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41
정도마신 140화
사완악은 만약 연비려와 함께 오지 않았다면 이 태씨 성의 노인과 먼저 싸웠어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가 사완악의 상대가 될 리는 없겠지만…….
사완악은 굳이 이곳에서 어떤 다툼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태 노인은 빠르게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정원에서 꽃을 보고 계십니다. 그곳으로 오라고 하시는군요.”
“고마워요.”
연비려는 태 노인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사완악에게 따라오라는 듯 눈빛을 보냈다.
사완악은 그녀를 따라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두 개의 전각을 지나쳐 장원의 중앙에 들어서자 연못과 돌다리가 나타났고, 그 너머에 하나의 정원이 나타났다.
정원은 매우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었다.
나무와 풀, 이름을 알 수 없는 각양각색의 꽃들.
틀림없이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손길을 거쳐야만 완성될 수 있는 정원이었다.
하지만 이 정원의 아름다움은 달빛 아래의 반딧불처럼 한 사람으로 인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원에 탁자와 의자를 놓고 앉아 차를 마시며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한 여인.
연비려의 어머니이자, 강호에서는 세외선녀라 불렸던 가인이었다.
사완악은 그녀를 보자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지는 것 같았다.
“뭐 해요?”
연비려가 사완악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사완악은 끌려가듯 그녀의 뒤를 따라 연못을 건넜다.
세외선녀 가인은 반가운 얼굴로 두 사람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어머니!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연비려의 인사에 가인이 웃으며 말했다.
“네게 그렇게 공손한 인사를 듣는 것은 이십 년 만이로구나.”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언제는 달랐나요?”
“아니다. 비록 손님 앞에서만이라 해도 응석꾸러기 딸이 이십 년 만에 철든 모습을 보여 주니 감회가 새롭네.”
“엄마! 내가 무슨 응석…… 어머.”
연비려는 입을 다물며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사실 그녀는 밖에서는 말수가 적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차분함을 지니고 있었지만, 이곳 망망장에서의 모습은 완전히 달랐다. 어려서부터 응석꾸러기로 유명했던 것이다. 가인은 웃으며 연비려를 귀엽게 바라보다 시선을 옮겨 사완악을 바라봤다.
순간, 세외선녀 가인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이 청년은…….’
가인은 놀라운 마음을 내색하지 않으며 연비려를 다시 바라봤다.
연비려가 말했다.
“이분은 제가 강호에서 알게 된 친구예요. 이름은 사완악이고, 음…… 어머니를 꼭 뵙고 싶다고 해서 찾아왔어요.”
“나를?”
연비려는 의아한 얼굴로 사완악을 쳐다봤다.
사완악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연비려에게 말했다.
“자리를 피해 줬으면 좋겠는데.”
연비려는 이미 사완악에게 어머니와 둘이서만 이야기하고 싶다는 말을 들었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엄마, 괜찮죠?”
가인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네 친구라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겠지. 잠시 네 방에서 쉬고 있으렴. 이야기가 끝나면 널 부르마.”
연비려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다시 돌다리를 건너 그곳을 떠났다.
정원에는 사완악과 가인,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사완악은 가인의 찻잔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고, 가인은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멀리서 본다면 마치 한낮의 평화로움을 즐기는 모습과 다름없었다.
할 말이 있다고 찾아온 것은 사완악이었지만, 굳게 입을 다물고 찻잔만을 노려보는 그의 모습에 대하여 가인은 아무런 의아함을 표하지 않았다.
오히려 먼저 입을 연 것은 가인이었다.
“한때는 나도 강호의 사람이었어요.”
사완악은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가인이 물었다.
“내 별호가 무엇이었는지도 아시나요?”
“천하 삼대미녀 중 한 사람. 세외선녀라고 들었습니다.”
“호호, 참 과분한 별호죠?”
사완악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과분이 아니라 과소평가라고 생각됩니다.”
“과소평가?”
가인은 웃음을 터뜨렸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라도 오랜만에 들으니 기분이 좋네요. 옛날 생각도 나고.”
물론 사완악은 빈말로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가인을 처음 보는 순간, 사완악은 내심 놀라고 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새하얗고 광채가 나는 듯한 피부에 붓으로 그린 듯한 아미, 부드러운 눈매와 사슴 같은 눈망울, 그 아래로 오뚝한 콧날과 작지만 선명한 입술, 그리고 하늘하늘한 몸매까지.
중년의 여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미모.
연비려를 봤을 때도 예쁘다고 했으나, 가인을 보는 순간 그녀가 어머니의 미모를 반도 물려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가인의 미모는 찬란했다.
사완악은 지금까지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을 사부 채보령 외에는 본 적이 없었다.
요희요검 채보령의 미색은 남심을 뒤흔들고 영혼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면, 세외선녀 가인은 그 별호처럼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인 듯한 우아함과 기품이 흐르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흠이라면, 얼굴 한편에 깊은 우울감이 자리하고 있고, 밥을 잘 못 먹는 사람처럼 수척한 기색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이때 가인이 말했다.
“남들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당시에는 약간의 경쟁심도 있었어요. 나 말고 다른 두 사람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때로는 그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죠. 그들이 더 아름다우면 함께 있을 때 비교를 당할 테니까요. 나는 내가 못난 얼굴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 정도로 뛰어난 미모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가인은 문득 사완악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 그녀 사이에 아무 인연이 없어요. 다른 세 사람과도 마찬가지죠. 사대악인의 제자인 당신이 나를 왜 찾아왔을까요?”
