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81
정도마신 180화
천기자는 놀란 눈으로 사완악을 바라봤다.
“자네가 죽였다고?”
“당신과 당신 제자들이 나와 나의 가족에게 얼마나 엿 같은 짓을 했는지는 잘 알고 있잖아? 죄를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지.”
그런데 사완악이 제자들을 모두 죽였다는 말에도 천기자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는 그저 사완악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거짓말로 나의 감정을 흔들 필요 없네.”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비려는 자네의 친동생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휘아는 어째서 죽이지 않았는가? 그리고…….”
천기자는 사완악이 옆구리에 끼고 있는 도동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째서 자네의 심기를 거스른 그 아이를 조금도 다치지 않게 데려왔는가?”
“…….”
사완악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치며 표정을 굳혔다.
“늙은이. 설마 이 녀석으로 나를 시험한 것이었나?”
순간, 연비려는 사완악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천기자는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이며 말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네. 자네는 사대악인과 함께 자랐어도 자네의 인성은 악에 물들지 않았으니. 과연 수호성의 운명을 타고 난 영웅답네.”
그 말에 사완악의 눈빛에서 오히려 분노의 빛이 일었다.
사완악은 점혈된 도동의 혈도를 풀어 주고 땅에 내동댕이치듯 놓아준 다음 말했다.
“꼬마야, 너는 방금 저 늙은이가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아느냐? 그는 진법이 파괴되는 순간 내가 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너를 보내 일부러 나의 심기를 건드리게 한 것이다. 내가 너에게 위해를 가하는지 아닌지, 너를 희생양으로 삼아 확인하려고 했던 것이다.”
연비려가 깜짝 놀라 천기자를 바라봤다.
천기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사완악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사완악은 비웃음을 머금고 도동에게 물었다.
“어떠냐? 이래도 네 사부가 그렇게 존경받을 사람으로 보이느냐?”
사부를 존경하는 어린 소년의 입장에서는 실로 충격적일 수 있는 사실.
하지만 도동의 반응은 사완악의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도동은 땅에 넘어지며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 내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건 내가 원한 일입니다.”
“뭐라고?”
도동은 천기자의 옆으로 걸어가 그의 뒤에 서서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이미 당신에 대해 나에게 모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당신이 이곳에 나타날 것도 알고 있었죠. 이곳은 당신을 위한 새로운 힘이 준비된 장소니까요. 하지만 비인부전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큰 힘은 반드시 정의로운 사람에게만 전해져야 합니다. 나는 사부님에게 당신이 정말 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올바른 사람인지 직접 시험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
사완악은 다시 한번 말문이 막혔다.
설마 저 어린 소년이 직접 그런 제안을 했을 줄이야.
사완악은 기가 막히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고는 천기자를 노려봤다.
“당신은 어린 제자가 목숨을 걸고 나서는 것을 못 이기는 척 지켜보고 있었다는 뜻이군.”
“이 아이와…… 나의 목숨 같은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네.”
“뭐?”
“다른 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지. 중요한 건 이 세상을 구하는 일이네. 우리 천의문은 그것을 위해 존재하는 자들이네.”
그런데 이때,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연비려가 나섰다.
“잠깐만요.”
연비려는 도동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사부님의 새로운 제자이니, 나에게는 막내 사제가 되는구나.”
“안녕하세요, 사저. 처음 뵙겠습니다. 사실 저는 다른 사형들도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사저는 사형제들 중 가장 고운 마음씨를 지닌 훌륭한 분이라고, 사부님께서는 사저를 많이 그리워하셨습니다.”
연비려는 사부가 자신을 많이 그리워했다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잠시 천기자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렇구나. 어쨌든 아까 사제는 오라버니가 이곳에 올 것을 알고 있었다고 했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사부님은 분명히 오라버니를 해칠 계획을 하고 계셨는데?”
연비려의 말대로 그것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천의문은 사완악의 수호성이 깨어나기 전에, 사완악을 악인으로 만들어 제거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사완악이 이곳에 올 것을 알고 있었다니?
“그건…….”
도동이 머뭇거리며 말끝을 흐릴 때였다.
“됐다, 내가 말하마.”
천기자가 나서자 연비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부님께 여쭤보고 싶었어요. 대체 이 산속의 장원은 무엇을 위한 거고, 오라버니가 올 것을 어떻게 알고 있었죠? 그리고 저를 비롯해서 모든 사형제들은 사부님의 장례를 함께 치렀는데…… 어떻게 살아 계실 수 있는 거죠? 저는 이 모든 것이 혼란스럽습니다.”
연비려의 질문에는 그에게 정말 자신의 사부가 맞는지 묻는 뜻도 담겨 있었다.
그녀의 질문은 사완악도 내심 궁금했던 것이기에 조용히 천기자를 바라봤다.
천기자는 복잡한 눈빛으로 연비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나는 너희에게 중원의 일반적인 귀식대법만을 가르쳤으나, 우리 천의문의 칠사귀식대법이라는 것이 있다. 칠 일의 시간 동안 실제 시체와 같은 상태가 될 수 있지만, 그 시간 동안은 스스로도 깨어날 수 없고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도 없다. 너희가 좋은 관을 준비해 나를 묻어 주었기에 나는 안전할 수 있었다.”
귀식대법(龜息大法)이란 내공을 이용해 신체의 능력을 최소한으로 떨어뜨리고 한 줌의 호흡만으로 생존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지우는 수법이었다.
