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50
정도마신 149화
“컥!”
“크윽!”
쾅! 쾅!
“윽……!”
비명들이 연달아 울렸다.
하지만 이것은 신천마뇌 사마소의 계획에서 어긋나는 일이었다.
처음 두 개의 비명은 소림사의 현자배 장로들의 입에서 흘러나왔지만, 마지막 신음은 잔혹신풍 구득소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이상하다.’
잔혹신풍 구득소는 현재 소림사의 고수들에게 둘러싸여 협공을 받고 있었다.
문제는 그 소림사의 고수들 중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소림사의 원로 다섯 명과 방장 대사 현암.
신천마뇌 사마소는 원로들이 염라대사 영환과 싸우는 것을 확인하고 이동했다.
사마소는 염라대사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소림사의 원로들 열 명으로는 결코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아니, 설령 그들에게 숨겨 둔 힘이 있다 하더라도 다섯이나 저렇게 멀쩡한 상태로 나타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소림사의 방장이자 천하 팔대고수 중 한 사람인 현암.
그의 등장도 매우 미심쩍었다.
처음부터 나타나 구득소를 상대한 것이 아니라, 마치 일대격전을 이미 치르고 온 사람처럼 승포가 너덜너덜 찢어져 있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다면 채보령과 겨루었다는 뜻인데…… 설마 그녀가 졌단 말인가?’
세상 사람들은 사대악인 중 염라대사가 가장 강하고 그다음은 잔혹신풍 구득소라고 알고 있었다.
요희요검 채보령은 절세의 미모와 그것을 이용한 요사한 미혼술로 유명할 뿐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조금 달랐다.
채보령의 무공은 사대악인이 무림공적이 되어 강호에서 자취를 감출 때부터 이미 구득소와 비슷한 경지였다.
물론 생사를 겨룬다면 구득소가 유리하겠지만, 그 차이는 종이 한 장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했다.
그리고 얼마 전, 두 사람의 상황은 극명하게 달라졌다.
구득소 역시 마공을 익혔지만, 채보령은 마공을 익히면서 그동안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던 전대 무당파 장문인의 내공을 모두 흡수했다. 거기에 환요옥영검의 후반부 초식들을 오대 교주에게 전수받으며 비약적인 검술의 발전이 있었다.
그런 채보령을 현암 대사가 제압했다는 것은 쉽게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이상한 점은…….’
신천마뇌 사마소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놈들이 갑자기 모두 사라졌다는 거지.’
조위청 호법이 붙여 준 열 명의 절정 고수.
마접단의 새 호위무사대가 소리 소문 없이 모습을 감추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들에 대한 지휘권은 교주가 직접 명한 것이었다.
그런데 자신에게 일언반구의 보고도 없이 갑자기 사라지다니?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
신천마뇌 사마소는 본능적으로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신법을 전개했다.
다른 사대악인들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자신이 이 소림사에서 벗어나는 것을 몰라야 한다.
이곳에서 최선을 다해 시간을 끌어 주어야 하기에.
사마소는 미리 생각해 둔 퇴로로 은밀하고 기민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막 소림사를 벗어나 산을 내려가려던 사마소의 앞을 한 사내가 막아섰다.
“그래도 반평생을 함께 보냈는데, 너무 의리가 없는 거 아니야?”
낭랑한 음성.
사마소는 몹시도 익숙한 목소리에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너는……!”
“오랜만이야, 사부님.”
사마소의 앞에 나타난 사내는 바로 사완악이었다.
사마소는 조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의리라니. 생소한 말을 하는구나.”
“그렇긴 하네.”
사완악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쨌든 예상이 맞았네. 사마 사부라면 쥐새끼처럼 이렇게 도망갈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 모습을 본 사마소의 눈이 가늘어졌다.
‘달라졌군.’
사완악은 어려서부터 다른 사부들보다 사마소를 두려워했다.
