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69
정도마신 68화
양천상의 노한 음성에 사완악은 오히려 황당하다는 듯 툴툴거리며 말했다.
“안 믿을 거면 왜 물어보는 건데?”
“끝까지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를 희롱할 생각인가?”
“잠시만요.”
대화에 끼어든 사람은 설린이었다.
“사 공자님!”
설린은 우선 사완악에게 작은 목소리로 힘주어 속삭였다.
“왜 일을 더 키우려고 하세요?”
설린은 사완악이 매우 의로운 협객이고, 겉과 달리 속은 다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사완악에게 누구도 말릴 수 없는 반골(反骨) 기질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양천상이 사완악을 압박하듯 말하자 변명은커녕 일부러 더 삐딱하게 대답한다고 생각했고, 원만한 중재를 하기 위해 말했다.
“맹주님, 사 공자님은 어려서부터 산속에서 네 분의 사부님 아래 자랐습니다. 그분들에게 무공을 배웠고, 다른 사람들과는 교류가 없었기에 세속의 예의에는 조금 서투른 편입니다. 사 공자님께서 사부님들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시는 건, 그분들이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양천상은 설린을 보며 말했다.
“어떤 수상한 이력이 있기에 세상에 이름을 감추는 것인지 묻고 싶군.”
설린은 양천상의 말에 신중하게 단어를 고른 뒤 말했다.
“노자께서 말씀하시길 대도범혜(大道氾兮), 공성불명유(功成不名有)라 하였습니다.”
대도범혜란 크고 넓고 깊은 도(道)를 말했고, 공성불명유란 일을 성사하고도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사 공자님의 사부님들은 깊은 마음의 수양을 쌓은 분들이라고 사료됩니다.”
명문대파 중 구파일방은 소림사와 아미파, 개방을 제외하면 모두가 도가(道家) 문파였다.
심지어 양천상 역시 도문(道門)에서 크게 인정받는 곤륜파의 제자가 아닌가?
그러니 사완악의 출신 내력이 수상하다는 양천상의 말에 노자의 도로 화답한 설린의 말은 너무도 현명하여 후기지수들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정도였다.
양천상은 설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끄덕였다.
“과연 설영충 대협의 후손답군. 이 세상을 그토록 의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니 말일세. 나 역시 설린 문주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네.”
설린의 얼굴이 밝아졌다.
하지만 양천상은 한마디를 바로 덧붙였다.
“일반적으로는 말일세.”
“무슨 말씀이신지요?”
“조금 전, 저 친구의 사부가 네 명이라고 했지?”
설린은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듯 맹주를 바라봤다.
“저는 사 공자님께 그리 들었습니다.”
그러자 양천상의 얼굴은 다시 굳어졌다.
“점점 확신이 생기는군.”
“예?”
양천상은 모든 후기지수들에게 말했다.
“내가 이곳에 이런 진법을 설치하고 자네들을 데려온 진짜 이유를 지금부터 말해 주겠네.”
안 그래도 답답했던 후기지수들은 양천상의 말에 집중했다.
“자네들은 사대악인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가?”
“사대악인……?”
“사대악인……!”
양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정도맹과 사천회가 함께 무림공적으로 선포했던 네 사람. 염라대사 영환, 잔혹신풍 구득소, 신천마뇌 사마소, 요희요검 채보령. 그들을 말하는 것이네.”
무림공적, 사대악인.
그것은 이미 십오 년 정도의 세월이 지난 일이었다.
이곳에 있는 후기지수들의 유년 시절에 강호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름들.
하지만 그들이 어떤 자들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사대악인이 정도무림에 준 피해와 상처는 깊었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정도맹과 사천회는 도주하는 사대악인을 잡지 못했고, 그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지.”
양천상은 후기지수들의 면면을 훑어본 후 말했다.
“하지만 그들이 한곳에 모여 한 명의 후계자를 길러 냈다는 사실을 들어 보았는가?”
