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90
정도마신 189화
사완악은 짧은 시간이지만 소면살마 왕주봉과 철혈도마 무위백의 특징을 파악했다.
‘방어는 뚱땡이, 공격은 검댕이.’
소면살마는 장법과 연검술을 섞어 사용하고, 임기응변이 뛰어나며 보기와 다르게 몸놀림이 민첩했다. 연검은 휘어지는 검이기에 공수의 변환이 자유로웠고 유연했다. 그만큼 상대의 무공에 적절히 대응해서 반격까지 이어 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반면, 철혈도마 무위백은 거대한 도를 이용하여 큰 동작과 강맹한 초식이 특기였다. 더군다나 그의 병기는 면적이 너무 넓어 가까운 거리에서의 움직임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무인들이기에 어떤 부분이 약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틈을 파고드는 것이 사완악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사완악은 땅을 박차며 상대적으로 방어가 미흡한 철혈도마 무위백을 향해 검을 찔러 갔다.
“으음!”
무위백은 도를 세우며 넓은 도면으로 사완악의 검을 막아 냈다.
하지만 사완악의 환요옥영검은 구렁이가 담을 넘는 것처럼 그의 도를 피해 무릎의 요혈을 찔러 갔다.
무위백은 도를 아래로 찍어 누르며 사완악의 검을 쳐 내려 했는데, 이때 사완악은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다시 변화를 일으키며 튕기듯 방향을 바꾸어 무위백의 목을 노려 가는 것이었다.
이는 마치 땅 속에서 웅크리고 숨어 있던 뱀이 기습적으로 튀어나와 독니를 드러내는 듯한 모습이었다.
“헉!”
무위백은 크게 당황하며 황급히 몸을 비틀었다.
사완악의 검 끝이 그의 목을 스쳐 지나가며 핏방울이 튀었다.
무위백의 입장에서는 실로 가슴이 섬뜩해지는 순간이었다.
사완악의 검이 멈추지 않고 다시 변화를 일으키려는 순간.
“죽어라!”
돌연 뒤에서 큰 호통 소리와 함께 물결처럼 흔들리는 검 한 자루가 사완악의 등으로 날아왔다.
소면살마 왕주봉의 연검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사완악이 바라던 바였다.
방어가 약한 무위백을 공격하고, 공격이 약한 왕주봉으로 하여금 지원하게 만드는 상황.
사완악은 왕주봉이 자신을 향해 은밀히 다가올 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왼손을 뒤로 돌려 일장을 내질렀다.
이는 파신마장의 여섯 번째 초식, 이노용미(履怒龍尾)의 수법이었다.
분노한 용의 꼬리를 밟으면 용이 고개를 돌려 달려든다는 뜻으로, 배후의 적을 향해 손을 뒤로 뻗어내며 장력을 쏘아내는 초식이었다.
몸을 회전시키는 원심력을 이용하기에 파신마장의 전반부 열 초식 중에서도 강맹한 편에 속했지만, 등 뒤로밖에 쓸 수 없다는 단점도 있는 초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는 이보다 더 적절한 초식이 없었으니, 맹렬한 장력이 왕주봉을 향해 쏘아졌다.
“크악!”
사완악의 이 같은 반격을 예상하지 못했던 왕주봉의 신형이 달려왔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튕겨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사완악의 오른손에서는 환요옥영검의 후반부 초식이 펼쳐졌다.
본래 사완악은 채보령에게 환요옥영검의 전반부 초식만을 배웠다.
채보령이 후반부 초식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채보령이 마교에 굴복하며 후반부 초식을 알게 되었고, 사완악은 소림사에서 그녀와 겨루며 그 초식들을 훔쳐 익힐 수 있었다.
물론 아무리 사완악이라 하더라도 한 번 보는 것만으로 상승 검술의 초식을 완벽하게 따라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채보령은 후반부 초식들을 되풀이하여 사용했고, 사완악은 그녀가 자신에게 그 초식들을 알려 주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완성된 사완악의 환요옥영검은 실로 기이막측한 변화를 지니고 있었다.
