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60
정도마신 159화
진마광은 담담한 얼굴로 자신의 마기를 흘려보내는 청년 사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나이에 그 정도 성취라니. 중원에도 인재가 없는 것은 아니구나.”
“당신들은 칠대마가의 사람들이오?”
“그렇다. 나는 혈천마가의 가주 진마광이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나는 천의문의 문주, 백신형이오.”
“천의문? 이름 한번 거창하군. 하지만 너 같은 녀석을 키워 냈다면 인정할 수 있지. 클클…… 하지만 오늘 이후로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니라.”
순간, 진마광의 신형이 땅을 박차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백신형의 앞에 나타났다.
흡사 맹수가 폭발적으로 도약하는 듯한 움직임.
내공을 이용한 경신술이 아니기에 백신형은 그의 움직임을 전혀 눈치챌 수 없었고, 황급히 양손을 휘둘러 쌍장을 내질렀다.
진마광의 주먹이 그 장력을 뚫어 버릴 듯 내리꽂혔다.
꽝!
번개에 바위가 쪼개지는 듯한 폭음.
서로 한 발씩 물러서며 동수(同手)를 이룬 듯 보였으나, 진마광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고, 백신형의 안색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것이 사람의 힘이란 말인가?’
백신형은 손목이 부러질 듯한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진마광은 내공을 쓰지 않는다.
그렇다는 것은 순수한 육체의 힘만으로 백신형의 심후한 내력을 뚫고 이러한 충격을 주었다는 뜻이었다.
“재밌구나. 시시한 싸움밖에 없을까 봐 걱정했거늘.”
진마광은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목을 한 바퀴 돌리고 손목을 풀었다.
마치 본격적으로 힘을 쓰겠다는 듯.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백신형은 자신도 모르게 떠오른 생각에 침을 꿀꺽 삼켰다.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은, 그가 자신보다 명백하게 강하다는 뜻이었다.
‘혼자서는…….’
백신형은 힐끗 눈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다른 곳의 상황은 그보다 더 암울했다.
삐이이이-!
차차창!
귓가를 찌르듯 울리는 퉁소 소리.
그것은 바로 천의문의 칠군이 펼치는 음공이었다.
그녀는 천기자의 제자가 되기 전, 사파 역사상 가장 무서웠던 여고수 사음탈명주(邪音奪命主)의 제자였다.
그리고 지금 그녀가 펼치는 것은 사음탈명주의 성명절기인 사음탈명곡이었다.
음공이란 전음과 비슷한 원리로, 소리에 내공을 실어 자신이 공격하고자 하는 상대에게 쏘아 보내는 무공이었다.
사음탈명곡은 대상이 된 사람을 듣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혼미하게 만들고, 내상을 입으며, 몸 안의 기혈이 들끓어 제대로 된 무공을 펼칠 수가 없게 만드는 무서운 음공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는, 그녀를 비호하며 검을 휘두르는 문사 차림의 한 노인이 있었다.
바로 제갈세가의 전대 고수, 칠절노야 제갈공이었다.
제갈공의 일곱 가지 재주 중 하나는 바로 검술이었다.
그는 제갈세가의 절학인 대천성검법(大天星劍法)을 대성했고, 다른 오대세가의 고수들과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즉, 칠군과 제갈공은 서로 합심하여 한 사람과 겨루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같이 대단한 두 사람의 합공을 여유롭게 받아 내는 한 사람.
그는 바로 창영마가의 가주 야율고였다.
물론 사음탈명주의 음공은 과연 그 명성대로였다.
칠군이 연주하는 사음탈명곡은 야율고의 집중력을 흩뜨려놓았고,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 창끝을 조금이나마 무디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럼에도 야율고의 창은 섬광처럼 눈부시게 빨랐다.
