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88
정도마신 187화
‘혼원마가?’
사완악은 노인의 말을 듣는 순간, 과거 암살자 여인이었던 진암마가의 가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누가 호법들이 우리보다 위에 있다고 그랬지? 그들은 우리와 동등한 관계이다. 다만 우리는 가문을 책임진다면, 그들은 교의 운영을 맡고 있을 뿐이지. 무공 역시 대호법…… 그 사람을 제외한다면 혼원마가의 가주가 가장 강하다.
사완악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눈앞의 노인.
혼원마가의 가주 양인섭은 지금까지 겨루었던 칠대마가의 가주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눈빛은 차분히 가라앉아 있으면서도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마기는 가히 압도적이라 할 만했다.
“당신이 칠대마가의 가주들 중 가장 강하다고 하던데.”
양인섭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실망했나?”
“그럴 리가. 솔직히 감탄하고 있는 중이야.”
“고맙군. 하지만 창영마가와 혈천마가, 진암마가의 가주들을 한꺼번에 상대한 자네에게야 비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그들이 힘을 합친 것보다 더 강한 것 같아서.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 상대가 될 수는 없겠지만.”
“흘흘.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보다시피 나는 살 만큼 산 노인네일세.”
“그래서?”
“사람은 자신의 한계보다 더 강한 능력을 발휘하는 순간이 세 가지가 있네.”
사완악은 흥미롭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세 가지?”
양인섭이 말했다.
“첫째는 생존의 위협을 느꼈을 때, 둘째는 반드시 지키거나 파괴해야 하는 것이 있을 때. 그리고 마지막은 삶의 미련을 완전히 떨쳐 버렸을 때일세.”
“…….”
“한평생 마교천하를 위해 무공을 수련했네. 그럼에도 내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었지. 하지만 이제 그 염원을 이루어 주실 교주님께서 나타나셨으니, 나는 내 마지막 불꽃을 태울 생각이네. 내가 열정을 다해 키운 이 아이들과 함께 자네의 힘을 조금 빼놓겠네.”
사완악은 순간 아무도 모르게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마디로 그는 살 만큼 살았으니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는 뜻이었고, 심지어 목적은 사완악을 이기는 것도 아니라 힘을 빼놓거나 상처를 입히는 것만으로도 만족이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양패구상으로 달려드는 상대는 삼류무사라 해도 까다로운 법.
하물며 마교의 초절정 고수들 중에서도 최고수 반열에 오른 사람이라면?
또한 문제는 가주 양인섭만이 아니었다.
그의 뒤에 서 있는 혼원마가의 문도 오십 명.
열정을 다해 키웠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들의 정비된 자세와 눈빛, 그리고 단합되어 느껴지는 마공의 기운은 범상치가 않았다.
그들과 비교한다면 지금까지 겪었던 다른 칠대마가의 무사들은 오합지졸이나 다름없을 정도.
아무리 사완악이라 하더라도 이 양인섭이라는 노인과 그 뒤의 무사들을 한꺼번에 상대한다는 것은…….
“귀찮네, 정말.”
양인섭이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사완악 같은 절대고수의 입에서 나오는 귀찮다는 말은 그 의미가 가볍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혼원마가는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귀찮을 것 없네. 늙은이는 늙은이들끼리 싸워야지.”
등 뒤에서 들려온 창노(蒼老)한 음성.
사완악은 돌아보지 않아도 누구의 목소리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빛바랜 도복에 송문고검 한 자루를 들고 나타난 노인.
겉모습은 담백하지만, 명경지수처럼 맑은 두 눈빛의 단단함은 그가 예사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노도인(老道人)의 검과 그의 도복에 새겨진 태극 문양을 발견한 양인섭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무당파? 설마?”
노도인은 담담히 답했다.
“무당파의 장문인, 상현이라 하오.”
“태극신검……!”
정도맹, 아니, 중원 최고의 고수.
태극신검 상현 진인의 이름은 마교의 수뇌부들 사이에도 익숙히 알려진 이름이었다.