사완악이 거리를 더욱 좁히며 지척에서 초식을 펼쳐 내자 철혈도마 무위백의 대도로는 도저히 막아 낼 수가 없었다.
“큭!”
무위백은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뒷걸음질 쳤다.
그의 손 사이로 진한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호신강기를 펼쳐 몸을 보호하였음에도 매우 깊게 베인 것이다.
하지만 무위백은 숨 돌릴 틈조차 없었다.
사완악이 물러서는 그를 집요하게 따라붙으며 다음 초식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무위백은 할 수 없이 이를 악물며 필사적으로 그의 대도를 휘둘렀다.
다행히 소면살마 왕주봉 역시 혼신의 힘을 다해 따라와 연검을 버리고 다시 장법을 사용해 사완악의 등 뒤를 덮쳐가고 있었다.
콰앙! 콰앙! 콰앙!
파파파팟!
사완악은 무위백과 왕주봉의 가운데 서서, 앞으로는 검을 휘두르고 뒤로는 장법을 날려 순식간에 삼십여 합을 겨루었다.
끊임없는 경력의 충돌로 폭음이 연달아 일어났다.
무위백과 왕주봉은 아무리 양의심공을 익혔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사완악의 손발이 꼬일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좋아, 좋아.”
무위백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는 사완악을 보며 싸우는 와중에도 의아함이 치솟아 물었다.
“무엇이 좋다는 거냐?”
“양의심공을 실전에서 제대로 사용해 본 것은 처음이라 어색했거든. 그런데 이제 슬슬 감이 잡히는군.”
“처, 처음이라고?”
“칭찬이야. 돼지랑 검댕이. 너희들 정도가 아니라면 내가 양의심공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는 거니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완악의 검이 다시 움직였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무위백 역시 환요옥영검의 괴초식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는 것.
본래 그가 익히고 있는 패도마신도(霸道魔臣刀)는 마교의 이대 교주가 호법들을 위해 창안한 사마신공(四魔臣功) 중 하나였다.
신(神)이 아니라 신(臣)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것도 그런 이유.
십대마공과 사마신공은 각 장단점이 있을 뿐,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즉, 환요옥영검과 비교해도 결코 밀릴 것이 없는 무공이었다.
다만 환요옥영검의 초식이 워낙 종잡을 수 없기에 고생했던 것이다.
“언제까지 그 검술이 통할 것이라 생각하느냐!”
무위백은 더 이상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듯, 뒤로 물러나 거리를 만들며 그의 대도를 힘껏 휘둘렀다.
반원 형태의 강기가 사완악을 향해 날아왔다.
그야말로 가공할 기세!
그 초식을 본 왕주봉 역시 내공을 끌어모아 있는 힘껏 장법을 쏟아 냈다.
사완악의 손에서도 사존의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쾅! 꽈앙!
세 사람의 대결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태화전으로 가는 하얀 대리석 길이 모두 산산조각 부서져 사방으로 비산했다.
보통 사람들은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조차 알 수 없었고, 그저 천둥이 연달아 울리는 듯한 소리와 강기의 충돌로 발생하는 강풍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오십여 합을 싸운 순간.
“컥!”
무위백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이 흘러나오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그의 심장에 박혀 있는 한 자루의 장검.
사완악의 검이었다.
동시에 왕주봉의 입에서도 참혹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끄륵!”
사완악의 장력이 그의 단전을 파괴시킨 것이다.
“생긴 거답게 맞을 때도 돼지 소리를 내는구나.”
“이런 개 같은…….”
“나도 네가 하던 말을 돌려주마. 죽어라.”
퍽!
사완악의 수도가 왕주봉의 백회혈을 자비 없이 내리쳤다.
왕주봉은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
“마지막 검법은…….”
무위백의 중얼거림에 사완악은 고개를 돌려 말했다.
“매화검법이다.”
“화산파의 매화검법…… 그렇군. 이런 검법이었군.”
