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64
정도마신 163화
사완악은 한결 마음이 놓이는 것을 느끼며 개방의 방주 방욱에게 말했다.
“칠대마가 세 곳이 쳐들어왔더군. 가주들은 다 처리했으니까 나머지는 알아서 처리해.”
사완악이 나머지라고 표현한 것은 제갈세가와 싸우고 있는 마교의 교도들이었다.
방욱과 당온추는 사완악의 명령조에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칠대마가의 가주라면 중원의 팔대고수 못지않은 초절정의 고수들.
그런 자들을 셋이나 처리했다니.
사완악이 아니라면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일이었다.
“쉬고 있으시게. 개방의 방도들은 마교의 잔당들로부터 제갈세가를 구하라!”
방욱의 포효와 같은 외침이 울려 퍼지자, 백 명의 개방 방도들은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로 사천당가의 고수들이 함께했다.
그들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연비려는 사완악에게 빠르게 물었다.
“오라버니, 사형들은 어떻게 됐나요?”
하지만 사완악이 대답을 채 하기도 전에, 하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대사형! 정신 차려 보세요! 대사형!”
연비려는 낯익은 음성에 황급히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았다.
“휘아?”
울음을 터뜨린 소년은 팔군, 구휘였다.
구휘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백신형을 끌어안고 구슬프게 흐느끼고 있었다.
연비려는 깜짝 놀라 두 사람에게 달려가다가 멈추고 말았다.
“대사형…….”
백신형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진마광과의 혈투로 그의 옷은 넝마처럼 찢어져 있었고, 피를 토한 듯 핏물이 얼굴에 묻어 굳은 상태였다.
처참한 몰골로 싸늘하게 식어 버린 백신형의 주검에 연비려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구휘는 다가온 사람이 연비려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한번 울음을 터뜨렸다.
“연 사저…… 대사형이 죽었습니다. 칠군도, 이군도…… 모두 죽었습니다.”
“파파랑…… 이 사형도…….”
연비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존경하고 믿었던 사부가 어머니와 자신을 속인 사실에 크게 충격을 받았고,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백신형이 크게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려서부터 쌓인 사형제의 정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는 없었다.
백신형과 백신우는 언제나 그녀를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 주었고, 칠군은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는 연비려를 안타깝게 여겨 친할머니처럼 살뜰하게 보살펴 준 사람이었다.
이렇듯 천의문에서 그녀를 가장 아껴 주었던 세 사람이 한꺼번에 죽음을 당하자 그 충격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완악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는 연비려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내가 도착했을 땐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
“일부러 그들이 죽는 것을 지켜본 것은 아니라는 거다.”
사완악은 자신이 이런 변명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으나, 연비려의 상심한 표정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리 말했다.
그러자 연비려가 말했다.
“오라버니 책임이 아니라는 것 알고 있어요. 오라버니가 아니었다면 휘아도 살아남지 못했겠지요. 그리고 이런 날이 올 것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에요. 다만 준비하고 있었다고 슬프지 않을 수는 없네요. 유언 한마디도 듣지 못하고 모두 떠나보낼 줄은…….”
그런데 그때였다.
사완악은 이상한 느낌에 눈을 빛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와 동시에 들려오는 미약한 음성.
“우리는…… 약속을 지켰소.”
연비려와 구휘도 눈이 휘둥그레지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서생 차림의 한 사내가 힘겹게 걸어오고 있었다.
바로 이군, 백신우였다.
백신우의 심장에는 진암마가의 가주 완영의 것으로 보이는 비수가 꽂혀 있었고, 그의 얼굴은 흡사 강시처럼 창백하다 못해 푸르죽죽한 색을 띠고 있었다.
“이 사형!”
연비려와 얼른 달려가 백신우를 부축해 주려 했는데, 사완악이 손을 뻗어 그녀를 제지했다.
사완악은 백신우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하고는 물었다.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 거지?”
사완악은 멀리서도 상대의 호흡을 느낄 수 있는 경지였다.
하지만 백신우에게서는 그 어떤 숨조차 느껴지지 않았고, 온몸의 기혈에서도 아무런 기운이 흐르고 있지 않았다.
살아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백신우는 천천히 다가와 사완악에게 말했다.
“내 심장에는 열 개의 천심환이 박혀 있소. 그게 무엇인지는…….”
이군은 눈을 살짝 돌려 연비려를 바라봤다.
대신 설명해 달라는 것임을 알아차린 연비려가 말했다.
“천심환은 천의문의 보물 중 하나예요. 총 열 개의 구슬인데, 신묘한 힘이 담겨 있어서 강력한 진법이나 주술을 사용할 때 이용하는 물건이죠. 그런데 이 사형은 어렸을 적에는 건강했다가 점점 몸이 나빠지기 시작했는데, 사부님은 그것이 나이가 들수록 심장이 점점 기능을 잃어가는 희귀병이라는 것을 알아내셨죠. 사부님은 강호 최고의 의원들과 상의를 하셨으나 병을 고칠 방법은 없었어요. 만약 그대로 두었다가는 이 사형은 약관이 되기 전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죠.”
사완악이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혹시 그 천심환을 그의 심장에 박은 것인가?”
