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78
정도마신 177화
자금성의 어느 비밀스러운 전각.
그곳은 얼마 전부터 몇 명의 신분을 알 수 없는 손님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황실에서 신분을 알 수 없는 자들이 기거할 수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
황제 영한제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전각의 한 방 안에서 황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건방진 놈……!”
쾅!
거칠게 탁자를 내리치는 소리와 함께 분노한 음성.
그는 바로 갑작스러운 두통으로 영한제의 건천궁을 떠나 이곳으로 돌아온 종천이었다.
일그러진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 쥔 모습에서 그의 두통이 여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종천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살기가 흐르는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네놈이 감히 내게 반항한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이상한 일이었다.
방안에는 오직 종천 혼자뿐인데, 그는 허공을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었다.
“어리석은 녀석. 소림사의 내공도 모두 잃어버린 네놈이 내 기운을 당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소림사의 내공?
영혼의 소멸?
그가 마치 독백을 하듯 언성을 높였을 때였다.
갑자기 그의 입에서 차분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최소한 너를 이렇게 괴롭힐 수는 있겠지.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고통을…… 너도 느끼고 있을 테니.”
종천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 바로 현종의 말투였다.
그리고 그 말을 해석해 보자면, 지금처럼 두 개의 인격이 동시에 발현되는 것은 종천뿐만 아니라 현종에게도 엄청난 고통과 타격이 된다는 뜻이었다.
초절정의 무위를 뛰어넘은 종천이 이 정도의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을 말하는 것은 아닐 터였다.
“크윽…… 이렇게 무리를 하다가는 네놈의 영혼이 완전히 소멸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건가?”
“인정하기 싫으나 너와 나는 형제와 같은 사이. 아니, 그보다 더 밀접한 사이지. 그러니 너도 알겠지. 나 현종이 그런 것을 조금이라도 두려워할 것 같은가?”
“……!”
“물론 네 말대로 시간이 지난다면 결국 나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네가 천마신공의 마지막 구결을 익히는 시간은 지연될 것이다. 완악은 누구보다 재주가 뛰어나니 이곳을 알아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천마신공을 완전히 익히지 않고도 완악의 상대가 될 수 있을 것 같은가?”
“이런 한심한 놈. 너는 내가 사완악에게 패배하여도 좋다는 말이냐? 조금 더 솔직해지는 것이 어떠냐? 애초에 내가 깨어날 수 있었던 것은 네가 사완악을 질투하고 설린을 탐하는 욕망이 커져 갔기 때문이다.”
“…….”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현종의 말투가 다시 흘러나왔다.
“네 말이 모두 맞다. 나 역시 완악에게는 절대 지고 싶지 않다. 그것은 내 솔직한 마음이다.”
“하하. 그래, 그러니 이제 그만 고집부리고 내게 모든 것을 넘겨라. 더 이상 방해하지 말고 그 안에서 내가 승리하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란 말이다.”
“하지만 설린 문주는 다르다.”
종천은 조소를 터뜨렸다.
“무엇이 다르다는 거지? 그녀가 사완악과 잘 맺어지도록 지켜만 보고 싶다는 거냐?”
“앞뒤가 안 맞는 소리를 하는군. 네가 완악을 이긴다는 것은 완악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 설린 문주와 완악이 맺어질 일은 없겠지.”
“그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크윽…… 빨리 용건만 말하고 썩 꺼져라.”
종천은 고통을 참는 듯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말했다.
그러나 그와 상반된 음성으로, 현종은 차분히 말했다.
“이 안에 있으면서 한 가지 변화가 생겨났다. 예전에는 정신을 잃고 깨어나지 못했다면, 조금씩 너의 생각이 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지.”
“호오?”
종천과 달리, 현종은 몸을 빼앗기면 완전히 기억을 잃어버리곤 했다.
심지어 종천은 그 상태에서 현종의 기억을 조작할 수도 있었기에 현종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들키지 않고 그럴듯한 변명을 했으며, 스스로도 그렇게 믿고 행동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종천이 그랬던 것처럼, 현종도 종천을 지켜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종천은 자신의 속을 들여다본 현종의 반응이 궁금했다.
“내가 본 너라면…….”
현종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도 주저되는 듯 망설이다가 말했다.
“설린 문주를 강제로 범할 계획이겠지. 그것이 완악과 나에게, 동시에 가장 큰 분노와 패배감, 좌절을 안겨 준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종천의 입가에 씩 미소가 나타났다.
“잘 아는구나. 그래서, 그것을 막기 위해 이렇게 무리를 하고 있는 것이냐?”
“그렇다. 내가 네게 요구하는 것은 설린 문주의 안전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그녀를 사모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를 위함과 동시에 너를 위한 말이기도 하지.”
“나를 위한 말이라고?”
“우리는 형제보다 더 밀접한 관계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만큼 서로를 많이 닮아 있다는 뜻이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너 역시 설린 문주를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마음에 품고 있지 않는가?”
꿈틀.
종천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큰 동요가 일어났다.
하지만 곧 그의 입에서 광오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 세상에 내가 갖지 못할 것은 없다. 나는 그녀를 강제로라도 이 나라의 황후로 만들 생각이다. 동시에 네 말대로 너와 사완악은 영원한 패자가 되겠지. 설마 나에게 부처를 들먹이며 설교할 생각은 아닐 테지?”
자신만만한 종천의 표정.
하지만 현종의 대답은 종천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너에게 그런 설교가 소용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럼?”
“말했듯이 정말 너와 나, 우리를 위한 말이다. 너는 완악에게 승리한다면, 결국 네 야욕대로 천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너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완악 외에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너는, 그다음을 생각해 본 적 있는가?”
