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57
정도마신 156화
이튿날.
아침 순찰을 돌던 사천당가의 무인은 뒷마당에 쓰러진 현종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현종은 여전히 깨어나지 못한 상태였고, 무인은 황급히 그를 업고 사천당가의 의원전으로 데려갔다.
사천당가는 독을 다루는 만큼 의술도 뛰어났으나, 그런 사천당가의 의원들조차 왜 정신을 잃었는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현종에게서 어떤 외상이나 내상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약 반나절의 시간이 흐른 뒤.
“정신이 드는가?”
힘겹게 눈을 뜬 현종의 앞에는 소림사의 방장 대사 현암이 있었다.
“사형…….”
“여긴 사천당가의 의원전이네. 오늘 아침, 사제가 뒷마당에 쓰러져 있는 것을 사천당가의 무인들이 발견했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음……!”
현종은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에 미간을 찌푸리며 한마디 신음을 내뱉었다.
“무리해서 일어날 필요는 없네.”
“괜찮습니다.”
현종은 상체를 일으켜 벽에 등을 댄 채 잠시 어젯밤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설린과의 대화.
현종은 쓴 적 없지만, 자신의 필체가 확실한 서찰.
갑자기 나타난 차분한 인상의 중년인.
현종은 퍼뜩 정신을 차리며 다급히 물었다.
“설린! 설린 문주님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그 물음에 현암의 안색이 살짝 굳어졌다.
“설린 문주가 사제와 함께 있었나?”
현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문주님에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이때, 의원전의 문이 열리며 다른 사람이 대신 대답했다.
“없어졌어.”
현종은 고개를 돌려 상대를 확인하고는 놀란 얼굴로 이름을 불렀다.
“완악!”
나타난 사람은 바로 사완악이었다.
“현종, 네 말이 맞았다. 남궁세가에도 마교의 칠대마가 중 한 곳이 쳐들어왔었어. 귀검마가라던가? 검을 꽤 잘 쓰는 놈들이더군.”
“귀검마가…… 마교는 역시 남궁세가의 사정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군.”
“그래. 가주라는 녀석은 꽤 강하더라고. 아마도…….”
사완악은 현암 대사를 힐끗 쳐다본 후 말했다.
“중원 팔대고수들보다도 조금 더 강한 느낌이었다.”
현종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자신과 대치했던 원독마가의 가주, 응계종 역시 그 정도였으니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마교의 정보들이 아니었다.
“그보다 설린 문주가 없어졌다니? 무슨 말이지?”
사완악은 자기는 당연히 모르는 일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말 그대로야. 사천당가의 뒷마당에서 발견된 건 현종, 너뿐이었어. 아니, 애초에 우리 문주님이 너와 함께 있었다는 것도 지금 알게 된 거지만.”
현종이 사형 현암을 쳐다봤다.
현암은 사완악의 말이 모두 맞는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완악이 말했다.
“나는 오늘 아침 여기 도착했거든. 그런데 너는 쓰러져 있었다고 하고, 문주님은 모습이 보이지가 않았다. 사천당가의 무인들에게 모두 물어봐도, 어제 저녁 이후 문주님을 목격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내가 이 주변을 돌며 찾아봤는데도 없고, 딱히 처소에 어떤 흔적이 남아 있지도 않아.”
사완악은 현종을 응시하며 물었다.
“도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건…….”
현종은 어젯밤 자신이 겪은 일을 사완악과 현암에게 말해 주었다.
물론 자신이 설린에게 호감이 있었다는 내용의 대화는 말하지 않았다.
그건 두 사람 사이의 사적인 감정이었고, 이미 정리된 이야기였으며, 승려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완악이 알게 되면, 훗날 설린 문주가 마음을 표현했을 때 선뜻 받아 주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
현종은 자신의 일방적인 감정 때문에 두 사람이 곤란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사완악은 팔짱을 낀 채 현종의 말을 듣고는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네 필체는 확실한데, 너는 정말 그런 서찰을 쓴 적이 없다는 거지?”
