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99
정도마신 198화
사완악의 중단전에 자리 잡은 수호성의 기운.
천살성이 세상에서 가장 파괴적인 힘이라면, 수호성은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힘이다.
자줏빛 기운은 사완악의 전신을 감싸며 소용돌이 속에서 신형을 바로설 수 있게 만들었다.
물론 자세를 가다듬었다고 해서 음양천자의 기운을 일거에 뿌리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핏빛 소용돌이 안에 갇힌 사완악은 온몸이 터져 나갈 듯한 압력에 극심한 고통을 느꼈고, 단전의 내공이 진탕되며 마구 날뛰고 있었다.
음양천자는 사완악이 몸에서 흘러나오는 수호성의 기운을 느꼈으나, 얼마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것을 확신하며 더욱 공력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이때, 음양천자는 물론 강호의 그 누구도 모르는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지금의 사완악은, 얼마 전 마교와 싸웠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사완악은 자신보다 강하고 높은 경지에 이른 종천과 생사를 건 혈투를 펼쳤다.
그것은 전신의 모든 힘이 소진될 만큼 처절한 혈투였고, 사완악은 그 싸움에서 그야말로 죽음의 문턱을 밟고 돌아왔다.
시련은 무인을 강하게 만든다고 했던가?
사완악은 종천이 모든 힘을 담아 마지막 초식을 펼쳤을 때, 그동안 도달하지 못했던 깊은 무(武)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이미 입신의 경지에 들어섰던 사완악에게 새로운 깨달음은 보통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연이었다. 사완악은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우물 안의 개구리였는지 알 수 있었고, 강물에서 대해(大海)로 나아가는 길을 발견했던 것이다.
스르륵!
사완악은 두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양팔을 저으며 허공에 원을 그려 갔다.
이는 강호의 고수라면 보는 순간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무공이었다.
바로 무당파의 개파조사이자 강호에서 고금제일인을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무선(武仙) 장삼봉이 창안한 태극권이었다.
하지만 그 장삼봉이라 할지라도 지금의 사완악을 보았다면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사완악의 태극권은 이미, 무선 장삼봉의 태극권을 뛰어넘어 새로운 경지에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고오오오!
사완악이 느릿한 동작으로 원을 그리자.
소용돌이의 기류가 조금씩 이상한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완악이 다섯 번째 원을 만들어 냈을 때.
핏빛 소용돌이가 점차 느려지면서, 그 기운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저, 저럴 수가?”
음양천자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그가 쏘아낸 핏빛 소용돌이는 세상의 그 무엇도 파괴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사완악의 손이 소용돌이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며 원을 그리자, 마치 큰 보자기를 펼쳐 물건을 감싸듯 자신의 기운이 사완악의 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었다.
‘설마 나의 천신혈화를 이화접목의 수법으로?’
음양천자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이화접목이란 상대의 힘을 이용하여 돌려주는 것으로, 부드러운 무공의 기초가 되는 원리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무공을 상대할 때나 가능한 일.
세상에서 가장 파괴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 자신의 기운을 그렇게 다스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완악은 그런 음양천자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일곱 번째 원까지 그려 소용돌이를 모두 손안에 갈무리한 다음 벼락같이 쌍장을 내질렀다.
쏴아아아앙!
핏빛 소용돌이는 사완악의 손아귀에서 풀려나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음양천자를 덮쳐왔다.
처음 그의 손에서 펼쳐졌을 때보다 더 강한 힘이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
음양천자는 황급히 뒷걸음질 치며 있는 힘껏 일권을 내질렀다.
엄청난 기운의 권강이 발사되며 소용돌이와 격돌했다.
꽈앙!
음양천자의 신형이 처음으로 비틀거리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음양천자가 힘의 대결에서 밀렸다는 뜻이었다.
“어, 어떻게 이런…….”
음양천자는 이 경악스러움을 도저히 뭐라 표현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본래의 육체와 공력을 지니지 못했다 하지만……
이 신전 안에서 음양천자 자신이 누군가에게 패배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해 본 적 없었다.
심지어 그 상대가 인간이라니?
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불가능한 일이 저 괴상한 놈에 의해 일어나고 있었고, 그것은 아직 끝이 아니었다.
휘우우웅!
사완악의 오른손에서 갑자기 불꽃같은 기운이 솟아났다.
검붉은 색깔의 그 불꽃은 묵색광검에서 일어나는 것이었고, 공포스러우면서도 매우 익숙했다.
바로 종천이 마혼신공을 이용해 천마신공과 천살성의 기운을 합쳤을 때의 느낌이었다.
이는 바로 현종의 작품이었다.
현종은 종천의 자아가 분열되었을 때, 재빨리 그 몸을 차지하여 불가의 비전을 이용해 종천의 남은 기운을 묵색광검에 봉인했다.
물론 평범한 사람이 이 묵색광검을 사용한다면 그 검붉은 불꽃에 실린 힘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나.
사존의 힘과 수호성의 힘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사완악은 자유자재로 묵색광검을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사완악의 입에서 기이한 주문이 흘러나왔는데, 그것을 들은 음양천자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너 설마 사령녹리완천(邪靈綠彲腕釧)까지 지니고 있는 것이냐!”
그것은 과거 음양천자가 천계에서 가져와 주선에게 주었던 보물 중 하나였다.
물론 사완악의 내공을 머금은 후에는 사령적화완천이 되었지만, 어쨌든 음양천자는 그 주문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스르르!
사완악의 옆에 그와 똑같은 옷에 똑같은 기운을 가진 한 명의 분신이 생성되었다.
