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38
정도마신 137화
그녀의 말에 백신형의 입술이 미미하게 떨렸지만 연비려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사완악은 조금은 안정된 눈으로 연비려를 노려보며 물었다.
“그런데 왜 목숨까지 걸면서 이 녀석을 안타까워하지?”
연비려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대사형은 내게 친오라버니와 같은 사람이에요. 오라버니의 죽음을 가만히 보고 있을 동생이 있을까요?”
“……!”
오라버니의 죽음을 가만히 보고 있을 동생이 있을까요?
연비려의 마지막 말에 사완악은 무엇인가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연비려는 사완악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는 지, 어째서 이토록 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야…… 그런데 왜 이렇게 안쓰러워 보일까?’
그건 정말 이상한 감정이었다.
사완악에게 당해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는 백신형보다, 어째서 이토록 무서운 살기를 뿜어내는 사완악의 눈빛이 더 처량해 보이는 것일까?
이때 사완악이 연비려에게 물었다.
“세외선녀…… 그녀는 어디 있지?”
연비려는 깜짝 놀라며 경계의 눈빛으로 사완악을 쳐다봤다.
“당신이 어머니의 거처를 왜 묻는 거죠?”
“나는 그녀와 할 이야기가 있다.”
연비려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무림에서 은퇴하신 지 오래된 분이세요. 당신이 그분과 무슨 말을 한다는 거예요?”
사완악은 격해진 감정을 억누르며 짧게 말했다.
“너에겐 나중에 말해 주겠다. 그녀는 어디에 있지?”
연비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는 말할 수 없어요. 당신이 그분을 만날 이유도 없고, 그분께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아요? 설마 천의문에 대한 복수로, 우리와 관련된 사람들까지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
사완악은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치솟았으나 연비려에게 뭐라 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아무것도 몰랐던 것처럼, 연비려 역시 그랬을 테니.
이때 백신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북성 영안 땅에 망망장(望忘場)이라는 이름의 장원을 찾아가십시오. 그곳이 세외선녀의 은거지입니다.”
“대사형?”
연비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백신형을 바라봤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는 듯.
사완악은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연비려는 불신의 눈빛으로 사완악을 바라봤다.
“당신의 그 마음이 갑자기 바뀔 것이라고 누가 장담하죠? 지금 대사형의 모습을 보고도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요?”
사완악이 말했다.
“이번에는 분명하게 약속하지.”
그리고 백신형의 힘겨운 중얼거림도 들려왔다.
“사매…… 그의 말은 믿어도 돼.”
연비려는 어머니의 거처를 말한 것도 모자라 갑자기 사완악의 말을 보증하기까지 하는 백신형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봤다.
“대사형! 도대체 아까부터 왜 이러는 거예요?”
“…….”
입을 굳게 다문 백신형.
연비려는 사완악을 노려보며 말했다.
“어차피 당신을 막을 수는 없겠죠. 그렇게 확실하게 약속한다면 나와 함께 가요. 만약 당신이 무슨 일을 저지른다면, 나는 어머니와 목숨을 함께 할 거니까요.”
사완악은 연비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끄덕였다.
“그것이 더 좋겠군.”
“엇?”
연비려의 입에서 놀란 듯한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사완악이 불쑥 다가와 한 손으로 그녀의 양다리를 감싸고 들어 올려 어깨에 둘러멘 것이다.
“자, 잠깐만요! 설마 이렇게 가려는 건 아니죠?”
“네 속도에 맞출 수는 없다.”
“아니 그래도……!”
사완악은 다급히 외치는 연비려를 무시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귓가에 익숙한 음성의 전음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완악, 무슨 일이지?
그는 현종이었다.
사완악은 현종이 나타날 것을 알고 있었다.
현종이라면 조금 전 자신이 흥분하여 일으킨 사존의 기운을 느꼈을 테니까.
-호북성에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겼다. 정유문을 부탁해.
-갑자기 무슨 일로?
-나중에 말하지.
현종은 걱정 섞인 눈빛으로 사완악을 바라봤다.
‘평소와 다르게 몹시 불안해 보인다. 완악은 이렇게 쉽게 흔들릴 사람이 아닌데…… ‘
현종과 사완악은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것이 있었다.
현종은 멀리서도 느낄 수 있을 만큼 강렬하게 일어났던 사완악의 기운과, 상당히 심하게 당한 듯한 백신형의 몰골, 그리고 지금 사완악의 굳어진 얼굴을 보고 직감했다.
-가족에 관한 것인가?
사완악의 몸이 움찔하며 멈칫했다.
만약 현종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면 화가 났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사완악은 현종을 향해 아주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현종은 그 고갯짓을 보고는 말했다.
-안심하고 다녀와라. 무운을 빈다.
-고맙다.
그 전음을 끝으로 사완악의 신형은 빛살이 되어 정유문을 떠났다.
* * *
사완악이 백신형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시각.
정유문의 사람들은 마교도들의 시체를 한쪽으로 정리하고, 정도맹에 서신을 보냈다.
황임과 관일성은 다친 사람이 없다는 것에 크게 안도했고, 설린은 천의문의 문도들에게는 지낼 수 있는 처소를 마련해 주었다.
