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38
정도마신 37화
“크르르…….”
수풀 속에서 울려 퍼진 것은 평범한 짐승의 소리가 아니었다.
산길을 넘는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존재이자 산왕이라 불리는 맹수, 호랑이었다.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
일신에 초절정의 무공을 지니고 있는 현종은 잠시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을 뿐,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태연자약한 얼굴로 호랑이를 바라보며 혀를 쳤다.
“이런 야산에서 홀로 무엇을 하고 있느냐?”
그런데 그 순간, 현종은 갑자기 머릿속에 누군가의 말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현종 스님은 황실의 높으신 분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마치 천하를 오시하는 제왕처럼…… 자애로운 스님이 아니라 천하를 호령하는 대장군처럼…… 헤헤, 제가 무슨 말을 하는 걸까요?’
참 이상한 일이었다.
왜 갑자기 설린이 술자리에서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오르는 것일까?
현종은 자신의 몸보다 두 배는 큰 호랑이를 고요히 응시하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크르르…….”
호랑이는 번뜩이는 눈으로 으르렁거리며 현종을 노려보고 있었다.
호랑이는 일촉즉발(一觸卽發)의 기세였고, 현종은 그저 혼자만의 상념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잠시 후, 현종은 하늘을 보고 긴 한숨을 내쉬더니 말없이 몸을 돌렸다.
하지만 맹수에게 등을 보이는 것은 본능을 건드리는 행동.
“크헝-!”
산 전체가 쩌렁 울리는 포효와 함께 호랑이가 현종의 등을 덮쳐 갔다.
하지만 호랑이의 이빨이 현종의 목덜미를 노리는 그 순간, 현종의 신형이 다시 돌아섰다. 그러고는 그의 두 눈에서 무서운 안광이 흘러나오며 벼락 같은 일권이 뻗어져 나왔다.
바로 사완악에게 본 실력을 드러내게 만들었던 소림사의 절기, 백보신권이었다.
현종의 백보신권은 마치 섬광처럼 호랑이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꽝!
호랑이는 달려들었던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뒤로 날아가, 거대한 나무에 부딪쳤다가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대로 축 늘어져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현종의 주먹에 가격당하는 순간 이미 숨통이 끊어졌던 것이다.
거대한 나무가 서서히 쓰러져 야산 일대에 지진 같은 진동이 울려 퍼졌다.
현종은 문득 정신을 차리며 조금 당황한 얼굴로 자신의 주먹 끝을 바라봤다.
“…….”
현종은 호랑이의 사체로 다가갔다.
호랑이의 목에는 주먹만 한 크기의 구멍이 뚫려 있었고 주변은 온통 피범벅이었다.
“아미타불…….”
현종은 후회의 눈빛으로 불호(佛號)를 읊조렸다.
“미안하구나. 나도 모르게 힘 조절에 실패하고 말았으니…….”
현종은 잠시 호랑이의 사체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주변에서 그나마 평평한 자리를 찾아 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강철보다 단단한 현종의 손이 두부를 가르듯 땅을 파고들었다.
현종은 묵묵히 흙을 파내어 커다란 구덩이를 만들었는데, 그 과정의 모습은 마치 참회와 수행을 하는 고승을 보는 것 같았다.
현종은 호랑이를 구덩이에 묻고 다시 흙을 덮어 준 다음, 엄숙히 합장하며 말했다.
“부디 내세에는 좋게 태어나 사람을 해치지 않기 바란다.”
현종은 몸을 돌려 다시 소림사로 향했다.
그때 현종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한 번이라도 내 힘을 제어하지 못한 적이 있었던가?’
* * *
사완악 일행은 현종과 헤어지고 정유문으로 돌아오자마자 폭풍 같은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문주님! 사 공자! 이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눈에 불을 켜고 찾아온 총관 황임과 호법 관일성의 모습에, 설린은 구휘를 노려봤다.
구휘가 움찔하며 시선을 피할 때 황임이 다시 말했다.
“육사괴를 잡으러 갔었다고요? 그 악명 높은 육사괴 말입니까? 제발 지금 제가 잘못들은 거라고 해 주십시오!”