물론 평소의 양인섭이라면 상현 진인의 등장을 매우 반겼을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중원 최고의 고수를 꺾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양인섭이 인상을 쓰고 있을 때 사완악은 상현 진인을 보며 말했다.
“저 마교 늙은이 보통이 아니야. 아무리 당신이라 해도 이길 수 없어. 내가 처리할 테니까 다른 쪽이나…….”
사완악은 돌연 말을 멈추며 상현 진인의 뒤쪽을 바라봤다.
상현 진인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자와 그의 부하들은 우리에게 맡겨 두시게.”
그 말과 함께 새로운 무인들이 나타났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무당파의 도복을 입은 일곱 명의 중년 도사들.
그들은 바로 사완악을 태산에서 공격했던 무당칠자였다.
이어서 정도맹의 임시맹주이자 화산파의 장문인 천향도와, 무당칠자와 비슷한 위치를 갖고 있는 화산오검.
점창파의 장문인 오향자와 아미파의 장문인 종인 사태.
형산파의 장문인, 태사강과 종남파의 장문인 정옥.
그리고 청성파의 장문인 하령 진인까지.
그야말로 소림사와 개방을 제외한 구파일방의 장문인들이 모두 나타난 것이었다.
또한 그들의 뒤에는 무당칠자와 화산오검 외에도 각 문파마다 다섯 명에서 열 명 사이의 장로들이 함께 따라오고 있었다.
장문인들을 제외하고도 오십여 명에 달하는 수.
한 사람 한 사람이 구파일방의 장로급 고수들이기에 혼원마가 무인들의 상대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들이 모습을 나타내자 양인섭의 표정이 굳어지고, 사완악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익숙한 얼굴들이 많군. 나에게 검을 겨눴던 자들이 이제는 날 위해 싸우려 하다니. 정확히는 날 위한 것이 아니겠지만.”
순간, 구파일방의 고수들은 헛기침을 하며 얼굴을 붉혔다.
이들은 사완악을 무림공적으로 몰고 공격했던 핵심 인물들이라 할 수 있었다.
사완악은 그랬던 너희들이 이제는 위기에 처하니 자신에게 의지하고 있음을 꼬집어 말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일은 깊이 반성하고 있네.”
사완악은 혼원마가의 가주 양인섭과 구파일방의 다섯 장문인들을 번갈아 바라본 후 어깨를 으쓱였다.
“뭐, 좋아. 당신들이 체면만 차리지 않는다면 싸워 볼 만하겠네.”
처음부터 다섯 장문인이 힘을 합쳐 합공하라는 뜻.
상현 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럴 생각이네.”
“좋아. 아, 혹시 죽더라도 당신들이 약속한 돈은 갚아야 해.”
“……알고 있네.”
사완악은 품에서 다섯 개의 부적을 꺼내 장문인들에게 던졌다.
바람에 휘날릴 것처럼 얇은 부적들은 신기하게도 장문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해 꼿꼿하게 직선으로 날아갔다.
“이게 무엇이오?”
“마공의 기운을 어느 정도 막아주는 부적이야. 완벽하지는 않으니까 너무 의존하지는 말고.”
사완악은 종천과의 싸움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비했다.
그중에는 사령문의 주술로 만들어진 부적도 있었다.
사령문의 창시자인 주선은 마교의 창시자인 마선을 이기기 위해 많은 연구를 했었고, 이 부적은 그 부산물 중 하나였다.
“그래도 죽지 말란 소리야. 돈 받으러 가서 상황 설명하는 건 귀찮으니까.”
장문인들의 얼굴에 미미한 변화가 일어났다.
설마 사완악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고, 고맙네. 사 공자 역시 무운을 비네.”
“이겨 달란 소리지?”
“부정하지 않겠네.”
“하하. 좋아.”
사완악은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고는 승광신법을 펼치기 위해 내공을 일으켜 몸을 가볍게 만들었다.
“다 같이 살아남아 보자고.”
그리고 사완악은 땅을 박찼다.
