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42
정도마신 141화
사완악은 가인에게 말했다.
“천기자가 당신 아들을 고칠 수 있다는 말, 진짜인지 확인해 보았냐는 말입니다.”
가인은 조금 당황스러운 듯 대답했다.
“천기자 어르신은 강호 제일의 기인이세요. 그분은 무공과 의술에 조예가 깊을 뿐 아니라, 강호에서 가장 많은 지식을 지니고 있고 무림의 많은 일을 예언하신 분이죠. 그런 분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어요.”
사완악이 그녀를 비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그럼 그 잘난 천기자가 치료한 당신의 아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천기자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까?”
가인의 얼굴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슬픔이 떠올랐다.
“알고 있어요. 그리고 내 아들도 결국 치료되지 않았죠. 이 장원의 이름은 내 헛된 희망으로 끝나버리고 말았어요.”
사완악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말했다.
“천기자가 당신 아들이 죽었다고 했습니까?”
이때 가인의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결국 고칠 수 없었다더군요. 하지만 그분을 어찌 원망할 수 있겠어요? 비록 내 아이의 죽음을 지켜보지도 못했지만, 그분은 정말 최선을 다했고…… 또 비려의 목숨이라도 살려 주셨으니까요.”
“비려의 목숨?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가인은 이상함을 느끼며 사완악을 쳐다봤다.
도대체 이 청년은 왜 자신의 아들과 딸에 대해서 계속 묻는 것일까?
그리고 왜 이토록 진지하고 화난 얼굴을 하고 있을까?
평소의 그녀라면 더 이상 이런 대화를 하지 않았을 테지만, 사완악의 그런 표정들이 왠지 모르게 불쌍하고 자꾸 신경 쓰이게 만들었다.
그래서 설명을 이어 갔다.
“그분은 내 첫 아이가 죽고, 이곳을 찾아와 무릎 꿇고 용서를 비셨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죽기 전까지 엄마 품에서 지내게 했어야 한다고 후회하셨죠.”
사완악의 얼굴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났다.
‘이 역겨운 늙은이가…….’
사완악의 그런 마음을 모르는 가인은 계속해서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서 한 가지 부탁을 하셨어요. 겨우 네 살에 불과했던 비려를 제자로 키울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셨죠. 비려에게도 내 남편과 아들처럼 같은 병이 생길 수도 있는데, 발병 전에 천의문의 내공심법을 익히면 괜찮을 거라고 하셨죠.”
“그래서 연비려도 천기자의 제자가 된 것입니까?”
가인의 뺨 위로 슬픔과 감격이 섞인 눈물이 흘러내렸다.
“맞아요. 그 덕분에 다행히 비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새끼를 잃은 어미의 심정을 당신은 이해할 수 없겠죠. 그 아이마저 잘못됐다면…… 나는 더 이상 이 세상을 살아갈 이유가 없었을 거예요.”
사완악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사실 사완악은 가인을 만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을 천기자에게 ‘버린’ 그녀를 절대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다만 백신형이 천기자가 그녀를 속였다고 하니, 어떤 이유였는지 듣기만이라도 해 보자는 마음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녀의 사정을 모두 듣고 나니, 그녀에게 화낼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오직 자신의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기도했을 뿐이다.
유일한 잘못이라면 천기자의 말에 감쪽같이 속았다는 것이지만…….
남편이 불치병으로 죽은 상황에, 신비한 능력과 의술을 지닌 천기자가 나타나 그런 말을 했으니 어떤 어미가 속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때 가인이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더 이상 말하는 것이 힘들군요. 솔직히 남편을 닮은 당신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너무 이상해져요. 마치 내 아이가 살아 있었다면, 지금 당신과 같은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자꾸만 당신을 보게 되고, 그럴수록 마음이 아파서 견디기 어려워지는군요. 이제 그만…… 그만 돌아가세요. 당신이 무엇 때문에 나를 찾아와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과 함께 있는 시간이 점점 힘들어지네요.”
