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3
정도마신 2화
천기자가 뭐라 답을 하기도 전에 뒤편에서 사마소의 말이 들려왔다.
“구득소! 그건 안 될 일이야. 저 늙은이가 그 정도 대비도 해 두지 않았을 리 없지. 만약 우리가 저자를 죽인다면 이곳에 없는 천의문의 제자들이 강호에 이 장소를 노출시키도록 해 두었을 거다.”
“쩝……! 그런가?”
구득소가 곤란하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천기자는 사마소의 혜안에 감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 뒤 말했다.
“과연 신천마뇌라는 별호는 명불허전이오. 그렇소. 당신들이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거나 강제로 이곳을 뺏으려 한다면, 당신들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오.”
그때, 염라대사 영환이 고함을 지르듯 앙천대소(仰天大笑)를 터뜨렸다.
“하하! 천기자! 이곳의 다른 놈들은 몰라도 나 염라대사가 그따위 협박에 굴할 것 같으냐?”
천기자는 담담한 안색으로 말했다.
“어차피 당신들은 강호에서 활동할 수 없는 신세. 그런 그대들이 안전이 보장되는 이곳에서 자신의 뒤를 이을 제자까지 기를 수 있는 것이 아니오?”
농염한 웃음소리와 함께 요희요검 채보령이 말했다.
“당신의 조건은 매력적이에요. 그러나 사마소의 말대로 왠지 당신의 계획대로 놀아나는 꼴 같아서…… 차라리 강호의 무사들과 운우지락(雲雨之樂)을 누리다 죽고 말겠어요.”
천기자는 사대악인의 면면을 살핀 후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소. 하지만 이건 나로서도 모험이나 마찬가지요.”
“모험이요?”
“그렇소. 나는 그대들에게 수호성의 아이를 악인으로 길러 달라고 했지만…… 사실 당신들이 그 아이를 완전(完全)한 악인으로 교육할 수 있을지 의문이오. 만약 수호성의 기운대로 정의로운 인물이 된다면 내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오.”
천기자의 말에 사대악인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들에게는 악인이라는 점 외에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그 누구보다 자존심과 승부욕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었다.
잔혹신풍 구득소가 웃기지 말라는 듯 말했다.
“우리 네 사람이 힘을 합쳐서 악인 하나를 제대로 못 길러 낼 거란 말인가?”
천기자가 말했다.
“그 아이는 수호성의 기운을 타고난 아이요. 쉽게 악에 물들 아이는 아니라는 것이오. 그래서 나는 당신들을 찾은 것이오. 천하의 사대악인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이 아이를 악인으로 길러 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오.”
잔혹신풍 구득소가 팔짱을 끼고 중얼거렸다.
“흐음…… 이것 참. 갑자기 구미가 당기는걸. 염라대사, 어떻게 생각하지?”
염라대사 영환도 흥미롭다는 듯 생각에 잠겨 있었다.
기실 사대악인 네 사람은 천기자의 조건을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아무리 그들이 강하다 한들 강호 전체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을 생각 역시 털끝만큼도 없었다. 어떻게든 탈출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 다만, 그들의 자존심상 천기자의 협박 섞인 부탁을 선뜻 승낙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천기자의 말을 다 듣고 보니, 그들이 조건을 받아들일 명분도 생겼거니와 묘한 승부욕이 마음속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하! 사대악인이 진정한 악인을 길러 낼 수 있느냐 없느냐, 그 대결이란 말이지? 나쁘진 않군.”
요희요검 채보령도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사실 제자를 기르는 것도 재밌을 거 같긴 해요. 우리 네 사람의 모든 것을 물려받는다면…… 그 녀석이 강호에 나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지는군요.”
신천마뇌 사마소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강호의 구원자를 재앙으로 만드는 일이라면…… 나름 무료하진 않겠군.”
* * *
“쿨럭……!”
천기자는 입에서 한 움큼의 선혈을 내뱉으며 무릎을 꿇었다. 세 명의 청년이 동시에 그를 부축하며 안타까워하는 음성을 내뱉었다.