사완악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제가 누구인지 알고 계셨군요.”
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강호에서 은퇴했다고 해도 그 소식을 전혀 외면하고 살지는 않았으니까요. 내 딸이 강호에서 활동을 하는데, 어떤 어미가 관심을 두지 않겠어요. 사대악인의 제자이자 무림공적 사완악이라는 이름은 근래 강호에서 가장 유명했던 사람이지요.”
“…….”
“태 노인이 당신은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나 역시 당신에게서 어떤 기운도 느낄 수 없으니…… 그만큼 대단한 실력이라는 뜻이겠죠. 천하 팔대고수 중 한 사람이었던 정도맹주를 아무나 죽일 수 있는 것도 아닐 테니까요. 하지만, 그런 사람이 어떻게 비려와 친구가 되었을까요?”
사완악은 가인이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묻고 있는 것이다.
‘사대악인의 제자가, 정도맹주를 시해 한 무림공적이, 어째서 내 딸과 함께 왔느냐?’라고.
하지만 사완악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죠. 그런 사람이 내 딸의 친구라고 하고, 지금 이렇게 단 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군요. 당신이 소문처럼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인이 웃으며 말했다.
“사실 당신의 외모가 내가 아는 누군가와 너무 닮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사완악은 빠르게 물었다.
“누구를 닮았다는 말입니까?”
그러자 문득 가인의 얼굴에 한 가닥 슬픔이 떠올랐다.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났어요. 세상의 어떤 명의도 고칠 수 없는 병환을 앓았죠.”
그 순간, 사완악은 심장이 떨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자신을 닮았다는 그 사람.
불치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매우 자명(自明)한 일이었다.
“그는 당신의 부군(夫君)입니까?”
가인이 약간 놀란 얼굴로 사완악을 바라봤다.
“연비려에게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불치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맞아요. 그는 제 남편이에요.”
“제가 그 사람과 정말 닮았습니까?”
연비려는 이제 남편의 죽음을 어느 정도 극복한 듯 담담히 말했다.
“신기할 정도로요. 물론 당신은 그 사람의 젊은 시절보다 더 미청년이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정말 닮은 부분이 있군요.”
사완악은 떨리는 음성을 다잡으며 다시 물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초면에 죽은 남편에 대해 묻는 것은 어쩌면 큰 실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인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예전의 추억들이 살아나는 듯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사람이었어요.”
“신기한 사람이요?”
“그는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똑똑했고, 가장 욕심이 없었으며, 가장 재미있는 사람이었죠.”
가인은 자랑하듯 말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왜 그렇게 평범한 사람과 함께 하냐고 했지만…… 그는 남들이 모를 뿐 정말 비범한 사람이었어요. 무엇이든 한 번 보면 결코 잊는 법이 없었고, 어떤 문제와 직면하든 단숨에 그 해결책을 내놓는 사람이었죠. 그러면서도 세상의 명예나 시선에는 아무 신경도 쓰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뿐만 아니라 그는 정말 어린아이처럼 장난치기를 좋아했죠. 나는 그와 있으면 하루 종일 웃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물론 부부가 된 이후에는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는 순간에도 농담을 멈추지 않아서 크게 화를 낸 적도 있지만요.”
“…….”
가인의 말을 듣는 사완악의 기분은 뭐라 형용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죽은 남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나, 사완악에게는 자신을 낳아 준, 그리고 영원히 만날 수조차 없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으므로.
사완악은 가인에게 말했다.
“연비려에게 오빠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가인이 깜짝 놀라 사완악을 바라봤다.
“그 아이가 그런 말도 했나요?”
물론 연비려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지만,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버지와 같은 병환을 앓고 있다고 하더군요.”
“의외네요. 그 아이는 제 앞에서도 오라버니에 관한 것은 묻지 않는데…….”
가인의 얼굴에 처연함이 일어났다.
죽은 남편을 생각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슬픔이 그녀의 눈에 맺히기 시작했다.
“이 장원의 이름이 왜 망망장인지 아시나요?”
망망장(望忘場).
사완악 역시 그 이름이 매우 특이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인은 딱히 대답을 원했던 게 아닌 듯 이어서 말했다.
“망(忘)은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는 내 마음이고, 망(望)은 내 아들의 병이 부디 낫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하늘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죠. 그이를 데려간 것도 모자라, 똑같은 병을 아들에게까지 물려주었으니…….”
가인이 문득 사완악을 보며 말했다.
“사실 당신을 보니 그 아이가 떠올랐어요. 죽은 남편을 닮은 얼굴…… 그리고 그 아이가 다 자랐다면 지금 당신과 비슷한 나이겠죠. 그래서…… 그래서 자꾸만 당신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너무 아파지네요.”
사완악은 그녀 모르게 이를 악물며 잠시 침묵을 지키다 물었다.
“그 병을 고치기 위해 천기자에게 아들을 보낸 것입니까?”
“비려가 참 많은 이야기를 했군요. 맞아요. 세상의 그 어떤 명의도 고칠 수 없는 병을, 유일하게 천기자 어른께서는 방도가 있다고 하셨죠.”
사완악은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확인해 봤습니까?”
가인은 사완악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의아한 듯 사완악을 바라봤다.
“무슨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