천기자의 두 번째 제자였던 백신우가 마교 최고의 암살자인 진암마가의 가주를 속일 수 있었던 것도 심장에 박힌 구슬의 힘을 이용해 귀식대법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천기자의 귀식대법은 그 백신우의 수법보다 훨씬 더 기묘하였으니, 천의문의 모든 제자들이 감쪽같이 속았던 것이다.
아니, 애초에 그들은 사부가 죽음을 위장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기에 큰 슬픔에 빠져 어떤 의심조차 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천살성과 수호성에 관한 일들을 너희에게 맡기고, 이곳에서 따로 준비해야 되는 일이 있었다. 내가 신형이와 신우에게조차 죽음을 위장했던 이유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면 너희는 위기의 순간 나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정말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어딘가에 살아서 지켜보고 있다고 알고 있는 것은 매우 큰 차이가 있을 테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확실히 천기자가 살아 있었다면, 지금처럼 간절하고 처절하지 않았을 테니.
연비려는 사완악에게 물었다.
“그럼 오라버니는 어떻게 사부님이 이곳에 살아 계신 것을 알아내신 거예요?”
사완악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저 늙은이가 살아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다만 백신형이 어느 날 찾아와 말하더군. 저 늙은이가 자신에게만 남긴 전언이 있다고.”
“전언이요?”
“만약 자신들의 계획이 틀어져 수호성의 봉인이 깨어난다면, 이곳 북망산 남쪽에 있는 진법을 찾아가라고 했다는군. 그곳에 가면 천살성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말이야.”
연비려는 놀란 얼굴로 천기자를 바라봤다.
천살성을 이길 수 있는 힘?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말일까?
아니, 천기자는 어쩌면 그들의 계획이 실패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때 천기자가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사완악, 자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네.”
사완악은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삐딱하게 한 채 눈을 마주했다.
“만약 자네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닭과 소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상상해 보게.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 나타나서 다급한 목소리로 호랑이가 산에서 내려와 자네의 집으로 오고 있으니 빨리 식구들을 데리고 도망가라고 하는 걸세. 물론 자네는 무공을 모르고 호랑이를 잡을 수 없는 일반적인 사람이지. 과연 자네는 어떻게 하겠는가? 그 사람의 말이 증명되지 않았으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을 텐가? 아니면 그 사람의 말이 사실이라면 온 가족의 목숨이 위험해질 것이니 어서 자리를 피하겠는가?”
그것은 매우 간단한 질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누구나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호랑이가 나타난다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저 잠깐의 헛고생을 할 뿐이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가족 모두가 큰 위험에 빠지게 되는 것이므로.
그리고 사완악은 천기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알아들었다.
“나에게 한 행동들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는 건가?”
천기자는 천살성이 나타나 수호성을 죽이고 세상을 멸망시킬 거라는 천기를 읽었다.
그는 그것이 정확한 예언인지 아닌지 완벽하게 확신할 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그것이 현실이 된다면?
이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 그는 무엇이라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하네. 나는 분명히, 자네와 내 사랑하는 제자 비려, 그리고 자네의 어머니인 세외선녀에게 깊은 미안함을 느끼고 있네. 하지만 그렇다고 용서를 빌 수는 없네. 사죄를 한다는 건 그 일을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후회해야 의미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네.”
사완악은 조롱 섞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의 기분은 어떻지? 나는 결국 당신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행동했고, 당신의 계획은 어긋나게 된 셈인데.”
하지만 천기자는 담담한 기색으로 답했다.
“내가 남긴 전언에는 분명히 천살성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했네.”
“그게 어쨌다는…….”
사완악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만약 천기자에게 정말 그런 힘이 있다면, 굳이 사완악을 악인으로 만들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이때 그 생각을 읽은 듯 천기자가 다시 말했다.
“내 계획은 단순히 하나가 아니었네. 사실 자네가 지닌 수호성의 기운을 봉인하고 악인으로 만들면 천살성의 기운도 발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건, 그저 천의문의 오랜 기록과 천기 해석법에 의거한 추측에 불과했네. 정말 그렇게 될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었지. 그리고 만약 내 계획에도 불구하고 수호성과 천살성이 본래의 운명대로 깨어난다면, 그때는 어떻게 천살성을 막아야 할지 대비할 수밖에 없었네.”
“하.”
사완악은 헛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천기자의 말은 매우 복잡했지만, 한마디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았다.
그는 천살상과 수호성이 깨어나지 못하는 계획을 짜면서, 동시에 깨어났을 때를 대비한 계획까지 세워 놓았다는 뜻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와 내 어머니가 겪은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인가?”
천기자가 말했다.
“공리(公利)를 위해서라면, 대를 위해서라면, 소는 희생될 수밖에 없었네.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자네도, 자네의 가족도, 나와 내 제자들도, 희생을 감내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당신이 읽은 천기가 그저 허무맹랑한 것이라면?”
“말하지 않았는가? 호랑이가 정말 나타날지 아닐지는 알 수 없지만, 가족을 위해서라면 만약을 대비할 수밖에 없다고.”
사완악은 그 말을 듣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좋아. 하지만 한 가지를 간과했군. 나는 상대가 나를 강제하고 명령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그런 상황이 오면 나는 반드시 상대가 원하는 반대의 행동을 하고 싶어지는 성격이지. 당신은 내가 마교를 막고 세상을 구하기 원할 테니, 난 반대로 마교의 편에 서고 싶어지는군.”
동시에 사완악은 허리에서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장검이 뽑혀졌다.
“천의문의 문주인 당신의 목을 가져가면 마교에서도 내 정성을 알아줄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