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33
정도마신 32화
사완악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들 그렇게 쳐다봐?”
구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니, 정말 몰라서 물어보시는 거예요?”
사완악은 뭐가 문제냐는 듯 눈을 끔벅였다.
설린은 사완악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사 공자님, 스님들은 고기와 술을 먹지 않습니다.”
사완악은 강호에 나온 이후 가장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이 맛있는 것들을 왜 안 먹는다는 거지?”
설린이 말했다.
“불가(佛家)에서는 살생을 금하고 있기 때문에 스님들은 육식을 하지 않는답니다.”
사완악은 별 해괴한 이야기를 다 듣겠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그럼 승려들은 풀때기만 먹고 산단 말이야?”
설린과 구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진짜? 참 기가 막힌 일이군.”
사완악은 그러면서 생각했다.
‘하여간 영환 사부는 진짜 엉터리 땡중이었구나.’
사완악이 불가의 규율을 알지 못했던 것은 사부인 염라대사 영환 때문이었다.
사완악의 기억 속에서 사부 영환 대사는 산짐승을 잡아다 고기를 구워 먹었고, 구득소가 담근 쓰레기 같은 술을 매일 물처럼 마셨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고기는 그렇다 치고, 술은 왜 안 마시는 거지?”
현종은 사완악에게 대답했다.
“술은 사람의 판단력을 탁하게 만들고, 죄를 짓게 되는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으며, 다툼이 생기고, 본능에 치우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완악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아, 현종 스님은 아주 나약한 사람이었군.”
현종이 사완악을 바라봤다.
사완악은 비웃음이 담긴 미소로 말했다.
“내가 아는 스님 중에 매일 술을 항아리째 마시는 분이 계셨지. 하지만 그분은 한 번도 취해서 행패를 부리지 않았고 다투지도 않았으며 본능적으로 행동하지도 않았거든. 그분은 술을 아무리 마셔도 평소와 똑같았다니까.”
사완악은 동시에 생각했다.
‘영환 사부는 취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원래 그랬으니까. 취하나 안 취하나 똑같았지.’
물론 이와 같은 사실을 다른 사람은 알 리 만무했다.
사완악이 이어서 말했다.
“그분이 말씀하시길, 모름지기 사내라면 통쾌하게 술을 마실 줄 알아야 한다고 했는데…… 아, 스님은 사내라고 볼 수 없는 건가?”
사완악의 말에 현종의 짙은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설린은 사완악을 타이르듯 말했다.
“사 공자님, 아무리 그래도 스님에게…….”
그런데 이때 현종의 음성이 들렸다.
“한 잔 주시오.”
설린과 구휘는 뜻밖이라는 듯 현종을 바라봤다.
설마하니 현종이 이런 유치한 도발에 넘어갈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자 사완악은 낄낄대며 현종의 술잔을 채웠다.
“그래야지. 여기서 내빼면 스님이 아니라 비구니지.”
현종은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라는 듯 단숨에 술잔을 비워 버렸다.
“시주도 받으시오.”
사완악 역시 술을 받아 한 번에 마셨다.
두 사람은 그렇게 연거푸 세 잔을 서로 주고받았다.
현종은 처음 마시는 술의 기운에 뜨거운 호흡을 한 차례 내뱉었다.
사완악이 말했다.
“내공으로 취기를 억누르는 건 금지야. 그럴 거면 술을 마실 이유가 없으니까.”
현종이 사완악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당연한 소리를 왜 하는 것이오? 그래도 안주는 다른 것을 좀 시켜 주시오. 소승은 여비가 부족한지라.”
사완악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현종을 쳐다보다가 묘한 미소를 짓고는, 육류가 들어가지 않은 요리들을 주문했다.
설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두 분은 정말 못 말리겠네요.”
“설 문주도 한 잔 합시다.”
“저는 술이 약해요. 사내가 아니니 굳이 권하시지 않을 거죠?”