사마소가 언제나 사완악을 혹독하게 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사완악의 모습에서는 절대강자만이 지닐 수 있는 여유가 흐르고 있었다.
또한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엄청난 기운.
사완악의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평범한 방법으로는 불과 이삼 년 만에 저런 경지에 오를 수 없었다.
“기연이라도 얻은 것 같구나.”
사완악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보다시피.”
사마소의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쳐 갔다.
소림사의 원로들과 방장 대사가 나타날 수 있었던 이유.
“염라대사와 채보령. 두 사람을 네가 상대한 것이냐?”
사완악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몸이 두 개는 아니잖아.”
물론 사마소도 그렇게 생각했다.
사완악이 기연을 얻어 대단한 무공을 손에 넣었다 해도, 혼자서 그 둘을 모두 상대했을 시간은 없었다.
“나는 채 사부를 만나고 왔어. 영환 사부는 다른 사람과 싸우고 있을 거야.”
사마소는 다시 한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너 말고 염라대사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단 말이냐?”
“강호는 넓은 법이라고 배웠던 것 같은데.”
“흐음.”
사마소는 과거 자신이 사완악에게 수없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강호는 넓으니 언제나 방심하지 마라.
사마소는 잠시 사완악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요희요검은 어떻게 되었지?”
“…….”
사완악은 처음으로 침묵을 지키다가 천천히 말했다.
“죽었어.”
“네가 그녀를 죽였다는 말이냐?”
“응. 그렇게 됐네.”
사마소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그가 놀란 이유는 제자가 사부를 죽였다는 도의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사완악이 채보령을 죽였다면, 자신 역시 죽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널 키워 준 은혜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는 거냐?”
“은혜?”
사완악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너무 생소한 말을 하네, 사부님.”
“…….”
사마소는 사완악을 노려보다 말했다.
“네가 정파의 협객 놀이를 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아마 천기자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리려는 속셈이었겠지. 널 악인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던 천기자 입장에서는 네가 협객 노릇을 하면 어떤 계획이 틀어지는 것일 테니 말이다.”
사완악은 감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부님은 확실히 바로 아는군.”
반면 사마소는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그 소문을 들었을 때 내가 제대로 가르쳤다고 자부심을 느꼈다. 그런데 지금 우리와 대립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설마 협객 놀이를 하다가 진짜로 정파인들과 한통속이라도 된 것이냐?”
사완악은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채 사부한테도 말했던 거지만…… 지키고 싶은 것들이 생겼을 뿐이야.”
“지키고 싶은 것?”
“그런 게 있어.”
“그럼 마교로 오거라. 네가 마교로 온다면 네가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지킬 수 있다. 교주님께는 내가 말씀드리마.”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그게 가장 편한 방법이긴 하지. 다만, 큰 문제가 있어.”
“무슨?”
“내가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마교에 갈 리가 없다는 거지.”
“흥, 결국 협객 놀이에 아주 심취했다는 말이구나.”
“그럼 안 돼? 내가 협객을 하든 어디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짓든, 내 마음이지. 나는 원래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거 알잖아.”
사마소는 한심한 눈으로 사완악을 바라봤다.
“멍청한 놈. 어떤 놈이 될까 기대했건만, 아주 형편없어졌구나. 그리고 아주 큰 착각을 하고 있어.”
이번에는 사완악이 반문했다.
“착각?”
사마소는 사완악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겨우 그 정도 기연을 얻었다고, 네놈이 천하제일이라도 된 줄 아느냐? 너는…… 너는 결코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
사완악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얘기는 이미 채 사부에게 충분히 들었어. 그 교주라는 놈이 대단하긴 한가 보군. 사마 사부마저 이렇게 잔뜩 쫄았을 줄은 몰랐네.”
“이놈이…….”
“사부님이 마교를 나오는 건 어때? 마교로 나와 멀리 도망가서 숨어 살면 누가 사부님들을 어찌할 수 있겠어?”
