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55
정도마신 154화
사완악은 확실히 변했다.
설린과 정유문 사람들의 온정에 변했고, 정유객잔에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면서도 변했으며, 자신을 낳아준 진짜 어머니와 동생 연비려를 만나서도 변했다.
그래서일까?
사완악은 귀검마가의 독진고에게 훈계했던 자신의 말에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자신의 가족이 당하는 것이 슬프다면, 다른 사람의 가족도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지.
그것은 아주 기본적인 사람의 도리였으나, 사완악으로서는 꽤 충격적인 개념의 변화였다.
사대악인의 밑에서 자라면서, 오로지 ‘자신에게 피해를 끼치는가, 아닌가’로만 선악을 판단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사완악은 자신의 중단전에서 따뜻한 기운이 한층 강해진 것을 느꼈다.
바로 사완악을 위기에서 여러 번 구해 주었던 자색의 기운, 수호성의 기운이었다.
천기자가 봉인했던 이 수호성의 기운은 아직 완전히 깨어난 상태가 아니었다.
사완악은 이 수호성의 기운을 스스로 운기하지 못했고, 그 안에 담겨진 큰 힘을 느끼면서도 사용할 수 없었다.
다만 이 수호성의 기운은 사완악이 경험했던 그 어떤 내공보다 더 정순하여, 한 줌의 내공이 강해진 것만으로도 온몸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끄아악!”
“컥!”
비명이 순식간에 연달아 터져 나왔다.
회색 무복의 마교도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사완악은 분명히 변했으나 그렇다고 나약해졌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남궁세가를 말살하러 쳐들어온 마교도들은 처단의 대상이었고, 적을 대하는 사완악의 검은 무정했다.
“마, 말도 안 돼…….”
귀검마가의 무인들의 얼굴에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일어났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지옥 같은 수련을 거치며 살아남은 자들이었다.
그만큼 무공이 뛰어났고, 동료가 바로 옆에서 칼에 찔려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냉정함을 지닌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눈에도, 사완악은 그야말로 사신(死神)이었다.
사완악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가공할 기운 때문만은 아니었다.
더 무서운 것은 사완악의 검술이었다.
사완악의 환요옥영검 앞에서 귀검마가의 검술은 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귀검마공을 대성한 가주 독진고조차 그러했으니, 하물며 그 하위 무공을 전수 받은 일반 문도들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전투에서 의기(意氣)와 투지라는 것은 때로 가진 능력보다 더 중요할 때가 있는 법.
귀검마가의 무인들은 본능적으로 사완악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마치 거대한 뱀을 마주한 개구리처럼 온몸이 굳어졌다.
그러자 싸움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예봉이 꺾인 귀검마가 무인들은 남궁세가 무사들의 검에도 목숨을 잃기 시작했고, 그나마 일부 고수들이 저항했지만, 사완악과 남궁조, 남궁우 형제의 검을 당해 내지는 못했다.
“컥……! 교주님께서 네놈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귀검마가의 마지막 무인은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조의 손에 쓰러졌다.
“…….”
남궁조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 시체를 보다가, 고개를 돌려 사완악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곳에 나타났는가?”
사완악은 별일 아니라는 듯 답했다.
“정도맹 회의에서 남궁세가가 마교의 다음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오더니, 나보고 도와주러 가라고 하던데? 정확히는 소림사 현종 대사의 생각이었지만.”
남궁조는 의아한 듯 되물었다.
“어떻게 우리 남궁세가가 그들의 표적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
“현종의 말로는 마교에는 마접단이라는 정보 단체가 있다고 하더군. 그 말은 곧 중원의 소식에 밝다는 뜻이고, 최근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중 가장 취약한 문파라면…… 남궁세가이니까. 위험할 수 있다는 결론이었지.”
남궁조가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드러내며 물었다.
“남궁세가가…… 가장 약하다고?”
사완악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 남궁세가의 가주와 그 동생이 중상을 입고, 창궁검호대인가 뭔가도 경상을 입은 무인들이 꽤 많으니까. 다른 문파와의 교류도 끊고 있는 상태고. 약한 건 맞네.”
남궁조는 물론, 남궁세가 사람들은 속이 뒤집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만든 당사자가 바로 지금 말을 하고 있는 사완악이 아닌가!
하지만 남궁조는 쉽게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만약 사완악이 오지 않았다면?
아까 그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던 귀검마가의 가주를 상대할 수 있었을까?
과연 남궁세가가 오늘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인가?
“그래서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왔다는 말인가?”
남궁세가도 그렇지만, 사완악이라고 해서 그들에게 감정이 좋을 리는 없었다.
남궁조는 사완악이 선뜻 자신들을 구해 준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완악은 별다른 표정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내키지는 않는데, 누가 너무 간곡하게 부탁해서 말이야.”
“누가 그런 부탁을…… 숙부님께서?”
남궁조는 순간 정도맹 마교 대책 회의에 자신 대신 참석한 숙부 남궁관정이 떠올랐다.
“잘 알고 있네.”
사실 현종은 남궁세가가 위험한 정도가 아니라 매우 위급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정도맹에서 남궁세가까지 쉬지 않고 빠르게 경공술을 펼친 다음, 만약 위험한 상황일 때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현종과 사완악뿐이었다.
하지만 현종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현종은 염라대사 영환과의 대결에서 힘을 소진하기도 했거니와, 남궁세가 외에도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곳이 두 곳 정도가 더 있어 소림사의 고수들과 함께 그곳을 지키기로 했다.
