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54
정도마신 153화
눈처럼 하얀 백의장삼에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닌 청년.
그는 틀림없이 정유문에서 남궁세가에게 좌절감을 안겨 준 사완악이었다.
“사완악……! 네가 어떻게 이곳에?”
사완악은 어깨를 으쓱이며 품에서 하나의 비수를 꺼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
쉬이이익!
사완악의 손을 떠난 비수는 한 줄기 섬광처럼 번쩍이며 남궁조의 얼굴 옆을 지나치고 뒤쪽으로 날아갔다.
이는 바로 사령문의 암기술이자, 귀령들 중 묵영이 익힌 개암천살기(開暗千殺器)였다.
사완악은 여러 문파의 무공을 익히는 중간에, 머리를 식히는 겸 개암천살기의 수법들을 익혀 둔 적이 있었다.
단순히 심심풀이로 한두 번 수련해 본 것이 전부였지만, 사완악의 손에서 펼쳐진 무공의 위력이 약할 리는 없었다.
“끅!”
비수가 날아간 방향에서 하나의 답답한 신음이 터졌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본 남궁조와 남궁우의 눈이 살짝 커졌다.
사완악의 비수가 어느 귀검마가의 무사의 등에 깊숙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쓰러진 무사의 앞에는 남궁세가의 한 제자가 창백해진 얼굴로 넘어져 있었다.
만약 사완악이 비수를 날리지 않았다면, 그 남궁세가의 무인은 이미 목숨을 잃었을 것이 자명한 상황이었다.
‘이놈이 어째서…….’
남궁조와 남궁우는 마교의 급습으로 소림사와 모용세가가 당했다는 소식은 들었으나, 소림사에서 그들을 물리친 것이 사완악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자신들에게 별로 감정이 좋지 않을 사완악이 갑자기 나타나 마교도를 죽이고 남궁세가의 제자를 구해 준 것이 이상할 수밖에.
그런 그들의 정신을 사완악이 일깨웠다.
“가문의 사람들이 죽든 말든 그렇게 멍청한 표정으로 계속 서 있을 거야?”
“……!”
“이놈은 내가 맡아 줄 테니, 가서 조무래기들이나 처리해.”
매우 모욕적인 언사.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 누군가 돕지 않는다면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귀검마가의 무인들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사완악에 대한 의아함은 둘째 문제.
우선은 세가의 사람들을 구해야 했다.
그리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사완악이 남궁세가를 돕는다는 사실에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마음이 든든해졌다.
“핫!”
남궁조와 남궁우는 서로를 한 번 바라본 후, 동시에 땅을 박찼다.
“어딜……!”
독진고는 두 사람을 향해 재차 검을 날리려다가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사완악이 미소를 지으며 그의 정면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독진고는 두 눈에서 살기를 뿜어내며 언성을 높였다.
“넌 뭐 하는 놈이냐?”
“나? 사완악인데.”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인데. 어느 문파의 놈이지?”
“들어 본 적 없다고? 정유문의 사완악이라고 하면 온 강호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중인데?”
“정유문…….”
독진고는 물론, 칠대마가의 교도들은 마교촌에서 태어나 평생 그곳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중원에 대한 정보는 과거의 기록과 구전(口傳)을 통해 들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강호에서 활동하는 마접단이 존재했지만,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칠대마가에는 그러한 소식들이 전해지지 않았다.
그들은 강호에 대하여 아주 기본적인 사항들만을 알고 있었다.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정도맹과 사천회, 중원의 팔대고수가 누구인지 정도가 전부였다.
당연히 최근에 강호를 뒤흔들었던 정유문이나 무림공적 사완악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즉, 독진고가 처음 듣는 이름과 문파라면 별로 신경 쓸 가치가 없다는 뜻이지만…….
‘남궁세가의 가주가 이 애송이의 한마디에 바로 물러섰다는 건…….’
확실히 보통 놈은 아니라는 것.
하지만 그런 여부는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독진고는 이곳에 설전(舌戰)을 하거나 어떤 정보를 얻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교주의 명령은 단 하나.
남궁세가를 말살하는 것.
그리고 독진고는 설령 중원에서 가장 강하다는 천하 팔대고수가 와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공간이 찢기는 듯한 파공음과 함께.
