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57
정도마신 56화
‘복수……!’
그 두 글자는 남궁준휘의 온 정신을 사로잡았다.
할 수만 있다면 사완악의 심장에 자신의 검을 박아 넣고 싶었다.
남궁준휘는 이군을 향해 겨누었던 검을 거두고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
“당신의 정체부터 말하시오. 이곳에는 어떻게 들어왔소?”
“난 당신이 이 방에 들어오기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소.”
남궁준휘는 깜짝 놀라 사내를 다시 보았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처음부터 함께 이 방에 있었음에도 자신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이군은 그의 마음을 읽은 듯 말했다.
“이 방 안에는 하나의 진법이 펼쳐져 있소.”
“진법?”
“이 안에서는 사람의 기척을 느낄 수 없고, 어떤 소리도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소. 믿기 어렵다면 밖에 있는 당신의 하인을 불러 보시오. 아무 반응도 없을 테니.”
남궁준휘는 불신의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다가 밖에 있는 하인을 불렀다.
“아삼! 아삼 없느냐?”
밖이 조용하자, 남궁준휘는 재차 크게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정말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확인해 보겠소.”
남궁준휘가 문을 열자 밖에는 그의 하인 아삼이 있었다.
“아삼!”
“옛! 공자님! 팔은 괜찮으십니까?”
“내가 방에서 부르는 소리를 못 들었느냐?”
“예? 저, 저를 부르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못 들었나 봅니다. 시키실 일이 있으십니까?”
“……아니다. 나는 괜찮으니 너도 숙소로 돌아가 쉬어라.”
“아닙니다. 팔이 불편하실 텐데 제가 여기서 대기하고…….”
“됐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숙소로 돌아가라.”
“아, 예! 알겠습니다.”
아삼은 남궁준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팔이 부러지고 심기가 크게 나빠져 있다는 것을 알기에 지체하지 않고 사라졌다.
남궁준휘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놀랍다는 듯 이군을 쳐다봤다.
이군은 그가 무슨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말했다.
“내 정체가 궁금하겠지만, 나는 사정상 모두 말할 수는 없소. 하지만 지금 당신에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소?”
이군이 혀를 차며 말했다.
“중요한 건 남궁세가의 소가주가 전국의 후기지수들 앞에서, 그리고 다른 명문대파의 제자들 앞에서 큰 수모를 당했다는 것이지. 검제의 손자가 삼류 문파의 제자에게 먼저 시비를 걸었다가 창피만 당했고, 가문의 이름에도 먹칠을 한 셈이니까.”
“다, 닥치시오!”
남궁준휘는 발작하듯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다음 들려오는 이군의 한마디에 그는 말을 멈추었다.
“당신은 속은 것이오.”
“속았다고?”
“사완악의 무공은 애초에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소.”
“뭐, 뭣이?”
“흥분할 것 없소. 남궁세가를 통틀어도 당신의 부친이나 숙부 정도가 아니라면 사완악을 상대할 수 없을 테니. 설령 그들이라고 해도 사완악을 쉽게 볼 수는 없을 것이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남궁준휘의 부친이라면 남궁세가의 가주, 무애신검(無涯神劍) 남궁조였고, 숙부는 참혼중검(斬魂重劍) 남궁우였다.
두 형제는 검제 남궁명조의 경지에는 다다르지 못했다.
하지만 그 피를 이어받은 만큼 강호에서 손꼽히는 절정의 고수였다.
그런데 사완악이 그들과 비슷한 경지라니?
남궁준휘는 개소리를 늘어놓는 백면서생을 노한 눈빛으로 노려봤다.
그러나 이군은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헛소리나 하기 위해 이곳에 진법을 펼치고 기다렸다고 생각하시오?”
“…….”
“나는 사완악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오. 그는 매우 강하고, 또한 교활하오. 그는 처음부터 자신이 질 수 없는 시합으로 자네에게 내기를 걸어 수모를 겪게 만든 것이오. 동시에 그는 자신의 명성이 높아질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오. 천하의 남궁세가의 소가주를 박살 내 버렸으니 말이오. 사천당문의 독화 역시 당신의 패배로 창피를 당했으니 당신에게 매우 실망했을 것이고.”
“그런……!”
남궁준휘의 눈에서 다시 불꽃이 튀었다.
이군의 말에는 조금 이상한 면이 있었지만, 이미 이성을 잃어버린 남궁준휘의 머릿속에는 오직 사완악에 대한 증오심만이 가득했다.
남들은 모르지만, 독화 당소윤과 자신의 사이에는 가문끼리 혼담이 오가고 있었다.
남궁준휘 역시 당소윤 정도라면 자신의 여인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당소윤도 남궁준휘에게 매우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남궁준휘는 아까 전 당소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군은 그를 애도하듯 말했다.
“하지만 평범한 방법으로는 자네가 오늘 당한 수치를 그에게 갚아 줄 방법이 없을 것이오. 사완악은 그만큼 대단한 자이니. 남궁세가의 소가주가 영원한 패자로 남게 될지도 모르겠소.”
남궁준휘는 발작하듯 흥분하여 말했다.
“웃기지 마시오! 아까는 내게 복수를 원하냐고 묻지 않았소?! 그렇다면 방도가 있다는 뜻 아니오?!”
이군은 남궁준휘를 응시하며 말했다.
“당신은 아직 대답을 하지 않았지.”
“하겠다! 그게 무엇이든! 그놈을 가만두지 않겠소!”
남궁준휘의 눈빛은 매우 살기등등했다.
이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사완악은 어떤 약점을 찾기가 어려운 사람이었소. 하지만…… 근래에 들어 그에게는 한 가지 결함이 생겼소.”
