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91
정도마신 190화
종천은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역시 너는 나와 겨룰 수 있는 유일한 사내구나. 그렇다. 그들은 나라를 세울 때는 더없이 용맹한 충신이나, 성격이 포악하고 욕심이 많아 권력을 잡으면 나라의 운영을 어렵게 하는 인물들이지. 하지만 내 손으로 그들을 죽일 수는 없는 일. 마지막까지 너를 상대하여 나에게 충성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것이다. 어차피 그 정도로 네가 지칠 일도 없을 테니 우리의 대결에 흠집이 날 일도 아니지 않은가?”
사완악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겁나 힘들었거든? 그리고 한마디로 토사구팽이지, 충성할 길을 열어 주긴 개뿔이. 너 같은 놈을 신으로 모시며 목숨 바치는 부하들이 불쌍할 뿐이구나.”
다른 사람이 이 같은 말을 했다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종천은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천천히 곤룡포를 벗었다.
사완악의 백의장삼과는 대조적으로, 칠흑 같이 어두운 흑의장삼이 나타났다.
“나는 천살성, 너는 수호성의 기운을 타고 났다. 흑과 백의 싸움이지. 이기는 사람의 색으로 천하가 물들 것이다.”
“거참 다양하게 지랄하네. 빨리 내려오기나 해라.”
종천의 신형이 하늘로 도약하더니 구름을 타고 내려오듯 사완악의 맞은편에 서서히 착지했다.
“말은 잘 듣네. 그런데…… 음.”
사완악은 잠시 말을 멈추고 머리를 긁적였다.
다름 아닌 종천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마기 때문이었다.
‘인격이 바뀌어도 괴물 같은 놈인 건 똑같네.’
천하의 사완악조차 온몸의 털이 곤두설 것 같은 엄청난 마기.
그것은 지금까지 싸운 마교의 초절정 고수들, 그리고 일전에 정도맹에서 마주쳤을 때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기운이었다.
사완악은 종천이 천마신공을 완벽하게 대성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예상하지 못했던 바는 아니었으나…….
‘이길 수 있을까?’
막상 종천의 힘을 마주하자, 그간 가졌던 확신에 균열이 일었다.
“설린 문주는?”
“그녀는 황후전에 있다. 이 싸움에서 이긴 사람이 그녀를 차지하는 것이지.”
“싸움에서 이긴다고 누가 누굴 차지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반드시 이겨야 할 것 같군.”
사완악은 그와 같은 말을 내뱉으며 서서히 사존의 힘을 개방했다.
고오오오오-!
종천의 눈에도 이채가 떠올랐다.
“과연.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군.”
자신의 힘을 완전히 개방한 사완악의 기세는 종천의 천마신공에 조금도 밀림이 없었다.
이윽고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들은 한 치의 미동도 없이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폭풍전야를 보는 듯했고, 숨 막히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 순간, 사완악의 머릿속에 갑자기 사부 사마소와 마지막에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 * *
-내가 그놈을 쓰러뜨리면 되는 거잖아. 그러니까 방법을 말해 줘 봐.
-안타깝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만약 내가 정파의 무공들도 모두 익힌다면 어때?
-네가 무당파의 양의심공이나 소림사의 역근경 같은 구파일방의 최고 절학들을 익힌다면 모를 일이지. 하지만 그럴 일이 있겠느냐? 그 무공들은 단순히 비급을 훔쳐 낸다고 해서 온전히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거늘……!
사완악은 그 순간, 왼손으로는 소림사의 백보신권을, 오른손으로는 무당파의 태극혜검을 펼쳐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신천마뇌 사마소의 눈이 부릅떠졌다.
-너, 너, 설마……!
-이래도 그 녀석의 상대가 될 수 없는 거야?
-허……!
사마소는 놀란 눈으로 멍하니 사완악을 바라보다 이내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렇다면 아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겠구나.
사완악은 그를 채근했다.
-빨리 말해 줘. 사부 죽어 가잖아.
-큭큭, 망할 녀석. 잘 들어라, 이 세상에 완전무결한 무공은 없는 법이다. 천마신공도 마찬가지지. 만약 천마신공에 대항할 무공이 없었다면, 이미 마교가 오래전에 천하를 지배했어야 할 일이니까.