현종은 설린과 사령문의 귀령들에게 사완악에게 개인적인 일이 생겨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는 것과, 보름 정도면 돌아올 것이라는 말을 전해 주었다.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사완악의 출타에 의아함을 느꼈지만, 원래도 그 깊은 뜻을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문파가 안정되도록 하인들을 안심시키고 여러 정리를 마친 설린은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설린의 처소 앞에서, 한 사람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훤칠한 키에 넓은 어깨.
달빛을 받아 오늘따라 더욱 빛나는 이목구비를 보자 설린은 반가우면서도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갸웃했다.
“현종 스님?”
현종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제 처소로 돌아오시는군요.”
“네. 현종 스님도 쉬러 가신 줄 알았는데요.”
“설린 문주님과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혹시 특별히 하실 말씀이라도?”
설린은 문득 밤이 깊었다는 생각이 들어 현종이 자신에게 은밀히 전할 말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현종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닙니다만.”
“아…….”
설린은 조금 민망한 듯 하늘을 바라봤다.
“오늘따라 달빛이 참 예쁘네요. 그렇죠?”
현종은 설린의 뒷모습을 향해 말했다.
“예. 그렇군요.”
“…….”
설린은 잠시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말했다.
“전설로만 생각했던 마교가 나타나다니. 정말 깜짝 놀랐어요. 오늘 나타난 자들이 그들의 꼬리에 불과하다면, 마교의 진짜 힘은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요?”
“…….”
설린은 몸을 돌려 현종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사 공자님과 현종 스님이 계셔서 다행이에요.”
그런데 이때 현종이 불쑥 말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설린은 조금 당황하며 대답했다.
“네? 네. 말씀하세요.”
현종은 그녀의 맑은 두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내공이 많이 증진되신 것 같습니다. 대환단을 복용하신 겁니까?”
“아! 맞아요. 감사해요. 대환단의 효능은 정말 놀라웠어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너무 과분한 걸 받은 거 같아 송구스럽네요.”
현종은 고개를 저었다.
“모든 건 주인이 정해져 있는 법이지요. 그 정도로 좋은 효과를 보셨다면, 설린 문주와 인연이 있는 것입니다. 다만…….”
현종이 설린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대환단의 복용은 제가 도와드리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아…….”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설린은 무안한 얼굴로 사과했다.
“죄송해요. 정도맹의 무인들이 다녀간 후에, 사 공자님께서 만약을 대비해 내공을 보완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셔서…… 현종 스님께서 대환단은 저 혼자서 복용하면 안 된다고 하셨지만…….”
현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완악의 내공이라면 제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지요. 그리고 상황이 긴박했던 것도 사실이니 오히려 다행입니다만…….”
현종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말했다.
“저는 항상 뒤늦게 알게 되는군요.”
“예?”
“설린 문주님이 완악을 따라 정도맹을 떠난 것도, 정유문에서 같이 지내는 것도, 대환단을 이미 복용한 것도, 언제나 나중에 돼서야 알게 되는군요.”
“아…….”
설린은 현종의 말에 어떻게 대꾸를 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속으로 고민을 하다 간신히 입을 열었다.
“현종 스님께서는 아무래도 소림사에 직분이 있으셔서…… 많이 바쁘시니까요.”
현종의 눈에 묘한 빛이 일어났다.
“소림사의 직분…… 이 없다면 달랐을까요?”
“아…… 그렇지 않을까요.”
이때 설린은 한 가지 생각난 것이 있어 물었다.
“아, 혹시 남궁세가의 소가주는 어떻게 된 걸까요?”
“남궁준휘 말입니까?”
“네. 저는 현종 스님께서 남궁세가에 그를 데리고 갔다고 알고 있었는데, 남궁세가에서는 그의 행방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사 공자님을 추궁했거든요.”
그녀의 말에 현종은 조금 씁쓸한 얼굴로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
“그는 죽었습니다.”
“네?”
설린이 놀란 얼굴로 현종을 바라봤다.
현종이 말했다.
“그를 남궁세가로 데리고 돌아가던 중, 야산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가 어떻게 혈도를 풀었는지 제게 기습을 가했습니다. 저는 그의 검을 피할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반격을 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격이라 손에 사정을 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남궁세가에 그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 시국에 소림사와 남궁세가에 불화가 생기면 곤란한 일이니까요.”
“아……!”
설린은 현종의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남궁준휘가 작정하고 가한 기습이라면, 아무리 현종이라 하더라도 본능적으로 강하게 반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궁세가 입장에서는 그 말만 듣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넘어갈 리는 없을 터.
설린은 안타까운 음성으로 말했다.
“많이 힘드셨겠어요.”
“…….”
그녀의 말에 현종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설린은 다시 말했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남궁준휘, 그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고 스스로 택한 길이에요.”
“…….”
현종은 복잡한 표정으로 설린을 바라보다가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설린 문주님, 저도 정유문의 문도가 될 수 있습니까?”
설린은 너무 당황스러운 말에 놀라며 반문했다.
“네?”
현종이 말했다.
“승려는 자신의 의지로 자유롭게 환속(還俗)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만약 소림사를 나온다면, 정유문의 문도로 받아 주시겠습니까?”
“지, 진심이신가요?”
“저는 설린 문주에게 언제나 진실된 마음으로 말합니다.”
“하, 하지만…… 현종 스님은 소림수호승이시잖아요. 어떻게…….”
현종이 그녀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그건 제가 처리하면 될 일입니다. 그때가 되면 저도 정유문의 식구가 되어 설린 문주님을 도울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