후기지수들은 놀란 얼굴로 양천상을 바라봤다.
사대악인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절정의 무인이었다. 특히 염라대사 영환과 잔혹신풍 구득소는 당시의 강호 칠대고수였다.
그런 그들이 합심하여 한 명의 제자를 길렀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그 후계자가 이번 정도 비무 대회에 참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순간, 후기지수들은 모두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기분으로 양천상을 쳐다봤다.
사대악인의 공동 제자가 정도맹 비무 대회에 참가했다니?
그건 정녕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후기지수들의 고개가 저절로 한 사람을 향해 돌아갔다.
양천상의 태도와 말들이 가리키고 있는 한 사람.
다름 아닌 사완악이었다.
‘설마…….’
후기지수들의 얼굴에 불신의 빛이 떠오르고 있을 때, 사완악은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여유로운 미소와 달리, 사완악의 머릿속은 상당히 복잡했다.
‘이것 참 당황스럽군.’
당황스럽다.
사완악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사실 사완악은 이번 여정과 정도맹주 양천상에 대해 이상한 점을 몇 가지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것은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듯, 양천상의 입에서 사대악인의 이야기가 튀어나온 것이다.
양천상은 자신이 사대악인의 제자라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그것을 아는 존재는 오직 사완악 자신과 사부들, 그리고…….
‘천기자 똘마니들.’
하지만 만약 이것이 천기자의 음모라면, 왜 이제야 이 사실을 밝히는 것일까?
사완악의 머릿속에 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때 양천상의 음성이 낮게 울려 퍼졌다.
“나 역시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네. 하지만 사대악인의 후계자가 있다는 확실한 증좌를 찾게 되었지. 다만 그게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었네. 그래서 나는 이곳에 오는 동안 그자를 찾기 위해 매우 심혈을 기울였네. 그러다 보니 한 사람에 대한 의심이 생겼고, 이제는 점점 확신이 되어 가는군.”
양천상은 돌연 사완악을 향해 위엄 가득한 음성으로 소리 높여 말했다.
“사완악! 이실직고하라. 너의 사부들은 바로 사대악인이 아닌가!”
설린을 제외한 모두의 시선이 진실을 요구하듯 사완악을 바라봤다.
“…….”
사완악은 뒷짐을 진 채 그들의 눈빛을 담담히 받아 내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해도 안 믿을 것처럼 보이는데?”
양천상의 호통 소리가 공간 전체에 울려 퍼졌다.
“똑바로 대답하지 못할까!”
하지만 사완악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으며 되물었다.
“증거 있어?”
“어허!”
“어허! 증거 있냐고 물었다!”
“…….”
이 상황에서도 장난치듯 양천상의 말투를 따라 하는 사완악을 보며, 후기지수들은 ‘진짜 미친놈인가’ 하는 얼굴이 되었다.
양천상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하긴, 순순히 인정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저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크게 소리 지른 음성은 설린이었다.
양천상이 그녀를 쳐다보자, 설린은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맹주님, 사 공자님의 표현이 과격했을 뿐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 공자님이 사대악인의 제자라는 증거가 있습니까? 아무런 이유 없이 사 공자님을 그런 식으로 몰고 가는 것은 정도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양천상의 눈이 순간 가늘어졌다.
“설린 문주, 지금 사대악인의 제자를 옹호하려는 것인가? 설마 설영충 대협의 후손인 설린 문주가, 정유문이 이미 사대악인과 한통속이 되어 있는 것인가?”
설린은 양천상의 말에 어이가 없을 정도로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만약 사 공자님이 정말 사대악인의 제자라면 정유문이 가장 먼저 검을 들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증좌도 없이 사 공자님을 오해하고 누명을 씌운다면, 정유문은 목숨을 바쳐 문도를 보호할 것입니다.”
순간, 양천상과 사완악의 얼굴에 동시에 미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양천상이 말했다.
“그 말은 진심인가?”
설린은 힘주어 답했다.
“그렇습니다.”