사마소가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파하하. 이 멍청한 놈아. 지금 우리 보고 평생 숨어 지내다 죽으라는 말을 하는 것이냐? 마교의 개가 되면 개가 됐지, 그런 일은 절대 없다.”
사완악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럼 더 이상 길게 말 할 필요 없을 것 같네. 이제 서로 갈 길 가야지.”
사완악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한층 강해졌다.
사마소가 급히 오른손을 들며 말했다.
“잠깐!”
“왜?”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묻자. 너는 우리가 소림사를 공격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냐?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렇게 시기적절하게 나타날 수 있었지?”
“그건…….”
그런데 그때였다.
사완악이 막 대답을 하려는 찰나, 사마소의 다른 손에는 어느새 품에서 꺼내든 하나의 묵색 화통(火㷁)이 들려 있었다.
순간, 사완악은 과거 사마소가 해 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너는 만독불침이니 강호에서 암습을 당할 일은 없겠지만, 혹시 누군가 현무의 그림이 새겨진 검은색 화통을 꺼내든다면 필사적으로 도망을 가야 한다. 그건 바로 현무천살통이라는 암기로, 초절정의 고수도 죽일 수 있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사마소의 손에 있는 화통에는 현무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죽어라!”
사마소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화통의 중간 부분을 꾹 눌렀다.
쒜에에에엑!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한 대의 은빛 바늘이 사완악을 향해 쏘아졌다.
사완악의 눈동자가 일순 흔들렸다.
죽음의 위기를 직감해서가 아니었다.
‘사마 사부는 끝까지 똑같네. 영환 사부와 구 사부도 마찬가지겠지.’
세상에서는 사대악인이라 불렸고, 무림공적이었지만.
사완악에게는 그야말로 먹여 주고 재워 주며 키워 준 사람들이었다.
말로는 키워 준 은혜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 했지만, 이미 예전과 달라진 사완악의 마음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심지어 얼음 같이 차갑고 애정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던 사마소마저, 다시 보는 순간 반가운 마음이 생겨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사마소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제자를 죽이는 데 한 치의 주저함도 없는 냉정함과 잔인함.
염라대사나 잔혹신풍 역시 사마소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채보령이 죽기 전 사완악을 바라보던 애틋한 눈빛 정도일까?
사완악의 손이 벼락같이 움직였다.
동시에 그의 장심에서 마치 돌풍 같은 장력이 쏘아져 나와 날아오는 은빛 바늘과 격돌했다.
은빛 바늘은 그 장력의 바람에 휩쓸린 듯 방향을 바꾸더니, 날아왔던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사마소를 향해 날아갔다.
푹!
“컥!”
사마소의 눈이 부릅떠지며 온몸이 잘게 떨렸다.
“어떻게…… 모든 내공과 호신강기를 뚫을 수 있는 현무천살통을…….”
사완악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강호는 넓다니까.”
그렇게 사마소의 몸이 서서히 쓰러졌다.
* * *
숭산 중턱.
사완악은 네 개의 묘를 만들었다.
소림사의 원로들은 사대악인의 묘를 숭산에 둘 수 없다고 했으나, 방장 대사 현암의 목숨을 구해 준 사완악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또한, 현암 역시 사대악인이 살아서는 큰 죄를 지었으나 그들의 명복을 빌어 다시 태어나면 바르게 살라는 의미로 숭산에 그들의 묘를 만드는 것을 허락했다.
“…….”
사완악은 한참 동안 사부들의 묘를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그래도 고마웠어. 날 키워 주고 무공을 가르쳐 줘서. 잘 있어, 사부들, 그리고 어머니.”
사완악은 마치 마지막 남은 정을 떨쳐내듯 빠르게 돌아섰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채보령과 사마소가 죽으면서 했던 말이 맴돌고 있었다.
‘아무리 너라고 해도 그를 당해낼 수는 없단다.’
사완악의 눈에서 혁혁한 안광이 흘러나왔다.
“마교의 교주 놈…… 내 사부들을 이용한 대가는 꼭 치르게 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