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97
정도마신 196화
수백 년 동안 천하제패를 위해 힘을 키워 온 마교의 저력은 대단했다.
마교의 사대호법 중 마지막 한 사람이자 종천의 오른팔이었던 음유신마(陰幽神魔) 조위청은 종천의 죽음 후에도 마교도들을 통솔하며 정도맹과 끝까지 맞서 싸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승기는 정도맹으로 기울었다.
마교는 사완악의 활약으로 칠대마가의 가주들과 무사들을 상당수 잃은 상태였고, 최고의 고수라 할 수 있는 소면살마 왕주봉과 철혈도마 무위백마저 죽었기에 초절정 고수의 숫자에서 현저히 밀렸기 때문이다.
교주 종천이 없는 그들은 결코 정도맹을 이길 수 없었다.
* * *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했던 자금성과 정도맹.
나라를 대표하는 장군들이 죽었고, 정파무림의 명숙들과 전도유망한 후기지수들이 수없이 목숨을 잃은 전투였다.
하지만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는 것일까?
마교를 이겨 낸 정도맹과 황궁은 강건해진 정신으로 빠르게 회복하기 시작했다.
정도맹은 지하 뇌옥에 구금되어 있던 황제, 영한제와 고위직 관료들을 찾아 풀어 주었다.
영한제는 용맹하지 못할 뿐, 매우 명석하고 판단이 뛰어난 황제였기에 황실은 곧바로 안정을 되찾아 갔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비롯해 정도맹에 소속된 수많은 정파들은 공로에 따라 황제에게 상을 받게 되었고, 이 소식이 천하에 전해지자 백성들은 명문대파를 더욱 존경하고 신뢰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진정한 평화의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루어 낸 진정한 영웅, 사완악.
황제는 그에게 호국총도독(護國總都督)이라는 새로운 명예 관직을 만들어 하사했다.
그것은 이 나라의 최고 대장군이라 할 수 있는 좌우도독보다 한 단계 높은 관직이었고, 병력을 휘하에 두지는 않으나 황제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신분이 된 것이었다.
강호의 사람들은 그를 무신(武神)이라 불렀다.
지나가는 삼척동자라도 그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였으니.
사완악은 역사에 남을 영웅이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기이한 일이라면……
세상이 평화를 되찾고, 봄이 시작되어 아름다운 꽃이 만연하게 피어나는데.
무신 사완악의 종적이 묘연하다는 것이었다.
사완악은 강호 그 어디에서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그가 속해 있는 정유문조차 그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단, 정유문의 설린 문주만이 사완악에게 한마디 언질을 들었을 뿐이었다.
-볼일 좀 보고 올게.
황당할 정도로 간단한 한마디만 남겨 놓고 사라진 사완악이었다.
어쩌면 지극히 그다운 행동이었고, 천하에 그의 능력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니 설린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날 때까지도.
사완악은 여전히 행방불명이었다.
* * *
휘이이잉……!
흡사 귀곡성(鬼哭聲)을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맑은 하늘 아래 따뜻한 햇살이 가득한 날이었지만, 어느 산골짜기에 불어오는 칼바람은 몹시도 매서웠다.
그 산골짜기를 지나자 하나의 넓은 분지가 나타났다.
세상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은밀한 장소.
이곳은 바로 사완악이 그의 사부들인 사대악인의 손에 길러지고 자라난 곳이었다.
“멍청한 놈…….”
사완악은 언덕에 드러눕듯 앉아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하나의 무덤과 두 개의 무성의하게 세워진 석비(石碑)가 있었다.
묘비에는 각각 이러한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고금제일기재.
-나의 벗, 땡중 현종.
소림사에서는 현종의 시신을 거두지 않았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른 인격이라 해도, 어쨌든 현종의 손에 그들이 가장 존경했던 방장 대사와 원로원들이 모두 목숨을 잃었으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렇기에 사완악은 현종의 시신을 수습해 이곳으로 왔다.
이 장소는 아무리 무공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찾아오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만큼 은밀한 심산유곡(深山幽谷)이었고, 외부에는 천기자가 자연의 이치를 이용해 만든 천연의 진법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사완악은 이곳에 직접 현종의 무덤과 석비를 만들어 묻어 주었다.
“당연히 너는 나의 유일한 친구다. 좋은 친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현종이 숨을 거두기 직전 물었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사완악은 그 무덤 옆에서 한참 동안 하늘을 바라보다, 문득 품에서 하나의 서찰을 꺼냈다.
그것은 천기자가 죽기 직전, 사완악에게 남겨 둔 유언서였다.
천기자는 그 서찰에 자신이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담아 두었다고 했었다.
마교와의 싸움이 끝난 지금, 사완악은 그 유언서를 다시 한번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사완악. 아니, 이제 연소천이라고 해야겠지. 자네와 자네 가족에게는 마음을 다하여 용서를 빌어도 면목이 없네. 사실 나는 진실로 자네가 악인이 되기를 바랐네. 그리하여 천살성이 깨어나지 않고, 이 세상의 질서가 뒤바뀌길 원했네. 왜냐하면 그것은 곧 음양천자의 저주가 깨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네.
이는 매우 뜻밖의 소리였다.
천기자는 사완악을 악인으로 만들어 처리하려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그리고 음양천자라고?’
-하지만 만약 내 계획이 어긋난다면. 사대악인의 제자가 되고 영겁사령존의 악혼을 삼키고, 나에 대한 복수심까지 모두 이겨 내면서까지 이 세상을 구하는 수호성이 된다면, 자네는 어쩌면 천살성을 이길 수 있는 영웅으로 거듭났을 것이네. 그리고 그런 자네만이 음양천자의 저주를 끝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세.