“그래.”
“그렇다면 누군가 필체를 흉내 내서 문주님을 그 장소로 불렀다는 건데…….”
사완악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군. 만약 그렇다면 그 ‘누군가’는 너 역시 그 장소로 불렀어야 앞뒤가 맞아. 하지만 너는 그저 생각할 게 있어서 뒷마당에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고 하지 않았어?”
현종도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것을 가장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사천당가의 뒷마당으로 간 것은 즉흥적인 감정이었다. 그 중년인이 나와 설린 문주를 함정에 빠뜨리려 했다면, 어떻게 내가 그곳에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설린 문주를 불렀을까? 그리고 내 필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소림사에서도 몇 되지 않는다.”
사완악과 현종은 천고의 기재였고, 머리가 비상했다.
하지만 이번 일만큼은 의아한 부분이 너무 많았고, 단서조차 잡기 어려웠다.
“가능성은 두 가지겠군.”
생각에 잠겨 있던 사완악이 입을 열었다.
“네가 사천당가의 뒷마당으로 가는 것을 확인하고 서찰을 남겼거나, 원래 너와 상관없이 설린 문주만 유인하려 했는데 우연의 일치였다든지. 그런데 필체는 정말 알 수가 없군. 짐작 가는 사람도 없어?”
옆에 있던 현암 방장이 말했다.
“현종은 서찰을 쓰거나 기록을 남기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현종이 이어서 말했다.
“지금까지 내가 서찰을 보냈던 사람은 여기 방장 사형과 설린 문주, 그리고 영곡 사승님뿐이었다. 서찰의 내용상 다른 사람들이 그 서찰을 봤을 가능성은 희박하고.”
“영곡 사승?”
“그분은…… 염라대사와의 싸움에서 돌아가셨다.”
“음.”
사완악은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죽은 사람이야 당연히 서찰을 쓸 수 없고, 설린은 스스로 그런 행동을 할 리가 없었다.
남은 사람은 방장 대사 현암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이 되지는 않았다.
정황은 점점 오리무중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풀리지 않는 문제는 일단 놔두라고 하셨지.’
사완악은 과거 사마소 사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말했다.
“일단 서찰을 누가 보냈는지는 나중에 생각해 보도록 하고. 넌 어쩌다 정신을 잃은 거야? 그 중년인이 무슨 수를 쓴 거지?”
“모르겠다.”
사완악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모른다고?”
현종은 잠시 눈을 감고 어젯밤의 장면을 떠올린 뒤 말했다.
“정말 모르겠다. 그의 손이 살짝 움직이는가 싶더니, 갑자기 눈이 멀 것 같은 섬광이 번쩍였다. 그 빛이 너무도 강해 세상이 하얗게 변하는 것만 같았는데, 그게 끝이었다.”
“그러고 정신을 잃었다는 거야?”
현종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완악은 자신도 모르게 부정했다.
“말도 안 되네, 정말.”
사완악은 자신이 강호에서 떠나 사존의 진전을 물려받는 동안, 현종 역시 면벽수련에서 큰 깨달음을 얻어 무공이 증진됐다는 것을 이제 알고 있었다.
현종의 현재 무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은 현종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려 주는 것이기도 했다.
사완악의 눈썰미와 기감으로도, 현종의 수준을 모두 파악할 수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그 귀검마가의 가주도 현종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칠대마가의 가주라면, 초절정의 고수이자 마교에서도 상위 서열에 속했다.
그런 고수보다도 더 강한 현종인데, 손이 움직이는 순간 빛이 번쩍이고 정신을 잃었다니.
그게 가능한 일일까?
‘설마 그가 바로 마교의 교주일까?’
그렇다면 가슴이 섬뜩해지는 일이었다.
한 번의 손짓으로 현종의 혼절시킨다니.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상대는 도대체 얼마나 무서운 존재란 말인가?
