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95
정도마신 194화
사완악의 왼쪽 손목에는 하나의 팔찌가 채워져 있다.
바로 사령문의 신물, 사령녹리완천(邪靈綠彲腕釧)이었다.
사령문의 귀령들 중 한 명인 가종후는 사완악이 영겁사령존인지 시험하기 위해 이 신물을 착용하도록 했다.
만약 영겁사령존이 아닌 사람이 이 팔찌를 차게 되면, 착용자의 내공을 끝없이 빨아들여 죽음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영겁사령존이라면, 상아색의 팔찌가 녹색으로 변하면서 뱀과 용을 합쳐 놓은 듯한 이무기 형상의 문양이 나타난다고 했다.
당시 사완악은 전대 영겁사령존의 기운을 지니고 있었기에 시험에 통과할 수 있었다.
다만 팔찌는 전설의 기록과 달리 녹색이 아닌 적색으로, 이무기의 형상이 아닌 불꽃 문양의 무늬가 나타났다.
사완악은 아마도 자신이 익힌 염화신공의 영향이라고 추측했고, 팔찌의 이름을 사령적화완천(邪靈赤火腕釧)이라고 바꿨다.
사완악은 이 사령적화완천이 매우 비범한 물건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단순히 사령문의 신물이어서가 아니었다.
팔찌를 손에 차는 순간, 사완악이 지니고 있던 내공이 팔찌 안으로 흡수되었기 때문이었다.
사완악은 갑작스러운 현상에 내공의 이동을 막아 보려 했지만 그것은 실로 불가항력이었다.
다행이라면 사령적화완천은 정확히 사완악이 지니고 있던 내공의 삼 할만을 가져갔다는 것이었다. 사완악은 이런 기이한 현상을 일으킨 팔찌라면, 필시 어떤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애석하게도, 가종후는 물론 사령문의 누구도 이 신물의 사용방법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사완악을 위해 북해빙궁에 있는 사령문의 서고를 샅샅이 살펴보았으나, 그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는 서책은 없었다.
하지만 북해빙궁의 지하에 안배된 비밀의 공간에서 사존의 힘을 얻었을 때.
사완악은 또 한 번의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바로 사령적화완천이 새롭게 얻은 사존의 힘의 일 할을 다시 가져가 버렸던 것이다.
기존 내공의 삼 할과 사존의 내공 일 할을 잡아먹은 팔찌.
내공이 아까운 것은 둘째 치고 어떤 비밀이 있음이 분명했다.
팔찌를 유심히 살펴보던 사완악은 기존에 없던 글씨를 발견했다.
주문처럼 보이는 한 문장.
그리고 매우 신비로운 일이 일어났다.
사존의 힘을 이용하여 그 주문을 외우자, 사완악의 머릿속에 하나의 음성이 울렸던 것이다.
-삼백 년 만에 나타난 주인인가?
그것은 사령적화완천의 음성이었다.
사완악은 그 녀석과의 대화를 통해 이 팔찌의 신묘한 능력과 조건을 알아낼 수 있었다.
첫째, 사령적화완천의 능력은 몇 번이든 사용할 수 있다.
둘째, 사령적화완천의 능력은 십 년의 수명을 사용한다.
셋째, 사령적화완천의 능력은 한계에 도달하거나, 한 시진이 지나면 사라진다.
첫 번째 조건은 가종후에게 듣던 것과는 달랐다.
가종후는 이 팔찌의 능력을 세 번 사용할 수 있고, 그 후에는 힘을 잃고 백 년 동안 능력이 봉인된다고 알고 있었다.
그것은 전대 영겁사령존이 이 팔찌를 세 번 사용하고 봉인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리고 사완악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둘째 조건 때문이다.
한 번 사용할 때마다 십 년의 수명을 사용하게 되니 누구라도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내공에 이어 수명까지.
이렇듯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팔찌의 능력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를 사용할 수 있는 주문을 알려 주겠다. 이 주문을 외우게 되면……
* * *
흑천유성(黑天流星).
