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68
정도마신 167화
현종과 헤어지고 처소로 돌아가는 사완악의 표정은 한결 밝아져 있었다.
‘그래. 현종이 마교의 사람일 리 없지.’
누구보다 뜻이 잘 통하고, 목숨도 맡길 수 있는 유일무이한 벗.
그런 현종이 적이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었다.
하지만 사완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깊은 고심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마교는 어떻게 정도맹의 내부 사정을 모두 알고 있었을까?’
사완악이 현종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을 만큼, 모든 정황은 현종을 범인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바꿔 말하면, 만약 현종이 마교의 사람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현종을 의심하도록 일을 꾸미는 것일까?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지?’
평소 하나를 보면 열을 깨닫는 사완악의 총명함으로도 마교의 이러한 신출귀몰함은 도저히 추측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때, 천천히 걸어가던 사완악은 문득 걸음을 멈추며 앞을 바라봤다.
잠시 후, 한 여인과 소년이 어둠 속에서 경공을 펼치며 사완악을 향해 달려왔다.
“오라버니!”
여인과 소년은 바로 연비려와 구휘였다.
사완악은 그들이 다급한 표정으로 갑자기 나타난 것에 의아함을 느끼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오라버니, 이것 보세요!”
연비려가 보여 준 것은 그녀의 주먹만 한 크기의 투명한 구슬이었다.
투명한 구슬 안에는 작은 크기의 또 하나의 구슬이 들어가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그 구슬에서는 강한 자색의 기운과 희미한 붉은색의 기운이 동시에 빛나고 있었다.
“이게 뭐야?”
“이건 영성옥(靈星玉)이에요. 특별한 별의 기운을 품고 태어난 사람에게 반응하는 천의문의 신물이죠. 이 작은 구슬은 원래 투명한데, 사부님께서는 이 구슬이 수호성의 기운을 만나면 자색의 빛을 띠고, 천살성의 기운을 만나면 붉은색을 띤다고 하셨어요.”
영성옥은 원래 천의문의 칠군이 관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창영마가의 가주 야율고에게 죽음을 당했고, 이군 백신우는 그녀의 품에서 영성옥을 회수하여 구휘에게 전해 주었다.
“실제로 오라버니가 가까이 있으면 이 구슬은 자색의 기운이 강해지고, 오라버니가 멀어지면 희미해지고는 했어요. 그런데…… 이것 보세요.”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붉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군.”
창백해진 표정으로 서 있던 구휘가 말했다.
“구슬에서 갑자기 기이한 진동이 일어나더니 붉은색 기운이 희미하게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이 근처에 천살성이 나타났다는 뜻이에요.”
구휘는 이 현상을 보자마자 빠르게 연비려에게 알렸다.
다행히 연비려는 사완악이 현종을 만나러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구휘와 함께 경공을 펼쳐 바로 사완악을 찾아온 것이었다.
사완악의 얼굴에는 반신반의(半信半疑)의 표정이 떠올랐다.
“여긴 정도맹 내부다. 갑자기 천살성이 나타났다니…….”
하지만 이어지는 연비려의 말에 사완악은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굳어졌다.
“오라버니, 그런데 제 처소에서 이곳으로 오는 동안 붉은 기운이 조금씩 더 강해졌어요.”
“뭐라고?”
순간, 사완악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혹이 스치듯 떠올랐다.
그러나 사완악은 스스로도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설마…… 그럴 리는…….”
“왜요? 짚이는 거라도 있으세요? 현종 대사님과 이야기는 어떻게 됐어요?”
사완악은 한동안 굳어진 안색으로 영성옥을 보다가 이내 입술을 깨물었다.
“그 구슬을 잠시 가져가야겠다.”
“예? 아!”
연비려가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사완악은 그녀의 손에서 낚아채듯 구슬을 가져갔다.
“잠시 확인해 볼일이 있으니 다녀오마.”
“네? 무슨 일인데요? 저도 같이 가요.”
“아니. 돌아가라. 같이 가면 오히려 방해가 되니까.”
사완악은 빠르게 말하고는 돌아섰다.
연비려는 사완악의 너무나 단호한 표정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사완악은 어느새 경공을 펼쳐 사라지고 있었다.
* * *
지이잉!
사완악은 손에서 다시 한번 진동하는 구슬을 힐끗 쳐다보고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붉은색 기운이 더 강해졌다.’
연비려가 사완악을 만나러 오는 동안 붉은색이 더 뚜렷해졌다는 말을 했을 때, 사완악은 자신도 모르게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고 말았다.
물론 마음으로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어째서 현종의 처소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수록 붉은색 기운이 강해지는 것일까?
‘아니다. 천살성의 기운을 가진 마교의 사람이 현종을 찾아간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현종도 위험할지 몰라.’
사완악은 심상치 않은 전조에 승광신법을 극성으로 펼쳐 눈 깜짝할 사이에 현종의 처소에 도착했다.
“현종! 안에 있어? 현종!”
사완악은 내공을 실어 외쳤으나 아무 대답도 없었다.
“현종!”
사완악은 전각으로 들어가 벌컥 방문을 열었다.
하지만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즉시 밖으로 나와 사방을 살폈다.
‘아까 현종은 분명히 저쪽으로 걸어갔었지.’
사완악은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끼며 현종이 사라졌던 방향으로 질풍 같은 신법을 펼쳤다.
잠시 후.
지이잉!
손안의 구슬에서 다시 한번 진동이 느껴졌다.
‘진동과 기운이 더 강해졌다.’