“사부님……!”
“됐다. 내 병세가 급격히 악화된다는 건……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어 가고 있다는 뜻이니.”
청년 중 한 명이 말했다.
“수호성이 과연 우리가 원하는 악인으로 자라날 수 있을까요?”
천기자는 가쁜 숨을 내쉬며 청년에게 말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아니겠느냐. 사대악인은 생각보다 더 대단한 자들이다…… 부디 천살성의 기운이 중화되어야 할 터인데…… 큭!”
천살성의 기운이 중화되어야 한다니?
알 수 없는 말을 읊조리던 천기자는 다시 한번 피를 토해 냈다. 그의 얼굴은 흡사 귀신을 본 듯 창백해져 있었고, 온몸은 앙상하게 말라 마른 나뭇가지같이 변해 있었다.
“사부님……! 어서 운기조식이라도 하셔야…….”
제자의 말에 천기자가 담담히 미소를 지었다.
“천명(天命)을 거스른 형벌(刑罰)을 어찌 피한단 말이냐? 이제는 너희가 나를 대신하여 천의문의 마지막 사명을 끝마쳐야 한다. 알겠느냐?”
세 명의 청년은 슬픔이 가득한 눈빛으로 사부 천기자를 바라보다가 결연히 고개를 숙였다.
“예, 사부님.”
* * *
사대악인 네 사람은 침상 위에 눈을 감고 누워 있는 한 어린아이를 바라보며 감탄을 터뜨렸다.
“미간의 자색(紫色) 빛이라…… 불쾌할 정도로 정순(貞順)한 기운을 품고 있구나. 이것이 수호성의 기운인가?”
“체형 역시 비범해요. 이런 신체는 유연함과 강건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법이죠. 아아……! 이 아이가 제대로 자라난다면 정말 여러 여자를 만족시키겠어요.”
요희요검 채보령은 아이의 몸을 이곳저곳 만지며 얼굴에 홍조를 띠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어린아이를 보며 색욕(色慾)을 느끼다니…… 네년은 정말 어쩔 수 없구나.”
염라대사 영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별안간 자신의 손가락 두 개를 아이의 명치에 갖다 대었다. 그러자 그의 손가락에서 뜨거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니, 아이의 몸이 고통에 몸부림치듯 격렬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잔혹신풍 구득소가 소리를 질렀다.
“야이, 땡중아! 뭐 하는 짓이냐?”
“이 녀석의 근골을 확인하는 것이다.”
염라대사 영환은 더욱 강하게 진기를 불어넣으며 발작을 일으키는 아이의 모습을 냉철하게 살폈다.
“이 미친놈아! 그러다 죽는단 말이다!”
구득소의 신형이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영환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염라대사 영환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다른 손으로 가볍게 일장을 쳐 냈다.
파앙!
마치 압축된 공기가 터져 나가는 듯한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지며 구득소의 신형이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구득소. 같은 칠대고수라고 해서 너와 내 수준이 똑같은 줄 아느냐? 네놈 뱃살의 기름기를 다 쥐어짜 버리기 전에 가만히 있어라.”
“뭣이……!”
염라대사 영환의 말처럼 칠대고수 내에서도 서열은 있었다.
염라대사 영환은 칠대고수 사이에서도 세 손가락에 꼽히는 존재. 반면 잔혹신풍 구득소는 가장 약한 편에 속했으니, 두 사람 사이에는 확실한 격차가 있었다.
“만약 이 정도로 죽을 나약한 녀석이라면 우리의 제자가 될 자격 따위는 없는 거다.”
구득소는 염라대사의 행동에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별다른 반박을 하지는 못했다.
확실히 그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시 후, 아이의 몸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나 시험하던 염라대사 영환은 안색이 점점 굳어졌다.
‘무공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이 정도의 공력을 받아들이다니……!’
강건한 무사라도 목숨을 잃을 정도의 기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이 어린아이의 근골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 정도면 되었겠지?”
