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7
정도마신 6화
“훗…….”
사마소가 흡족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다. 요희요검 채보령은 재밌는 여인이지. 강호에는 그녀가 탈정미혼술을 이용하여 무당파의 장문인 옥상 진인과 정도제일의 후기지수였던 도백천의 내공을 빼앗고 정기를 모두 흡수해 말라비틀어진 시체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사완악이 흥미롭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니요. 그게 무슨 뜻이죠?”
“그녀가 탈정미혼술을 이용해서 무당파 장문인 옥상 진인과 군자신검(君子神劍) 도백천을 유혹한 것은 맞지만…… 그건 단 한 번뿐이었다. 하지만 너도 잘 알겠지. 천하의 옥상 진인과 군자신검의 내공을 단 한 번의 방중술로 모두 빼앗을 수 있을까?”
사완악은 고개를 저었다.
탈정미혼공은 실로 무서운 술법이지만, 한 번의 방중술로 빼앗을 수 있는 내공에는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무당파 장문인 정도의 고수라면, 탈정미혼공에 쉽게 당할 사람도 아닐 터였다.
“그 말뜻은…….”
“그래. 그 후로 두 사람은 자발적으로 그녀의 남자가 된 것이다. 채보령이야 두 사람의 행동을 비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즐기며 내버려 두었지. 막강하고 중후한 내공 덩어리 두 개가 굴러 들어온 꼴이니까. 도백천이야 그렇다 쳐도, 팔십 넘은 도사까지 먹어 삼키다니…… 가히 천하의 요부(妖婦)가 아니라 할 수 없지.”
사완악은 세 사부의 과거를 모두 듣고 난 후, 사마소를 빤히 쳐다보았다.
신천마뇌 사마소는 물론 그 시선의 의미를 알아들었다.
“나는 사천회(邪天會)에 몸을 담았었다. 회주의 몸에 고독을 심어 내 뜻대로 움직였다. 굳이 말하자면 정도맹과 사천회의 이 년에 걸친 혈투가 나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지.”
“사부님은 정도맹을 무너뜨리고 싶었던 건가요?”
“아니. 난 그저 전쟁을 하고 싶었다. 내가 갈고닦은 지략이 얼마나 통할 수 있을지 시험하고 싶었지. 사천회는 정도맹에 비해 세력이 열세였으니 아주 적절한 곳이었다. 꿈같은 시간들이었지만…… 결국 제갈룡 그놈과 마양이란 놈의 배신 때문에 실패했으니, 별거 아니었다.”
사마소는 자신의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듯 부채를 접으며 말했다.
“자세히 말하자면 너무 길어질 이야기다. 자, 그래서 내가 이 이야기들을 너에게 해 준 이유는 알고 있겠지?”
사완악은 물론 사마소의 뜻을 알고 있었다.
“이제 답해 보거라. 악이란 무엇이냐?”
사완악은 가만히 고개를 숙인 채 사마소의 발끝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악(惡)은…… 락(樂)입니다.”
사마소의 얼굴에 흐뭇한 표정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까지 세 명의 제자를 키웠는데, 그놈들의 멍청함을 참지 못하고 다 때려죽였다. 그런데 너는 실로 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있구나.”
사마소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그렇다. 악이란 곧 쾌(快)와 락(樂)이다. 쾌락이 없다면 악(惡)이 아니라 마(魔)가 된다.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세상의 도덕과 상관없이 오직 나의 즐거움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악이니라.”
신천마뇌 사마소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그것은 마치 평생 자신이 좇아온 어떤 신념과 철학에 대해 설파하는 모습이었다.
“너에게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우리가 마인이 아니라 악인이기 때문이다. 천기자와의 거래? 그딴 것은 상관없다. 너는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 반드시 악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완악은 고개를 들며 물었다.
“제가 악인이 되면 사부들에게 어떤 즐거움을 줄 수 있지요?”
그때였다.
“킬킬. 복수를 해야지!”
