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52
정도마신 151화
사완악은 회의실 내의 정도맹 인사들을 쭉 훑어보고는 말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대악인의 제자라는 이유로 나를 죽이려고 하던 사람들이 누구였지?”
사람들 사이에서 헛기침이 흘러나왔다.
사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처음부터 마음 한편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사완악이 무림공적이 되었던 ‘태산에서의 전투’는 꼭 그들의 잘못이라고 볼 수 없었다.
사대악인에게 원한이 있는 무림의 무인들이 너도나도 그곳으로 향했던 것이니까.
물론 그 일도 전대맹주 양천상의 계획으로 벌어진 일이었으나,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그러한 속사정까지는 알지 못했다.
사완악 역시 그때의 일은 마음에 두지 않았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 정유문에서 있었던 사건은 다르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서 차출한 사십오 인의 고수와 백 명의 개방도가 정유문에 있는 사완악을 기습적으로 찾아갔던 일.
그 사십오 인의 고수는 여기 회의실에 모인 각 문파의 대표들이 직접 차출했던 것이다.
심지어 점창파의 장문인 오향자, 개방의 용두방주, 방욱, 하북팽가의 가주, 팽일해는 그 사십오 인에 포함된 당사자들이었다.
“그때는…… 서로의 관계가 어쩔 수 없었소. 하지만 이번 소림사에서의 일로 그대가 그대의 사부들, 사대악인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입증하였소. 그러니 이제 우리는 과거의 일은 묻어 두고, 함께 힘을 합쳐 저 잔혹한 마교를 상대해야 하지 않겠소?”
입을 연 것은 바로 현 정도맹의 임시맹주, 천향화검 연천도였다.
그러자 회의 참석자 중 가장 연로한 노인 한 사람이 그의 말을 거들었다.
“맹주의 말씀이 옳소. 강호에서는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기도 하고, 마교는 공적이기도 하지요. 우리 남궁세가 역시 사완악 소협과 있었던 일들은 더 이상 마음에 담아 두지 않을 것이오.”
노인은 남궁세가의 원로, 남궁관정이었다.
남궁세가는 일전에 가문의 고수들을 이끌고 정유문을 공격했다가, 사완악 한 사람에게 참패를 당하여 강호에서의 모든 활동을 중단한 상태였다.
하지만 마교가 강호를 침공한다는 사실이 확실해지자 남궁세가도 이번 회의에는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 했기에 가주의 숙부이자 가문의 원로인 남궁관정이 온 것이다.
사완악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중얼거렸다.
“묻고 넘어가? 염병들 떨고 있네.”
그 말에 장내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감히 새파랗게 어린 강호의 후배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수장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하다니?
원래 같았으면 결코 그냥 넘어갈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모두 불편한 기색을 내비칠 뿐, 호통을 치기는커녕 대부분 사완악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사완악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이야, 역시 정파든 사파든, 무림에서는 힘이 강해야 하나 봐. 날 죽이겠다고 칼 들고 설치던 양반들이 말대꾸 한마디를 못하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수장들에게 사파 운운하는 것은 실로 모욕적인 언사였다.
몇몇의 장문인들은 내심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사완악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사부님들이 저지른 악행과 연관이 없다는 것과 사부들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충분히 해명했었지. 당신들 역시 내 말이 맞는다는 것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을 거야. 다만 과거의 원한을 갚기 위해 사대악인을 찾지 못하면 나에게라도 분풀이를 하고 싶었던 거지. 아니면, 사람들에게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를 거스르면 이렇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싶었거나.”
“…….”
수장들은 정곡을 찔린 듯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사완악은 이죽거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네놈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적이 나타났으니 같이 싸워 달라고? 개소리도 이런 개소리는 처음 듣는군.”
이때 개방의 용두방주, 신주대일랑 방욱이 말했다.
“나는 자네의 말을 일부 인정할 수밖에 없네. 나에게 앙금이 남아 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 하지만, 자네가 간과하는 것이 있지 않나?”
사완악은 무슨 말이냐는 듯 그를 바라봤다.
방욱이 말했다.
“우리가 마교를 막지 못한다면, 자네가 속한 정유문은 무사할 거라 생각하는가?”
방욱은 사완악이 어떤 대답을 하기도 전에 다시 말했다.
“아니, 정유문 식구들만이라면 마교의 눈을 피해 도망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날 자네를 위해 목숨을 건 수많은 민초들을 보았네. 힘없고 가난한 자들이, 칼을 든 무림인들을 압박하는 모습은 내 평생에 처음 보는 모습이었고, 진심으로 감복했네. 하지만 생각해 보시게. 우리가 마교를 막지 못한다면, 피해를 입는 것은 단순히 무림만이 아니네. 그토록 파괴적이고 잔혹한 자들이 무공을 모르는 일반 백성들이라고 해서 가만히 둘 것 같은가? 일례로 우리 개방과 소림의 조사에 따르면 마교의 어느 고수가 마공을 수련하기 위해 열 살 미만의 어린아이들을 유괴하여 죽이고 그 피를 흡입한 흔적도 발견했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주저하지 않고 저지르는 자들이라는 뜻이네. 자네는 자네를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바쳤던 그들이 어떤 일을 당해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말인가?”
사완악은 미소를 띤 채 용두방주 방욱을 가만히 바라봤다.
“확실히…….”
여유로운 웃음과 달리, 사완악의 그리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다.
“명문대파의 수장들답게 혓바닥이 매끄럽단 말이지.”
방욱의 말은 사완악의 입장에서 유일하게 반박할 수 없는 요소였다.
정유문의 식구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 연비려까지는 지키는 것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마교와 싸우지 않고, 무공을 모르는 하북성의 모든 사람들까지 지키는 건 아무리 사완악이라 해도 불가능했다.