독진고의 검은 어느새 사완악을 향해 찔러 갔다.
번쩍!
사완악의 검에서도 빛이 번쩍였다.
꽈앙!
섬광과 섬광의 격돌 소리와 충격에 주변의 공간이 흔들리는 듯한 착각이 일어났다.
검에 담긴 두 사람의 내력은 그만큼 심후했다.
사완악의 입에서 감탄 섞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확실히 대단하네. 이 정도면 강호에서 당신을 막아설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겠어.”
사완악은 그렇게 중얼거린 뒤 물었다.
하지만 더 놀란 것은 독진고였다.
독진고는 아무리 사완악에게 남다른 재주가 있다 해도, 새파란 애송이가 자신이 진심으로 찌른 일격을 막아 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사완악은 그 공격을 너무나 수월하게 막아 냈을 뿐만 아니라, 손목을 타고 느껴지는 그의 힘은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너는…….”
사완악은 진지해진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독진고에게 물었다.
“칠대마가의 가주들은 다 이 정도 실력을 갖고 있나?”
독진고의 짙은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칠대마가를 알고 있었나?”
“뭐, 대충. 이름만 들었지.”
사완악이 칠대마가에 대해서 알게 된 건 정도맹 회의 때였다.
현종은 마접단의 단주 나화연에게 들었던 마교의 정보를 전해 주었다.
마교에는 중원의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와 같은 칠대마가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칠대마가의 가주들과 몇 명의 호법, 마교의 규율을 책임지는 집법당주, 교주의 직속부대 대주 정도가 마교에서 가장 높고 강한 직분의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
귀검마가의 가주, 독진고가 아무 말을 하지 않자 사완악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하긴, 대충 비슷하니까 같이 묶여서 불리겠지.”
“이놈이…….”
이때, 뒤쪽에서 비명들이 연달아 터졌다.
여전히 남궁세가는 열세였다.
하지만 아까와 달라진 점은 회색 무복을 입은 귀검마가의 무인들도 하나둘씩 쓰러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내상을 입었다 해도 남궁세가의 최고수 두 명이 전투에 참여하자 싸움의 양상이 조금 바뀌고 있었다.
물론 절대 고수인 가주가 없이도 남궁세가 전체보다 우위를 보이는 귀검마가의 힘은 놀라웠지만, 독진고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사완악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혈족이 당하니까 가슴이 쓰린가 보군. 자신의 가족이 당하는 것이 슬프다면, 다른 사람의 가족도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지.”
그러나 사완악의 말에 독진고는 오히려 조소를 터뜨렸다.
“혈족? 누가 혈족이란 말이냐?”
“응? 가문이니까 다 같은 식구 아니야?”
사완악은 잘못 알고 있었다.
칠대마가는 가문이라고 칭하고는 있으나, 실제로는 한 성씨의 집안이 아니었다.
그들은 무림으로 치면 일종의 한 문파였다.
과거 칠대마가에는 마교의 십대마공 중 하나씩이 전해졌고, 각 가문의 가주는 그 마공을 익힐 수 있었다.
가주는 그 마공의 하위단계의 무공을 가문의 무인들에게 전수하며, 가장 높은 성취를 보이는 자들에게 가신의 자리를 주었다. 또한, 후계가 혈족을 통해 전해지는 것이 아니기에 가문의 문도들은 가주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이렇듯 칠대마가는 내부적으로는 가주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외부적으로는 칠대마가끼리 서로 경쟁하여 힘을 키웠으며, 나아가서는 그들이 곧 마교의 힘이 되도록 하는 것이 존재의 이유였다.
즉, 독진고의 표정이 일그러진 이유는 가족이어서가 아니라, 이 남궁세가의 싸움에서 예상보다 많은 피해를 입으면 다른 가문들에 비해 힘이 약해지기 때문이었다.
독진고의 눈빛에서 살기가 흘러나왔다.
어서 이 눈앞의 건방진 애송이를 죽이고 남궁세가를 정리해야 했다.
“그만 닥치고 죽어라!”
쒸이이익!