사완악으로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경지였다.
‘하지만 그가 마교의 교주라면, 어째서 현종을 죽이지 않았을까? 설린 문주를 왜 납치했을까? 혹시 범인은 마교의 사람이 아닌 것인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
범인이 마교의 교주이든 또 다른 누군가이든.
사완악은 앞으로 일어날 싸움이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더 어려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확실한 건…….
고오오오-!
사완악과 현종의 눈에서 동시에 뜨거운 안광이 흘러나왔다.
‘설린 문주님을 건드린 대가는 제대로 치르게 될 것이다.’
“아미타불. 두 사람 모두 마음을 가라앉히시오.”
나지막한 불호와 함께 울려 퍼지는 정순하고 심후한 내공이 실린 음성.
방장 대사 현암의 목소리였다.
사완악과 현종은 퍼뜩 상념에서 깨어나며 서로를 마주 봤다.
이때 의원전의 내부는 두 사람이 일으킨 기운이 폭발할 듯 팽배하여 전각 전체가 무너져 내릴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고, 현암 대사는 내공을 극성으로 일으켜 그 기운이 퍼져 나가지 못하게 버티고 있었다.
사완악과 현종은 그제야 자신들이 흥분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운을 갈무리했다.
그런데 이때였다.
사완악과 현종, 그리고 현암 대사 역시 의원전의 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경공술을 펼치며 다급히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특히 사완악의 얼굴에 의아함이 일어났다.
‘이 기운은?’
벌컥!
의원전의 문이 열리며 미모의 한 여인이 들어왔다.
“오라버니! 큰일 났어요!”
그녀는 연비려였다.
사완악은 살짝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천이단(天耳團)에 있으라고 했을 텐데?”
천이단은 정도맹의 정보 조직이었다.
그들은 중원에서 모이는 수많은 정보를 취합하여 정리하고, 위급하고 중요한 정보들을 보고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한마디로 전쟁에서 꼭 필요하면서도 전장에서는 가장 떨어진 곳에서 일하는 단체.
연비려는 사완악이나 천의문 사형제들과 함께 싸우고 싶어 했지만, 사완악은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연비려를 마교와의 싸움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하여 정도맹에 부탁하여 그녀가 천이단 본단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교가 급습한 사천당가에 나타나다니.
사완악은 심기가 불편했지만, 동시에 이상함을 느꼈다.
연비려는 마치 몇 날 며칠을 쉬지 않고 경공을 펼쳐 내공이 바닥난 사람처럼, 기운이 미약하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
연비려는 금방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기색으로 다급히 말했다.
“오라버니, 제갈세가가 위험해요…… 마교가…… 하북팽가가 아니라 제갈세가를 공격하고 있어요! 제갈세가와 천의문이…… 사형제들이 위험해요.”
“……!”
* * *
어두운 방 안.
“여긴…….”
힘겹게 눈을 뜬 설린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살펴보았다.
고급스러운 침실.
마치 황후가 사용할 것 같은 편안하고 화려한 침실이었다.
중앙에는 하나의 탁자가 있고, 그 위에 놓인 촛불 하나가 방안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설린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정신을 잃기 전 상황을 떠올렸다.
현종과의 대화, 서찰,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중년인.
‘그는 누구였을까? 현종 스님은 어떻게 되셨지? 나를 왜…….’
설린은 자신이 이곳에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직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아무런 제약도 걸려 있지 않았다.
몸은 특별히 부상이 느껴지는 곳이 없었고, 내공도 정상이었으며, 탁자 위에는 그녀가 사용하던 검도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런데 이때.
“깨어났소?”
방문 밖에서 한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어서 드르륵, 문이 열렸다.
천천히 들어오는 넓은 어깨의 사내.
어둠 속에서 그의 얼굴이 조금씩 드러났다.
그리고 설린의 눈빛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흔들렸다.
“다, 당신은……!”
사내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군. 당신을 꼭 만나보고 싶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