기분 같아서는 그런 사람들까지 신경 쓸 이유 없다고 하고 싶었으나…….
‘사 공자님은 우리 묘아의 은인이다! 만약 당신들이 우리 사 공자님을 해치겠다면, 나는 목숨을 걸고 사 공자님을 지킬 거다!’
‘저와 이 아이들은 돈이 없어 굶어죽을 뻔했습니다. 만약 정유객잔이 없었다면 말입니다. 정유객잔에서 저와 아이들은 매일 밥을 먹었고, 왕주보라는 분이 일자리를 주셔서 조금씩 돈을 벌어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유객잔은, 그리고 사 공자님은 제 생명의 은인입니다. 그리고 제 아이들의 은인입니다. 만약 저분을 해하려 하신다면, 저부터 죽여 주십시오.’
방욱의 말대로 자신을 위해 나섰던 사람들의 말이 귓가에서 맴돌았다.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그래. 당신 말대로 나 역시 마교를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겠군.”
사람들의 안색이 한층 밝아지려는 순간.
사완악이 말했다.
“대신 당신들이 어느 정도 죽은 다음에 나서야겠어.”
“뭐, 뭐라고?”
“그렇잖아. 마교가 정유문이나 무공을 모르는 사람들을 경계나 하겠어? 그들이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먼저 공격하겠지. 당신들은 목숨을 바쳐 그들과 싸워. 나는 당신들의 문파가 어느 정도 망한 뒤에 그들과 싸울 테니까.”
명문대파의 수장들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사완악을 바라봤다.
사완악의 말은 그들로서는 발상 자체가 불가능한 생각이었다.
청성파의 장문인이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도대체 얼마나 꼬여 있기에 그런 생각을 한단 말인가? 정파 무림의 수많은 젊은 인재들이 마교의 손에 죽는 것을 지켜만 보겠다는 뜻인가!”
사완악은 청성파의 장문인을 태연한 얼굴로 바라보며 말했다.
“맞아. 그 이유는 당신들 때문이야. 아주 글러먹었으니까.”
“그, 글러먹어……?”
“당신들이 나에게 먼저 해야 할 행동은 용서를 비는 것이었어.”
사완악의 얼굴에는 어느새 웃음기가 사라졌다.
“멋대로 나를 오해하고 무림공적으로 만들어 죽이려고 했던 것에 대해서. 너희들이 잘못 알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고, 그다음에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어야지. 그런데 고작 한다는 소리가 뭐? 묻고 넘어가? 정유문과 하북성의 사람들도 죽게 될 것이니 도와라? 명문대파의 수장이라는 자들 대가리 속에서 나온다는 말이 겨우 그거뿐인가?”
“…….”
사완악의 눈에서 분노의 빛이 일었다.
“나는 너희 같은 것들이 정파라는 이름을 대표한다는 것 자체가 역겹거든. 그러니 이참에 마교 놈들이 너희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어떻게 멸문시키는지 감상해 볼 생각이야.”
이때였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사완악이 고개를 돌렸다.
소림사의 방장 대사, 현암이었다.
“어떻게 하면 사 소협에게 사죄하고, 마음을 풀 수 있겠습니까?”
“대사……!”
구파일방의 장문인들이 떨리는 눈으로 현암을 쳐다봤다.
현암은 그들에게 말했다.
“사 소협의 말은 한 치의 틀림도 없습니다. 우리는 부끄러운 과오를 인정하고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
명문대파의 수장들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사완악은 고개를 살짝 꺾고 팔짱을 끼며 현암을 바라보다 말했다.
“무릎 꿇어.”
“……!”
장문인과 가주들은 다시 고개를 번쩍 들며 사완악을 노려봤다.
사완악이 말했다.
“아, 물론 현암 대사. 당신은 제외야. 다른 문파는 몰라도 소림사가 영환 사부에게 품은 원한은 납득이 되는 사안이니까. 그리고 소림은…… 내 친구이자 전우의 문파이기도 하고.”
사완악은 현종을 슬쩍 바라본 뒤 다시 임시맹주이자 화산파의 장문인 연천도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소림사를 제외한 구파일방의 장문인들과 오대세가의 가주들, 혹은 가주를 대신해 온 사람들. 모두 여기서 무릎을 꿇어. 그럼 내 마음이 풀릴 것 같네.”
“뭣이……!”
사람들의 눈빛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들은 명문대파의 수장으로 누군가에게 존경을 받을 뿐, 결코 자존심을 굽힐 일이 없는 자들이었다. 지금 이렇게 사완악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조차 크게 체면이 상하는 일인데, 무릎을 꿇으라니?
사완악이 웃으며 말했다.
“왜? 내 도움이 꼭 필요하다며? 싫음 말든가.”
그런데 이때 현암 대사의 입이 소리 없이 달싹였다.
사완악은 그것이 전음을 날리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현암의 전음을 듣는 장문인들과 가주들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잠시 후.
임시맹주 연천도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옆으로 한 걸음 움직여 사완악을 향해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인정하겠소. 본인을 비롯한 화산파는, 과거 잔혹신풍 구득소에게 당한 원한이 깊어 사완악 소협에게 죄를 뒤집어씌웠소. 그 점에 대하여 용서를 빌겠소.”
연천도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구파일방의 장문인들과 오대세가의 대표들도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그중에는 사완악이 제외했던 소림사의 현암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포권하며 사완악에게 고개를 숙였다.
용서를 빈다는 의미였다.
사완악은 조금 의외라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봤다.
설마 이들이 정말 이렇게까지 용서를 빌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사완악은 한참 동안 그들을 내려다보다가 마침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