제갈공은 거칠게 호흡을 내뱉으며 그의 창을 간신히 막아 내고 있었고, 언제 가슴이 꿰뚫려 죽는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때, 야율고가 사음탈명곡을 연주하는 노파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꽤 흥미로운 무공이다만, 슬슬 거슬리는군.”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을 잠시 바라봤던 백신형의 눈이 부릅떠지며 비명이 흘러나왔다.
“위험합니다, 칠군!”
찢어질 듯한 백신형의 외침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사음탈명곡을 연주하던 칠군은 그 경각성에 깜짝 놀라며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푹!
차가운 예기를 머금은 창날이 그녀를 꿰뚫었다.
“커헉……!”
노파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오며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퉁소가 서글프게 떨어졌다.
“이제 조용하군.”
야율고의 흡족한 음성.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복부를 관통했던 창날이 뽑혀졌다.
그리고 그 창날은 다시 허공에 한 줄기 선을 만들며 횡으로 그어졌다.
“컥!”
이번에는 칠절노야 제갈공의 목에서 피분수가 쏟아졌다.
사음탈명곡이 멈추자 야율고의 창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 안 돼…….”
야율고의 장창이 칠군의 몸을 꿰뚫는 순간, 백신형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칠군은 천기자의 제자가 된 순서는 늦었으나, 천의문에서 가장 큰 어른이었다.
백신형과 백신우 형제는 물론, 다른 제자들도 어렸을 때부터 그녀에게 많은 보살핌을 받아 왔기에 그녀는 누구보다 특별한 존재였다.
“마교……! 네놈들이……!”
언제나 물처럼 담담하고 차분한 백신형이었으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불처럼 일어났다.
하지만…….
세상의 일은 분노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을 때도 있었다.
“안 되긴 뭐가 안 된다는 거냐?”
백신형의 눈앞에는 어느새 진마광이 다시 서 있었다.
그리고 사정없이 뻗어져 나오는 일권.
백신형은 뒤늦게야 깨달았다.
처음 진마광의 공격은 그의 전력이 아니었다는 것을.
“끄윽……!”
진마광의 주먹이 백신형의 온몸을 끊임없이 연타했다.
기혈이 터지고 뼈가 부러지며 단전이 부서졌다.
마치 맹수가 먹잇감을 물고 좌우로 고개를 끊임없이 흔들어 숨통을 끊어 놓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느 순간, 피로 범벅된 백신형의 몸이 축 늘어졌다.
진마광은 그런 백신형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것을 아무렇게나 던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음?”
야율곡과 진마광이 서로를 바라봤다.
파도처럼 물결치던 지면이 원래 상태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떠올랐다.
‘드디어 처리했군.’
물결치던 지면이 멈춘 이유는 하나.
진암마가의 가주 완영이 이 진법을 펼치고 있던 진법사를 죽였다는 뜻이었다.
혈천마가 무인들의 움직임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들은 이제 온전한 땅에서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뒤에서 달려오는 또 하나의 무리.
창영마가의 무인들이었다.
제갈세가 사람들의 얼굴에 암담함이 떠올랐다.
이때, 한 앳된 음성이 울리며 진마광을 향해 한 소년이 달려왔다.
“대사혀어엉!”
진마광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저건 또 뭐야?”
그리고 백신형을 때려죽였던 그의 주먹이, 그 소년에게로 향했다.
* * *
“이야, 벌써 한바탕 하고 있나 보군.”
사완악은 검은 연기가 치솟는 장원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하지만 제갈세가의 장원이 가까워질수록, 매캐한 화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완악은 돌연 왠지 모를 불길함이 느껴져 속도를 더욱 올렸다.
‘현종이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면 귀령들이라도.’
아무리 사완악이라 해도 한계는 있다.
자신 한 몸을 지키는 것은 자신 있었지만, 만약 뜻밖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까지 모두 구할 수 있을지는 스스로도 의문이었다.
다만 현종은 함께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현종은 사라진 원독마가와 납치된 설린 문주의 흔적을 추적하고 있었다.
그러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현종뿐이었다.
