지.”
사완악의 차가운 외침에 중년인은 절로 가슴이 떨려 왔다.
“너, 너야말로 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나? 내가 누구…… 냐고…….”
돌연, 사완악의 두 눈이 기이하게 변했다.
두 동공이 녹색으로 변하며 마치 뱀의 눈을 보는 것만 같았다.
동시에 목소리의 여운이 길어지며 괴이한 마력을 지니고 중년인의 뇌리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너는…… 내 말을 거역할 수 없다.”
중년인은 사완악의 두 눈에서 흘러나오는 가공할 사기에 황급히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러나 사완악의 말이 머릿속에서 웅웅 울리며 전신이 사슬로 감긴 듯 꼼짝할 수 없었고, 정신은 몽롱해져 갔다.
“사, 사술(邪術)……!”
중년인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말하라. 너는 마교의 사람이냐?”
사완악의 입에서 뱀의 울음 같은 소리가 악마의 속삭임처럼 음침하게 흘러나왔다.
중년인은 마치 찬물을 뒤집어쓴 듯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