-그럼 천마신공의 약점이 뭔데?
-그건 나도 모른다.
-뭐야 그게?
-중요한 건 네가 사용하는 무공들의 약점이지.
-내가 사용하는 무공의 약점?
-양의심공을 이용해 단순히 다른 무공을 펼친다고 해서 그를 이길 수는 없다. 하지만 두 가지의 무공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고, 서로의 장점을 공생하게 만들면 그 위력은 배가 아니라 그 이상 강해지겠지.
-음……!
-너의 장점은 어려서부터 어떤 무공이든 그 요체를 빠르게 파악하고 익히는 비상한 두뇌였다. 무재는 몰라도 너의 그 약삭빠른 임기응변만큼은 그 교주보다 더 뛰어날지도 모르지. 그러니 너는 네가 펼칠 수 있는 무공들을 깊게 연구해야 한다. 어떤 무공이 어떤 무공과 함께 펼쳐질 때 최고의 효력을 낼 수 있는지 말이다. 그리고 상대의 초식에 따라 그에 가장 걸맞은 대응할 수 있다면, 능히 그 괴물 같은 놈과 맞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 녀석이 어떤 초식을 사용하면, 그거의 특징을 찰나지간에 파악하고, 그거에 대응하기 가장 좋은 무공 두 개를, 그것도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며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두 가지 무공을 조합해서 상대하라는 말이네?
-그렇다.
-사부님,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상대가 무슨 삼류 무사야? 눈 깜짝하는 순간 목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상대라고. 그 짧은 시간에 그걸 어떻게 해?
-못하면 싸우다 죽으면 되는 거다. 다른 방법으로는 절대 그자의 상대가 될 수 없으니까. 클클클클.
* * *
사완악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사부 사마소는 그렇게 실없이 웃음을 터뜨리다 숨을 거두었다.
사마소의 조언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오성이 뛰어나고 임기응변이 뛰어난 사완악이라 할지라도.
‘신천마뇌는 무슨. 망할 사부 같으니라고.’
사완악이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지루하군. 슬슬 시작하지.”
숨 막힐 듯한 고요함을 먼저 깨뜨린 사람은 종천이었다.
두 사람은 이미 초절정을 넘어 입신의 경지에 오른 무인들이었다.
이렇게 마주 보고 기를 발산한다고 해서 쉽사리 허점이 드러날 리 없었다.
종천의 신형이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사완악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일권!
사완악의 눈에 이채가 흐르며 빠르게 일장을 내질렀다.
쿠웅!
육중하게 울려 퍼지는 폭음.
하지만 그것은 대 혈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에 불과했다.
팟! 팟! 팟! 팟!
서로 주고받는 권과 장의 격돌.
두 사람의 속도는 서서히 빨라지기 시작하고, 휘몰아치는 경력은 더욱 거세졌다.
종천이 일권을 내지르면 태풍 같은 권풍이 일어났고, 사완악의 손에서 뻗어 나오는 장력은 거대한 보자기처럼 그 권풍을 감싸 흘려보냈다.
“언제 태극권까지 익혔지?”
처음과 달리 폭음이 울리지 않는 이유는 사완악이 무당파의 태극권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태극권은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하는 유능제강의 무공.
종천은 사완악이 태극권을 익혔다는 사실보다, 그 태극권의 경지가 매우 뛰어나다는 것에 작은 감탄을 터뜨렸다.
하지만 사완악의 눈은 오히려 평소보다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종천이 펼치고 있는 권법은 천마신공의 무공이 아니었다.
일전에 칠대마가 중 혈천마가의 가주가 사용했던 권법과 같은 무공.
한마디로 아직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도 않았다는 뜻이었다.
“이제 제대로 하자.”
“하하, 좋다.”
종천은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사완악에게 쇄도했다.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기세.
강렬한 권풍이 사완악을 향해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진정한 천마신공의 무공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때 사완악의 동공에서 녹색 빛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그의 양손이 각기 다른 무공을 펼쳐 냈다.
꽈아앙!
뇌성이 울리며 사완악과 종천의 신형이 서로 물러섰다.
“……!”
종천은 진심으로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양의심공?”