침묵을 지키던 신천마뇌 사마소의 말에 염라대사는 ‘음…….’ 하는 소리와 함께 손을 거두었다.
사대악인들은 영환 대사의 표정만 보고도 아이의 근골이 어떠한지 잘 알 수 있었다.
사마소가 말했다.
“아이의 무재(武才)는 확실하니…… 이제 우리는 이 아이를 어떻게 악인으로 길러 낼지 생각해야겠군.”
잔혹신풍 구득소가 킬킬대며 말했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된다. 난 이 녀석이 약관이 되는 해에 구천살심공(九天殺心功)을 전수할 생각이니까.”
사마소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구천살심공! 당신 설마 그 심법을 익혔나?”
구천살심공(九天殺心功).
구득소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지만, 이것은 강호에서도 금기로 지정된 사이(邪異)한 내공심법 중 하나였다.
구천살심공을 익힌 자는 비약적으로 내공이 증가하지만, 그것과 비례하여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살심이 끊임없이 샘솟는다는 저주받은 심법이었다.
“흐흐…… 구천살심공을 완성하면 백 번의 살인을 하기 전까지는 결코 살심을 억누를 수 없게 되지. 강호에서 악인으로 불리기에는 충분하다.”
요희요검 채보령이 뒤이어 말했다.
“호호, 난 이 아이가 강호로 나갈 때 탈정미혼공을 전수하죠. 여자가 아닌 남자가 이것을 익히면 욕정이 온몸을 지배하죠. 아마 강호에서 대색겁(大色劫)이 일어날 거예요.”
염라대사 영환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거기에 내 염화신공까지 전수한다면, 강호에 유례없는 색마가 탄생하겠군.”
신천마뇌 사마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재주들도 나쁘지는 않겠군. 하지만 난 이 아이에게 더욱 근본적인 안배를 해 둘 생각이다.”
“근본적인 안배?”
다른 사대악인들이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사마소는 품에서 목함 하나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영환 대사와 구득소, 채보령은 동시에 헛바람을 들이켰다.
“헛!”
“으음!”
“이건…….”
목함에는 한 알의 검은 환이 들어 있었는데,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실로 요사(妖邪)하고 귀기(鬼氣)가 넘친다는 표현밖에는 형용할 말이 없었다.
사마소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영겁사령환(永劫邪靈丸)이지.”
영겁사령환.
천기자의 강호역사서에도 언급된 적 있는 이것은, 삼백 년 전 강호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사령문(邪靈門)의 사라진 보물이었다.
이미 까마득한 전설이 되어 버린 사령문의 보물을 어떻게 사마소가 갖고 있었던 것일까?
“사실 나도 이 약의 효능을 완전히 알지는 못하지만…… 내 사부의 말에 의하면 이것을 복용한 자는 마음 깊숙한 곳에 마(魔)가 자라난다고 했다.”
요희요검 채보령이 질린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정말 보통 기운은 아니군요. 내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라니…….”
영환 대사와 구득소 역시 동의한다는 표정이었다.
“이 녀석의 이마에 서려 있는 자색 기운을 보는 순간, 영겁사령환이 요동치듯 기운을 내뿜고 있다. 아마도 이 아이의 정순한 기운에 반응하는 것이겠지.”
사마소는 잠시 아이를 바라보다가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이 약은 보통 사람이라면 복용하는 순간 목숨을 잃을 정도로 강력한 기운을 담고 있다. 그 기운으로부터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약 이 갑자의 내공이 필요한 일…… 우리 네 사람이 함께 이 아이에게 삼십 년의 내공을 불어넣어야 한다. 당신들은 동참할 수 있겠는가?”
무인에게 삼십 년의 내공이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대악인들은 사마소의 말을 들으며 오히려 흥미진진한 얼굴로 눈을 빛내는 것이 아닌가? 구득소가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영겁사령환에 구천살심공, 거기에 탈정미혼공까지…… 클클! 이거 어떤 녀석이 탄생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
그렇게 사대악인의 손에서 수호성의 기운을 타고난 아이는 하나의 악마로 재탄생되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