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63
정도마신 162화
야율고의 창날이 수십 개의 그림자를 만들어 낸 것처럼, 사완악의 검에서도 수십 개의 잔상이 만들어졌다.
까가가가강!
창과 검이 부딪치며 귀가 멀 것 같은 금속성이 울려 퍼진 뒤.
“이 검법은……!”
사완악의 검이 야율고의 가슴을 꿰뚫었다.
“점창파의 사일검법…… 어떻게…….”
야율고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사완악을 바라봤다.
그의 무공은 쾌를 추구하기에, 중원에서 가장 빠른 무공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사일검법은 점창파의 가장 뛰어난 절학으로, 강호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쾌검이었다.
하지만 무당파의 양의심공을 익힌 사완악이 어떻게 점창파의 절학인 사일검법까지 구사한단 말인가?
야율고는 자신의 죽음을 납득하고 싶은 사람처럼, 꺼져 가는 숨을 붙잡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넌…… 구파일방의 공동제자라도 되는 것이냐?”
사완악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공동제자는 얼어 죽을. 나 무림공적인데?”
“무림공적…… 그런데 왜…….”
야율고는 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어떤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그 전에 숨이 끊어진 것이다.
촤악!
사완악은 손에 힘을 주어 단번에 야율고의 가슴에서 검을 뽑아냈다.
그러고는 한 호흡 쉴 틈도 없이 몸을 빙글 돌렸다.
마지막 남은 상대가 빠른 속도로 날아오고 있음을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쉬이이이익!
확실히 마교 최고의 암살자다운 신법이라고 해야 할까?
진암마가 가주 완영의 경신술은 진마광이나 야율고보다 더 경쾌하고 날렵했다.
마치 한 마리의 제비가 수면 위를 나는 듯한 모습.
하지만 그 모습을 보는 사완악은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했다.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았을 텐데?’
칠대마가의 가주 세 명이 합공을 하고도 진마광과 야율고가 죽었다.
그런데도 지체 없이 달려든다는 건 둘 중 하나였다.
‘명령 앞에서는 목숨도 두려워하지 않거나, 아니면…… 준비된 한 수가 있거나.’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다.
사완악은 겉으로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도 속으로는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진암마가의 가주 완영이 빠른 속도로 사완악의 앞에 당도했을 때였다.
“음?”
사완악은 찰나지간, 완영의 손이 그녀의 허리에 묶인 매듭을 풀어내는 것을 보았다.
다음 순간.
검은색 천막이 허공에 활짝 펼쳐지며 사완악의 시야를 완전히 가렸다.
상대에게 비장의 한 수가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던 사완악은 빠르게 뒤로 물러서며 양손을 휘저어 무당파 태극권의 초식 중 하나를 펼쳤다.
사완악의 장심에서 바람이 소용돌이치며 완영이 던진 검은색 천막을 날려 버렸다.
사완악이 굳이 태극권의 초식을 사용한 이유는, 만약 검은색 천막이 날아간 뒤로 어떤 암기가 날아올 것을 대비해서였다.
태극권은 그런 갑작스러운 공격을 방어하기에 가장 좋은 무공이었다.
하지만 사완악은 검은색 천막을 걷어 내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 검은색 물체는 천막이 아니라 바로 완영이 입고 있던 검은색 무복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는 뜻은…….
“헉……!”
사완악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며 몸이 굳어졌다.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의 나체였다.
그것도 너무나 아름다운 미모와 나신(裸身)!
복면까지 벗은 완영의 외모는 이국적인 절세의 미녀였다.
백옥 같은 피부에 푸른 눈에 깎아 올린 듯한 콧날, 붉은 입술까지.
세찬 바람에 허리까지 오는 긴 금발의 머리를 휘감아 날렸고, 풍만한 가슴이 탄력 있게 출렁거렸다.
팽팽하게 곤두선 가슴과 유실(乳實)과 잘록한 허리, 그리고 다시 터질 듯 굴곡지게 나타나는 둔부, 흠집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새하얗고 야들야들한 피부.
심지어 가장 비밀스러운 곳까지도 사완악의 앞에 모두 드러내고 있었다.
