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72
정도마신 171화
화려하게 만들어진 어느 회의실.
상당히 넓은 방 안에 네 사람이 엄숙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세 명의 중년인과 한 명의 노인.
이들의 정체는 마교의 사대호법이었다.
사대호법은 교주 다음의 직분이었고, 마교의 진정한 수뇌부들이었다.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최연장자이자 사대호법 중 한 사람인, 경혼검마(驚魂劍魔) 혁련공이었다.
“교주님께서 돌아오셨네.”
그것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
그리고 이들이 모인 이유는 그다음 말 때문이었다.
“유령마가의 가주가 희생되었네.”
그러자 세 명의 중년인 중 몸이 비대한 사내가 말했다.
“이로써 칠대마가 중 귀검마가, 창영마가, 혈천마가, 진암마가, 유령마가까지, 다섯 가문의 가주가 죽었군요.”
그의 이름은 왕주봉이었고, 별호는 소면살마(笑面殺魔)였다.
웃는 얼굴로 사람을 죽인다는 말처럼, 그는 지금의 심각한 분위기에서도 눈으로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회의실의 사람들은 그가 웃는 게 아니라, 눈이 얼굴 살에 파묻혀 웃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때 다른 중년인이 말했다.
“가주들만 죽은 것이 아니오. 유령마가를 제외한 다른 네 개의 가문은 문도들의 피해도 컸는데, 정도맹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소.”
유난히 검은 피부를 지닌 그의 이름은 마교 제일의 도객이라고도 불리는 철혈도마(鐵血刀魔) 무위백이었다.
경혼검마 혁련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왕 호법과 무 호법의 말대로 본교 전력의 삼 할이 의미 없이 소진된 셈이네.”
이때 혁련공의 시선은 가장 끝자리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음유신마(陰幽神魔) 조위청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조위청은 결국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시고 싶은 말씀이 무엇입니까?”
혁련공은 조위청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과연 교주님께서 이 같은 결과를 모르고 계셨는가?”
조위청이 바로 되물었다.
“교주님께서 그들을 일부러 죽였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오?”
혁련공이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말했다.
“표현이 조금 달라져야겠지. 교주님께서 그들을 죽였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결코 사완악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시면서도 남궁세가와 제갈세가로 그들을 보낸 것이 아니냐는 말일세. 그것이 큰 의미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겨우 한 여인을 납치하기 위해서라면 조금 곤란하지 않은가? 교주님을 가장 측근에서 보필하는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조위청은 혁련공의 시선을 담담히 받아 내다가 불쑥 물었다.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혁련공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무슨 상관이냐고?”
조위청이 말했다
“교주님은 마교의 하늘과 같은 분입니다. 그분이 어떤 이유로 어떤 결정을 하든, 우리는 절대적으로 따르면 되는 것이지요. 저는 교주님의 뜻을 모두 파악할 수 없지만, 교주님께서 그런 결정을 내리셨다면 그게 무엇이라 한들 어쩔 것입니까? 아니면…… 대호법께서는 교주님께 불만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혁련공과 조위청의 눈빛이 허공에서 불꽃을 튀기듯 맞부딪쳤다.
혁련공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불만이 아니라 걱정일세. 우리가 교주님을 하늘로 모시는 이유는, 그분이 천하를 마교의 것으로 만들어 주실 분이기에 그런 것이네. 하지만 만약 교주님께서 여색에 빠져 중요한 것을 놓치신다면, 신하된 도리로 바로잡을 필요는 있지 않겠는가? 호법 회의는 그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지. 조 호법, 칠대마가의 가주들은 본교에서 아주 중요한 인재들이었네. 교주님께서 죽이신 마접단의 호위 무사들도 그렇지. 그리고…….”
혁련공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한층 더 딱딱해진 음성으로 물었다.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교주님께서 어째서 사완악을 죽이지 않고 돌아오셨냐는 것일세. 심지어 유령마가의 가주가 희생되는 것을 감수하시면서까지. 혹시…… 교주님께서 천마신공을 제대로 연성하지 못하신 것은 아닌가?”
순간, 회의실에 다른 수뇌부들의 눈빛에서도 날카로운 빛이 번뜩였다.
조위청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천마신공은 모든 마공의 정점인 무공. 내가 증명하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의심된다면 대호법께서 직접 교주님께 여쭤보시지요. 그럴 용기가 있다면 말입니다.”
혁련공은 조위청을 빤히 바라보다가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어본 것뿐일세. 그런데 자네의 반응이 조금 예민한 것 같구먼.”
조위청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
“대호법의 말씀이 듣기에 따라 불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하. 역시 조 호법은 참으로 충성스럽구먼. 우리 중 누구보다 교주님께 총애를 받아서인가? 아무튼 알겠네. 아니면 정말 교주님께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는 것인가?”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실제로 교주님께서는 돌아오신 이후로 닷새째 처소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고 계시지 않은가?”
그런데 이때였다.
갑자기 회의실의 문이 벌컥 열림과 동시에 한 음성이 방안에 울려 퍼졌다.
“대호법이 내 걱정을 이토록 해 주는지 몰랐군.”
일순 장내 사람들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마교의 오대 교주, 종천이었던 것이다.
닷새 동안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하인조차 십 장 밖으로 쫓아내버렸던 교주가 갑자기 이 회의에 나타나다니?
혁련공은 순간적으로 조위청을 노려보았으나, 조위청 역시 전혀 몰랐던 사람처럼, 아니 장내의 누구보다도 가장 놀란 얼굴로 교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혁련공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종천을 찬찬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교주님, 별고 없으십니까? 안색이 좋지 못하십니다.”
확실히 종천의 형색은 밝지 못했다.