사완악이 황임을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총관님이 잘못 들은 겁니다.”
황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장난하지 말게!”
“아니, 그렇게 말해 달라고 해서 말해 준 건데…….”
이번만큼은 사완악도 말을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황임이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 공자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육사괴는 흑사방의 방주들보다 더 강하고 악독한 자들 아닌가? 사 공자는 괜찮을지 몰라도, 문주님이나 휘아는…….”
설린이 빠르게 말했다.
“총관님, 제가 따라가겠다고 조른 거예요.”
“그러니까 문제다.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고 이곳에 있는 사이, 네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무슨 낯으로 형님을 뵈라는 것이냐?”
설린은 숙부의 근엄한 음성에 입을 다물었다.
그가 문주라는 호칭도 생략하고 죽은 설린의 아버지를 언급하는 것은 진심으로 화가 났을 때만 하는 행동이었다.
사완악은 어깨를 으쓱하며 중얼거렸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사악한 육사괴도 잡았으니 좋은 거 아닌가…….”
총관 황임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거야 다행히 하늘의 도움으로 소림사의 스님을 만나서지. 휘에게 다 들었네. 그분은 사 공자보다도 무공이 더 뛰어나서 육사괴의 진법을 파괴하고 단숨에 그들을 제압했다고. 그분이 아니었으면 크게 위험할 뻔했다고 말이네!”
사완악이 황당한 얼굴로 구휘를 노려봤다.
구휘는 황임의 뒤에 서서 살짝 혀를 내밀고 있었다.
“아니, 그 녀석이 아니더라도 육사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황임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래서 그분에게 억지로 술을 권해서 취하게 만들고, 괴한에게 문주님이 납치되었단 말인가?”
사완악은 구휘를 다시 노려봤다.
“내가 술을 억지로 권했다고요?”
황임이 어이없는 웃음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럼 소림사의 스님께서 자발적으로 술을 마실 리가 있겠는가? 그리고 중요한 건 문주님이 납치되고 극독에 당했다는 것이겠지. 물론 사 공자가 만독불침이라 문주님을 바로 치료해 준 것은 내 목숨을 구해 준 것보다 더 감사한 일이네. 하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고 하기에는 그 괴한이 마음만 먹었다면 더 위험할 수도 있었던 것 아닌가?”
“독…….”
설린은 실제로는 독에 당한 적이 없지만, 사완악 본인이 그렇게 둘러댔었기 때문에 특별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결국 이번에는 천하의 사완악도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알았습니다. 다음부터는 위험한 일이 있으면 미리 두 분께도 말씀드리지요.”
설린이 옆에서 덧붙여 말했다.
“두 분 말씀은 알았습니다. 그래도 의미 없는 일은 아니었어요. 악행을 일삼는 육사괴를 제압했으니까요. 위험한 일이기는 했지만, 현조부님도 일신의 안위를 생각하면 협을 행할 수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 말에 황임과 관일성도 더 이상 말을 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설린을 친딸처럼 여겨 걱정이 컸을 뿐, 정유문의 문도로서는 더없이 뿌듯한 일이었다.
사완악이 말했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한 사십 일 정도 뒤에는 정도맹에 다녀올 생각입니다.”
“정도맹?”
“사십 세 이하의 비무 대회가 열린다고 하는군요. 설 문주가 정유문도 정도맹에 가입되어 있다고 해서 참가할 생각입니다.”
황임과 관일성은 서로를 마주 봤다.
물론 정유문은 정도맹에 가입되어 있었지만, 지금까지 어떤 행사에 참가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무려 정도맹에서 주관하는 비무 대회에 정유문의 문도가 참가한다니, 감개무량한 일이었다.
황임이 말했다.
“알겠네. 그건 그렇고, 사 공자를 찾는 손님이 왔었네.”
“손님이요?”
“사흘 전에 어떤 여인이 찾아오더니 사 공자님을 뵈러 왔다고만 했네. 사 공자가 다른 지역으로 출타하여 언제 올지 모른다고 했더니, 한명객잔에서 기다리겠다고 하더군. 이름을 물어봐도 그저 사 공자님이 돌아오시면 전해 달라고만 했네. 혹 찾아오기로 했던 사람이 있었는가?”