아무래도 이미 많은 소림사의 식구를 잃었기에, 그들을 두고 가기에는 불안했던 것이다.
결국 적임자는 사완악이었는데, 사완악이 어떤 의견을 내기도 전에 남궁관정은 그에게 간절히 부탁을 했다.
‘사 소협 입장에서 매우 염치없는 부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네. 하지만 우리 남궁세가를 도와주시게.’
물론 사완악은 별로 상관이 없었다.
이미 정도맹과는 황금 삼만 냥이라는 돈으로 거래를 했다.
거래의 조건 자체가 과거의 은원은 묻어두는 것이니 남궁세가와의 관계는 중요하지 않았다.
남궁세가 입장에서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어도, 그렇게 부탁을 하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어쨌든…… 오늘 일은 고맙네.”
남궁조는 힘들게 입을 열었다.
그로서는 사완악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이 실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 이유는 사완악도 잘 알고 있었다.
사완악은 남궁조를 가만히 응시하다 말했다.
“마교를 숙청하기로 정도맹과 계약을 했으니 특별히 고마울 필요는 없어. 다만, 한 가지 말해 주고 싶은 건 있군.”
남궁조는 그게 무엇이냐는 듯, 시선을 들어 사완악의 눈을 쳐다봤다.
“남궁세가의 소가주, 당신의 아들한테 나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
사완악은 습관처럼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물론 사소한 다툼은 있었지. 사람들 앞에서 무공 내기를 해서 그가 창피를 당했으니까.”
천하의 사완악이 상대라면, 남궁준휘가 창피를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남궁준휘가 나에게 시비를 걸었던 거야. 내가 남궁세가에서 놓친 육사괴를 잡았다는 것을 믿지 않았고, 그 소문이 과장된 것이라는 걸 사람들 앞에서 보여 줘서 내 콧대를 눌러 주고 싶었던 거지.”
남궁조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강호의 일이란 실로 작은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큰 은원이 될 때가 종종 있었다.
당시에 사람들은 아무도 사완악의 존재를 알지 못했고, 남궁준휘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 허황된 거짓말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게 전부야. 그다음에는 남궁준휘가 내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우리 문주님을 겁탈하려 했지. 그때 막아선 것이 내 친구이자 소림사 방장의 사제인 현종이고. 현종은 남궁준휘를 제압해서 남궁세가로 데려오려 했는데, 중간에 남궁준휘가 갑자기 기습을 했다더군. 현종은 황급히 대응을 했지만 힘 조절을 하지 못했다고 하네.”
“그 녀석이…… 설린 문주를 겁탈하려 했다는 게…… 정말인가?”
“난 남궁세가에게 불명예를 안겨 줄 의도는 없어. 다만, 그저 사실을 알려 줄 뿐이야. 당신이 아버지니까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
남궁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 남궁세가 전체의 목숨도 걸었는데, 진실을 파헤칠수록 나오는 것은 차마 믿기 어려울 정도의 만행이었다.
남궁조는 문득 하늘을 보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 남궁조가 차마 얼굴을 들고 살아 다닐 수가 없구나.”
그때였다.
남궁조의 검이 허공에 좌우로 원을 그리더니 스스로의 심장을 쏜살같이 찔러 갔다.
순간, 번쩍!
번갯불같은 섬광이 사완악의 손에서도 일어났다.
쨍!
남궁조는 자신의 검을 쳐 낸 사완악에게 노한 음성을 터뜨렸다.
“무슨 짓인가!”
사완악이 말했다.
“한 번 기회를 준 거야.”
“뭐?”
“당신이 자살한다고 뭐 남궁세가의 명예가 회복이라도 될 것 같아?”
“……!”
사완악이 말했다.
“내가 정말 죽이고 싶은 놈들이 있거든? 그런데 그놈들이 한 가지 부탁을 하더군.”
“부탁?”
“마교와 싸우다 죽을 수 있게 해 달라고.”
“…….”
사완악이 말했다.
“차라리 그게 남궁세가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일 거야. 당신 아들이 한 짓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마교와 싸워 강호를 지킨다면 남궁세가의 이름은 더럽혀지지 않겠지.”
남궁조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사완악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어느 문파나 가문에도, 불순한 인물이 하나쯤은 나오기 마련.
하지만 남궁세가가 마교와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남궁세가 전체의 이름은 오히려 숭고히 여겨질 수 있었다.
“그래도 죽겠다면 더 이상 말리지는 않고.”
“…….”
남궁조는 한참 동안 침묵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결국 한숨을 토해 내며 말했다.
“고맙소. 이 빚은…… 나중에 꼭 갚겠소.”
사완악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황금 이천 냥으로 갚으면 돼.”
* * *
한편, 같은 시각.
다른 곳에서도 정도맹과 마교의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다.
바로 강호제일의 독문(毒門), 사천당가였다.
“으악!”
“끄윽……!”
무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하지만 원독마가(怨毒魔家)의 가주, 응계종은 자신들의 수하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쓸 수가 없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 한 명의 사내 때문이었다.
“당신은……!”
응계종의 앞에 서 있는 기골이 장대한 사내는 바로 현종이었다.
현종의 몸에서는 금빛 광채가 일어나고 있었고, 그 기운은 응계종을 압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응계종이 놀란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닌 듯했다.
“당신이 어떻게…… 어떻게 이곳에 있는 것이오? 아니지, 당신은 정체가 무엇이오?”
현종이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