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86
정도마신 185화
“네놈이…… 그 사완악이냐?”
“흐음? 나를 바로 알아보는군.”
응계종은 사완악을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마교의 수뇌부라면 눈처럼 하얀 백의장삼과 장난기 가득한 미소년의 얼굴을 보는 순간 누구나 사완악을 떠올릴 수 있었다.
“어떤 미친놈이 감히 우리 교주님에게 대항하는가 했더니, 계집처럼 곱상하게도 생겼구나.”
계집같이 생겼다는 말은 무인에게는 다소 모욕적인 말이었으나 사완악은 오히려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너는 두꺼비랑 똑 닮은 것이 참 못생겼구나. 독공을 익혔으니 독두꺼비라고 불러야 할까? 하하하!”
사완악이 진심으로 재밌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자 응계종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뭐라!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네가 모시는 교주도 나와 비슷한 나이일 텐데?”
“닥쳐라! 감히 누구와 비교를 하는 것이냐!”
“화를 내니까 진짜 두꺼비 같군.”
원독마가에서 자란 응계종은 어려서부터 두꺼비를 닮았다는 말로 자주 놀림을 받았다.
그는 그 말을 끔찍이 싫어했고, 자신에게 그 말을 했던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밤낮으로 독공을 수련했다. 그 결과 그는 원독마가의 가주까지 될 수 있었고, 그를 놀렸던 사람들은 모두 극독에 중독되어 목숨을 잃었다.
“이노옴! 가만두지 않겠다.”
“잘됐군. 도망갈까 봐 걱정했는데.”
“죽어라!”
주변이 쩌렁쩌렁 울리는 호통과 함께 응계종의 양손에서 짙은 녹색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한 눈에 봐도 그 두 줄기 장풍에는 그가 평생 고련하여 몸에 쌓은 독공이 담겨 있었다.
평범한 무인이라면 스치는 것만으로도 중독될 수 있는 극독의 기운!
사완악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몸 풀기 딱 좋군.”
동시에 사완악의 손에서도 파신마장의 일초식, 마룡일효가 뻗어 나갔다.
용이 포효하는 듯한 거센 장풍이 두 줄기 녹색 기운의 사이를 헤집으며 격돌했다.
쾅!
폭음과 함께 응계종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뒤로 밀려났다.
사완악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겨우 이 정도였어? 칠대마가의 가주 맞아?”
응계종은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무인이었으나, 순수한 공력으로 비교하자면 다른 칠대마가의 가주들에 비하면 공력이 낮은 편이었다.
독공의 특성상, 위력 자체는 대단하지만 연공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힘과 힘의 격돌에서는 지금까지 사완악과 겨루었던 칠대마가의 가주들보다 취약했다.
그러나 응계종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내공을 끌어 올렸다.
“무식한 녀석. 세상의 모든 무공이 힘으로만 해결되는 줄 아느냐? 애초에 교주님께서는 너와의 정면 대결을 피하라고 하셨다. 칠대마가의 다른 가주들도 너에게 패배했으니 나 역시 내공의 대결로는 너를 이길 수 없겠지. 하지만 너는 간과한 것이 있다.”
“그게 뭐지?”
“내 장력은 부딪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을 중독시키지. 네놈의 몸에는 이미 내 독성이 퍼지고 있을 것이다.”
사완악은 크게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뭐, 뭐라고? 어쩐지 다리가 잘 안 움직이는 것 같은데…….”
“하하.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응계종은 쌍장을 교차했다.
그의 손에서 녹색 강기가 생성되며 하나의 고리[環] 형태를 만들었다.
이것은 바로 원독마공의 최후의 초식인 독강(毒罡)이었다.
원으로 이루어진 녹색 강기가 사완악을 향해 날아갔다.
이전에 응계종이 펼쳤던 초식들과는 확연히 다른 위력.
몸의 마비가 진행된 상태라면 결코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사완악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내공을 모아 쌍장을 내질렀다.
파신마장의 세 번째 초식인 마룡이화(魔龍二火)였다.