여인이라는 말에 설린은 자신도 모르게 사완악을 잠시 쳐다봤다.
사완악은 잠깐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우선 다녀오겠습니다.”
* * *
한명객잔은 정유문이 있는 안평(安平) 마을의 가장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상당히 작고 허름해서 한눈에 봐도 장사가 잘되지 않을 것 같은 객잔이었다.
사완악은 객잔 앞에 서서 기감을 끌어올렸다.
‘하나, 둘, 셋, 넷…… 호오, 확실히 상당한데? 특히 한 명은 아주 강해.’
사완악의 기감에 느껴지는 것은 네 개의 강렬하고 음침한, 그러면서도 매우 익숙한 네 개의 기운이었다. 구천살심공이나 탈정미혼공과 비슷한 부류의 기운들. 그중 가장 약한 기운은 설린을 납치했던 가종후의 느낌과 매우 일치했다.
사완악은 저들이 분명 사령문의 문도들일 것이라 생각했다.
사완악은 설린, 구휘와 함께 정유문으로 느긋하게 돌아왔으니, 그들이 먼저 정유문에 도착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존경심, 혹은 공포심. 수하를 다스릴 때는 둘 중 하나가 꼭 필요하다고 하셨지.’
사완악은 사부 사마소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영겁사령존의 전설이니 뭐니 해도 결국 확실한 힘을 보여 주지 않는다면, 저런 기운을 지닌 놈들이 진심으로 충성할 리가 없었다.
사완악은 자신의 기척을 완전히 숨기고 객잔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시오.”
객잔에는 점소이 한 명도 없이 주인장이 퉁명스러운 말투로 직접 맞이했다.
사완악은 조용히 하라는 듯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며, 품에서 은자 다섯 냥을 꺼내 주인장에게 주었다.
주인장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은자 다섯 냥이라면 이 허름한 객잔의 한 달 수입보다도 많은 금액이었다.
고개를 들어 찬찬히 뜯어보니, 상대는 고급스러운 백의 차림의 준수한 청년이었다.
귀한 집 자제로 보이는 공자가 어째서 이런 객잔을 찾아왔을까?
그런 의아함이 들고 있을 때, 주인장은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준수한 청년이 입술을 살짝 달싹이자, 그의 음성이 귓가에 메아리치듯 들려왔기 때문이다.
-내가 음식을 주문하면 알겠다고 말하고, 주방에 가서 조용히 있으시오.
그리고 청년은 이번에는 소리 내어 말했다.
“만두 하나랑 소면 한 그릇만 부탁합니다.”
주인장은 눈치가 굉장히 빠른 인물이었다.
“만두 하나, 소면 한 그릇. 금방 됩니다.”
그는 은자 다섯 냥을 손에 꼭 쥐고 빠르게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사완악은 객실이 있는 이 층으로 마치 고양이처럼 사뿐히 뛰어 올라갔는데, 그의 착지하는 발걸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 층에는 는 세 개의 방이 있었다.
한 명, 두 명, 한 명.
그중 두 명의 기운이 느껴지는 가운데 방에서 가종후의 기운이 느껴졌다.
‘자, 실력 좀 볼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가운데 방의 나무 문이 우지끈 박살이 났다.
방 안에는 사완악이 느낀 대로 두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은 키가 크고 깡마른 체구로, 바로 가종후였다.
그리고 다른 사내는 보통의 키에 보통의 체구, 지극히 평범한 인상의 이십 대 청년이었다.
두 사람은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별안간 객실의 문이 부서지자 깜짝 놀랐으나, 그 후의 대응은 사완악도 인정할 만큼 신속했다.
가종후는 문이 부서짐과 동시에 내공을 끌어올려 문을 향해 일장을 날렸고, 평범한 인상의 청년은 문에서 가장 멀리 있는 벽으로 이동하며 양손을 살짝 움직였는데, 그의 소매에서 두 개의 암기가 튀어나와 쏜살같이 사완악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었다.
“좋아, 좋아.”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이며, 좌수를 뻗어 가종후의 장풍을 상쇄시키고, 오른손을 빠르게 휘둘러 백의장삼의 소매로 바람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