“그다음?”
“사랑하는 여인을 강제로 범하고, 완악을 이기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되었을 때를 말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어쩐 일일까?
종천은 그전과 달리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너와 나는 같은 성향을 지니고 있다. 나는 확신한다. 너는 그 허무함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네 안에 있는 나 역시 그렇겠지.”
“…….”
“그렇기에 설린 문주를 건들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은 다르면서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일까?
종천은 현종의 말을 곧바로 알아들었다.
“내게 숙제를 남겨 놓으란 뜻인가?”
“그렇다. 완악을 죽이고 천하를 얻은 후에는, 그녀의 마음을 얻는 것이 너에게 남은 마지막 욕망이 될 것이다. 사모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면 허무함이 찾아오지 않는 법이니.”
“제법…… 그럴싸한 말을 하는구나.”
“그래. 나는 설린 문주를 지키고, 너는 너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흐음.”
종천은 문득 다시 밀려오는 두통에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너의 요구사항은 정말 그것으로 끝이냐?”
“그렇다. 네가 설린 문주에게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후 네 행보에 어떤 방해도 하지 않겠다.”
종천은 한심하다는 듯 냉소를 지었다.
“아주 눈물겨운 짝사랑이군.”
하지만 종천은 현종의 말을 무시하지는 못했다.
현종이 자신을 방해하는 것 또한 귀찮은 일이지만, 그가 말한 허무에 대해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마음을 얻는다라…….”
종천은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녀의 안전은 지켜 주도록 하지.”
“약조하는가?”
“네놈이 지금 같은 짓거리를 다시는 하지 않는다면 말이지. 천마신공의 구결을 익히는 동안 조금이라도 방해가 된다면 너는 그녀가 가장 불행한 여인이 되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좋다. 나도 약조하지.”
현종과 종천은 서로를 알고 있었다.
사완악이 필요에 따라 어떤 거짓말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현종과 종천은 각자가 지닌 선악의 성향과는 상관없이 한 번 내뱉은 자신의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었다.
“이제 썩 꺼져라.”
잠시 후.
종천은 비로소 지독했던 두통에서 벗어나 서서히 평온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종천은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불쾌한 미소를 머금었다.
“두고 보자.”
그는 탁자 위에 놓인 하나의 무공 비급을 펼치며 중얼거렸다.
“이 마지막 구결을 익히고 나면 네놈의 영혼부터 완전히 부숴줄 테니.”
* * *
종천의 심연 속.
현종은 의식의 감옥 같은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깨달은 것이 있었다.
심연의 인격은 지배 인격을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지배 인격은 심연의 인격을 관찰할 수 없다.
즉, 현종의 인격이 육체를 지배하고 있을 때, 종천은 현종의 오감과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현종이 심연 속으로 밀려났을 때는?
아무리 종천이라 해도 현종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속일 수 있었겠지.’
현종은 꺼져 가는 의식 속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종천이 알지 못했던 사실 하나.
현종의 영혼은 이미 종천의 인격과 위치를 다툴 수 있을 정도의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현종은 종천이 설린에게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를 알게 되고는, 마지막 힘을 불태워 종천에게 허장성세를 펼쳤던 것이다.
실제로는 만약 종천이 현종의 말을 무시한다고 해도 아무런 방해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미안하다, 완악. 이로써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끝이 났다. 남은 것은 너의 몫이다. 부디…… 그를 막아주길 바란다.’
그렇게 현종의 인격은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휴면 상태로 빠져들었다.
* * *
백 일 뒤.
차앙-!
날카롭게 울리는 금속성.
소림사를 제외한 구파일방의 장문인들과 오대세가의 가주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경이로운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완악의 마지막 초식에 태극신검 상현 진인의 검이 튕겨져 나가 하늘로 높이 치솟았다가 떨어져 땅에 꽂혔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주변에는 다른 장문인들과 가주들의 병기들도 꽂혀 있었다.
사완악은 여기 모인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대표들과 돌아가며 비무를 펼쳤던 것이다.
결과는 당연히 사완악의 전승.
하지만 그들이 놀란 것은 결과 때문이 아니었다.
사완악은 그들과 비무를 펼칠 때, 각각 그 문파의 무공으로 비무를 했다.
예를 들어 화산파의 장문인 천향도와는 매화검법으로, 점창파의 장문인 오향자와는 사일검법으로, 개방의 방주 방욱과는 항룡십팔장으로 비무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믿기지 않게도, 사완악의 무공은 각 문파의 정수를 제대로 담아냈다.
조금 전, 태극신검 상현 진인의 검을 튕겨 낸 사완악의 태극혜검은 상현 진인의 태극혜검보다 더 무당파의 무공 같았다.
상현 진인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을 터뜨렸다.
“완벽한…… 태극혜검이었소. 정말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무공의 정수를 모두 익혀내다니. 사 공자, 나는 살면서 당신 같은 천재를 본 적이 없소. 현종도, 현종도 결코 이 정도는 아니었소.”
사완악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분 좋은 칭찬이군. 하지만…… 그건 당신이 현종을 제대로 보지 못한 거야. 그 녀석은 진짜 괴물 같은 놈이거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대표들은 사완악의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들도 현종이 대단한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백 일 동안 사완악이 보여 준 천재성은 이 세상의 재능이 아니었다.
그런 사완악이 저렇게 말할 정도로 현종의 무재가 뛰어나단 말인가?
“그렇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달라질 것은 없으니까.”
사완악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이제 누가 더 강한지 해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