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5
정도마신 4화
사완악이 어머니라고 부른 사람은 요희요검 채보령이었다.
그녀는 사완악에 대한 애정이 매우 깊어서, 마치 제자가 아니라 아들처럼 여기고 있었다.
염라대사 영환이 비웃으며 말했다.
“누가 들으면 그 요녀가 네 생모인 줄 알겠구나.”
“헤헤, 사부라 칭하면 싫어해요.”
“채보령의 검술은…….”
염라대사 영환은 굉장히 인정하기 싫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끝을 잠시 흐렸다.
“왜요? 제가 느끼기에는 어머니 검술이 파신마장보다 약한 것 같지 않던데요?”
염라대사 영환의 얼굴이 더욱 구겨졌다.
그러나 그는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검법은 실로 요사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기괴(奇怪)하지만 신묘(神妙)하지. 그녀가 만약 무공에만 매진했다면 칠대고수 중 한 자리는 무조건 차지했을 것이다.”
“와, 영환 사부가 그렇게 말할 정도인가요?”
사완악은 무공에 대한 자부심이 누구보다 강한 염라대사 영환의 말에 채보령의 검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영환 사부, 다른 무림오십공에 대해서도 말해 줘요.”
“시끄럽다. 그만 떠들고 다시 자세나 다시 잡아라.”
“헤헤, 사실 이제 어머니에게 가 볼 시간인데요?”
“뭐라고?”
염라대사 영환이 하늘을 쳐다봤다.
사완악의 말대로 어느새 해가 중천에서 떨어져 조금씩 노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시간이 상당히 흘러 버린 것이다.
“너 이 녀석 일부러……!”
사완악이 혀를 쏙 내밀며 말했다.
“영환 사부가 수다쟁이인지 몰랐으니 어쩔 수 없죠.”
염라대사 영환은 기가 찼으나 할 말이 없었다. 사대악인들에게는 각자 사완악을 가르치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는데, 그 시간은 엄격하게 준수하는 것이 그들의 절대 규칙 중 하나였다.
“아, 사부. 그런데 제 어깨 좀 봐 줘요. 아까 사부랑 수련한 다음부터 통증이 너무 심해서…….”
“음?”
사완악의 말에 염라대사가 가까이 다가왔다.
“혈맥과 근골 모두 정상이다. 꾀병 부리지…….”
사완악의 어깨를 만져 보며 한마디 꾸짖으려던 염라대사 영환이 멈칫했다.
찰나지간, 자신의 내력이 살짝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느낌은 실제인지 착각인지 헷갈릴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났다 사라졌다.
“너 방금…….”
그때, 사완악이 빠르게 물었다.
“아, 그런데 구 사부의 말은 진짠가요?”
“무슨 말?”
“구 사부 말로는 영환 사부의 염화신공을 대성하면 고자가 된다던데…….”
“뭐라고?”
“영환 사부가 예전에는 색마였는데, 염화신공을 대성하고 고추가 새끼손가락만큼 작아져서 지금은 여자랑 아무것도 못한다고 하던데요. 그래서 어머니를 좋아하는데도 그저 속으로만 앓고 계시다고…….”
“갈!”
염라대사 영환은 진심으로 분노한 듯 얼굴이 벌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구가 놈이 정말 그런 말을 했단 말이냐?”
“제가 감히 영환 사부한테 거짓말을 하겠어요? 아무튼, 그러면 전 염화신공보다는 다른 걸 익히고 싶은데…….”
“이, 이 미친 돼지 새끼가!”
염라대사 영환의 신형이 돌연 공중으로 솟구쳤다. 허공에 떠오른 그의 몸은 활처럼 잠시 구부러졌다가, 이내 시위를 떠난 활처럼 쏘아졌다.
바로 궁신탄영이라는 놀라운 수법으로, 그의 몸은 눈 깜빡할 사이에 작은 점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사완악은 그 뒷모습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어머니랑 사마 사부랑 다르게 구 사부랑 영환 사부는 어쩜 저렇게 멍청하지? 그나저나 영환 사부한테도 이게 통한단 말이지…….”
