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54
정도마신 53화
“사 공자님……!”
설린은 깜짝 놀라며 소리치고 싶었지만, 상황은 그보다 더 빨랐다.
사완악의 등을 꿰뚫을 기세로 찔러 오는 검 끝!
뜻밖에도 그것은 진검(眞劍)이 아니라 한 자루의 목검(木劍)이었다.
하지만 그 검에는 바위도 쪼갤 수 있을 듯한 내공이 실려 있었고, 시위를 떠난 강궁(强弓)의 화살처럼 육안으로는 좇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였다.
그리고 이 검의 주인은 바로 점창파의 청년 도사, 진철영이었다.
진철영의 별호는 점창일섬(點蒼一閃)이었다.
점창파에 있는 하나의 섬광!
그 별호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장기는 바로 점창파가 자랑하는 사일검법(射日劍法)이었다.
사일검법은 해를 쏘아 관통한다는 뜻으로, 빠른 찌르기로 상대의 요혈을 집중적으로 노리는 극쾌(極快)의 검술이었다.
점창파를 대표하는 무공답게 무림오십공 중 하나였으며, 강호에서 가장 빠른 검법을 논할 때면 반드시 거론되는 검법이었다.
진철영의 표정은 처음의 창피함을 갚겠다는 듯 일격필살의 의지와 내공이 담겨 있었다.
이번만큼은 사완악이 뒤에 눈이 달려 있다 하더라도 그의 검을 피해 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사완악은 처음으로 안색을 살짝 굳히더니, 이내 팽이처럼 몸을 빙글 돌렸다.
그의 몸이 돌아가는 속도는 번갯불이 번쩍이는 것보다 빨랐고, 진철영의 검은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사완악이 본래 서 있던 허공을 꿰뚫었다.
‘제법이군.’
사완악은 속으로 감탄을 터뜨렸다.
처음 진철영이 펼친 회풍무류권을 본 후, 확실히 점창파의 무공은 소림사보다 떨어진다고 실망했던 사완악이었다.
하지만 방금의 공격은 달랐다.
만약 사부 구득소에게 전수받은 천하제일의 경신술, 승광신법(乘光身法)을 순간적으로 펼쳐 내지 않았다면, 온전히 피해 낼 수 없을 만큼 진철영의 검은 빨랐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진철영의 기습은 무위로 돌아갔다.
그리고 사완악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유풍유권의 수법을 전개했다.
아까 남궁준휘의 검을 막을 때 보여 주었듯, 유풍유권은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묘리의 권법이었다.
염라대사 영환은 언제나 구득소의 유풍유권을 무시했지만 그것은 일대일의 결투에서 파괴력이 낮아서일 뿐, 사완악은 상황에 따라서는 사부들에게 배운 무공들 중 가장 효율적인 무공이라고 생각했다.
몸을 돌려 검을 피해 낸 사완악은 불쑥 손을 뻗어 진철영의 손목을 잡고는 그 힘의 방향을 살짝 꺾어 남궁준휘 쪽으로 떨쳐 냈다.
그러자 진철영의 검은 본래의 속도에 사완악의 원심력이 더해져서 그야말로 섬광 같은 속도로 남궁준휘의 가슴을 찔러 가게 되었다.
“헉!”
“헉!”
진철영과 남궁준휘는 동시에 헛바람을 들이켰다.
남궁준휘는 팽무강과 격돌한 충격을 해소하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다시 초식을 전개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이때 사완악의 몸이 빙글 돌며 비켜서고 갑자기 진철영이 나타나 무시무시한 기세로 목검을 찔러 오고 있으니, 심장이 멎을 만큼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진철영은 진철영대로 깜짝 놀랐다.
그는 전력을 다한 자신의 기습이 무위로 돌아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라 사완악이 먹이를 낚아채는 독수리처럼 자신의 손목을 잡자, 잠깐 당황한 순간 이미 자신은 남궁준휘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었다.
남궁준휘는 검을 들 여유도 없었기에 다급히 왼팔을 올려 진철영의 목검을 막았다.
진철영은 입술을 깨물며 황급히 검을 거두려 했지만, 사완악의 힘이 더해진 목검은 이미 시위를 떠난 활이었다.