종천의 검은 그 초식의 이름처럼 어두운 하늘을 밝히며 떨어지는 유성과 같았다.
한 줄기 섬광으로 화한 검 끝이 일직선으로 날아왔다.
그에 비해 사완악은 검을 땅에 떨어뜨린 채 절망에 빠진 얼굴로 서 있을 뿐이었다.
사완악은 완전히 그 의지가 꺾인 듯했고, 종천의 검이 그의 목을 꿰뚫는 것은 자명해 보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 종천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사완악의 입에서 어떤 알 수 없는 말들이 중얼거리듯 흘러나왔고, 백의장삼 왼쪽 소매 안쪽에서 붉은빛이 번쩍였던 것이다.
하지만 종천의 검은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찔러가고 있었다.
사완악이 어떤 수단을 부릴지라도 종천의 검을 막아 내는 것은 불가능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기호지세라 생각하며 끝까지 검을 찔러 넣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종천은 본능적으로 어떤 위험함을 느꼈다.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직감이었다.
아니, 굳이 말하자면 상대가 사완악이기 때문이었다.
현종의 눈으로 사완악을 언제나 지켜봐 왔던 종천은, 그가 다른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심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사완악이, 아무리 절망했다 하더라도 아무 저항 없이 죽음을 기다린다?
‘무언가 잘못됐다!’
설명은 길었지만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오름과 동시에 찔러가던 검을 회수하는 것은 그야말로 빛이 번쩍이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였다.
파팟!
동시에 정녕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멍하니 서 있던 사완악이 돌연 파신마장의 초식 중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마룡일효의 초식을 쏘아낸 것이다.
아니, 여기까지는 그저 평범한 반격이라고 볼 수 있는 일.
진정 놀라운 일은 갑자기 누군가 유령처럼 갑자기 나타나 땅에 떨어져 있는 매화신검과 영천검을 주워 종천의 측면을 공격해 오는 것이었다.
또한 그 유령 같은 사내는 마치 사완악이 양의심공을 사용할 때처럼 양손으로 각기 다른 검법을 펼치고 있었고, 그 위력 또한 사완악과 비견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났다.
“웬 놈이냐!”
종천은 대경실색(大驚失色)하며 황급히 한 손으로는 천마장법을 날려 사완악의 마룡일효를 받아쳤고, 다른 손으로는 초월마신검법을 펼쳐 유령 같은 사내의 쌍검술을 막아 냈다.
꽈광!
“크흡!”
경력이 폭발하는 굉음과 함께 처음으로 종천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이 흘러나왔고, 그의 신형이 십여 장가량 주르륵 밀려났다.
괴물을 넘어 신의 경지에 오른 것 같았던 그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완악과 갑자기 나타난 유령 같은 사내의 공격을 온전히 막아 내지 못한 것이다.
이는 첫째로는 유령 같은 사내의 검술과 내력이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이었고, 둘째로는 종천은 아직 두 가지 무공을 한 번에 펼치는 것이 숙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종천의 놀라움은 그 유령 같은 사내의 정체를 확인하는 순간 극에 달했다.
“너, 너는……!”
어떤 일에도 침착함과 냉정함을 잃지 않던 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유령같이 나타난 의문의 사내.
그는 사완악과 같은 백의장삼을 입고 있었고, 사완악과 같은 크기의 신체와 똑같이 생긴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조금 전 그 사내가 펼친 두 개의 검법은, 하나는 검마후의 환요옥영검이요, 다른 하나는 무당파의 태극혜검이었으니.
그야말로 사완악과 완전히 똑같은 분신이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이었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눈동자.
사완악과 똑같이 생긴 그의 눈동자는 핏물 같은 붉은색이었고, 마치 시체를 보는 것처럼 사람의 생기(生氣)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종천은 사완악과 그 분신 같은 사내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조금 전 사완악의 입에서 흘러나왔던 주문을 떠올렸다.
“주선의 주술인 것이냐?”