사완악은 그녀의 눈물을 보는 순간, 심장이 들끓고 목울대가 불을 삼킨 듯 뜨거워져 어떤 말도 쉽사리 내뱉을 수가 없었다.
‘나는 살면서 내 부모가 누구인지 궁금했을 뿐이지만, 그녀는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식을 잃은 슬픔 속에서 지낸 거다.’
그렇다면 그녀야말로 누구보다 큰 괴로움 속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사완악은 이 모든 것의 원흉인 천기자를 부관참시라도 하고 싶었고, 당장 그의 제자들을 찾아가 어떤 분풀이라도 하고 싶었다.
사완악은 그녀를 바라보다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사부님들한테 남을 속이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가인이 고개를 들어 사완악을 쳐다봤다.
“거짓말을 하는 건 내게 정말 쉬운 일이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습니다.”
가인은 슬픈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아마 사부들 손에서 자란 모양이군요. 하지만 당신의 사부들은 좋은 사람들이 아니에요.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미안하지만, 그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는 사람들이죠. 나는 그들과 같은 시대에 활동했기에 잘 알고 있어요. 당신은 아직 젊은 나이고, 이제는 사리판별을 할 수 있으니 진정 옳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해요.”
사완악은 자신을 타이르는 그녀를 보며 울컥하는 마음을 억누르고 말했다.
“아니요. 나는 앞으로도 상황에 따라 어떤 거짓말이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당신을 보니 세상에서 하면 안 되는 거짓말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인은 의아한 얼굴로 사완악을 바라봤다.
사완악은 때로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깨달으며 말했다.
“당신은 천기자에게 속았습니다.”
세외선녀 가인은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물었다.
“속다니요?”
사완악은 침을 한 번 삼킨 뒤, 수만 번의 고민을 털어 버리듯 말을 내뱉었다.
“당신의 아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순간.
가인은 청천벽력(靑天霹靂)의 소식을 들은 사람처럼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그게…… 무, 무슨…… 무슨 말이죠?”
사완악은 바로 말했다.
“말 그대로입니다. 당신의 아들은 살아 있습니다. 당신의 남편과 같은 불치병에 걸리지도 않았고, 건강에 어떤 문제가 있지도 않습니다.”
가인은 왼손으로 자신의 오른 손목을 잡았다.
하지만 손의 떨림은 전혀 멈추지 않았다.
“나, 나는 당신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어요. 그 아이가 살아 있다니…… 천기자 어른이 절 속였다니……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요?”
사완악은 그녀의 혼란스러움을 이해했다.
그리고 차분히, 다시 말했다.
“천기자의 대제자, 그가 말하더군요. 나를 낳아준 친모가 당신이라고 말입니다.”
“……!”
가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온몸은 떨림이 멈추지 않았고, 눈에는 불신과 충격이 가득했다.
“나는…… 당신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사완악이 말했다.
“지금 이렇게 놀라시는 이유는, 처음 볼 때부터 내가 남편과 너무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 아닙니까?”
“…….”
가인은 대답하지 못하고 부릅뜬 눈으로 그저 사완악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내 그녀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말했다.
“이게 장난이라면, 지금 그만두세요. 거짓말이라면 당신은 지금 내 마음을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 놓고 있는 거예요. 내게 정말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는 거예요.”
사완악은 그녀의 두 눈을 피하지 않으며 말했다.
“사실이라면 어떻습니까?”
“사실이라면…….”
맺혀 있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사실이라면 그 기쁨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내가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말해 줘요.”
사완악은 있는 그대로 설명했다.
