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62
정도마신 161화
“음!”
사완악은 실로 오랜만에 당황한 듯한 신음을 내뱉었다.
어둠에 묻혀 날아온 비수는 그만큼 은밀하고 빨랐으며, 아무리 사완악이라 해도 우습게 여길 수 없을 정도의 기운이 담겨 있었다.
“제법이네.”
사완악은 진지해진 눈빛으로 중얼거리며 오른손으로 원을 그리며 허공을 감싸듯 빠르게 휘둘렀다. 그러자 백의장삼이 펄럭이며 그 소매가 비수를 낚아채고는, 다시 날아온 방향으로 쏘아 보냈다.
깡!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리더니 사완악이 돌려보낸 비수가 튕겨져 나가고 한 사내가 나타났다.
그는 작은 키에 다소 왜소한 체격을 지닌 자였다.
전신에는 검은 무복에 검은 복면까지 눌러써서 얼굴을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고, 마치 하나의 그림자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사완악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너도 칠대마가의 가주 중 한 놈이겠군.”
사완악이 조금 전 비수를 돌려보낸 것은 유풍유권의 초식을 이용한 이화접목의 수법이었다.
날아오던 비수의 기운에 사완악이 내공을 더해 쏘아낸 것인데도 상대는 그것을 막아 냈다.
초절정의 고수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때 진마광은 득의만만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렇다. 그는 바로 진암마가의 가주, 완영(完影)이다.”
“완전한 그림자라. 어울리는 이름이군.”
“그녀는 마교 최고의 암살자이지. 네놈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칠대마가의 가주 셋의 합공을 막아 낼 수 있을 것 같으냐?”
“셋?”
사완악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하다가 갑자기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가공할 기세에 몸을 비틀며 한 걸음 옆으로 움직였다.
쾅!
사완악이 신형을 움직임과 거의 동시에, 한 줄기 엄청난 경력이 사완악이 서 있던 땅 위에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창?”
하늘에서 떨어져 땅에 꽂힌 병기는 구 척 길이의 장창이었다.
그 장창과 함께 나타난 사내는 큰 키에 표범처럼 날렵한 몸매를 지닌 중년인.
바로 천의문의 칠군과 제갈세가의 칠절노야 제갈공을 죽인 야율고였다.
사완악은 조금 전 피해 낸 일격만으로도, 그가 진마광이나 완영 못지않은 고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꼴사납게 당하고 있었군, 진마광.”
“닥쳐라!”
진마광은 울화가 치미는 듯 대꾸했으나 표정에는 안도의 빛이 흐르고 있었다.
사완악은 새롭게 나타난 야율고를 바라보며 물었다.
“셋이라 했으니 너도 칠대마가의 가주인가 보군.”
야율고는 비릿한 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창영마가의 가주, 야율고다.”
사완악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던 진마광이 기세를 되찾은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두 명도 아니고 세 명의 가주들이 합공을 한다면, 천하의 그 누가 와도 두렵지 않았다.
‘교주님을 제외한다면 말이지.’
진마광은 순간 교주를 떠올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한 차례 몸을 떨었다.
교주는 그야말로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존재였다.
눈앞의 사완악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교주와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두려움은 사라지고 용기와 투지가 솟아났다.
“오늘이 네놈 제삿날이니라!”
진마광의 신형이 빠르게 움직였다.
조금 전까지 일방적으로 얻어맞은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속도.
이것은 혈천마공의 장점 중 하나였다.
뼈가 부러지거나 힘줄이 끊어지지 않는 이상, 순식간에 회복하는 재생 능력.
진마광의 주먹은 바위를 무너뜨릴 기세로 사완악을 향해 뻗어졌다.
“흠.”
사완악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마룡일효의 초식으로 진마광의 공격을 상쇄시켰다.
물론 사완악이 물러선 이유는 진마광의 권법이 갑자기 강해져서가 아니었다.
진마광의 권법을 쳐냄과 동시에 우측에서는 야율고의 장창이 날아들었기 때문.