사완악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희미했던 구슬의 붉은 기운은 이제 자색의 기운과 거의 비등할 정도로 비슷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오싹-!
사완악은 돌연 전신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 기운은 분명히…….’
사완악은 이 기운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칠대마가의 가주들에게서 느꼈던 파괴적인 기운.
바로 마공의 기운이었다.
다만 지금까지 사완악이 마주했던 마공의 기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무거운 기운이 전신을 휘감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사완악은 깜짝 놀라며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눈앞에 하나의 전각이 나타났는데, 마당에는 소림사의 승복을 입은 한 승려가 피를 토하고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현암 대사……!”
놀랍게도 그 승려는 소림사의 방장이자 천하 팔대고수 중 한 사람인 현암이었다.
가까이에서 그의 시신을 확인한 사완악의 눈에는 불신의 빛이 떠올랐다.
현암 대사의 시신은 승복의 가슴 부분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을 뿐, 다른 흔적이나 상처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단 일 초식으로 죽였다.’
심지어 주변 땅의 상태로 보아 현암 방장은 제대로 된 무공 한 번 펼쳐 보지 못하고 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현암처럼 내공이 심후한 초절정 고수가 반격을 한다면 기의 충돌은 불가피할 것이고, 그렇다면 주변에 어떤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나 깨끗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현암 방장의 무공은 팔대고수들 중에서도 뛰어난 편이었고, 그의 성격은 매우 진중하고 꼼꼼하여 적에게 쉽게 당할 사람이 아니었다.
세상에 누가 있어 그런 현암 대사를 일격에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사완악이라 해도 그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 한 가지 이상한 것은 현암의 표정이었다.
현암은 뜬 눈으로 숨을 거두었는데, 그 표정은 고통스러운 느낌이 아니라 큰 놀람과 슬픔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사완악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전각을 바라보고는 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온몸이 돌처럼 굳어졌다.
“……!”
전각의 내부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태풍이 휩쓸고 간 것처럼 모습과 싸늘하게 식은 다섯 구의 시체.
그들은 모두 소림사의 승복을 입고 있었고, 사완악은 그들이 소림사의 원로들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사완악은 놀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천천히 몸을 돌려 다시 전각 밖으로 나갔다.
“이제야 왔는가?”
마당으로 나오자 들려오는 한 줄기 음성.
그 음성은 낮고 진중하면서도 사람을 휘어잡는 힘이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사완악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으스러져라 꽉 쥐며 고개를 들었다.
“현종. 네가 왜 거기 서 있는 거냐?”
사완악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마당에 나오자마자 들려온 음성은 바로 현종의 음성이었다.
현종은 어디서 나타났는지 현암 방장의 시신 앞에 서 있었다.
하지만 사완악이 진정으로 놀란 것은 현종의 전신에서 풍겨져 나오는 기운 때문이었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설 것 같은 파괴적인 기운.
그것은 결코 소림사의 정순한 내공이 아니었다.
사대악인과 칠대마가의 가주들보다 더 깊고 무거운 마공의 기운.
현종의 전신에서 그러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양손과 소매는 피로 물들어 있었는데, 현암 방장과 소림사의 원로들을 죽인 흔적이었다.
사완악은 그런 현종을 싸늘하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너. 현종이 아니군.”
무표정한 얼굴로 사완악을 바라보고 있던 현종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너는 바로 알아보는구나.”
사완악은 현종을 노려보며 말했다.
“넌 누구냐.”
현종은 잠시 사완악을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말했다.
“내 이름은 종천(宗天). 이 몸의 새로운 주인이고, 마교의 오대 교주이며 천하의 주인이 될 사람이다.”
“마교의 오대 교주? 그 몸의 새로운 주인이라고?”
사완악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현종, 아니, 스스로를 종천이라 밝힌 그가 말했다.
“현종은 이제 죽었다. 사실은 예전부터 언제든지 죽일 수 있었지.”
사완악은 이마를 찌푸리며 종천을 노려봤다.
“그게…… 무슨 개떡 같은 소리냐?”
종천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하. 말 그대로다. 이제 현종이 세상 밖으로 나올 일은 영원히 없다. 이 몸은 곧 온전히 나 종천의 것이 되었으니.”
사완악은 종천을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너…… 혹시 마교의 귀신같은 놈이 현종의 몸을 차지한 거냐?”
사완악이 이 같은 질문을 한 것은 영겁사령존의 혼백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사령문에 그런 존재가 있었으니, 마교에도 그런 놈이 있을지 모르는 일 아닌가?
그러나 종천은 고개를 저었다.
“나와 현종은 한 사람이면서 전혀 다른 존재다. 같은 육체를 지닌 형제와 같다고 할 수 있지.”
사완악은 종천의 말을 듣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너…… 그러니까 현종의 다른 인격이라는 거냐?”
종천은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였다.
“다른 인격이라…… 그래 틀린 말은 아니겠군.”
“아하.”
사완악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난 또 뭐라고. 결국 넌 현종과 똑같은 놈이고, 생각이랑 성깔만 달라진…… 한 마디로 맛 간 현종이네?”
“뭐?”
“맞잖아. 맛 간 현종아. 그런데 어쩌다 맛이 간 거냐?”
맛 간 현종이라니.
종천은 설마 자신을 그렇게 표현할 줄은 몰랐는지 매서운 눈으로 사완악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사완악의 눈빛 역시 어느 때보다 더 싸늘해져 있었다.
“그런데 현종아. 얼마나 맛이 갔으면 마공까지 익히고 있는 거냐? 아니, 어떻게 네가 마교의 오대 교주일 수가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