음양천자라면 고대에 하늘에서 내려와 열두 명의 제자를 거두어 각자에게 다른 능력을 가르쳐 주었다는 전설의 신인(神人)이 아닌가?
정파 무공의 뿌리인 산군이나 마교의 창시자인 마선, 사령문을 만든 주선 역시 모두 음양천자의 제자라고 하였는데……
그런 음양천자의 저주라니?
사완악은 의아한 얼굴로 유언서를 계속해서 읽어 갔다.
-천의문의 십이 대 장문인께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네. 어떻게 이 세상에 반복적으로 천살성과 수호성이 나타나고, 천기를 읽고 어찌 수십 년 후에 일어날 일을 예언할 수 있으며, 어찌하여 인세와 어울리지 않는 힘들이 주기적으로 탄생하는가 말일세. 천의문의 선조들은 그때부터 이 현상에 대하여 오랫동안 깊이 연구했고, 마침내 음양천자가 수명을 다하기 직전 남겨 놓은 글귀와 그의 만행을 알아낼 수 있었네.
‘만행이라고?’
-음양천자는 본래 천계의 신들 중 하나로, 인세에 많은 능력을 전해 주기 위해 내려온 자였네. 신들은 인간에게 삶에 유익한 능력들을 전해 주고, 그 이상의 개입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네. 하지만 그 사명을 지니고 내려온 음양천자는, 인세에서 머무는 동안 전에 없던 욕망이 하나 생겼네. 바로 인세에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었네. 그것은 인간으로 치면 한 나라의 지존이 되고 싶은 것과 비슷한 감정 같았네. 하여 그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다해 인세에 주기적으로 어떤 힘들이 나타나게 만들었고, 그것을 예측할 수 있는 천기를 만들었네. 그는 인간들이 그 천기에 따라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고 싶었고, 시의적절하게 그 힘들을 조절하여 경외를 받고 싶어 했네. 하지만 하늘의 이치는 실로 공교로운 법이지. 그는 이 질서를 만들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힘을 낭비해 버렸고, 천계에서는 그에 대한 형벌로 하늘로 올라오는 길을 막아 버렸네. 아무리 신이라 할지라도 인세에 있는 이상 수명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고, 힘을 대부분 소진한 음양천자는 하늘로 다시 올라갈 방도를 찾지 못했네. 하지만 그는 소멸하기 직전, 자신의 영혼을 이 땅에 봉인해 두었고, 그의 영혼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그가 세운 질서는 계속해서 이어질 수밖에 없었네.
천기자의 놀라운 유언서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처음에 천의문의 선조들은 의아했네. 그렇다면 어째서 천계에서는 음양천자가 세운 질서를 다시 파괴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끝끝내 알아낼 수 없었네. 하지만 십이 대 장문인께서는 천계는 인세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렸기에, 음양천자가 새운 질서 역시 인세의 일 중 하나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셨네. 즉, 인세 스스로 그 일을 해결해야 된다는 말일세. 그리하여 천의문은 음양천자의 영혼이 봉인되어 있는 장소를 찾기 시작했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네. 선조들께서 그 답을 찾아갈수록, 천기는 점점 변하였네. 본래는 수호성을 이길 수 없어야 하는 천살성의 기운이 지나치게 강해지기 시작했던 것일세. 그것은 마치 음양천자의 영혼이 그가 세운 질서를 지키기 위해 세상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다시 세우려는 듯한 느낌이었네.
이후 서찰의 내용은 간단했다.
바로 천의문이 알아낸, 음양천자의 영혼이 봉인된 장소와 사완악에게 그 영혼을 파괴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이 영원한 굴레에서 인세가 자유로워지는 방법일세. 후대에는 천살성이나 수호성 같은 기운들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도록.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네뿐일세. 부디, 음양천자의 저주를 끊어 주시게.
화르르!
손에서 삼매진화가 일어나 천기자의 유언서를 불태웠다.
사완악은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말은 쉽지.”
봉인된 영혼을 찾아 파괴해 달라?
천기자가 남긴 모든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목숨을 걸어도 가능할지 모를 일이었다.
천살성과 싸우는 것만 해도 죽을 뻔한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는데, 음양천자의 영혼을 파괴하라니.
“망할 늙은이. 차라리 그냥 죽어 달라고 해라. 내가 그런 짓을 왜 하냐?”
사완악은 당대의 수호성이었고, 천살성을 이미 제거했다.
한마디로, 음양천자의 영혼이 파괴되든 말든 적어도 사완악이 죽을 때까지는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후대의 일을 막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특히 천기자의 부탁이라면 더더욱 들어주기 싫은 사완악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음양천자인지 뭔지, 그놈 때문에 내가 이 생고생을 했다는 거잖아?”
사완악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네. 받은 건 돌려줘야지.”
* * *
콰콰콰콰아아아!
과아아아……
우우웅!
거대한 굉음이 천지를 진동하고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일어나는 이곳은 남해였다.
남해 바다의 한가운데.
그곳에서 한눈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 소용돌이의 뿌리를 따라 심연 깊은 곳으로 내려가니, 하나의 신전이 나타났다.
바닷속의 신전.
대체 이곳은 어디란 말인가?
그리고 놀랍게도, 사완악은 그 신전 앞에 있었다.
사완악의 몸 주위로는 강기의 막이 형성되어 물이 침범하지 못했고, 사완악은 그 안에서 자유롭게 숨을 쉬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기이하고 신비로운 해저 신전을 들어서는 순간.
과아아아아!
돌연 엄청난 기운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