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83
정도마신 182화
천기자는 고개를 저었다.
“천황무위대는 이미 오십 년 전에 명맥이 끊겼네. 내 사부님께서 천황무위대 마지막 대주의 임종을 지켜보셨지.”
사완악은 의아한 표정으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상한데? 정도맹 회의에서는 종남파의 장문인이 칠 년 전에 천황무위대의 대주를 만났다고 하던데…….”
하지만 문득, 사완악은 천기자의 역용술이 매우 뛰어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혹시 당신이 역용술을 쓴 것인가?”
“맞네. 천황무위대는 존재만으로도 무림인들이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의미가 있으니 그래야 했네. 천살성이 누구인지 모를 때이니 말일세.”
“그렇군. 그럼 지금 천황무위대의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뭐지? 그 봉신환이라는 반지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인가?”
천기자는 대답 대신 되물었다.
“천황무위대에 대하여 들었다면 그들의 무공이 매우 특별하다는 것도 알고 있는가?”
“그래, 그들은 상대가 어떤 내공을 지니고 있어도 모두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는 들었지. 그게 진짜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이네. 천황신공(天皇神功)은 이 세상에 무공을 만들어 낸 음양천자(陰陽天子)의 무공이었지. 그런데 이 천황신공에는 한 가지 무서운 특징이 있네. 다른 종류의 내공을 익힌 사람이 이 신공을 연마하여 사용했다가는 뇌와 심장이 터지며 죽음에 이르는 것이네.”
“음양천자 본인은 예외였나 보군.”
“그는 마공과 정공, 사공을 모두 창안해 낸 신 같은 존재이니 비교할 수 없겠지.”
“그래서?”
천기자는 조용히 목함에 있는 봉신환을 꺼내 손에 쥐더니, 돌연 내공을 서서히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이 봉신환은 음양천자의 보물로, 내공을 저장하고 필요에 따라 꺼내 쓸 수도 있네.”
스으으으!
천기자의 말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의 단전에서 솟아나온 기운이 서서히 반지 안으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피어오른 연기가 하나의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완악은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의아함을 느끼며 고개를 갸웃했다.
“당신 제자들에게서 느꼈던 천의문의 내공과는 조금 다른데?”
“맞네. 내가 지금 주입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음양천자의 천황신공이네.”
“그게 무슨 소리야? 천황신공은 다른 내공과는 함께 익힐 수 없다고…….”
이때, 사완악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가며 얼굴이 굳어졌다.
“설마 당신…….”
천기자는 다른 내공을 익힌 사람이 천황신공을 사용하면 죽음에 이른다고 했을 뿐, 사용할 수 없다고 말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뭐 하는 짓이냐!”
사완악은 자신도 모르게 황급히 손을 뻗어 천기자의 손에 있는 봉신환을 빼앗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파지직!
“……!”
봉신환을 쥐고 있는 천기자의 손 주변에서 강한 전류가 파생되며 사완악의 손을 튕겨 냈다.
그 모습을 보고는 천기자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의외로군. 자네는 내게 복수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는가?”
“시끄러워. 복수는 내가 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편하게 죽도록 내버려 둘 줄 알아?”
“심장과 뇌가 터져 죽는 게 편한 죽음은 아닐 것 같군.”
“닥치고 그만두기나 해.”
사완악은 내공을 일으키며 다시 한번 반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그의 손이 독수리의 발톱처럼 구부러졌는데, 이것은 바로 소림사의 칠십이절예 중 하나인 용조수(龍爪手)라는 금나수법이었다.
그리고 소림사의 무공답게, 용조수는 초식의 정묘한 기예보다는 속도와 힘을 중시하는 강맹한 무공.
사완악은 이 용조수를 펼쳐 조금 전 그의 손을 튕겨 냈던 반탄지력을 뚫어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웬걸?
파지지직!
“으음!”
사완악은 온몸이 찌릿해지는 통증에 자신도 모르게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내공을 사용하자 아까보다 더 강한 전류가 생성되며 사완악의 손을 튕겨 냈던 것이다.
사완악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천기자와 반지를 바라봤다.
전류와 부딪치는 순간, 사완악이 일으켰던 내공이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다.
말로만 듣던 천황신공의 위력이었다.
“다행이군. 자네한테 이 정도로 통한다는 건, 그에게도 통할 수 있다는 말이겠지.”
“그 정도의 힘이라면 당신이 직접 천살성을 상대하면 되는 거 아니야?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네. 이 천황신공으로 그를 순간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겠지만, 그를 완전히 제압할 수 없다면 모든 것은 실패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그러니 자네가 필요한 것이네. 이 힘을 사용하여 그를 쓰러뜨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네뿐……! 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담담히 말을 내뱉던 천기자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갑자기 사완악이 전력으로 내공을 끌어 올리며 천기자에게 달려들었던 것이다.
파지지직!
강한 내공에는 더 강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마치 번갯불 같은 고압의 전류가 전각 전체에 퍼져 나갔다.
온몸을 관통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
사완악의 입에서 좀처럼 듣기 힘든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으윽……!”
천기자가 다급히 외쳤다.
“그만두게! 더 이상 방해하면 봉신환에 온전히 천황신공을 담을 수 없네! 그리고 자네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네!”
“웃기지마. 천황신공인지 뭔지 그딴 요상한 힘 필요 없으니까.”
“자네는 나를 죽이고 싶어 하지 않았는가! 이러다가는 자네까지 내상을…….”
“닥쳐!”