양천상은 그녀를 응시하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대악인의 제자라면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교활함을 지니고 있을 테니, 설린 문주처럼 순수한 사람이 속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설린 문주, 내 어찌 아무런 증좌도 없이 이곳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이런 말을 꺼냈겠는가?”
“맹주님은 지금 사 공자님이 사대악인의 제자라는 증거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설린은 양천상의 말에 너무나 어리둥절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맹주님의 말씀은 사실입니다.”
갑자기 울린 음성은 상당히 앳된 느낌이었다.
설린과 사완악, 그리고 후기지수들은 모두 그 음성이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기이하게도 그 음성의 주인은 한 명의 소년이었다.
그 소년은 맹주를 호위하는 청호단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그 소년을 쳐다보며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청호단의 무인 중 저런 소년이 있었나?’
하지만 후기지수들의 이런 의아함은 이어지는 설린의 반응에 빠르게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휘, 휘아?”
설린은 진정으로 깜짝 놀랐고, 사완악은 미간을 꿈틀 움직였다.
청호단의 옷을 입고 있는 소년은 바로 정유문에서 말없이 사라졌던, 설린에게는 친동생과 같은 구휘였기 때문이다.
“휘아야, 네가 어떻게 여기에…….”
구휘는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말했다.
“문주님, 자세한 것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중요한 건…… 사 공자님, 아니, 사완악, 저자는 사대악인의 제자가 맞다는 것입니다.”
“뭐, 뭐라고?”
설린은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사라진 구휘가 왜 갑자기 나타난 것이며, 그의 입에서 사완악이 사대악인의 제자가 맞다는 소리가 나오다니?
하나부터 열까지, 아무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구휘는 후기지수들을 향해 말했다.
“저는 정유문에 몸담고 있던 구휘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설린의 반응을 보아 구휘가 정유문의 문도였다는 것을 믿을 수 있었다.
구휘의 말이 이어졌다.
“사 공자님은 어느 날 갑자기 정유문에 나타났습니다. 아까 설린 문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정유문을 흑사방으로부터 구해 준 은인이 되었고, 정유검법을 새로 만들어 주셨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 역시 사 공자님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고마운 분이었지요.”
구휘의 앳된 얼굴에 침울한 기색이 흘렀다.
“하지만 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서운 진실을 알게 되고야 말았습니다.”
설린이 말했다.
“무서운 진실이라니, 휘아야, 그게 무슨 말이니?”
구휘는 설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문주님, 사 공자님이 다시 만들어 주신 우리의 정유검법은 원래 다른 검법입니다.”
“다른 검법?”
“예. 그 검법의 이름은…….”
구휘의 입에서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군자신검(君子神劍). 정도 제일기재라 불렸던 도백천 님의 검법입니다.”
군자신검 도백천.
마치 지금의 청운처럼, 한때 정도제일의 후기지수로 불렸던 청년.
“정유검법이 군자신검이라고?”
양천상이 말했다.
“비무 대회에서 보여 준 그 검법은 분명 군자신검이네. 이는 공명검 일양자 어른께서도 확인하신 일이지.”
양천상은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군자신검 도백천은 요희요검의 사이한 미혼술과 방중술에 당해 자신의 내공을 모두 빼앗기고 말라비틀어진 채 목숨을 잃었지.”
이때 누군가 말했다.
“잠깐. 사완악은 자신의 사부님이 사천당문의 당 소저는 비할 수도 없을 정도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지 않았나?”
그 말에 후기지수들은 사완악과 남궁준휘, 그리고 당소윤 사이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는 무엇인가 깨달은 듯 서로를 바라봤다.
그때는 사완악의 말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었으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사대악인 중 요희요검 채보령은 강호 삼대미녀 중 한 사람이었다. 점점 앞뒤가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니에요. 이건 뭔가, 뭔가 잘못됐어요.”
설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다시 구휘의 음성이었다.
“여러분. 사완악 저자는 사령문의 후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