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53
정도마신 52화
남궁준휘와 팽무강, 진철영은 잠시 서로를 마주 봤다.
고작 저런 녀석에게 자신들 세 명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것은 체면이 서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때 진철영이 말했다.
“미안하지만 내가 바로 끝내야겠소. 저 안하무인의 애송이에게 따끔한 교훈을 내려 주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오.”
진철영은 남궁준휘가 뭐라 대답할 틈도 없이 바로 신법을 전개하며 사완악을 향해 나아갔다.
‘기회를 뺏길 순 없지.’
진철영이 서둘러 나선 이유는 그 역시 사완악이 남궁준휘나 팽무강의 공격을 받아 낼 수 있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사완악에게 가르침을 내릴 생각이었다.
그것은 사완악의 도가 지나친 건방짐에 대한 응답인 동시에, 이 연회장에 모인 모든 중소 문파 후기지수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고 싶어서였다.
‘한번씩 보여 주지 않으면 꼭 이런 녀석들이 나타나기 마련이지.’
강호에서 구파일방은 하늘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 명성이 너무 높기에 이따금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나오곤 했다.
구파일방이 정말 그렇게 강한지에 대한.
그것은 실제로 보지 않으면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무인의 특성이기에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구파일방의 일원으로서는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구파일방은 언제나 존경과 선망, 두려움의 대상이어야 하기에.
“피하는 게 좋을 거다.”
진철영은 어느새 사완악의 바로 앞에 당도하여 나지막이 중얼거림과 동시에, 왼쪽 어깨를 뒤로 빼고 몸을 회전시키며 오른쪽 발을 크게 앞으로 내디디며 주먹을 내질렀다.
이것은 바로 점창파의 회풍무류권(回風貿類拳)의 첫 번째 초식이었다.
점창파는 본래 검법이 뛰어난 문파이고, 진철영의 장기 역시 검법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완악이 적수공권(赤手空拳)인 것을 보고 자신도 굳이 검을 뽑지 않았다.
그의 회풍무류권 정도만 되어도 중소 문파의 제자가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벅찬 무공이었다.
진철영의 주먹이 바람을 가르며 사완악의 명치를 파고들었다.
연회장의 후기지수들은 진철영의 빠른 신법에 눈을 크게 떴다가, 사완악의 앞에 이르러서 전광석화처럼 파고드는 동작에 진심 어린 감탄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 누구도 사완악이 진철영의 일초식을 막거나 피해 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진철영은 순간 사완악의 입가에 맺히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보았다.
‘웃어?’
어떤 의아함이 머리를 스쳐 가는 순간.
사완악이 갑자기 몸을 옆으로 기울이나 싶더니, 한 손으로 물구나무를 서며 양다리를 하늘로 높이 올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마치 광대들이 곡예를 펼치는 동작과 같았는데, 절묘하게도 진철영이 내지른 일권은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후기지수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저, 저럴 수가?”
점창파의 회풍무류권은 몸이 하나의 돌풍이 되어 상대를 빠르게 몰아치는 권법이었다.
만약 일반적으로 진철영의 주먹을 막거나 피하려 했다면, 진철영은 곧바로 다음 초식을 전개해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사완악처럼 물구나무를 서며 공격을 피해 내는 것은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고, 진철영으로서도 처음 겪는 일이라 순간적으로 당황하여 다음 초식을 이어 가지 못했다.
물론 그것은 찰나의 망설임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사완악은 물구나무 선 손으로 땅을 박차는 동시에, 공중에 위치한 발을 그대로 진철영을 향해 내리꽂았다.
“헉!”
진철영은 예상치 못한 공격에 깜짝 놀라 황급히 오른팔을 수평으로 눕히고서 머리 위로 들어 막았다.
하지만 사완악의 공격은 끝이 아니었다.
사완악은 내리찍은 왼발이 막히자, 진철영의 단련된 팔뚝을 디딤돌로 삼아 몸을 크게 회전시키며 오른발로 상대의 가슴을 강하게 걷어차 버렸다.