사완악은 자신의 분신에게 매화신검과 영천검을 주었고, 자신은 묵색광검을 들었다.
그리고 번쩍!
사완악과 분신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승광신법을 펼치며 음양천자를 공격해 갔다.
마치 두 줄기 빛살이 쏘아지는 듯한 신법과 인간의 무공이 아닌 듯한 엄청난 기운이 네 개의 손에서 펼쳐졌다.
그야말로 공전절후(空前絶後)한 절대신인(絶代神人)의 경지……!
“감히 인간 주제에!”
음양천자는 노성을 터뜨리며, 자신이 지니고 있는 모든 힘을 끌어 올렸다.
사완악과 그 분신은 어느새 양의심공을 운용하여, 양손으로 각자 다른 절학을 펼쳐 냈다.
“귀신은 썩 물러가라, 이 말씀이다!”
“내가 만든 세상이다! 나의 세상이란 말이다!”
꽈과광!
콰콰콰쾅!
과아아아!
핏빛이 광란(狂亂)하며 경천동지할 위력의 경력들이 서로 충돌했다.
천계의 신이 타락하여 남겨진 욕망의 혼령과 인간의 힘을 초월한 신마인(神魔人)의 대결.
남해 바다 한가운데에 일어난 거대한 소용돌이 위로 회오리가 일어났다.
심연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절세무비의 싸움은 거대한 자연의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몇백 번의 격돌이 일어났을까?
음양천자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지던 어느 순간.
“크아아아아악!”
악마가 울부짖는다면 이런 소리일까?
혼백이 가루가 되는 듯한 비명이 신전 안을 가득 메웠다.
마침내, 남해의 소용돌이도 멈추었다.
* * *
하북성의 정유문(正柔門).
백 년 전, 강호 제일의 대협이라 불렸던 정유검 설영충이 세운 문파.
한때는 강호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었으나, 후대가 그 무공의 정수를 제대로 이어받지 못했고, 연이은 사고로 문파의 고수들을 잃으며 결국 삼류문파보다 못한 신세로 전락한 곳.
그러던 어느 날.
이 정유문에 사완악이라는 기이한 청년이 찾아와 문도가 되었고, 하북성에서 패악질을 일삼았던 흑사방을 무찌르고, 하나의 객잔을 열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으며, 훗날에는 악마의 군단이라는 마교로부터 강호와 황실을 구해 낸 영웅이 되었으니.
이제는 하북성이 아니라 중원을 전체를 통틀어도 감히 정유문의 이름 앞에서 겸손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또한 마교와의 싸움이 끝난 후, 정유문의 문주 설린 역시 온 강호에 그 명성을 날리게 되었는데. 그녀는 이십대 초반의 나이임에도 절정의 수준에 이르러 중원 오대 여고수로 꼽혔고, 사천당가의 당소윤 대신 새로운 사대 미녀 중 한 사람으로 불리게 되었다.
따라서 강호에서는 독화(毒花)가 시들고 청화(淸花)가 피어났다는 말이 번지게 되었다.
사천당가 입장에서는 부끄러운 말일 수 있으나 그들이 오히려 먼저 나서서 정유문의 문주 설린의 미모를 칭송할 정도였으니, 정유문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어쨌든 여인도 절정의 고수가 될 수 있는 강한 무공과 아름다운 미모, 그리고 천하가 두려워하는 명성을 지니고 있으니 정유문에는 문도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구름같이 밀려들었고, 대협 설영충이 살아 있을 적보다 더 빛나는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대단한 정유문의 문주, 청화신검(淸花神劍) 설린은 밤하늘 아래 정원을 노닐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정유문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것은 설린의 증조부 때부터 대대로 내려온 그녀 집안의 숙명이자 소원이었다.
그 소망은 과할 정도로 성공적으로 이뤄졌고, 어쩌면 앞으로 더욱 성장하여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같은 명문대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도 모를 정도였다.
한 문파의 문주로서는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을 해냈다고 볼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표정에는 참을 수 없는 쓸쓸함만이 가득했다.
그 이유는 물론, 사완악을 향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사 공자님은 어디 계신 것일까…….”
볼일을 보고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훌쩍 떠나 버린 사완악.
처음에는 그의 능력이라면 어떤 일이든 금세 돌아올 것이라 여겼건만.
무려 일 년이 넘도록 사완악은 깜깜무소식이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사완악의 행방을 좇았지만, 사완악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중원의 모든 소식을 알 수 있다는 개방이 발 벗고 나서도 어떤 단서조차 찾아내지 못했고, 사완악의 동생인 연비려와, 그의 어머니인 연가인조차 아무런 언질을 듣지 못했으니.
하늘로 솟은 듯, 땅으로 꺼진 듯 사라진 인세의 영웅.
설린은 사완악이 해맑은 웃음이 눈앞에 아른거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설마 공자님에게 무슨 일이 생기신 것은 아니겠지.”
설린은 스스로 말하고도 고개를 저었다.
마교의 초절정 고수들을 홀로 쓰러뜨리고, 그 엄청난 종천마저 이긴 사완악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사완악은, 설린을 포함한 다른 가족들에게 아무 말도 없이 이렇게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을 사람이 아니었다.
설린은 스스로를 위로하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니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자. 사 공자님을 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있긴 있더라고. 사람은 아니었지만.”
별안간 등 뒤에서 들려온 낯익은 음성.
설린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지며 태어나서 가장 빠른 속도로 몸을 돌렸다.
그곳엔, 흰 얼굴에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닌 한 미청년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