암기나 독공 정도를 예상했던 사완악은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만 같았다.
이때 완영의 푸른 눈이 눈웃음을 지으며 교태로운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야말로 남심(男心)을 뒤흔들고 혼백을 앗아 가는 듯한 요기(妖氣)가 그녀의 웃음소리를 따라 전신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났다.
천하의 사완악조차 넋을 잃은 듯 멍하니 서서 그녀의 환상적인 육체를 바라볼 뿐이었다.
푹!
“컥……!”
사완악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의 심장에는 하나의 비수가 깊숙이 박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너 역시 어쩔 수 없는 사내였군.”
진암마가의 가주 완영은 약간은 실망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곧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그녀는 마교의 십대마공 중 진암마공 외에 또 한 가지를 익히고 있었다.
바로 여인만이 익힐 수 있는 천음근색마공(天陰根色魔功)이었다.
천음근색마공은 세상의 어떤 사내라도 현혹시킬 수 있는 마공이었다.
그것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같은 십대마공을 익히는 것일 뿐.
기록에 따르면 과거 소림사의 고수들과 곤륜파의 도사들조차 이 천음근색마공 앞에서는 무너졌다고 하니 그 요사함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완악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본 뒤 말했다.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다니…… 죽기 전에 하나만 묻고 싶다…….”
완영은 흑의 무복을 주워 다시 몸에 걸치며 말했다.
“비록 적이지만 당신은 훌륭한 무인이었으니…… 마지막 질문 정도는 들어 줄 수 있겠지.”
사완악은 시간이 없다는 듯 바로 물었다.
“설린 문주는…… 어디 있지?”
완영은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물었다.
“설린? 그게 누구지?”
“역시…… 당신도 모르는가.”
“정인이라도 되는 모양이군.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주제에 다른 여자의 몸에 홀리다니. 꼴사납구나.”
사완악은 대답 대신 다시 물었다.
“너희들이 이곳에 온 것은 교주의 명령인가?”
“그분이 아니라면 누가 감히 우리를 움직일 수 있을까?”
“그가 그렇게 대단한가? 교주 한 명 나타났다고 갑자기 강호에 모습을 드러낼 만큼?”
그 순간, 완영은 머릿속으로 교주를 떠올렸는지 잠시 움찔하고는 말했다.
“그분은…… 감히 인간의 눈으로 측량할 수 없는 분이다.”
“너희 칠대마가의 가주들이 한꺼번에 덤벼도?”
“천마신공 앞에서 모든 마공은 한낱 반딧불일 뿐이지. 설령 그런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분은 이 세상의 하늘이 되실 분인데, 어찌 감히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느냐?”
사완악은 다시 힘겹게 물었다.
“그럼 칠대마가의 가주들보다 위에 있다는 네 명의 호법은…… 어느 정도인가?”
완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누가 호법들이 우리보다 위에 있다고 그랬지? 그들은 우리와 동등한 관계이다. 다만 우리는 가문을 책임진다면, 그들은 교의 운영을 맡고 있을 뿐이지. 무공 역시 묵 노인…… 그 사람을 제외한다면 혼원마가의 가주가 가장 강하다.”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렇군. 너희는 이곳에서 제갈세가를 멸문시키라는 명을 받은 것인가?”
완영은 가소롭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제갈세가 따위를 우리가 신경이나 쓰겠느냐? 오늘 이곳에 온 것은 천의문의 제자들을 말살하기 위해서다.”
“천의문의 제자들을…….”
“그들은 신묘한 재주들이 많으니 어떤 식으로든 본교의 행사에 방해가 될 수 있다 하셨다. 실제로 내가 조금 전 죽인 녀석만 해도 아주 기이한 진법을 썼으니.”
“그것 참…… 이상한 일이군.”
“무엇이 이상하다는 거지?”
사완악은 대답 대신 침묵을 지키며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교주와 너희 무리들이 본거지로 삼고 있는 장소는 어디인가?”
“그건…… 북경의…….”
그런데 이때였다.
완영은 말하다가 이상함을 느끼고 멈칫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심장에 비수가 박혀 다 죽어 가고 있던 사완악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일까?
