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70
정도마신 169화
천종은 사완악의 웃음을 보며 재밌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마치 네가 나를 막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군.”
사완악은 손에 쥐고 있던 구슬을 보여 주며 말했다.
“영성옥이라는 천의문의 보물이라고 하더군. 이 안쪽의 구슬이 천살성과 수호성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영성옥의 안쪽 구슬은 정확히 반으로 나뉘어져 한쪽은 붉은색, 한쪽은 자주색을 띠고 있었다.
사완악은 그 두 가지 색의 구슬을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현종과 만났을 때, 이 구슬의 색이 변한 적은 없어. 그런데 네가 나오자마자 구슬에 이 붉은색이 나타났지. 한마디로…… 너와 현종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뜻이지.”
사완악은 구슬을 다시 품에 넣으며 만족스럽다는 듯 씩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다행이다. 나는 현종과는 싸우기 싫거든. 하지만 네가 현종이 아니라면, 마음껏 내 힘을 쓸 수 있으니까.”
순간, 사완악의 전신에서 사이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파의 내공처럼 정순하지도, 마교의 내공처럼 파괴적이지도 않았으나, 숨이 막힐 것 같은 답답함과 음산함이 느껴지는 죽음의 기운이었다.
그러나 종천은 마치 한가롭게 밤바람을 맞는 사람처럼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생각해 보면 천의문의 예언은 매우 정확하지 않느냐?”
“뭐?”
“천의문은 세상에 우리가 나타날 것이라 예언했고, 그 운명을 바꾸려 했지. 그래서 너를 사대악인의 제자로 보냈으니까.”
종천은 사완악을 물끄러미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참 공교로운 일이지? 수호성을 타고난 네가 사대악인의 제자가 될 때, 나는 마공과는 상극의 기운을 지닌 소림사의 제자가 되었으니 말이야. 천의문의 계획대로 운명이 뒤바뀐 셈이었지. 그런데 재밌는 것은 내 천살성의 기운이었다. 나는 현종의 심연 깊은 곳에 있었지만, 나 스스로 내가 존재한다는 자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지.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내 의식이 점점 또렷해졌고, 현종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나에게도 조금씩 전달되기 시작했지.”
종천의 기이한 말에 사완악은 침묵을 지키며 그를 바라봤다.
종천은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깨어난 것이 사완악, 네 덕분이라고 한 이유가 그것이다. 아무리 현종의 마음에 틈이 생겼다 하더라도 나는 그 녀석을 밀어 낼 수 있는 힘이 없었다. 하지만 내 의식이 생겨나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현종과 싸울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천살성의 기운이 나를 깨워 준 것이지. 그리고 그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네가 천의문의 계획과 반대로 움직이며 봉인되었던 수호성의 기운이 조금씩 깨어날 때, 나의 천살성도 함께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지.”
“…….”
사완악은 일순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천의문의 예언이나 계획.
모두 개소리라고 치부하고 싶지만…….
이제는 자신이 특별한 기운을 타고 났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던 사완악이었다.
심장에 박혀 있는 신묘한 기운이 그 증거 중 하나였으니까.
정말 자신 때문에 현종의 천살성이 깨어난 것도 사실이란 것일까?
천의문의 예언은 모두 틀림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때 종천이 사완악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말했다.
“그래. 가장 중요한 건 천의문은 천살성이 깨어날 것을 알고도 왜 다른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무고한 자들의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굳이 수호성과 천살성의 운명을 바꾸는 계획을 세웠냐는 것이겠지.”
천의문은 사완악을 악인으로 만들기 위해 연가인에게 거짓된 말로 자식을 빼앗았고, 사완악을 사대악인의 제자로 만들었으며, 정유문의 설린을 희생시키려고도 했다.
그들이 사람의 윤리를 저버리면서까지 그런 계획을 세웠던 이유는 단 하나.
당대의 수호성은 결코 천살성의 기운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었고, 어떤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강대한 천살성의 기운이 세상을 파멸시키는 운명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너는 결코 나를 이길 수 없다, 사완악.”
“…….”
종천의 한마디는 마치 엄숙한 판관의 선언처럼 울려 퍼졌다.
하지만 잠시 후.
“지랄하네.”
사완악은 짜증 난다는 듯 욕을 내뱉으며 말했다.
“내가 예전에 어떤 늙은 점쟁이에게 했던 말이 있지. 난 누군가 나를 예측하거나 강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운명 같은 건 믿지 않는다고 말이야. 그런데 그 늙은 점쟁이가 그러더라고. 하늘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말이야.”
종천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의아함 섞인 눈빛으로 사완악을 쳐다봤다.
사완악은 잠시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났던 그 늙은 점쟁이를 떠올렸다.
무공이라고는 전혀 모를 것 같았던 점쟁이.
심지어 사완악조차 그저 평범한 노인이라고만 생각했던 그 점쟁이는, 사완악이 멀어질 때쯤 하나의 전음을 보냈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때로 하늘이 놀라고 하늘이 분노하는 일들도 생기는 법이네. 만약 이 세상이 하늘이 정해 준 운명대로만 흘러간다면 어찌 그런 일이 생기겠는가? 그것은 오직 사람의 의지로만 가능한 일일세.
당시 사완악은 그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저 무공을 완벽하게 숨긴 놀라운 노인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종천과 대화를 하는 순간, 그 한마디가 불현듯 떠오르며 사완악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단숨에 바로잡아 주었다.