“거기 장문인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데, 무공만큼은 쓸 만하더군.”
“클클, 어차피 소용없다. 이런 잔재주로는 결코 교주님의 상대가 될 수 없으니까…….”
사완악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걱정이나 해. 나는 당한 것은 반드시 되돌려주는 사람이니까. 아까 나보고 뭐라고 했더라? 사지를 잘라 짐승의 먹이로 준다고 했었나?”
“……!”
사완악은 무표정한 얼굴로 무위백의 심장에 박혀 있는 검을 뽑아냈다.
“크헉! 네, 네놈…….”
심장에 난 구멍 때문일까, 아니면 공포 때문일까.
무위백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사완악은 그런 무위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건 너무 역겹군. 칭찬해 주마. 넌 나의 신념을 깨트린 최초의 인물이다. 그냥 곱게 죽어라.”
흰색 광채가 번쩍임과 함께 무위백의 목이 베어졌다.
마교 두 호법의 죽음.
그리고 사완악은 자신의 양손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확실히 익숙해졌다.”
* * *
사완악은 다시 땅을 박차며 태화전을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방해가 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막아라!”
“호법님의 원수를 갚아라!”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대로 좌우에서 수십 명의 무인들이 튀어나왔다.
아마도 소면살마와 철혈검마가 거느리고 있던 부하들로 보였다.
한 명 한 명이 일류급 이상의 무사들.
하지만……
창! 까가가강!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금속성이 울리며 십여 명의 무인들이 한꺼번에 박살이 나 날아갔다.
그야말로 만부부당(萬夫不當)!
만인(萬人)으로도 당할 자가 없는 모습.
“크악!”
“끅!”
신법을 전개하며 검을 휘두르는 사완악의 앞을 막아 낼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찰나 정도 그의 걸음을 늦추는 것이 최선일 뿐……
사완악이 지나가는 흰색 대로가 핏빛으로 물들고 수십 명의 시체가 쌓여 갔다.
그리고 마침내.
사완악의 눈앞에 하나의 큰 문이 나타났다.
바로 태화전으로 향하는 태화문이었다.
태화문의 양쪽에는 한 쌍의 사자상이 서 있었는데, 이는 황실의 유명한 상징 중 하나였다.
동쪽의 숫사자는 권력과 천하 통일을, 서쪽의 암사자는 자손의 번성을 상징하는 동상이었다.
사완악은 신법을 멈추고 그 한 쌍의 동상을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태화문을 지나쳐 걸어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전정(正殿)이 나타났다.
황색 지붕과 수십 개의 기둥.
태화전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금으로 만든 휘황찬란한 옥좌가 있었다.
그 옥좌에는 한 사람이 위엄 있는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조각 같은 외모에 태어날 때부터 존귀했던 것 같은 기운의 한 사람.
한때는 사완악의 유일무이한 벗이었던 그가.
황제만이 입을 수 있는 곤룡포를 입고.
사완악은 그 앞으로 걸어가 말했다.
“나 왔다.”
마교의 오대 교주, 종천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였다.
“그래, 왔구나.”
“넌 확실히 현종이랑 다르더군.”
“무슨 뜻이지?”
“현종이 만약 나와 겨룬다면, 그 누구도 방해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거다. 서로 최상의 상태로 싸우고 싶을 테니까.”
그러자 종천이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왕 호법과 무 호법을 말하는 것이군. 내가 너의 힘을 소진시키기 위해 그들을 보냈다고 생각하는가?”
사완악은 고개를 갸웃하며 종천을 바라봤다.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냐는 뜻이었다.
종천은 여전히 미소와 함께 말했다.
“황제가 되면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하지. 누가 이 나라에 필요한 사람이고, 누가 해가 되는 인물인지. 왕 호법과 무 호법은 내가 마교의 교주가 될 때부터 나에게 충성하여 황제가 될 때까지 보필한 자들이었다. 개국공신과 같은 자들이지.”
사완악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일부러 그들을 죽인 거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