마치 두 마리의 용이 불을 뿜듯, 사완악의 손에서 두 줄기의 장력이 쏘아져 녹색 고리와 격돌했다.
바위가 쪼개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이번에도 응계종의 신형이 크게 밀려났다. 하지만 응계종은 멈추지 않고 다시 달려들며 독장을 내뿜었다.
사완악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파신마장의 초식들로 연신 그의 공격을 받아쳤다.
그렇게 네다섯 번의 경합을 주고받은 응계종의 얼굴에는 득의만만한 웃음이 가득했다.
“하하하! 네놈이 아무리 잘났다 해도 만독불침이라도 되는 줄 아는구나!”
하지만 이후로 이십 합을 더 겨루고 난 후.
응계종의 얼굴에는 한 가닥 의아함이 떠올랐다.
‘이 녀석, 어떻게 아직도 멀쩡할 수가 있는 거지?’
처음에는 사완악의 내공이 매우 심후하여 자신의 독공에 제법 오래 버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천마신공을 익히거나 같은 독공을 익힌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뛰어난 내공을 지니고 있어도 중독이 되고도 남았을 시점이었다.
하지만 사완악의 움직임에서는 그 어떤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너는 도대체……!”
응계종이 막 입을 열려는 순간, 사완악의 장법이 그의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컥!”
사완악은 답답한 신음을 내뱉는 응계종을 향해 씩 웃으며 말했다.
“정답을 맞춰 놓고도 모르겠어?”
“그, 그게 무슨…… 끄아아악!”
응계종의 입에서 참혹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완악의 일장이 다시 한번 응계종의 단전에 직격했던 것이다.
응계종은 단전이 파괴되는 감각보다, 그가 수십 년간 쌓아 온 독공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이 더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사완악의 손에는 더 이상 자비가 없었다.
허리를 숙인 그의 등 위로 사완악의 장법이 심판의 철퇴처럼 떨어져 내렸다.
우드득!
“꺽!”
등뼈 전체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단말마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응계종의 몸이 대(大)자로 땅에 파고들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사완악은 차가운 미소를 지은 채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 만독불침 맞아.”
“……!”
“멍청한 놈. 애초에 네놈의 독공 따위에 당할 정도라면 종천 그 녀석과 어떻게 싸울 수 있겠냐고.”
마지막 순간, 응계종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하지만 응계종은 어떤 말도 내뱉지 못했고, 그 꿈틀거림은 금세 멎었다.
사완악은 그의 죽음에 별다른 신경도 쓰지 않으며 경악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원독마가의 무인들을 바라봤다.
“다음은 너네 차례다. 시간 없으니까 한꺼번에 덤벼라.”
“……!”
그들의 표정은 한마디로 하얗게 질린 얼굴이었다.
응계종은 원독마가의 역사 속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의 독공을 연공한 가주였다.
그런 가주의 독공마저 전혀 통하지 않는 만독불침지체.
그야말로 원독마가의 무인들에게는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이때 원독마가의 무인들 중 가장 앞에 있던 한 중년인이 외쳤다.
“다, 다들 물러서지 마라! 이 괴물 놈이 교주님에게 그냥 가게 할 수는 없다!”
“호오?”
사완악은 기개 있게 외치는 사내를 흥미롭다는 듯 바라봤다.
아마도 그는 응계종 다음으로 직분이 높은 자이리라.
예전에도 느꼈지만 칠대마가의 무인들은 단순히 무공의 강함을 떠나서, 교주를 신처럼 신봉하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 도망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이군.”
그런데 이때였다.
“아니, 그들은 우리가 상대하겠네.”
돌연 사완악의 뒤쪽에서 한 줄기 냉철한 음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사완악과도 안면이 있는 자였다.
바로 사천당가의 제일 고수, 독왕(毒王) 당온추와 사천당가의 정예 삼십 명이었다.
“그들은 우리 가문을 공격했던 자들일세. 사천당문은 결코 원한을 잊지 않는 법이네.”
“오호? 누가 더 뛰어난 독공을 지녔는지 자존심 싸움인가?”