하지만 사완악은 고통을 참느라 일그러진 얼굴로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이딴 식으로 뒈져 버리면 네놈이 한 모든 행동들이 정당화되는 기분이거든. 당신이 스스로 죽으려 하니 나는 반드시 당신을 살려놓고 다시 내 손으로 복수할 것이다.”
“뭐, 뭣이?”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도 천기자는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사완악의 당한 것은 반드시 돌려주는 성격과 청개구리 심보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파지지직!
“끄윽……!”
고압의 전류가 주는 고통에 사완악의 전신이 덜덜 떨려 왔다.
하지만 사완악은 오히려 내공을 더욱 끌어 올리며 그 반탄지력을 뚫어 내기 시작했다.
‘이 정도 고통은 사존의 힘을 얻을 때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천기자는 사완악의 힘에 의해 자신의 천황신공이 반지로 주입되지 못하자 크게 꾸짖듯 소리를 질렀다.
“당장 그만두게! 자네는 반드시 이 세상을 구해야 하네! 나는 이 봉신환에…….”
하지만 천기자는 문득, 말을 멈추었다.
그는 이 봉신환에 천황신공을 주입하기 위해 지난 이십 년 동안 각종 영약을 먹으며 혼신의 힘을 다해 천황신공을 연공해 왔다.
만약 자신의 계획이 실패해 천살성이 깨어난다면, 이 봉신환이 그를 상대할 수 있는 비밀병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그 말을 했다가는 오히려 더 방해할지도 모르겠구나.’
사완악의 성격이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천기자는 그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스스로도 약해지지 않기 위해 오랫동안 외면했던 진심을 말하기 시작했다.
“나도 알고 있네.”
“뭐?”
“나는 자네의 평안할 수 있었던 인생을, 자네의 가족을 빼앗아 버렸네. 나는 그것이 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자네에게 저지른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네. 모두 내 잘못이네.”
사완악은 온몸을 관통하는 고통 속에서도 천기자를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그 말은 진작 했어야 했다. 지금은 당신의 진심이라고 믿을 수 없군.”
“진심이네. 나는 비려를 내 제자로 받고, 그 아이를 가르치고 볼 때마다 단 한시도 마음이 편한 적이 없었네. 자네와 자네 가족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업보처럼 따라다녔네. 내가 잘못했네. 부디 용서해 주게. 하지만 자네 역시 자네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이 반지의 힘이 반드시 필요할 걸세. 그리고…… 내가 천황신공을 일으킨 이상 어차피 나는 죽게 된다네.”
사완악의 동공이 흔들렸다.
“어차피 죽는다고?”
“그러네. 천의문의 내공을 익힌 내가 한 번 천황신공을 사용한 이상 반드시 죽을 수밖에…… 커헉. 시간이, 시간이 많이 없네.”
사완악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웃기지 마. 나는 비려에게 당신을 해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죽는다고? 심장과 뇌가 터져서 죽은 당신의 모습을 보면 당신의 제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순간, 천기자는 사완악이 이토록 자신을 방해하려는 진짜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청개구리 심보와 복수 때문이 아니었다.
천기자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그 아이 때문이었는가?”
“…….”
“자네는 이미 그 아이의 좋은 오라버니가 되었군. 다행이네.”
“닥치고 당장 멈춰.”
“나도 그래서 자네만 따라오라고 한 것이네. 내가 죽는 모습을 그 아이들이 지켜보게 하고 싶지 않아서. 하지만 내가 말한 것은 거짓이 아니네. 나는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네. 그러니…… 이 마지막 힘을 자네에게 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게.”
“…….”
그 순간.
사완악의 신형이 뒤로 튕기듯 날아가 땅에 나뒹굴었다.
내공을 거두자 전류의 반탄지력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스으으으!
그리고 사완악에게 대항하던 전류는 거센 물줄기처럼 다시 봉신환으로 빨려 들어갔다.
동시에 이번에는 천기자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고, 그의 얼굴은 수분이 빠져나가 말라비틀어지는 나무처럼 급속도로 노화되기 시작했다.
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자네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은 탁자 위에 서찰로 남겨 놓았네.”
“…….”
“제대로 된 복수를 하지 못하게 해서 미안하네. 저승에 가서 속죄하며 기도하겠네.”
천기자의 그 말이 끝나는 순간.
퍽!
사완악의 귓가에 공기주머니가 터지는 듯한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모든 생기를 빼앗긴 듯한 모습의 천기자는 허물어지듯 땅에 쓰러졌다.
사완악은 그가 그 자리에서 바로 절명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완악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천황신공에 대항하느라 그의 내공은 상당히 많이 소진되어 있었고, 온몸은 물에 빠진 솜처럼 천근만근 무거웠다.
“심장과 뇌가 터진다더니. 죽은 모습은 멀쩡하군.”
사완악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가 참혹한 몰골로 죽었다면, 가령 머리가 터지거나 했다면 연비려가 그 시체를 보았을 때 얼마나 충격을 받겠는가.
사완악은 천기자의 손에 쥐어진 봉신환을 집어 살펴보았다.
천황신공이 주입되어서일까?
은빛이었던 봉신환은 반지 전체에 새겨진 문양에 황금빛이 더해져 매우 신비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반지를 검지에 끼자 반지는 마치 주인을 찾은 것처럼 저절로 크기가 조절되어 사완악의 손가락에 딱 맞게 되었다.
사완악은 놀란 듯 봉신환을 다시 한번 바라보다가 탁자로 걸어가 천기자가 남긴 유언장을 확인했다.
유언장에는 상당히 긴 글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읽어가는 사완악의 표정에, 다시 한번 놀람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