언제나 좌중을 압도하는 위엄을 지니고 있던 그였는데, 지금은 낯빛이 죽은 사람처럼 창백했고 양쪽 볼이 움푹 파일 정도로 초췌한 모습이었다. 또한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가공할 기운 역시 전과 비교하면 매우 쇠약해진 느낌이 들고 있었다.
“그간 나의 행보와 처리한 일들에 대하여 그대들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혁련공은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종천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저희가 도울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 본론부터 말하는 것이 서로 편하겠지. 대호법. 오백 년 전, 검마후가 본교의 사대 교주가 되고도 강호로 나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혁련공은 교주가 갑자기 마교의 과거에 대해 묻자 의아해하면서도 바로 답했다.
“검마후께서는 천마신공을 연성하지 못하셨기에, 교내에서 내분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종천은 작게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호랑이가 없으면 여우가 왕이 되고 싶어 하는 법이지. 특히 늙고 교활한 여우 두 마리가 서로 힘을 합쳐 오랫동안 야심을 품어 왔다면 그 욕망이 눈을 가리고도 남음이야.”
혁련공의 미간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종천이 말했다.
“귀검마가, 혈천마가, 창영마가, 진암마가. 네 곳의 가주들은 이미 대호법의 사람들이었지. 아, 유령마가의 가주는 내 불찰이네. 그의 유령마공이라면 사완악이라 해도 잡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종천의 말에 소면살마와 철혈도마 역시 혁련공을 바라봤다.
“그들이 제 사람이라니요?”
종천은 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호법은 칠대마가의 무인들이 오랜 기다림에 지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 그리고 굳이 천마신공을 익히지 않더라도 그대와 칠대마가의 힘이라면 중원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래서 칠대마가를 먼저 포섭하고 다른 호법들을 설득해 교주가 될 생각이었지. 하지만 그때 내가 나타난 거지. 갑자기 나타나 천마신공을 익히고, 마교의 교주가 되었으니 대호법 입장에서는 손에 다 들어온 왕좌가 눈앞에서 사라진 기분이었을 거야.”
혁련공은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그 말을 부정했다.
“교주님. 뭔가 잘못 생각하고 계신 것 같군요. 저는 단 한 번도…….”
종천은 그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하지만 대호법이 잘못 생각한 게 있다. 천마신공을 익히지 않으면…… 결코 중원을, 사완악을 이길 수 없다는 거지. 그대는 교주가 될 수도 없지만, 된다 한들 그 꿈을 이룰 수 없다.”
“교주님, 왜 이런 식으로 저를 매도하시는 것입니까?”
종천은 대답 대신 다시 말했다.
“하지만 그대의 말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내가 사완악을 죽이지 않고 돌아온 이유. 그건 내가 아직 천마신공을 완벽하게 익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순간, 혁련공의 눈빛이 번뜩였고, 다른 호법들 역시 눈썹을 꿈틀 움직이며 종천을 바라봤다.
오직 조위청만이 깜짝 놀라 중얼거렸다.
“교주님, 그 사실을 왜…….”
혁련공이 기회를 잡았다는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조 호법! 자네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
조위청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때 종천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 그렇게 갑자기 기세등등해질 필요는 없다. 내가 천마신공을 익히지 못한 이유는 현종 때문이었으니까.”
“현종이라면…….”
“그대들은 나에게 소림사의 무공을 익히고도 마공을 익힐 수 있는지 시험했었고, 나는 그것을 증명해 보였지. 하지만 그것은 내 중단전의 힘을 이용해서 가능한 것이었을 뿐. 하단전에 있는 소림사의 내공은 마공과는 상성의 기운을 지니고 있어 아무리 천마신공이라도 그 기운을 융화시킬 수는 없었다. 덕분에 현종의 의식 역시 쉽게 가둬둘 수 없었고, 천마신공의 마지막 구결들을 익힐 수 없는 상태였지.”
혁련공의 얼굴에는 안도감과 함께 의아함이 동시에 떠올랐다.
천마신공을 완전히 익히지 못했다면 종천은 온전히 교주로 인정받을 수 없을 뿐더러, 완전히 대성한 것이 아니라면 결코 모든 마공을 제압하는 천마신공의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
한마디로 교주가 절대 이기지 못할 괴물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가 왜 이런 사실을 갑자기 모두 실토하는 것일까?
종천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그대들을 속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사완악의 경지는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뛰어나더군. 천마신공을 제대로 익히지 않고 이기는 것은…… 나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단순히 무공을 떠나서 현종이 언제 발작을 일으킬지 모르는 일이었지.”
종천은 사대호법들의 얼굴을 한 명씩 천천히 바라본 후 말했다.
“지난 닷새간 다른 방도를 찾아봤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단전을 완전히 파괴하여 소림사의 모든 내공을 없애 버려야지만 천마신공의 마지막 구결을 익힐 수 있다는 것이었다.”
종천의 말에 소면살마 왕주봉이 놀란 눈빛으로 물었다.
“설마 교주님께서는 스스로 단전을 파괴하셨다는 말씀인지요?”
“그렇다.”
호법들의 얼굴에 아연실색한 기색이 떠올랐다.
스스로 단전을 파괴하다니?
교주의 안색이 이토록 병약해 보이는 것이 그런 이유였음을 그들은 깨달았다.
하지만 중단전을 사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무인이 하단전을 파괴해 버렸다는 건, 아무리 교주라 하더라도 정상적인 힘을 낼 수 없다는 뜻일진대……
이때, 대호법 혁련공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그럼 교주님의 단전을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은 찾아야겠군요.”
그러자 종천은 뜻밖에도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럴 필요는 없다. 이미 방법은 찾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