“왜? 뭐 문제 있어?”
종천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정말 끝을 알 수 없는 놈이군. 전설의 양의심공까지 익히다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종천의 손에서 다시 한번 가공할 기운이 쏘아졌다.
그는 천마신권의 초식 중에서도 가장 강맹한 초식을 내질렀다.
상대가 몇 가지 무공을 동시에 펼쳐 내든 일거에 파괴시키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종천의 눈에는 다시 한번 불신의 빛이 떠올랐다.
사완악의 왼손에서 뻗어 나온 장력이 일차적으로 종천이 쏘아낸 권풍의 위력을 감소시키더니, 오른손이 허공에 원을 그리며 남은 권풍의 여력을 비틀어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좌수에서 펼쳐진 것은 곤륜파의 옥심장력이요, 우수에서 펼쳐진 것은 무당태극권이었다.
이 두 가지 무공은 모두 강맹 일변도의 힘을 받아치거나 분산시킬 수 있는 절학들로, 두 가지 무공을 함께 펼치자 천마신권의 위력조차 그 방어막을 뚫어 내지 못한 것이었다.
‘옥심장력과 태극권을 동시에 사용하다니.’
종천은 내심 사완악의 대응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가지 무공을 익힌 것은 둘째 치고, 방금의 수법은 그가 사용한 초식에 실로 적절한 무공의 조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이때, 사완악의 동공에는 녹색의 광채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렇게 하라는 거지?’
사마소의 조언.
처음에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사완악은 그 조언을 곱씹어 보던 중, 한 가지 흥미로운 생각을 떠올렸다.
바로 사령문의 주술, 현각사혼(玄覺死魂)이었다.
사령문의 주술 중에는 사람이 지닌 오성(悟性)의 능력을 일시적으로 크게 상향시키는 술법이 있었다. 과거 사완악은 이 술법을 이용하여 북해빙궁에서 수십 개의 정파 무공들을 빠르게 익혀나갔다.
그리고 양의심공은 생각과 마음도 둘로 나눌 수 있는 희대의 신공.
그렇다면 만약 양의심공을 사용하는 상태에서 현각사혼까지 사용한다면?
뇌의 능력이 극한으로 상향된 두 명의 사완악이 있는 효과가 발휘되는 것이고, 그 상태라면 사마소가 말한 방법을 실행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정말 되긴 되네.’
종천이 초식을 펼치는 순간, 그 특징을 파악하고 그것을 받아칠 수 있는 두 개의 무공을 조합하여 대응한다. 말은 간단하지만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게 느껴졌던 방법이 사완악의 손에서 펼쳐진 것이다.
“하하, 그래, 이래야 사완악이지. 좋다. 싸울 맛이 나는군.”
종천은 오히려 재밌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이윽고 그의 손에서 다른 초식들이 펼쳐졌다.
이번에는 권법이 아니라 장법이었다.
강맹일변도의 천마신권과 다르게 마치 무당파의 내가중수법처럼 부드러움이 섞인 초식.
만약 사완악이 다시 옥심장력과 태극권을 펼친다면 아까와 같은 효용을 발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때, 사완악의 눈에서 녹색 광채가 다시 번뜩이더니 새로운 초식을 펼쳐 냈다.
그리고 놀랍게도 좌수에서 펼쳐진 무공은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무공이 아닌, 황보세가의 천왕권(天王拳)이었다.
사완악은 북해빙궁에서 강호의 무공 비급들을 살피던 중 이 천왕권의 초식을 보고는 꽤 감탄을 한 적이 있었다.
비록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무공에 비해 절묘한 면은 떨어졌으나, 위력만으로 본다면 소림사의 백보신권에 못지않은 무공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투로가 단순하고 변화가 적으며, 내공의 운용이 손쉬워 백보신권보다 더 빠르게 펼쳐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사완악의 천왕권이 권풍을 일으키며 천마신장의 장력을 둘로 갈라 버렸다.
부드러움을 지닌 종천의 장력이 두 갈래로 갈라진 상태로 계속해서 날아오는 순간.
사완악의 오른손에서 날카로운 검기가 두 줄기 솟아났다.
바로 모용세가의 절학, 건곤파섬검(乾坤破閃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