“그건 안 될 말이지. 세상에 불가에 귀의한 스님도 술을 마시는데, 술이 약하다는 핑계로 한 잔도 안 마실 생각이야?”
설린은 사완악의 능청스러운 말에 입을 딱 벌렸다.
“아까는 스님이 왜 술을 마시면 안 되냐고 따지지 않았어요?”
“그때는 세상 물정을 모를 때였지.”
설린은 졌다는 듯 웃음을 보였다.
“알겠어요. 대신 딱 다섯 잔만 마실게요.”
구휘가 옆에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문주님, 그래도 타지인데 마시지 않으시는 게…….”
설린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다섯 잔 정도는 크게 상관없단다.”
“하지만…….”
“조용히 해라, 꼬마야. 어른들 술 마시는 데 끼지 말고.”
사완악은 신이 나서 설린의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구휘는 불안한 얼굴로 설린을 바라봤지만, 설린은 개의치 않고 술잔을 비웠다.
“캬아! 역시 이 맛…….”
“응?”
설린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다가 조금 당황하며 말했다.
“아, 아니에요. 역시 이 맛은 적응이 잘 안 되는군요.”
“하하. 마시다 보면 적응이 될 거야.”
그렇게 세 사람은 서로 돌아가며 잔을 채워 주었다.
사완악이 술잔을 비우면, 현종은 질세라 한 잔을 마셨고, 그러면 설린도 한 잔을 마셨다.
그런데 어느 순간, 현종은 한 가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캬, 한 잔 더 주세요.”
“호호, 좋아요. 한 잔 더 주세요.”
“사 공자님, 현종 스님! 한 잔 더! 한 잔 더!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끊임없이 술잔을 내미는 사람은 다름 아닌 설린이었던 것이다.
“설 문주님, 다섯 잔만 마시기로 하시지 않았습니까?”
“뭐라고요?”
설린이 살짝 풀린 눈으로 현종을 노려봤다.
“아직 세 잔째거든요? 빨리 한 잔 안 줘요?”
사완악과 현종이 서로를 쳐다봤다.
‘취했군.’
구휘는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아아, 시작됐다…….”
설린은 그 후로도 다섯 잔을 더 마신 다음에 다소곳이 말했다.
“아, 벌써 두 잔이나 마셨네…… 오늘따라 취기가 빨리 도는 느낌이네요.”
사완악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두 잔이 아니라 스무 잔도 넘은 것 같은데.”
그러자 설린이 정색하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에요? 아무리 사 공자님이라도 너무 지나친 언사이십니다. 한 잔 더 주세요.”
“…….”
“빨리요!”
사완악은 술을 따라 준 후 구휘를 쳐다봤다.
구휘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사실은 문주님이 술을 너무 좋아하셔서 한번 취하시면 말릴 수가 없어요. 아까 말렸어야 했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더 빨리 폭주를 하셔서…….”
설린이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 무슨 소리니. 휘아야, 나는 다섯 잔 이상은 마실 수가 없단다.”
사완악과 현종은 구휘의 말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완악이 장난기 가득한 미소로 말했다.
“뭐 하루쯤 거하게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이때 설린이 현종을 보며 말했다.
“현종 스님은 정말 잘생긴 것 같아요. 사 공자님도 준수하시지만, 조금 기생오라비 같은 면이 있잖아요? 그에 반해 현종 스님은 조각을 깎아 놓은 것 같은 미남이에요.”
사완악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설린을 쳐다봤다.
“면전에서 이렇게 비교할 줄은 몰랐군.”
현종은 술 때문인지, 약간의 쑥스러움인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좋게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때 설린이 뭐가 그리 웃긴지 혼자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왜 저는 현종 스님이 스님처럼 안 느껴질까요?”
현종이 멈칫하며 고개를 들어 설린을 쳐다봤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냥 신기해서요. 제가 지금까지 봤던 스님들과 현종 스님은 조금 다른 느낌이에요.”