사완악 역시 놀랍다는 듯 자신의 분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구파일방이든, 천의문이든, 마교든, 다들 보물 하나씩은 있잖아? 사령문에도 이런 신물 하나쯤은 있어야 형평성이 맞지. 그래도…… 정말 이렇게까지 완벽한 분신이 나타날 줄은 몰랐는걸.”
사완악은 팔찌의 음성을 통해 자신과 똑같은 능력을 가진 분신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알았으나, 사실 반신반의하며 확신을 갖지는 못했었다.
대가가 무려 십 년의 수명이니, 절체절명의 순간이 아니라면 함부로 시험해 볼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조금 전 사령적화완천의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다면?
‘진짜 죽을 뻔했네.’
대담하다고 해야 할까, 대책이 없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사완악은 생사를 건 도박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졌고, 위기는 곧 기회가 되어 종천에게 내상까지 입힐 수 있었다.
그런데 이때, 핏빛 눈빛을 뿌려 대는 사완악의 분신이 고개를 돌려 사완악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 하고 있어?”
“음?”
“언제까지 저놈에게 시간을 줄 거냐고. 쟤 방금 타격 입었잖아. 상황 파악 안 돼?”
“…….”
지극히 사완악스러운 말투.
사완악은 사령적화완천의 음성이 떠올랐다.
-나의 능력으로 생성되는 분신은 단순한 꼭두각시가 아니다. 너와 똑같은 능력, 똑같은 생각과 성격을 지닌 제 이의 존재가 나타나는 것이다.
“내 말투를 내가 들으니 기분이 묘하군.”
분신이 말했다.
“생각보다 더 재수 없다는 뜻인가?”
“…….”
정곡을 찌르는 재주까지 똑같다.
심지어 반박을 할 수도 없다.
분신의 생각은 자신의 생각과 완전히 같았으니까.
‘어쨌든 그렇단 말이지.’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래, 이제 받았던 것들을 돌려줘야지.”
“좋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명의 사완악이 동시에 두 줄기 질풍이 되어 종천을 향해 날아갔다.
“으음……!”
종천의 양손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쾅! 까강!
종천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굳어져 있었다.
사완악이 양의심공을 펼칠 때, 종천은 마치 두 명의 사완악과 싸우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사완악이 한 명 더 존재하니, 이는 네 명의 사완악과 대결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또한 그 분신은 사완악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아니었다.
정말 사완악이 직접 생각하고 무공을 펼치는 것처럼, 뛰어난 임기응변과 전략으로 명문대파의 절학들을 줄줄이 쏟아 냈다.
콰과과과광!
한 번에 네 개의 무공이 쏟아지며 굉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으아아!”
종천은 괴성을 지르며 천마장법과 천마권법, 그리고 초월마신검의 초식들을 정신없이 펼쳐 댔지만, 그야말로 풍전등화(風前燈火)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퍽!
사완악의 빙백신장도 그의 가슴에 격중했다.
빙백신장의 얼음장 같은 한기가 종천의 움직임을 느리게 만들었다.
그 순간.
“……!”
사완악 분신의 검이 종천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며 핏물이 튀어 올랐다.
종천은 이를 악물며 검을 미친 듯 휘둘렀다.
그렇게 다시 삼십여 합을 주고받았을 때.
“큭!”
이번에는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고, 그다음에는 허벅지에 제법 깊은 검상이 생겨났다.
그리고 꽝!
사완악이 벼락같이 내지른 항룡십팔장을 팔뚝을 올려 간신히 막아 냈지만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종천의 신형이 뒤로 날아갔다.
“크아아아!”
종천은 상처 입은 맹수처럼 포효하며 다시 일어섰다.
하지만 그의 전신에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생겨나 흑의장삼이 핏물로 물들었고, 사완악의 장법에 내부가 격탕되어 낯빛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리고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거친 숨소리.
종천은 수십 개의 화살을 맞아 서서히 숨통이 끊어지는 호랑이처럼, 조금씩 그 힘을 다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회광반조(回光返照)라고 해야 할까?
종천의 묵색광검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기이한 빛이 발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