그리고 만사무와 묵영, 천화와 가종후 네 명의 귀령들은 현재 하북팽가에 있었다.
혹시 하북팽가에 무슨 일이 있을 경우, 그들을 돕거나 혹은 소식을 사완악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평소처럼 낙천적으로 중얼거린 사완악은 어느새 제갈세가의 장원에 당도하여, 단숨에 그 담장 위로 올라섰다.
높은 곳에서 한 눈에 장원 내부의 상황을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순간.
“대사형!”
울부짖는 듯한 음성이 사완악의 귓가에 들려왔다.
사완악은 그 음성이 누구의 것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구휘?’
사완악은 담장 위에서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이례적으로,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사완악의 시야에 순간적으로 들어온 것은 세 명이었다.
피범벅이 되어 널브러져 있는 백신형, 그를 향해 달려오는 구휘, 그리고 구휘를 향해 살기를 내뿜고 있는 큰 체구의 사내였다.
문제는 그 큰 체구의 사내가 지니고 있는 기운이었다.
정확히 그것은 내공의 기운은 아니었다.
때문에 사완악이 아니었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완악은 그 사내의 뒷모습만으로도, 그의 온몸에서 폭발적인 힘이 넘실거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구휘는 결코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늦었나?’
사완악은 찰나의 순간 확신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사완악의 승광신법이 펼쳐졌다.
번쩍!
사완악의 신형은 그야말로 한 줄기 빛이 되어 날아갔다.
백의장삼을 입고 있었기에 밤하늘에 백색 섬광이 터지는 듯했다.
사완악은 사존의 힘을 얻은 이후 처음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승광신법을 펼치는 것이었다.
이때 큰 체구의 사내는 이미 구휘를 향해 일권을 내지르고 있었다.
꽈앙!
먼지가 자욱이 피어오르며 천둥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큰 체구의 사내, 혈천마가의 가주 진마광의 눈에는 불신의 빛이 떠올랐다.
‘막았어? 누가?’
그리고 그의 귓가에 들려오는 장난기 가득한 음성.
“이야! 이번에는 진짜 아슬아슬했네.”
먼지가 가라앉으며 한 사내의 모습이 나타났다.
약관을 조금 넘은 듯한 나이에 새하얀 백의장삼을 걸친 청년이었다.
“사 공자님…….”
구휘가 놀란 듯 중얼거렸다.
사완악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넌 여전히 멍청한 꼬마구나. 아무리 다급해도 상대를 봐 가면서 덤벼야지.”
“…….”
이때 진마광은 백신형을 마주했을 때와는 다르게, 매우 굳어진 표정으로 말했다.
“웬 놈이냐?”
사완악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질문은 중원 놈들이나 마교 놈들이나 똑같이 하는군. 안녕? 난 사완악이다. 넌 보아하니 칠대마가 중 한 곳의 가주로구나.”
진마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사완악? 설마…… 독진고를 죽인 게 네놈이냐?”
“독진고?”
사완악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웃으며 끄덕였다.
“아! 그 귀검마가인가 뭔가의 가주 녀석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
“그렇다면 그렇다. 그 녀석은 내가 죽였지. 나도 하나만 묻자. 저 녀석은 네놈이 한 짓이냐?”
사완악은 눈빛으로 한쪽 땅에 쓰러져 있는 백신형을 가리켰다.
진마광은 씩 웃음을 짓더니 조금 전 사완악이 한 말을 갚아 주겠다는 듯 말했다.
“그래. 죽기 직전까지 눈빛이 살아 있던 게, 모처럼 패는 맛이 있는 놈이었다.”
“대, 대사형…….”
구휘의 울음 섞인 음성을 뒤로하고 사완악은 가라앉은 음성으로 물었다.
“일부러 천천히 즐기며 죽였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하하! 물론이다. 한 대 맞을 때마다 끄륵 끄륵 신음을 흘리는 게 아주…….”
“잘했다! 너 제법 마음에 드는 놈이구나!”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