쉭! 쉭! 쉭!
극한의 쾌속함을 자랑하는 그의 장창이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가 흡사 뱀의 울음 같았고, 순식간에 일곱 개의 창날이 사완악의 전신을 찔러 왔다.
차앙!
사완악은 장법 대신 검을 뽑아 야율고의 창법에 대응했다.
그의 초식을 한 번 쳐낼 때마다 요란하게 울리는 금속성이 악기의 연주처럼 울려 퍼졌다.
과연 칠대마가의 가주다운 매서운 공격.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칠대마가 가주들은 서로의 무공을 잘 알고 있기에 합공의 위력은 그 배가 되었다.
맹수처럼 달려드는 진마광의 주먹은 불을 뿜는 듯했고, 야율고의 창날은 거세게 쏟아지는 빗줄기 같았다.
그리고 두 사람의 공격 사이로 진암마가의 가주, 완영의 비수가 날아들었다.
사완악은 연신 뒤로 물러서며 그들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막아 낼 뿐이었다.
진마광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아무리 네놈이라도 이제 어쩔 수 없는 모양이구나! 자신만만하게 날뛰던 기세는 어디 갔느냐?”
사완악은 세 명의 합공을 받는 와중에도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대꾸했다.
“칠대마가의 가주라는 것들이 셋이나 함께 달려들면서 되게 당당하네.”
순간 진마광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셈이다.
그만큼 그의 살기는 극한으로 치달았다.
“죽어라!”
질풍같이 내지른 일권.
그것을 보좌하듯 날아오는 수십 개의 창날.
사완악의 동공이 흔들리며 어떻게 방어를 해야 할지 모르는 듯 손발이 멈칫했다.
그 순간 진마광과 야율고는 싸움이 끝났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착각이었다.
쾅! 까가가강!
“……!”
“……!”
진마광과 야율고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자신들의 공격이 막혀서가 아니었다.
그 공격을 쳐 낸 사완악의 수법이 믿기지 않아서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두 사람의 공격이 사완악의 목숨을 거두려는 절체절명의 순간, 흔들리던 사완악의 동공에서 기이한 빛이 흐르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완악은 왼손으로 파신마장의 강맹한 장법을 펼쳐 진마광의 주먹을 막아 내고, 동시에 오른손으로는 무당파의 태극혜검을 펼쳐 야율고의 창날들을 모두 날려 버린 것이다.
“한 번에 두 가지 무공을 펼쳤다고?”
물론 무술의 고수라면 왼손과 오른손으로 각기 다른 동작을 취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단순히 다른 동작을 펼치는 것과, 내공의 운용법부터 수십 개의 초식과 변화를 내포하고 있는 각기 다른 두 개의 무공을 동시에 펼친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가히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수법.
이때 어둠 속에서 한마디 음성이 흘러나왔다.
“설마…… 양의심공?”
진암마가의 가주, 완영의 목소리였다.
진마광과 야율고는 크게 놀란 얼굴로 사완악을 바라봤다.
양의심공이라면 그들 역시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전진파의 개파조사 왕중양과 무당파의 개파조사 장삼봉이 익혔다는 전설의 심공.
한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둘로 나누어 마치 두 사람이 된 것처럼 다른 생각과 다른 동작을 취할 수 있다는 심공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일 뿐, 왕중양과 장삼봉 이후로 그 누구도 실제로 익혔다는 기록이 없었다.
하지만 양의심공이 아니라면 지금 눈앞에서 펼쳐진 사완악의 신위를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칠대마가 가주들의 머릿속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양의심공은 무당파의 숨겨진 절학인데…… 이놈이 무당파 출신이었던가?’
이때 놀란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사완악은 정말 눈치채지 못했다는 듯 감탄하며 어둠 속을 향해 말했다.
“여자였어?”
쉬익!
대답 대신 다섯 개의 비수가 날아왔다.
“이크!”