사완악의 얼굴에 한 줄기 음흉한 미소가 떠올랐다.
* * *
“아들, 왔구나?”
요희요검 채보령은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으며 사완악을 반겼다.
사완악은 그녀를 잠시 멍하니 바라보며 물었다.
“어머니, 여인이란 존재는 모두 어머니처럼 아름다운가요?”
사완악은 채보령 외에 다른 여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꽃을 보고 예쁘다고 느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눈처럼 하얀 피부에 오뚝한 콧날, 시선을 사로잡는 붉은 입술, 웃을 때 드러나는 새하얀 이, 세월이 자리한 주름마저 매혹적으로 보이는 그녀.
그야말로 눈부실 정도로 완벽한 얼굴.
하지만 진정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그녀의 몸매였다.
천하의 우물(尤物).
오십에 가까운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탄력 있는 피부와 풍만한 가슴, 그 아래로 우아하게 이어지는 잘록한 허리, 둔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육감적인 둔부와 허벅지는 살인적인 요염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채보령은 사완악의 칭찬이 기분 나쁘지 않은 듯 웃으며 말했다.
“세상 모든 여인이 아름답지는 않지. 하지만 너는 세상 모든 여인을 아름답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사완악이 머리를 긁적였다.
“여인을 아름답게 여겨야만 그들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건…… 말로는 알겠는데, 글쎄요.”
“호호. 나중에 강호에 나가면 어느 순간 깨달을 수 있을 게다. 여인의 몸을 즐겁게 하는 법은 이미 다 배웠으니, 마음을 얻는 방법은 스스로 터득해야 한단다.”
사완악은 그동안 채보령에게 검술보다 탈정미혼술을 전수받는 데 집중해 왔다.
탈정미혼술은 섭혼술과 방중술이 혼합된 무공으로, 섭혼술은 상대의 심령을 점령하는 것이요, 방중술은 상대의 육체를 점령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인간의 의지를 강제로 자신의 지배 아래 놓는 술법이기에 광명정대한 무공은 아니었다.
때문에 정파에서는 이러한 수법들을 무공이라고 하지 않고, 흔히 사술(邪術)이라고 칭하며 비난했다.
사완악이 이러한 사술에만 집중했던 이유는 사내아이기 때문이었다.
채보령의 탈정미혼술은 본래 여인의 무공. 만약 남성이 이것을 익히기 위해서는 성욕(性慾)이 무르익기 전, 유년 시절에 연마해야만 했던 것이다.
“어머니, 오늘부터는 검술만 배우면 되는 건가요?”
채보령이 눈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왜? 여인의 몸을 더 배우고 싶니?”
순간, 그녀의 음성은 나른한 듯 포근하고 입안의 꿀처럼 달콤했다.
사완악이 홀린 듯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의 목소리는 더욱 몽롱해졌다.
“솔직히 말해 보렴. 무엇이 하고 싶은 거니?”
그녀의 짙어지는 음색에는 마음이 쿵쾅거릴 정도로 흥분되게 하는 마성(魔性)이 깃들어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홀린 듯 그녀의 두 눈동자를 응시하던 사완악이 히죽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검술을 배우고 싶죠.”
요희요검 채보령의 얼굴에 감탄의 빛이 떠올랐다.
“그래. 이제 탈정미혼술은 정말 가르칠 게 없구나.”
그녀는 방금 공력을 극성으로 운용하여 사완악을 시험해 본 것이었다.
만약 사완악의 탈정미혼술이 대성하지 못했더라면, 그 자리에서 매우 추악한 꼴을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완악은 흥분은커녕 채보령이 자신을 시험하고 있다는 사실마저 단번에 간파해 냈다.
‘내가 삼십 년에 걸쳐 완성한 섭혼술을 불과 삼 년 만에…… 완악이의 재능은 정말 가늠할 수가 없구나.’
사완악은 그녀의 감탄을 뒤로하고 신난다는 듯 말했다.
“영환 사부가 그러는데요, 어머니의 환요검(幻妖劍)은 무림오십공 중 어느 것과 겨루어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대요!”