설린은 취해서 중얼거리는 말이었지만, 현종은 진지하게 되물었다.
“어떻게 다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설린은 눈을 반쯤 감은 채 꼬인 발음으로 말했다.
“현종 스님에게는 다른 종류의 위엄이 있어요.”
“다른 종류의 위엄이요?”
“현종 스님은 겸손하고 또 진중하시지만…… 그 무거운 느낌은 스님이 아니라 황실의 높으신 분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마치 천하를 오시하는 제왕처럼…… 자애로운 스님이 아니라 천하를 호령하는 대장군처럼…… 헤헤, 제가 무슨 말을 하는 걸까요? 네 잔밖에 안 마셨는데 벌써 졸리네요.”
설린은 그대로 이마를 탁자에 박으며 곯아떨어졌다.
현종은 깊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때 사완악이 혀를 차며 말했다.
“아주 제대로 취했군. 꼬마야, 나랑 같이 설 문주를 방으로 모시고 가자. 네가 부축 좀 해라. 현종 스님은 여기서 잠깐 기다리라고. 아직 다 안 마셨으니까.”
사완악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구휘는 설린의 팔을 자신의 어깨에 둘러메고, 왼팔로 그녀의 몸을 잡아 일으켰다.
설린은 시체처럼 구휘에게 매달려 간신히 걸음을 옮겼다.
사완악은 잠시 객잔의 이 층으로 올라갔다가 설린을 방에 눕히고, 구휘에게도 따라오지 말고 그만 자라고 말한 뒤 다시 내려왔다.
“자, 이제 사내들끼리 제대로 마셔 보자고. 설마 벌써 끝은 아니겠지?”
사완악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현종을 바라봤다.
하지만 현종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그는 오히려 주인장을 불러 술을 더 시켰고, 탁자에 있는 술병을 들어 남아 있는 술을 꿀꺽꿀꺽 모두 마셔 버리는 것이었다.
사완악이 황당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중놈이 술맛을 제대로 알아 버렸군.”
현종은 술병을 탁자에 탁 내려놓으며 사완악에게 물었다.
“시주도 내가 승려같이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까?”
사완악은 현종의 눈빛을 보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승려로 살면 승려인 거고, 다르게 살면 다른 거지. 남이 어떻게 느끼든 무슨 상관이라고 그런 걸 물어보는 거야?”
사완악의 말에 현종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 사람은 선입견이나 편견 같은 것이 없는 자로구나.’
현종은 사완악이 다소 무례하고 거칠지만,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순수한 시선을 지닌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의외로 서로가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저는 어렸을 적, 사부님이 길을 가다 거두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재능을 인정받아 원로님들에게 무공을 배웠습니다.”
“하하, 신기하군. 나도 부모를 몰라. 어려서부터 사부님들과 함께 산속에서 무공만 배웠는데.”
“내공은 어떻게 연마하셨습니까? 저는 원로님들께서 내공을 일부 전수해 주셔서 동년배보다 깊은 내공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까 비무에서 보니, 시주님의 내공이 저보다 부족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거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나 역시 사부님들께 내공을 물려받았는데 말이지.”
두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대화를 하면 할수록 그들은 서로에게 매우 닮은 점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호감을 느꼈다.
이것은 사완악으로서는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그 시주님이라는 호칭 좀 어떻게 하면 안 될까?”
“그럼 뭐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냥 이름 부르면 되지. 존댓말도 그만하고. 영감탱이랑 말하는 거 같아서 닭살이 돋는 기분이거든.”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아, 그냥 하면 하는 거지. 친구끼리는 원래 그러는 거 아닌가?”
그러자 현종이 사완악을 빤히 바라봤다.
“왜? 뭐 묻었어?”
현종이 물었다.
“친구라 하셨습니까?”
사완악은 조금 놀란 얼굴로 잠시 말을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