물론 진철영 역시 강호에서 손꼽히는 후기지수답게 양팔을 다시 열십자[十字]로 교차해서 사완악의 공격을 막아 냈지만, 몸의 중심이 무너져 뒷걸음치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야! 그걸 막아 내다니, 반응속도가 제법인데?”
“……!”
사완악이 씩 웃으며 내뱉는 한마디 칭찬에 장내는 얼어붙은 듯 조용해졌다.
설린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믿기지 않는 듯 눈을 깜빡였다.
진철영의 표정은 소태를 씹은 듯 일그러졌고, 남궁준휘와 팽무강, 그리고 비록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당소윤 역시 몹시 놀란 듯 그대로 굳어 있었다.
진철영이 아무리 검법을 사용하지 않았고 또 사완악의 공격을 막아 내기는 했지만, 이건 그들이 상상했던 그림과는 전혀 달랐다.
그들은 사완악이 진철영의 공격을 일초식도 감당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고, 혹은 숨겨 둔 실력이 있어 봐야 삼초지적에 불과하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사완악을 원 밖으로 내보내려고 했던 진철영이 도리어 열 걸음 정도나 뒤로 밀려나다니…….
이때 사완악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계속 그렇게 가만히 있을 건가? 그러다 일각이 다 지나겠는데?”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것은 당소윤이었다.
-뭐 하는 거예요?! 저놈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고 싶어요?!
남궁준휘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 꿇는 장면을 떠올렸다가, 눈앞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웃기는 소리!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지.’
남궁준휘가 진철영에게 말했다.
“저놈에게 약간의 재주가 있었군요. 선공을 양보했으니 이제 빨리 끝냅시다.”
그리고 남궁준휘는 사완악을 향해 나아갔다.
‘스스로 무기를 내려놓고 적수공권을 선택한 것이니 봐주지 않겠다.’
진철영과 달리 그는 곧바로 검법을 펼쳐 사완악을 공격했다.
남궁준휘의 검이 경쾌하게 큰 원을 그리며 하늘을 가르고 사완악의 어깨를 찔러 갔다.
이것은 바로 남궁세가에서 직계만이 배울 수 있는 삼대무공 중 하나인 창궁대연검법(蒼穹大衍劍法)이었다.
사완악의 눈에 순간 이채가 흘렀다.
‘영환 사부가 그렇게 말한 이유가 있군.’
남궁준휘가 펼치는 것은 틀림없이 검제 남궁명조가 창안한 열 개의 검법 중 하나일 것이다.
염라대사 영환은 남궁명조의 검법은 대단히 뛰어나지는 않지만 무시할 수는 없다고 했고, 그 말대로 남궁준휘의 검법은 기세가 비범했다.
‘진짜 무시할 수 없겠네. 제대로만 익혔다면.’
사완악은 피식 웃으며 땅에 닿을 만큼 허리를 뒤로 꺾었다.
휭!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남궁준휘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사완악의 배 위를 스쳐 지나갔다.
사람들이 다시 한번 놀라움을 터뜨리려는 순간, 사완악은 정수리를 땅에 대고 광대의 묘기처럼 머리와 몸을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완악의 두 다리가 풍차처럼 돌아가며 남궁준휘의 손목과 복부, 목을 연달아 걷어찼다.
“큭!”
남궁준휘는 손목과 복부를 얻어맞고, 왼쪽 손바닥을 펼쳐 마지막 발길질만은 가까스로 막아 냈다.
하지만 진철영과 마찬가지로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옆으로 몸이 쏠리며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사완악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내가 만든 광대권법을 본 소감이 어때? 생각보다 쓸 만하지?”
남궁준휘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 새끼가……!’
그는 시큰거리는 손목과 은은하게 충격이 느껴지는 복부의 고통을 참으며 이를 갈았다.
고통 때문이 아니라, 모두가 보는 앞에서 사완악이 펼치는 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권법에 당했다는 수치심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오냐, 이제 제대로 해 주마!”
순간, 남궁준휘의 전신에서 뜨거운 기운이 치솟고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진심으로 내공을 끌어올린 것이다.