사완악은 익살스러운 기합과 함께 비수들을 모두 쳐내 땅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완영의 비수가 신호라도 된 듯, 진마광과 야율고는 이미 다시 공격을 해 오고 있었다.
“어리석은 놈! 반쪽짜리 무공으로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진마광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전력을 다해 일권을 내질렀다.
칠대마가의 가주들은 놀라기는 했지만 양의심공은 오히려 독이 되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양의심공으로 두 가지 무공을 펼친다는 것은 곧 한 사람의 내공이 양쪽으로 나뉜다는 뜻이니, 위력이 반으로 줄어드는 것은 필연.
그렇다면 오히려 그들의 공격을 막아 내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이번에도 착각이었다.
“뭐가 반쪽짜리라는 거야?”
왼손은 장법, 오른손은 검법.
사완악의 양손에서 다시 한번 각기 다른 무공이 출수됐다.
그리고 진마광과 야율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완악이 한 손으로 펼치는 무공의 위력이 오히려 처음보다 더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양의심공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양의심공은 그들의 생각대로 내공을 반으로 나누어 펼칠 수도 있지만, 한 번에 두 배의 내공을 소모하여 양손에서 온전한 위력의 무공을 펼칠 수도 있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최소한 이 갑자가 넘는 막대한 내공이 필요하지만, 사존의 힘을 모두 흡수한 사완악에게는 가능한 일이었다.
“컥!”
“으윽!”
진마광과 야율고는 사완악의 심후한 내력에 작은 신음을 내뱉으며 뒤로 튕겨져 나갔다.
그들은 사완악을 단번에 죽일 생각으로 전력을 다했기에, 예상을 뛰어넘는 반격을 당하자 약간의 내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내 차례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둠 속에서 비수가 한층 더 은밀하고 빠르게 사완악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왔다.
하지만 그 순간, 사완악의 신형이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이형환위(移形換位)……! 위험!”
어둠 속에서 경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형환위라는 것은 신형을 움직여 위치를 바꾼다는 의미다.
그만큼 눈으로 보고 있어도 움직이는 것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속도라는 뜻이다.
말은 쉽지만 진정한 경지의 이형환위를 구사하는 것은 초절정의 고수라도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사완악의 승광신법은 가히 극에 이른 이형환위를 선보였다.
“헉!”
진마광의 눈에 공포와 경악이 동시에 물들었다.
순식간에 사완악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가공할 위력을 품은 장력이 날아오고 있었다.
진마광은 젖 먹던 힘을 다해 황급히 주먹을 내질렀다.
사완악의 강맹한 기운과 혈천마공으로 단련된 진마광의 신체가 그대로 격돌했다.
쾅!
피육이 부딪치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폭음.
그리고 진마광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끄악!”
기혈이 솟구치고 지독한 충격이 진마광의 전신을 휘감았다.
강철보다 단단했던 주먹이 으스러지고 어깨가 살을 뚫고 나올 듯 튕기며 삐져 나갔다.
이때 사완악의 표정은 조금의 변화도 없이 해맑았고, 진마광은 태어나 처음으로 극심한 공포를 느끼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뒤돌아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사완악은 무정할 정도로 다시 한번 일장을 내질렀다.
파신마장의 강맹한 초식이 그대로 진마광의 심장에 격중했다.
“꺽……!”
단말마의 비명.
진마광은 마치 벼락을 맞은 듯 눈을 부릅뜨고 몸을 부르르 떨며 사완악을 한 번 쳐다보고는 그대로 허물어졌다.
이미 절명한 것이다.
하지만 사완악은 그의 죽음을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새 몸을 돌려 점창파가 자랑하는 사일검법(射日劍法)을 펼쳐 냈다.
사완악의 뒤를 쫓아 온 창영마가의 가주, 야율고가 수십 개의 그림자를 만들어 내며 평생의 힘을 한 초식에 쏟아 공격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창의 그림자가 하늘을 뒤덮는다는 창영마공.
활로 태양을 쏘아 맞힌다는 의미의 사일검법.
극쾌의 창법과 극쾌의 검법이 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