당온추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합리적인 이유를 댔다.
“그 이유만은 아니네. 자네의 능력이라면 저들을 일거에 쓰러뜨릴 수 있겠지만, 공력을 소모하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
물론 그것은 사실이었다.
아무리 사완악이라 해도 마교의 모든 무인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아니, 상대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후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종천이었다.
그는 최적의 몸 상태로 겨루어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였다.
“강호의 평화를 자네의 손에만 맡길 수는 없네. 우리 역시 목숨을 걸고 자네를 도와야 마땅한 노릇 아닌가?”
“꽤 감격스러운 말이군.”
“자네의 힘은 저런 조무래기들에게 사용될 것이 아니네. 자네만큼은 아니어도 저들 정도는 우리가 상대할 수 있네.”
힘을 비축해서 마교의 교주를 상대해 달라는 뜻.
사완악은 재밌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사천당문은 나에게도 원한이 있을 텐데?”
사완악이 말한 것은 사천당문 가주의 여식이며 사대 미녀 중 한 사람인 독화 당소윤과의 일이었다. 사완악은 정도맹의 비무 대회에서 그녀와 마찰이 있었고, 그녀에게 상당한 수치와 고통을 안겨 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당온추는 사완악의 말을 바로 알아듣고는 대답했다.
“알아보니 그 일은 철없는 소윤이 자네에게 무례를 저지른 일이었더군. 원한이 아니라 우리가 용서를 구해야 할 일이지. 사천당문을 대표하여 사과를 하겠네. 자네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수용하도록 노력하겠네.”
사완악이 조소를 머금고 물었다.
“만약 내가 당신들보다 강하지 않았더라면, 그때도 같은 반응이었을까?”
그런데 의외로 당온추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네. 소윤이의 언행으로 사천당문을 판단하지 마시게. 사천당문은 그렇게 비겁한 집단이 아니네. 우리는 은원을 누구보다 확실하게 갚는 가문이네.”
“그래? 그럼 만약 내가 일방적으로 그녀를 괴롭힌 거라면 나와 맞섰을 건가?”
당온추의 눈에서 결연한 빛이 번뜩였다.
“그랬다면 사천당가는 목숨을 걸고 자네와 싸웠을 것이네.”
“…….”
사완악은 당온추의 눈빛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인 거 같군.”
“물론 진심이네. 자네에게 용서를 비는 마음도.”
“사천당문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면 이놈도 그냥 내버려 둘 걸 그랬나?”
사완악은 죽은 응계종의 머리를 발로 툭 차며 중얼거렸다.
당온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으면 더 좋았을 것이네.”
“뭐?”
당온추의 호기로운 말에 사완악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좋아. 당신은 정말 사내다운 사람이군. 강호에서 만난 사람 중 가장…… 아니 두 번째로 사내다워.”
이때 사완악의 얼굴에 한 줄기 그림자가 스쳐 갔다.
강호에서 만난 사람 중 가장 사내다운 사람.
문득 현종과의 만남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 현종과, 싸우러 가야 할 때였다.
“좋아, 그럼 뒤는 맡겨 두지.”
“안심하고 가시게.”
사완악은 당온추에게 살짝 감탄한 듯 말했다.
“사과를 받았으니 어쨌든 나도 그녀에게 했던 행동이 과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사천당가는 백 냥을 깎아 줄게.”
당온추는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렸다.
“기왕이면 조금 더 깎아줘도 좋을 것 같은데.”
“마음이 변했어. 오십 냥 깎아주지.”
“……고, 고맙네. 그것으로 충분하네.”
사완악은 씩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만.”
순간, 당온추의 눈이 놀람으로 크게 떠졌다.
사완악의 마지막 한마디가 귓가에 들려올 때, 이미 그의 신형은 땅을 박차고 쏘아지는 화살처럼 멀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인간의 수준을 벗어난 경공술이었다.
당온추는 씁쓸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큰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하군. 자네는 강호의 유일한 희망일세. 부디 그자를 막아 주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