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27
정도마신 26화
“크게 소문이 날 수 있는 일을 무엇이든 알아봐 달라고 하셨잖아요.”
“아하.”
사완악은 반가운 얼굴로 눈을 반짝였다.
그것은 사흘 전의 일이었다.
사완악은 새로운 정유검법을 수련 중인 설린을 찾아가, 그녀에게 부족한 부분을 가르쳐 준 뒤 한 가지 부탁을 했었다.
‘나도 초대 문주님처럼 협객이라는 명성을 얻고 싶은데, 방법이 있을까?’
‘협객이요?’
‘사실은 그게 나를 키워 주신 사부님들의 간절한 소망이었거든.’
설린은 사완악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이 있지만, 사완악의 사부들은 어려서부터 그를 키웠다고 하니 정말 부모와 같은 존재들일 것이다.
그리고 사완악처럼 엄청난 제자를 길렀으니, 그 제자가 정의로운 협객으로 천하에 이름을 떨치기를 바라는 것은 사부로서, 그리고 부모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가 기다리던 소식은 맞는데, 왜 안 좋은 소식이지?”
설린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육사괴(六死怪)에 관한 소식이라서요. 혹시 그들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아니, 처음 듣는데.”
“육사괴는 악명 높은 여섯 명의 의형제예요. 그들은 언제나 함께 다니며 온갖 나쁜 짓을 일삼았는데, 무공이 매우 고강할 뿐만 아니라 독공(毒功)과 암습에도 능해서 정파의 이름난 고수들조차 상대하기를 꺼렸어요. 그러던 중 강소성 일대에서 한 청년 무인이 뱃놀이 도중 그들과 가벼운 시비가 붙었다가 독공에 당해 반신불수가 되어 버린 일이 있었어요. 하지만 육사괴는 일을 저지른 후에야 청년이 강호의 명문 무림세가인 남궁세가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사완악은 재밌다는 듯 말했다.
“남궁세가라면 나도 들은 적이 있지. 삼대 무림세가 중 한 곳이라고.”
설린이 말했다.
“맞아요. 육사괴는 그 사실을 알고 처음으로 곤혹스러움을 느꼈죠. 그들은 강호에서 겁 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 같았지만, 알고 보면 명문대파의 사람들과는 마찰을 피해 다니는 영악한 자들이었어요. 아무리 그들의 재주가 뛰어나다 해도 천하의 남궁세가와 정면으로 맞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죠.”
“그래서 어떻게 됐지?”
“육사괴는 그 이후로 강호에서 모습을 감추었어요. 남궁세가에서는 사람을 고용해 그들을 추적했지만, 그들은 땅으로 꺼진 듯 어떤 단서조차 찾을 수 없었죠. 그렇게 일 년이 흐르고 결국 남궁세가도 복수를 포기했어요. 이 모든 것이 오 년 전의 일이에요.”
사완악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사괴(死怪)라는 거창한 이름치고는 겁 많은 강아지들이었군. 그런데 그 잠적했던 육사괴가 다시 나타났다는 거야?”
“맞아요. 정확히는 그들의 은거지가 발견되었어요. 산서성의 태령촌이라는 산골 마을에 그들이 거주하고 있다고 해요. 그들은 정말 많은 악행을 저지르고 다녔으니, 사 공자님께서 그들을 찾아가 제압한다면 틀림없이 명성을 얻으실 수 있을 거예요.”
사완악이 그녀에게 물었다.
“남궁세가에서는 나서지 않는 것인가?”
“저도 그 점이 의아했는데, 남궁세가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요. 소문에는 남궁세가에 중요한 일이 생겼다고 하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죠. 하긴, 오 년이나 지난 일이고, 반신불수가 되었던 그 청년은 남궁세가에서도 직계가 아닌 방계였으니 다른 일을 우선시할 수도 있겠죠.”
사완악의 얼굴에 기분 좋은 미소가 떠올랐다.