“그게 무엇이오?”
“여자.”
“여자?”
순간, 남궁준휘는 사완악의 옆에 서 있던 한 여인이 떠올랐다.
“그 정유문의 문주를 말하는 것이오?”
이군은 그에 대한 대답 대신 하나의 지도를 내밀었다.
남궁준휘가 받아 보니 그것은 정도맹 내부의 지도였고, 어느 한 곳이 표시되어 있었다.
“그곳에 전각이 한 채 있소. 오늘 밤 축시(丑時)가 끝날 무렵, 그녀가 그곳에 나타날 것이오.”
“그 야심한 시각에?”
“나는 그 전각 안에 지금 이곳에 펼친 것과 똑같은 진법을 펼쳐 둘 것이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 누구도 알 수도 없고, 어떤 소리도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을 것이오.”
“……!”
이군은 그 말을 끝으로 방문을 나가려 했다.
남궁준휘가 다급히 그를 불렀다.
“잠깐!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것이오?”
이군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말했고,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이 전부요.”
그리고 이때, 이군의 눈동자가 잠시 기이하게 빛났다.
하지만 그는 남궁준휘가 어떤 말을 할 틈도 없이 곧장 방문을 열고 나가 버렸고, 남궁준휘는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남궁준휘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환청 같은 음성이 들려왔다.
-당신은 만천하에 가장 큰 비웃음거리가 되었고, 사천당문과의 사이도 장담할 수 없게 되었소. 사완악에게 가장 큰 고통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오.
* * *
그날 밤.
설린은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사 공자님은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일까?’
설린은 사완악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난 언제나 정확히 말할 뿐이야.’
설린은 사완악이 당소윤보다 한참 못난 자신을 사대미녀 당소윤과 비교하여 자신을 치욕스럽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녀에게 매우 큰 상처였고, 처음으로 은인과 같은 사완악에게 크게 화를 냈다.
그러자 사완악은 그녀를 쫓아와 자신은 사실만을 말했으니 오해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설린은 사완악이 사람들 앞에서 했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우리 문주님은 첫인상은 강렬하지 않지만, 보면 볼수록 그 은은한 아름다움이 느껴져서 평생을 함께 있어도 질리지 않을 얼굴이지. 특히 문주님의 맑은 눈빛과 피부는 내가 굳이 설명할 필요 없겠지.’
‘한 가지 더 말해 주자면, 우리 문주님은 웃을 때 훨씬 아름답거든. 그것을 보지 못한 당신들이 매우 안타깝군.’
순간, 설린은 얼굴이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워졌다.
‘설마…… 사 공자님이 진심으로 나를 그렇게 칭찬하신 걸까? 지금까지 나를 그렇게 생각해 오신 것일까?’
설린은 가슴이 쿵쾅거려 방 안이 울리는 것만 같았다. 순간, 그녀는 흠칫 놀라며 아무도 없는 깜깜한 방 안을 살피다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에이…… 아니겠지. 아닐 거야. 하지만 사 공자님이 그렇게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건 처음 봤어.’
설린은 모든 것이 헷갈리고 마음 또한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돌연 어디서 들려온 것인지, 하나의 음성이 그녀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침상 아래의 서찰을 확인하시오.
설린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 누구세요!”
“…….”
설린은 마치 귀신을 본 사람처럼 놀라 초에 불을 붙이고 방 안을 살폈다.
하지만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사실에 그녀는 더욱 놀랐다.
그녀의 귀에 들린 것은 전음이었는데, 전음은 내공을 이용하여 원하는 대상에게만 소리를 전달하는 수법이었다.
설명은 간단하지만 상당한 내공을 지녀야만 가능한 공부였고, 만약 대상자가 가까이 있지 않고 멀리 있다면 그만큼 심후한 내공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조금 전의 전음은 심지어 어디서부터 들려온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는 상대가 그녀로서는 짐작할 수도 없는 고수라는 뜻이었다.
‘이 시간에 대체 누가?’
자정을 넘긴 시각이라 밖은 온통 암흑이었다.
설린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그 음성이 말한 대로 침상 밑을 확인했다.
“이건…….”
침상 아래에는 정말 하나의 서찰이 있었다.
서찰에는 지도와 함께 짧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확인한 설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구휘의 목숨을 구하고 싶다면 표시된 장소로 반드시 일각 내로 와라.
나는 너를 지켜보고 있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이것을 알린다면, 구휘는 바로 죽을 것이다.
설린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문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정도맹으로 출발하기 전,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졌던 구휘였다.
그런데 구휘의 목숨이 위험하다니?
그럼 이 서찰을 보낸 자가 구휘를 잡고 있다는 뜻인데 도대체 그는 누구이며, 정유문에서 사라진 구휘가 왜 이곳에 있다는 것인가? 순진한 소년이 무슨 연유로 이런 상황에 놓였단 말인가?
서찰의 문구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설린의 머릿속은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설린은 이 일이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음을 느끼고 사완악을 찾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서찰에는 마치 그것을 모두 간파하고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순간 구휘를 죽이겠다는 글귀가 있었다.
어디서인지도 모르게 그녀에게 전음을 보낸 것을 생각하면, 상대가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는 말이 전혀 거짓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반드시 일각 내로 오라는 말은 그녀에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어쩔 수 없어. 내가 휘아를 구하러 가야 해.’
구휘가 정유문에 온 것은 비록 일 년 남짓이지만, 설린에게 그는 이미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가족이었다.
그런 구휘의 목숨이 위험하다니, 물불 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설린은 벽에 기대어 둔 자신의 검을 쥐고 처소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