“나를 사대악인의 제자로 만든 것은 천기자였습니다. 나는 줄곧 그가 왜 나를 사대악인의 제자로 만들었으며, 나를 낳아준 부모는 누구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강호에 나와 천기자를 찾아다녔습니다. 물론 그는 이미 죽었기에 만날 수 없었지만, 그의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내 친모가 당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가인은 혼미해지는 정신을 입술을 깨물며 간신히 붙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천기자 어른이 왜 나를 속인 거죠? 어째서, 어째서 내 아들이 죽었다고 하고 사대악인에게 제자로 보낸 거죠?”
“천기자는 자신의 예언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언…….”
사완악은 천의문이 그를 악인으로 만들려고 했던 계획과 그 이유를 말해 주었다.
가인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자리에 앉으려다 어지러움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순간, 사완악의 손이 빛보다 빠르게 움직여 그녀의 팔을 잡아 주었다.
가인은 놀란 듯 자신을 부축한 사완악의 손을 바라보았다.
사완악도 스스로 놀란 듯 얼른 그녀의 팔을 놔주었다.
“……고마워요.”
“…….”
가인은 다시 한번 사완악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고는 말했다.
“천기자의 대제자…… 그는 지금 어디에 있죠?”
“정유문에 있습니다.”
“그를…… 그를 만나야겠어요.”
백신형에게 직접 사실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뜻이었다.
사완악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와 함께 가시지요.”
그 순간, 가인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사완악이 당황하여 그녀를 쳐다봤다.
“왜, 왜 갑자기 우시는 겁니까?”
가인은 울음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어떡하죠? 나는…… 그 말이 모두 사실인 것 같아요. 당신을 처음 보는 순간부터 이상했던 내 마음이…… 내 느낌이 그렇게 말해 주고 있어요.”
“그건 저도…….”
사완악은 깜짝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목이 메여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사완악은 자신의 시야가 흐릿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때 가인이 떨리는 손으로 사완악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를…… 어머니라고 한 번 불러보겠어요?”
“…….”
사완악이 아무 말이 없자 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에요. 지금은…….”
“어머니.”
“……!”
순간 가인은 마치 온 정신이 허물어지듯 사완악을 쳐다봤다.
그녀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고, 입술을 깨물어 봐도 그 입술과 어깨, 양손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가인은 두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눈을 떴다가, 사완악의 얼굴을 보자 다시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한 번만…… 한 번만 다시 말해 줘요.”
사완악은 터지려는 무엇인가를 참듯, 양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어머니. 당신이 나를 낳아 준 어머니입니다.”
* * *
가인은 한참을 울고 난 후에 말했다.
“천기자의 제자를 만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완악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직접 확인하실 생각 아니었습니까?”
가인은 고개를 저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들이 있지.”
가인은 사완악을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네가 나를 정말 어머니라고 생각한다면, 나 역시 너의 모든 말을 믿는다.”
그 순간 사완악은 생각했다.
세상에 두 사람이 모자 관계라는 증거는 백신형의 말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완벽한 증거가 될 수는 없었다.
결국 어떤 방법으로도 두 사람이 혈육이라는 것을 완벽하게 증명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어쩌면 가인은 그러한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느낌과 믿음이라는 것을.
.”그리고…….”
가인이 말했다.
“너는 정말 볼수록 네 아버지를 닮았단다.”
“제가 더 미청년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부분은 나를 닮아서겠지.”
사완악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맞는 말이다.
세외선녀 가인의 미모를 조금이라도 물려받았다면, 아버지보다 더 잘생겨야 맞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때 가인이 멍하니 사완악을 바라봤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니다. 네가 웃는 모습을 처음 봤는데…… 정말 똑같아서 놀랍구나.”
“아버지랑요?”
“그래. 그는 어떤 심각한 일 앞에서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때였다.
꼬르륵.
사완악의 뱃속에서 갑자기 아귀가 아우성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완악은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해 보니 정유문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사완악은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던 것이다.
사완악은 조금 놀란 듯 자신을 쳐다보는 가인에게 말했다.
“배고프네요. 밥 있습니까?”
잠시 후.
사완악은 그야말로 상다리가 부러진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