“때마침 이런 기회가 찾아오는군. 그런데 이게 왜 안 좋은 소식이지?”
“사 공자님께서는 기다리시던 일일지 몰라도, 그런 나쁜 사람들이 세상에 다시 나타났으니 좋지 못한 일이죠. 그리고…….”
설린은 잠시 주저하다가 말했다.
“그들은 정말 위험한 자들이에요. 특히 은거지에 거주하고 있다면, 그들은 자신들을 찾아오는 자들을 방비하여 대비를 해 두었을지도 모르죠. 남궁세가에서 바로 나서지 못하는 것도, 상당한 고수가 아니고서는 그들을 상대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어요. 혹시나 집안의 고수 한두 명을 보냈다가 봉변을 당하게 된다면 정말 큰일이 아니겠어요? 사 공자님이 알아봐 달라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알려 드리지만, 제 생각에 이번 일은 나서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사 공자님의 무공이 대단한 것은 알지만, 그들은 여섯이고 공자님은 한 명이잖아요.”
하지만 설린의 말을 들은 사완악은 오히려 기대감에 가득 찬 듯, 특유의 장난꾸러기 같은 눈빛을 빛내기까지 했다.
“설 문주의 말대로라면 이건 오히려 좋은 일이야.”
설린이 의아한 표정으로 사완악을 쳐다봤다.
“그게 무슨 말씀이죠?”
“그런 악인들이 세상에 나왔으니 안 좋은 일이라며? 하지만 이 사완악을 만나 다시 사라지게 될 터이니, 설 문주의 논리대로라면 아주 좋은 일이지.”
설린은 사완악을 보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흑사방을 찾아갔을 때도 그렇지만, 사 공자님은 본인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 같은 건 조금도 하지 않으시는군요.”
사완악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일신의 안위 때문에 전전긍긍하면서 피해 다닌다면 협객이라고 할 수 없지 않겠어?”
“아…….”
순간, 설린은 멍한 얼굴로 사완악을 바라봤다.
‘일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협을 논할 수 없다.’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것은 정유문의 초대 문주인 설영충이 생전에 했다는 말과 너무나 비슷했다.
‘사 공자님은 정말 그릇이 다른 분이었구나.’
그녀는 동시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울적해졌는데, 그 이유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럼 정말 그들을 찾아 산서성에 다녀오실 생각이시군요.”
“그래야지.”
“언제 출발하실 건가요? 여정에 필요하신 것들을 준비해 놓겠습니다.”
그러자 사완악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불쑥 말했다.
“설 문주, 같이 갈래?”
“예?”
설린은 예상치 못한 말에 과할 정도로 깜짝 놀라며 사완악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산속에서 자란 나보다는 설 문주가 여러모로 능숙할 테니까. 아, 문주가 자리를 비우는 것은 곤란한가?”
설린은 자신도 모르게 칼같이 대답했다.
“아니요. 가능합니다.”
설린은 스스로 너무 기다렸다는 듯 대답한 것 같아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화, 황 총관님과 관 숙부님이 계시니까요. 그리고 사 공자님과 함께 있으면 제 검법 수련에 훨씬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지금은 무엇보다 문주인 제가 강해지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사공자님이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다, 당연히 제가 도와드려야 하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우리가 함께 가는 것이 상부상조(相扶相助)로군.”
“맞아요! 상부상조. 아, 대신 총관님과 숙부님한테는 육사괴에 관한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 두 분은 저를 너무 깊게 생각하셔서 걱정이 지나치신 면이 있거든요.”
사완악은 알겠다고 답했다.
“그럼 전 일단 총관님과 숙부님께 말씀을 드리고 오겠어요.”
설린은 잔걸음으로 빠르게 멀어졌다.
사완악은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흥미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설 문주가 나를 좋아하나?’