“맞아요. 사부님은 고심 끝에 천의문의 비술을 이용해 천심환을 사형의 심장에 넣었다고 들었어요. 천심환의 힘으로 이 사형의 심장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한 거죠. 그리고 이 사형은 천의문의 진법을 배웠어요. 위기에 처했을 때 심장에 박힌 천심환을 사용하여 훨씬 더 위력적인 진법을 사용할 수 있었죠. 하지만…… 그것은 사실 금기에 가까운 일이에요. 천심환을 사용할수록 이 사형의 건강은 악화될 수밖에 없고, 그 힘을 다 사용하면 즉시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 사형은…… 그동안 오라버니와 크고 작은 싸움을 하는 동안 꽤 여러 개의 천심환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어요.”
사완악은 비로소 백신우의 안색이 언제나 병약해 보였던 것과 그의 진법이 그토록 기기묘묘(奇奇妙妙)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 살아 있는 게 그 천심환의 힘인가?”
백신우는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당신과의 첫 만남에서 세 개의 천심환을 사용했고, 태산에서 세 개를 사용했으며, 이곳에서 세 개를 사용했소. 그리고 이 비수는…… 다행히 마지막 남은 천심환을 빗겨나갔소. 그래서 나는 그 암살자의 눈을 속이기 위해 마지막 천심환을 사용하여 귀식대법(龜息大法)을 사용했소.”
귀식대법이란 내공으로 숨을 멈추고 심장을 비롯한 모든 장기의 기능을 멈추어 죽은 사람처럼 위장하는 수법이었다.
물론 아무리 뛰어난 귀식대법이라도 칠대마가의 가주와 같은 초절정 고수의 눈을 속이기는 어려운 법이고, 하물며 상대가 살인에 통달한 암살자라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백신우는 내공이 아니라 천심환의 힘을 멈추어 귀식대법을 펼쳤기에 제아무리 예민한 감각을 가진 전암마가의 가주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사완악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은…….”
사완악의 말에 백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나는 이제 곧 숨을 거둘 것이오. 그럼에도 내가 귀식대법을 펼쳤던 것은…… 연 사매와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결국 백신우가 죽는다는 말에 연비려와 구휘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사완악은 팔짱을 끼며 말해 보라는 듯 그를 바라봤다.
백신우는 먼저 연비려에게 말했다.
“연 사매.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
“사부님은 사부님께서 읽으신 천기가 틀림없다고 믿으셨고, 나는 사부님의 능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는 그저 내가 믿는 길을 걸었던 것이고, 작은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지금도…… 과연 깨어난 천살성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매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 번 미안해하면 내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아서 외면했을 뿐…….”
연비려는 복잡한 시선으로 백신우를 바라보다 조용히 말했다.
“이해해요.”
백신우는 고맙다는 듯 그녀를 향해 옅게 미소 짓고는 사완악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내가 가장 미안한 사람이 있다면 설린 문주요. 그 이유는 누구보다 당신이 잘 알고 있을 테고…… 용서 받고 싶은 생각은 없소. 다만, 미안하다는 말은 전해 주시오.”
사완악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짧게 대답했다.
“생각해 보고.”
백신우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당신다운 대답이오. 더 길게 말하고 싶으나……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는 것 같소. 내가 진짜 당신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은…….”
다음 순간, 백신우의 입이 소리 없이 달싹였다.
남들은 들을 수 없도록 사완악에게 전음을 보내는 것이었다.
같은 사형제인 연비려와 구휘에게조차 비밀로 하려는 말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 백신우의 전음을 들은 사완악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더없이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물었다가 백신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망상이 지나치군.”
백신우는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나는 내 생각을 말했을 뿐이오.”
백신우의 대답은 간단했지만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다.
그는 이 한마디를 전하기 위해 자신의 마지막 천심환을 소모한 것이었으니까.
백신우는 돌연 처연한 미소를 짓고는 사완악에게 말했다.
“염치없는 부탁을 해도 되겠소?”
“아니, 하지 마. 그냥 죽어. 천심환을 다 소모하면 바로 죽는다더니 왜 이렇게 오래 살아 있어?”
사완악의 거침없는 말에도 백신우는 오히려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 당신다운 대답이오. 하지만 나 역시 끝까지 나답게 뻔뻔한 말을 해야겠소. 사완악 공자. 연 사매를…… 그리고 이 강호를…… 부디 지켜 주시오.”
“시끄러워. 그냥 죽으라니까…….”
사완악은 말을 마치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백신우가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고는 두 눈을 감은 채 그대로 쓰러졌던 것이다.
연비려와 구휘는 백신우가 결국 숨을 거두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에게 달려가 부둥켜안았다.
사완악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사완악의 머릿속에는 백신우가 마지막에 전했던 전음이 맴돌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천의문이었소. 이미 그들은 정도맹의 세력이 어느 문파로 어떻게 나뉘는지, 우리 천의문의 제자들이 제갈세가와 진법을 연구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는 뜻이오. 정도맹의 수뇌부 중 이미 마교의 첩자가 있는 것이오. 그리고 설린 문주는…….
있을 수 없는 일.
하지만 사완악의 생각이 복잡해지는 이유는…….
백신우가 남긴 그 말과 사완악이 줄곧 염려하고 있던 바가 정확하게 똑같다는 것이었다.
지략이 뛰어난 두 사람의 생각이 일치할 때.
그것을 과연 망상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사완악의 고심이 깊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