빠드득!
“악!”
뼈가 조각나는 소리를 들은 남궁준휘는 비명을 참지 못하고 뒤로 날아갔다.
그의 신형은 진철영의 목검에 실린 내공의 힘에 땅을 몇 바퀴나 구르며 나가떨어졌다.
“형님!”
팽무강은 깜짝 놀라 남궁준휘에게 달려갔다.
“큭…….”
남궁준휘는 팽무강의 부축을 받으며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는 오른팔로 왼팔을 부여잡고 있었고, 크게 내상을 입은 듯 얼굴은 백지장처럼 파리한 안색이었다.
사완악이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 시합은 내가 이긴 것 같은데? 일각도 지난 것 같고.”
“…….”
이 상황을 지켜보는 후기지수들은 도무지 눈앞의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이 시합은 사완악이 이길 수 없어야 했다.
명문대파 후기지수 세 명의 공격을 그 혼자 감당해야 하고 더욱이 저 작은 원 안에서 벗어나서도 안 되는, 말도 안 되게 불합리한 조건이었다.
강호의 이름 높은 절정 고수라면 모를까, 겨우 정유문의 제자가……?
이제는 강호에서 이름조차 잊혀 가는 문파의 제자 따위가 어떻게 이런 무위를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남궁세가의 소가주는 부상을 입고 당장 쓰러질 것만 같지 않은가?
도대체 이 백의 장삼을 입고 계집같이 하얀 얼굴의 청년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놀라움과 의아함이 그들의 머릿속에 가득 찼고, 아무도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승자는 사완악이었다.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을 만큼 완벽한 승리였다.
특히 약소 문파 출신의 후기지수들은 뜨거운 눈길로 사완악을 쳐다봤다.
그들에게는 언제나 열등감이 있었다.
본인들이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뛰어난 무공, 훌륭한 사부, 부유한 재력의 환경에서 무공을 연마한 명문대파 제자들을 이길 수 없다는 좌절감이었다.
그런데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자신들이 속한 문파보다도 더 보잘것없는 문파의 제자가, 오대세가의 소가주 두 명과 점창파의 점창일섬을 압도적으로 이겨 버렸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무엇보다 중소 문파 후기지수들이 통쾌함을 느끼는 것은 바로 사완악의 거침없는 말들이었다.
“좀생아, 그럼 이제 약속을 지켜야지? 실력은 형편없으면서 가문의 위세만 믿고 다른 문파의 무공을 무시하고 비웃은 것을 사과해라.”
그들은 명문대파의 제자들을 이길 수 없기에, 언제나 잘 보이기 위해서 머리를 숙이기 급급했다.
구파일방은 대부분 불교나 도교의 문파이기에 고고하고 오만한 부분은 있어도 행동은 점잖은 편이었지만, 오대세가, 특히 남궁세가와 사천당문, 제갈세가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가문의 힘이 강해질수록 권위적으로 변해 갔고, 중소 문파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거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사완악이라는 자는 무려 남궁세가의 소가주를 그야말로 아랫사람인 양 막 대하고 있는 것이다.
“제길…….”
반면 남궁준휘는 그야말로 똥 씹은 얼굴이 되어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사완악은 눈을 살짝 크게 뜨며 옅은 미소와 함께 빨리 안 하고 뭐 하냐는 듯 그를 쳐다봤다.
으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남궁준휘는 마지못해 말했다.
“그래, 내가 말이 과했던 것 같군. 이만하자.”
그러고 그는 돌아서려 했다.
마치 이 정도 사과로 마무리 지으라는 듯.
그러자 사완악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너 뭐 하냐?”
“뭐가 말이냐?”
사완악은 주변을 스윽 훑어본 뒤 말했다.
“혹시 저 좀생이가 지면 무릎 꿇기로 한 것을 여기서 못 들은 사람이 있나?”
“…….”
장내의 그 누구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남궁준휘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사완악은 고개를 갸웃하며 크게 말했다.
“아니면 남궁세가는 한번 내뱉은 약조를 지킬 줄도 모르는 곳인가?”
“닥쳐라!”
남궁준휘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만약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사완악은 이미 전신을 난도질당했을지도 몰랐다.