혼원마가의 가주 양인섭은 부리나케 그 앞을 가로막으려 했으나, 그 순간 하나의 송문고검이 화살처럼 날아왔다.
“이기어검……!”
양인섭은 깜짝 놀라며 황급히 검을 휘둘러 날아오는 송문고검을 쳐 냈다.
튕겨 나간 송문고검이 하늘로 높이 치솟았을 때.
제운종의 신법으로 도약한 상현 진인은 검을 낚아채며 양인섭과 삼 장 떨어진 거리로 내려섰다.
이어서 다른 장문인들도 신법을 펼치며 날아왔다.
“큭…… 이놈들! 좋다. 너희부터 모조리 죽여 주마!”
양인섭은 눈에 불을 켜며 자신의 검을 휘둘러 좌측에 있는 아미파의 장문인을 찔러 갔다.
그것은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창!
까가가강!
꽝! 꽝!
마교의 최고수와 구파일방 다섯 장문인의 산전초목이 흔들리고 땅이 울릴 정도의 엄청난 싸움이 시작된 것이었다.
* * *
중원의 민족은 고대부터 하늘나라 임금의 거처가 북극의 중심에 있다고 믿었다.
그 중심에 자미궁이라는 궁궐이 있고, 천자(天子)와 그 가족들이 살고 있으며 하늘을 다스리는 신하와 장군들이 지키고 있다는 전설이 있었다.
자금성의 자금(紫禁)이라는 이름은 바로 그 전설의 자미궁에서 비롯되었고, 황제를 천자라 칭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렇게 지어진 자금성이기에 그 크기는 그야말로 방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수십만 명의 백성들이 십 년이 넘도록 공사하여 만들어진 대궐.
무려 일천 개의 전각들과 만 개의 방이 있는 이 거대한 궁궐 중심에는 하늘로 우뚝 솟은 하나의 건물이 있었다.
새하얀 대리석 축대 위에 일흔두 개의 나무 기둥으로 세워진 황토색 기와 건물.
화려하고 복잡한 대들보와 처마, 그리고 기예라 할 수 있을 만큼 정교한 단청.
황제의 즉위식과 나라의 중요한 의식과 명령을 발표하는 가장 존귀하고 신성한 장소.
‘너라면 반드시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지.’
사완악은 백석(白石)으로 만들어진 넓은 길을 따라 그 태화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더 이상 그를 가로막는 마교도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가 태화전에 도착하기 직전.
두 명의 중년인이 길 한복판에 고요히 서 있었다.
한 중년인은 매우 살이 쪄서 눈이 볼살에 파묻힐 정도로 비대했고, 다른 중년인은 태양 볕에 까맣게 그을린 듯한 피부색을 지니고 있었다.
사완악은 그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지겹군. 너희는 또 누구냐?”
두 중년인은 사완악이 이곳까지 오는 동안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음을 보고는 상당히 놀란 듯 말했다.
“과연 대단한 놈이구나. 이렇게 빨리, 아무런 상처도 없이 여기까지 오다니.”
“그래, 칭찬 고맙다. 어차피 너희도 내 상대는 아니니까 귀찮게 하지 말고 비켜라.”
검은 얼굴의 사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건방진 놈. 이곳을 지나가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글쎄. 정말 그럴까?”
사완악은 가볍게 웃으며 두 중년인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의 속마음은 표정처럼 여유롭지만은 않았다.
‘이놈들도 장난 아니네.’
나타난 두 명의 중년 사내는 칠대마가의 가주, 아니, 그 이상이었다.
혼원마가의 가주와 비슷할 정도의 마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완악은 진암마가 가주의 말을 떠올리고는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동급은 얼어 죽을.’
사완악은 그들의 정체를 바로 알아보았던 것이다.
“너희가 바로 그 마교의 호법들이겠군.”
비대한 사내가 말했다.
“그렇다. 사완악, 네가 과연 교주님께 갈 수 있는 인물일지 시험해 보겠다.”
사완악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야, 돼지.”
소면살마(笑面殺魔), 왕주봉의 표정에 황당함이 일어났다.
“뭐,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