* * *
설린은 황음과 관일성에게 사완악과 인연이 있는 사람을 만나고 오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설린의 말에 흔쾌히 동의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사완악에게는 설린이 필요할 것이고, 반대로 설린은 사완악과 동행하며 안전하게 강호를 경험하고 무공 수련의 도움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육사괴를 잡으러 간다는 진실을 알았다면 조금 달랐겠지만, 사완악도 능청스럽게 말을 맞춰 주니 두 사람이 알 방법은 없었다.
다만 일행은 한 사람이 추가됐다.
바로 구휘였다.
구휘는 자신도 함께 동행하여 식견을 넓히고, 더불어 무공도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허드렛일을 도맡아 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것이 구휘의 생각이었다.
황음과 관일성은 그 말을 듣고 매우 옳다고 생각하여 구휘를 꼭 데려가라고 했고, 설린은 이 위험한 여정에 구휘를 데려가는 것이 염려되었으나 거절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
이튿날, 그렇게 세 사람은 정유문을 떠났다.
설린은 경비를 아끼기 위해 궁리했으나, 사완악에게는 여전히 많은 금덩이가 남아 있었다.
사완악은 굳이 그것을 아껴 쓰려 하지 않았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음식이었다.
사완악이 세상에 나와 가장 큰 충격과 행복을 느끼게 된 것이 식도락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요리들이 즐비한데, 사부들은 왜 그동안 그딴 음식들만 내게 주었단 말인가? 이 향긋한 술맛은 또 어떻고? 구득소 사부가 담갔던 술들은 독약이나 다름없었다.’
사완악은 네 명의 사부가 정말 지독한 악인이었다는 것을 새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이런 사완악의 취향 덕분에 설린과 구휘는 덩달아 호강했다.
세 사람은 튼튼하고 비싼 말을 사서 이동했고, 동네에서 가장 음식이 맛있기로 소문난 객잔을 찾아 숙박했다.
정유문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사람들이 설린과 사완악을 알아보기도 했는데, 재밌는 것은 사완악에게 하나의 별호가 붙은 것이었다.
“저 여인이 그 정유문의 문주로군.”
“소문대로 겁나 예쁘게 생겼네. 그럼 혹시 그 옆의 준수한 청년은 광대 협객일까?”
“그런 것 같네. 내 아는 사람도 그날 비무를 참관했는데, 궁화종은 물론이고 광투견 엽응마저 상대가 되지 않았다더라고.”
“그런데 왜 광대 협객이지?”
“그가 사용하는 권법이 마치 광대들의 묘기처럼 괴이하고 우스꽝스러운 동작들로 이루어져 있고…… 저, 저 표정 보게. 천하의 광투견과 싸울 때도 저렇게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미소가 가득했다고 하네. 그리고 저 청년의 광대권법에 전도귀 장광이라는 사파 고수도 흠씬 두들겨 맞았다는 소문이 있네.”
“히야, 대단한 청년 고수일세. 이렇게 보니 두 사람이 참으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네. 왠지 그 일을 계기로 서로 마음을 주었을 거 같지 않나?”
“하하. 암, 젊은 남녀가 함께 그런 일을 겪었으니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할 건…… 허, 험!”
사람들의 이야기는 항상 마지막에 그런 쪽으로 빠졌지만, 그럴 때마다 구휘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노려봐서 입을 다물게 했다.
설린은 가끔 얼굴을 붉히기는 했으나 크게 반응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갔다.
그런 말들은 어차피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사 공자님, 그래도 벌써 협객이라는 호칭을 듣게 되셨네요. 나중에는 정말 강호 전체에 저 별호가 알려지는 것 아닐까요?”
“광대 협객이라. 나쁘지는 않은걸?”
사완악은 그 별호가 꽤 마음에 들었다.
그는 엄숙한 것보다 가벼운 것이 좋았고, 진지한 것보다는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것이 좋았다.
정유문을 떠난 지 나흘이 지났을 때부터는 그들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매일 밤, 그들을 은밀히 지켜보는 한 쌍의 눈동자가 있었다.
그 사실은 천하의 사완악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