물론 남궁준휘의 눈빛에는 그런 힘이 없었다.
사완악이 다시 말했다.
“명색이 검제의 손자라는 놈이 눈 뜨고 못 봐 주겠군.”
“뭐, 뭐야? 네, 네놈이 감히 누구의 이름을……!”
남궁준휘의 눈에 핏발이 섰다.
검제 남궁명조는 남궁세가에서 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 별호조차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완악은 남궁준휘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방금 시합에서 너와 다른 두 사람이 어떻게 달랐는지 말해 줄까?”
남궁준휘가 순간 멈칫했다.
“무슨 말이냐?”
사완악은 마치 모두가 들으라는 듯 말했다.
“네 옆의 곰 같은 녀석은 나를 공격할 때 칼날을 뒤집어 칼등으로 초식을 전개했다.”
“뭐?”
사람들은 미처 몰랐다는 듯 남궁준휘를 부축하고 있는 팽무강을 쳐다봤다.
팽무강은 어색한 듯 시선을 피했는데, 사완악이 다시 말했다.
“그리고 점창파의 도사는 뒤에서 기습을 했지만, 그의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이 아니라 목검을 따로 구해서 공격했지. 사실 전력을 다해 내공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고. 그게 아니었다면 네놈은 이미 가슴이 꿰뚫려 죽었을 거다.”
그건 모두가 똑똑히 본 사실이었다.
진철영은 사람들에게 구파일방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 주는 것을 원했을 뿐, 진심으로 피를 볼 생각은 없었다.
즉, 사완악이 자신의 공격을 절대 피하지 못할 것이라 자신했던 그는 주변을 살펴 목검을 지니고 있는 한 사람에게 무기를 빌렸고, 상대의 목숨을 위협하지 않을 정도의 내공만을 사용했던 것이다.
물론 진철영은 패배 후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으나, 그의 수준을 파악한 사완악은 이러한 사실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반면 남궁준휘는…….
“넌 그야말로 날 죽일 기세로 검을 썼지. 그럴 거면 애초에 정도맹에서 왜 비무 참가자들의 사적인 비무를 금지했을까, 뭐 그런 인식도 없는 놈처럼.”
남궁준휘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한마디로 남들은 어느 정도 상황을 고려하며 행동했는데 남궁준휘 혼자 사력을 다했다는 말이었고, 그건 명문대파의 제자로서 전혀 자랑스럽지 않은 일이었다.
사완악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어. 지 혼자 흥분해서 앞뒤 분간 못 하고 망둥이처럼 날뛰며 최선을 다하는 걸 뭐라고 할 수는 없지. 안 그래?”
사완악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지만, 그 내용은 비꼬는 말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렇게 최선을 다했으면 결과에는 승복할 줄 알아야지. 내가 패배하고 지금 네놈처럼 행동했으면 뭐라고 했겠어? 어?”
“이, 이 새끼…….”
남궁준휘는 얼마나 화가 났는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 댔다.
하지만 사완악의 음성은 잔인하리만치 그의 귓가에 다시 꽂혔다.
“어서 무릎 꿇고 사과해라, 남궁세가의 좀생아.”
이때였다.
“그만하세요.”
사완악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설린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미 생각이 정리된 듯 차분히 말했다.
“시합은 사 공자님이 이겼고, 남궁세가의 소가주님은 말씀이 과했음을 인정했습니다. 저는 그 사과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설 문주!”
설린이 사완악에게 말했다.
“사가살 불가욕(士可殺不可辱)이라 했습니다.”
선비는 죽일 수 있어도, 욕보일 수는 없다는 말이었다.
이 순간, 설린의 한마디는 장내 모든 후기지수들의 마음에 꽂히듯 들려왔다.
사완악은 정유문의 문도인 자신이 이 상황에서 문주인 그녀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꼴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완악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우리 문주님은 너무 자비로운 게 문제로군.”
남궁준휘는 설린과 사완악을 한 차례 쳐다보고는 부축하는 팽무강마저 뿌리치고 한 팔을 부여잡은 채 분노한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사완악은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돌연 고개를 돌려 당소윤을 바라봤다.
“좋아, 그럼 당신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모두의 시선이 강호 사대미녀 중 독화라 불리는 당소윤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