아니, 그보다 사완악의 음성이 왜 점점 더 또렷해지는 것일까?
그녀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사완악을 바라봤다가 깜짝 놀랐다.
사완악의 가슴에는 비수가 박혀 있지 않았고, 백의장삼은 여전히 눈처럼 하얗고 깨끗해서 피를 흘린 흔적 따위도 없었다.
이때 사완악의 음성이 그녀의 머릿속에 강렬히 울려 퍼졌다.
“말하라! 북경, 북경 어디에 있지?”
“그건…… 교, 교주님에 관한 건 절대 말할 수 없다……!”
그녀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고 온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하얀 피부로 핏줄들이 솟아오르고 있었고, 이대로라면 온몸의 혈관이 다 터져 나갈 듯한 모습이었다.
사완악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견디기 힘든 고통일 텐데…… 지독하군.”
사완악은 암기와 독공만을 대비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완영의 음성을 듣고 그녀가 여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어쩌면 그녀가 여색을 이용한 작전을 쓸 지도 모른다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여인이 사내를 상대함에 있어서, 때로는 그것만큼 강하고 위력적인 수법이 없을 테니까.
하지만 완영의 이 같은 선택은 최악의 수였다.
완영의 미모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나, 사완악은 어려서부터 퇴폐적인 미모로는 중원 제일이라 할 수 있는 채보령 아래서 자랐기 때문이다.
사완악은 이미 여인의 아름다운 여체를 수차례 본 적 있었고, 그것에 흔들리지 않는 정신이 있었으며, 사령문의 절학인 탈정미혼공을 극성으로 익히고 있었다.
천음근색마공이 십대마공 중 하나라 해도, 이런 술법적인 분야로는 사존이 남긴 무공을 이길 수 없는 법.
결국 사완악의 심장에 비수를 꽂아 넣은 것도, 이미 사완악의 섭혼술에 당하여 그녀는 환상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에 홀려 사완악의 모든 질문에 대답하던 완영도 교주에 대한 질문만큼은 이를 악물고 답하지 않았다.
‘마교의 교주는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정도 충성심이라고?’
혹은 세뇌를 당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느 쪽이든 달가운 말은 아니었다.
사완악은 탈정미혼공으로도 더 이상 알아내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는 말했다.
“어쩔 수 없군. 마지막으로 묻겠다. 그 기이한 진법을 쓰던 녀석을 어떤 방식으로 죽였지?”
완영은 교주에 대한 질문이 아니자 대항하지 못하고 바로 말했다.
“내 비수가…… 그 녀석의 심장을…… 흐윽!”
완영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느새 사완악에게 날렸던 그녀의 비수가 도로 그녀의 심장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사완악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받은 대로 돌려주는 것이 내 철칙이라서.”
“너, 너는 대체…….”
완영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사완악은 싸늘하게 식어 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살짝 피곤하긴 하군.”
사천당문에서 이곳까지 전력으로 쉼 없이 달려오고, 도착하자마자 초절정의 고수 세 명의 합공을 상대했다.
게다가 마지막에 상대의 섭혼술을 꺾고 반대로 초절정의 고수에게 탈정미혼공을 사용한 것은 상당한 정신력과 심력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아무리 사완악이 심후한 내공을 지니고 있다 한들, 피로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직 백 명이 넘는 마교의 교도들이 남아 있었다.
제갈세가가 기관진식을 이용해 버티고는 있으나, 뚫리는 순간 몰살당하고 말리라.
“쉽지 않은데…….”
그래도 애써 몸을 움직이려는 그때였다.
“지조오온! 별일 없으십니까!”
한 사내가 다급히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바로 사완악의 가장 충성스러운 심복, 사귀령 가종후였다.
연비령의 호위를 맡고 있던 그가 도착했다는 것은…….
“오라버니!”
연비려의 음성이 들려왔다.
뒤이어 만사무와 천화, 묵영, 그리고 신주대일랑 방욱과 독왕 당온추, 사천당가의 장로들과 백여 명에 개방도들이 나타났다.
“악!”
사완악은 가종후의 뒤통수를 한 대 후려갈기며 말했다.
“빨리도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