“맛 간 현종 놈아, 운명이고 예언이고 내 알 바 아니라는 거다. 네 그 괴상한 인격이 사라질 때까지 두들겨 패 주고, 마교 따위는 이 세상에 나타나지 못하게 모두 없애 주마.”
종천은 황당하다는 듯 사완악을 보더니, 이내 헛웃음을 터뜨렸다.
“글쎄. 과연 네게 그런 능력이 있을까?”
“물론이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완악의 신형이 한 줄기 빛이 되어 종천에게 쏘아지 듯 날아갔다.
그리고 섬광처럼 펼쳐지는 마룡일효의 초식.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라도 부숴 버릴 것 같은 장력이 펼쳐졌다.
하지만 그 찰나, 종천의 손에서도 일권이 뻗어 나왔다.
꽈앙!
장력과 권력의 부딪침이라고는 믿기 힘든 강력한 경기(勁氣)의 파장이 폭장(暴張)되면서 주변의 모래알과 돌멩이들이 사방으로 날아가고 두 사람이 서 있던 자리가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실금이 퍼져 나갔다.
인간의 힘을 벗어난 듯한 가공스러운 위력의 격돌……!
또한 서로 같은 거리를 물러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 격돌은 누구 한 명에게 치우처지지 않은 완벽한 백중지세였다.
종천은 약간 놀란 듯한 표정으로 사완악을 바라봤다.
“힘을…… 숨기고 있었군.”
종천의 인격이 나타났을 때, 현종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반대로 종천은 현종을 언제나 지켜보고 있었기에, 사완악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가늠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보여 준 사완악의 한 수는 그동안 그가 측정했던 사완악의 힘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었다.
“과연 대단하다. 아무리 사존의 힘을 얻었다고 해도 그 짧은 사이에 이런 무위를 이루다니. 내 숙명의 상대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구나.”
“거참 말 많네. 이제 시작이거든?”
사완악은 별거 아니라는 듯 말하며 다시 내공을 끌어 올렸지만, 그의 표정은 평소와 달리 경직되어 있었다.
‘이게 천마신공인가?’
사실 진정으로 놀란 것은 종천이 아니라 사완악이었다.
종천의 말대로 사완악은 다시 강호로 나온 이후, 북해빙궁에서 얻은 사존의 힘을 제대로 사용한 적이 없었다.
천기자의 음모를 알아내고 분노하여 무적천검 사도준을 죽일 때는 삼 할 정도의 힘을, 칠대마가의 가주 셋을 한꺼번에 상대할 때조차 오 할 정도의 힘을 사용했을 뿐이었다.
특별히 힘을 감추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것만으로도 이미 당대에 적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전, 사완악은 사존의 힘을 칠 할이나 사용했다.
사완악은 그것으로 종천을 완전히 쓰러뜨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그보다 우위에 설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부딪쳐 본 종천의 힘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우위는커녕 밀리지 않은 것이 다행.
그리고 종천이 지닌 마공은 칠대마가 가주들의 마공과는 차원이 달랐다.
일 합을 겨룬 것만으로도 손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그의 마공에 심장이 빨라지고 사지경맥이 은은하게 뜨거워졌다. 만약 사완악이 지닌 내공이 평범했더라면 그의 기경팔맥은 끓는 물처럼 날뛰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사존의 힘을 전력으로 사용한다고 해도 종천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녀석도 아직 전력을 다한 게 아니니까.’
사완악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종천은 아직 모든 내공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감추고 있는지는 사완악으로서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곧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고민해 봤자 답이 있나? 붙어 보는 수밖에.’
사완악의 전신에서 사이한 기운이 폭발했다.
동시에 벼락같이 출수되는 장력!
종천은 깜짝 놀란 듯 보법을 밟으며 일권을 비스듬히 뻗어 날아오는 사완악의 장력을 흘려보내듯 쳐 냈다.
사완악의 장풍이 아슬아슬하게 종천의 어깨를 스치고 날아갔다.
순간, 꽈꽝!
놀랍게도 십여 장 밖에 있던 집채만 한 바위가 박살이 나 산산이 흩어져 절벽 밑으로 떨어져 내려갔다.
실로 가공할 위력이었다.
종천은 미소가 사라진 얼굴로 바위의 잔해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좋다, 좋아…… 하지만 오늘은 우리가 싸울 때가 아닌 것 같군.”
사완악은 종천의 말이 뜻밖이었는지 조소를 머금고 말했다.
“기껏 대단한 척은 다 해 놓고 갑자기 도망치겠다는 건 아니겠지?”
그러나 종천은 사완악의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너와 나의 대결은 천하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다. 이런 볼품없는 곳에서 종지부를 찍을 일이 아니지. 더 화려하고 성대한 막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순간, 사완악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종천이 싸움을 피하려 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왠지 모르게 서두른다는 느낌.
지금까지 여유롭던 태도와는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뭔가 있는 게 틀림없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 줄 사완악이 아니었다.
“웃기지마, 누가 보내준대?”
사완악의 신형이 궁신탄영의 신법으로 쏘아진 화살처럼 종천을 향해 날아갔다.
종천은 아까와는 달리 굳어진 안색으로 일권을 내질렀다.
꽈앙!
두 사람 사이에 다시 한번 강력한 충돌이 일어났다.
종천의 손에서 펼쳐지는 천마신공은 여전히 무서운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사완악의 예리한 눈은 종천의 표정이 미약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확실히 그에게 어떤 문제가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사완악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종천을 몰아붙일 기세로 내공을 더욱 끌어 올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그만 멈추는 것이 좋을 것이오.”
돌연 한 줄기 음성과 함께 낯선 중년 사내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