채보령은 ‘역시!’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영환 오라버니의 무공을 보는 식견은 뛰어나구나.”
그녀는 사완악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환요검의 본래 이름은 환요옥영검(幻妖玉詠劍) 이란다. 호호, 거창하지? 너는 그것이 누구의 무공인지 아느냐?”
“당연히 모르죠. 사마 사부의 교육 시간에도 들어 본 적 없는걸요.”
“그렇겠지. 하지만 검마후(劍魔后)의 이름은 들어 보지 않았니?”
“검마후……!”
사완악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뜨였다.
약 오백 년 전, 강호무림에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진 전설적인 여인.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는 강호에서 활동한 적은 없고, 마교(魔敎)라 불리던 집단의 인물이었다.
마교는 당시 강호 최강의 문파로, 무림제패를 꿈꾸던 집단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교주가 무공을 연마하다 주화입마로 사망하면서, 마교는 심각한 내분에 휩싸이게 됐다.
교주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서열 전쟁.
그 분쟁에서 마침내 승리하여 마교 제 사대 교주가 된 인물은 놀랍게도 사내가 아닌 여인, 바로 검마후였다.
검마후는 검을 사용한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여인의 몸으로 마교의 교주가 되었다는 건 그 강함이 상상을 초월할 터.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검마후는 마교의 열 명의 장로와 함께 강호에서 종적을 감추었고, 이후 마교는 자멸했다고 전해진다.
“설마 환요검이 검마후의 무공이라는 건가요?”
“그렇단다.”
“과연 영환 사부가 그토록 어머니의 검술을 높이 평가할 만했군요.”
요희요검 채보령이 웃으며 말했다.
“환요옥영검은 본래 여인만이 익힐 수 있는 무공이다.”
“예?”
“몸 안의 음기(陰氣)를 사용하는 무공이기 때문이다. 만약 사내가 이 무공을 익히면 양기(陽氣)가 제멋대로 날뛰어 오장육부가 터져 죽게 된단다.”
사완악이 그녀의 표정을 살핀 후 물었다.
“하지만 저는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거군요?”
채보령의 입가에 미소가 그어졌다.
“넌 정말 영특하구나. 그래, 남자의 몸으로는 결코 이 무공을 익힐 수 없지만, 탈정미혼술을 대성한 사내라면 다르단다. 탈정미혼술은 음기와 양기를 완벽하게 제어하는 무공이니, 몸 안에서 양기가 폭주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지.”
사완악은 그동안 채보령이 탈정미혼술만을 익히게 했던 진짜 이유가 이것임을 알 수 있었다.
채보령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환요검은 모두 열두 개의 초식으로 이루어져 있단다. 나는 그중 전반부 육 초식을 익혔다.”
“후반부 육 초식은 어머니도 익힐 수 없는 거였나요?”
“호호, 어쩜 이리 말귀가 밝을까. 그래, 후반부 육 초식은 구결은 알지만 익힐 수가 없더구나. 만약 네가 후반부 초식까지 모두 익힌다면 천하에 환요옥영검의 적수는 찾아보기 어려울 거다.”
사완악은 신이 난 얼굴로 그녀의 손을 잡아 이끌며 말했다.
“역시 어머니는 대단해요! 어머니, 빨리 환요검을 배우고 싶어요. 어서 가르쳐 주세요!”
“호호! 그래그래, 급할 게 무엇…….”
요희요검 채보령이 순간 멈칫하며 사완악을 바라봤다.
“왜 그러세요?”
“아니, 방금 네가 손을 잡았을 때…….”
채보령이 말끝을 흐렸다.
사완악이 방금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 그녀는 한 줌의 숨결 같은 기운이 쑥 빠져나가는 듯한 기이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기이한 느낌은 구득소와 영환 대사가 느꼈던 것처럼 찰나지간에 사라져 버렸다.
“제 손을 잡았을 때 뭐요?”
채보령은 순진한 표정의 사완악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예, 어서 검술을 가르쳐 주세요.”
“그래그래.”
채보령은 앞장서서 연무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사완악의 얼굴에는 한 줄기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