남궁준휘는 검을 바로잡고 기합을 내지르며 다시 사완악을 향해 초식을 전개했다.
그리고 이때, 하나의 거대한 그림자가 남궁준휘와 함께 사완악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사완악은 하나의 전음이 귓가에 울리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미안하지만 함께 공격하겠소! 이건 비무도 아니고, 당신이 정한 규칙이니 힘을 합쳐도 너무 원망하지 마시오.
그 음성을 보낸 사람은 곰 같은 덩치의 사내,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하북팽가의 소가주 팽무강이었다.
사실 팽무강은 성격이 순수하고 호탕하여 삼 대 일로 사완악을 공격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처음 내기를 할 때 별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이유는,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진철영 도사나 남궁준휘가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사완악이 듣도 보도 못한 기괴한 권법으로 진철영과 남궁준휘의 공격을 모두 막아 낸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팽무강은 차마 합격술을 펼칠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그때 당소윤의 전음이 그의 귓가에 울렸다.
-무강! 뭐 하는 거야? 어서 같이 공격해!
팽무강이 떨떠름한 얼굴로 당소윤을 바라보자, 그녀가 다시 전음을 보냈다.
-남궁 오라버니가 남들 앞에서 무릎 꿇고, 내가 창피를 당하는 꼴을 보고 싶은 거야? 부탁이야, 어서 도와줘!
“…….”
팽무강은 그녀의 간곡한 전음에 속으로 크게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실로 내키지 않지만 그녀의 말대로 만약 이 시합에서 지게 된다면, 자신과 절친한 남궁준휘와 당소윤이 크게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팽무강은 차마 그것을 외면할 수 없어 내공을 끌어올리며 사완악에게 경고 섞인 전음을 날린 뒤, 대도를 뽑아 사완악을 향해 달려갔다.
사완악의 오른쪽에서는 남궁준휘가 창궁대연검법으로 사완악의 심장을 향해 찔러 갔고, 왼쪽에서는 팽무강의 대도가 하북팽가가 자랑하는 오호단문도의 초식을 전개하며 허벅지를 향해 갔다.
사람들은 이번만큼은 사완악이 뒤로 몸을 날려 도망가지 않는 이상, 두 방향의 공격을 모두 막거나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원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으니 곧 사완악의 패배였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었다.
사완악은 이 긴박하고 위험한 와중에서도 태연자약하기 그지없었다.
팽무강은 이때 사완악이 갑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비록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마치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테니 얼마든지 공격해도 좋다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사완악은 보법을 밟으며 오른손을 뒤집어 손목의 뒷면으로 남궁준휘의 검 면에 붙이더니 부드럽게 몸을 회전시키며 손목을 비스듬하게 뻗어 냈다.
“헉!”
그러자 놀랍게도 남궁준휘의 검은 찔러 오던 힘 그대로 방향이 꺾이며 아래로 떨어지더니 ‘쨍’ 하고 울리는 금속성과 함께 팽무강의 대도를 찍어 눌렀다. 그러자 팽무강의 대도와 남궁준휘의 검이 격돌하며 각자 튕겨 나갔다. 그것은 마치 남궁준휘가 사완악을 대신해서 팽무강의 공격을 막아 준 꼴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사완악이 보여 준 기예는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여 흘려 버리는 이화접목(梨花接木)의 한 수였다.
하지만 말로는 설명이 쉬울지 몰라도 실제로 내공이 실린 검을 저렇게 흘려 버리는 것은 매우 지난(至難)한 일이었으며, 또 그 방향을 절묘하게 설정하여 다른 공격까지 막아 낸다는 건 보통의 조예(造詣)로는 흉내조차 내기 어려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 상대가 후기지수들 중에서도 발군이라 할 수 있는 남궁준휘와 팽무강이라면?
그야말로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그들은 방금 사완악이 펼친 수법이 과거의 강호 칠대고수 중 한 사람이었던 잔혹신풍 구득소의 유풍유권(柔風幽拳)이라는 사실은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또 하나의 검이 사완악을 향해 맹렬하게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