연이은 파공음이 이어지며 독진고의 차가운 검광이 번개같이 사완악의 전신을 덮쳐갔다.
그 속도는 육안으로는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빨랐고, 일곱 군데의 요혈을 노리고 있었다.
귀검마가의 가주만이 익힐 수 있는 마교의 십대마공 중 하나.
바로 귀검마공의 초식이었다.
독진고는 전력을 다해 검초를 펼쳤고, 초절정의 고수가 아니라면 결코 일 초도 받아 내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이야, 진짜 대단한데?”
다시 한번 낭랑한 음성과 함께 독진고의 눈에 사완악의 인영이 흐릿해지며 사라지고 그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독진고의 눈이 살짝 커짐과 동시에, 그는 황급히 몸을 꺾으며 검을 우측으로 휘둘렀다.
꽈앙!
“큭!”
독진고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사완악은 강호제일의 신법인 승광신법을 이용해 그의 검을 피해 내고, 그대로 독진고의 옆구리로 일검을 내지른 것이었다.
물론 독진고도 순순히 당할 실력은 아니었지만, 겨우 막아낸 탓에 약간의 내상을 입고 말았다.
그의 안색이 굳어졌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놈이 나타난 거지?’
독진고는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어린 애송이의 무공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 약관을 조금 넘은 듯한 녀석이 중원의 팔대고수보다 더 강하다는 말이 아닌가?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그 의문을 털어 냈다.
이곳은 전장이다.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이번 공격에 목숨을 건다.’
독진고는 검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단전을 바닥까지 긁어 모든 마공의 기운을 끌어 올렸다.
이 정도의 공격을 감행하면 설령 사완악을 쓰러뜨린다 하여도 본인도 탈진하고 말 것이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크아아!”
짤막한 외침과 함께 독진고는 삼 장의 거리를 단숨에 날아 사완악을 덮쳐갔다.
수십 개의 매서운 검광이 한순간에 일어났다.
검광 하나하나가 번갯불처럼 빠르고 검로는 중원에서는 볼 수 없는 기이한 방법으로 사완악의 전신을 난도질하듯 번쩍였다.
자신의 목숨 따위는 돌보지 않은 동귀어진(同歸於盡)의 공격.
천하의 어떤 고수라도 결코 장담할 수 없는 귀검마공 최후의 일격필살 초식.
하지만 이 절체절명의 순간…….
마치 흥미로운 검술을 구경하는 듯한 사완악의 웃음이 들려왔다.
“하하! 재밌네, 재밌어.”
독진고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놈은 자신이 모든 것을 걸고 검을 휘두른 상황에서도 이런 가벼운 웃음을 터뜨린단 말인가?
그런데 이때, 독진고의 눈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일어났다.
꽈앙!
그는 귓가가 터질 것 같은 폭음과 함께 감히 항거할 수 없는 기운이 자신의 검을 날려 버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독진고는 부릅뜬 눈으로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가슴에는 하나의 보검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독진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환요옥영검…… 네놈이 어떻게 그 검법을…….”
귀검마공은 마교에서 가장 뛰어난 검술이었다.
그 귀검마공을 유일하게 이길 수 있는 검법이 있다면, 바로 사대 교주였던 검마후 환요옥영검이었다.
하지만 환요옥영검은 천마동의 무공이었다.
교주가 아니라면 아무도 익힐 수 없는 무공.
그 무공을 어떻게 이 녀석이 알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독진고는 그 대답을 영원히 알 수 없었다.
이미 그는 불귀의 객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착!
사완악은 별일 없었다는 듯 독진고의 가슴에서 검을 빼내고는 살짝 흔들어 핏물을 가볍게 털어 냈다.
그러고는 장내를 바라봤다.
귀검마가의 무인들은 여전히 남궁세가의 무인들과 검을 섞고 있었지만, 그들의 얼굴은 마치 넋이 나간 사람들처럼 혼란과 충격으로 물들어 있었다.
초절정의 고수이자 마교에서도 적수를 찾아보기 어려운 가주 독진고가 일대일의 대결에서 죽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던 것이다.
사완악은 허리를 좌우로 한 번씩 꺾고, 목을 돌리며 몸을 풀고는 말했다.
“자, 그럼 마무리를 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