밖에서 괴이한 웃음소리와 함께 비대한 체구의 중년인이 바람처럼 나타났다.
그는 물론 잔혹신풍 구득소였다.
“감히 잡놈들 몇 명 죽였다고 날 무림공적으로 선언해? 이건 분명히 정도맹 내에서 화산파의 입김이 작용한 거야. 완악아, 넌 강호로 나가면 우선 신나게 분탕질을 치는 거다. 마음에 안 드는 놈이 있으면 일단 죽이고 보는 거야. 특히 화산파 놈들을 보면 가만두지 마라. 그리고 날 대신해 화산파 장문인 놈의 모가지를 따 와야 한다. 아니지, 반드시 살려서 데려와라. 내 손으로 직접 눈알을 뽑아 버리고 싶으니, 클클.”
그리고 장대한 체구의 염라대사 영환도 나타났다.
“강호에는 삼대미인이 있다. 요희요검 채보령, 세외선녀(世外仙女) 가인, 한빙신녀(寒氷神女) 유양비다. 난 강호의 소문난 미인들을 취했지만, 정작 세외선녀와 한빙신녀는 얼굴조차 보지 못했구나. 그러니 넌 내게 저 두 여인들을 데려오거라.”
“호호. 그럼 영환 오라버니, 그 삼대미녀 중 한 명이 바로 여기 있는데요? 그년들 이전에 저부터 품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어서 들려온 요희요검 채보령의 목소리에 영환 대사가 찌푸렸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독버섯을 먹을 수는 없지.”
채보령이 애교 섞인 미소로 눈을 반짝이며 동그랗게 떴다.
“어머? 독버섯 정도가 염라대사를 어쩔 수 있다고요?”
영환 대사가 한 손으로 합장하며 말했다.
“아미타불! 보통 독버섯이 아니라 악취가 진동하는 독버섯이라, 굶어 죽는 것보다 못하니라.”
채보령이 곱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그것 참 아쉽군요. 염화신공을 익힌 영환 오라버니의 양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느껴 보고 싶었는데…….”
그녀는 시선을 사완악에게 돌리고는 말했다.
“아들, 엄마는 네게 별로 바라는 바가 없단다. 단지, 나는 늘 남자로 태어나고 싶었단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많은 여인을 울릴 수 있을지 궁금했거든. 너는 나를 위해 그저 수많은 여인을 취하면 된단다. 강호의 한 줄기 바람이 되는 거지, 호호. 탈정미혼공을 익혔으니 너를 만나는 여자는 누구라도 너에게 빠져들 거란다. 나는 이곳에서 그 소식을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것 같구나.”
사완악은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이것이 그동안 사부들이 자신에게 아낌없이 베풀며 키워 준 목적임을 알 수 있었다.
사완악은 신천마뇌 사마소를 바라봤다.
“사마 사부는 무엇을 원하죠?”
“난 딱히 네게 바라는 것이 없다.”
“예?”
“난 그저 내 호기심을 충족하면 된다.”
“호기심이요?”
“그래. 네가 강호의 악인이 된다면, 그것이 도리어 강호를 위하는 일이라고 천기자가 그러더군. 그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지켜보고 싶을 뿐이다.”
사완악은 사마소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그런데 제가 즐겁지 않으면 어쩌지요? 구 사부처럼 살인을 하는 것도, 영환 사부나 어머니처럼 색을 탐하는 것도, 사마 사부처럼 사람 마음을 갖고 노는 것도 즐겁지 않으면 전 악인이 아니지 않나요?”
사마소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이미 네가 악인이 되기 위한 안배를 해 두었으니까. 그리고 네가 즐기지 않더라도 우리가 네게 요구한 일들을 행하고 나면, 강호는 너를 희대의 악인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건 그러네요.”
사완악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사마소의 눈빛에서 푸르스름한 기운이 올라왔다.
“그러니 너는 오늘 우리 앞에서 맹세해야 한다. 우리가 네게 명령한 일들을 강호에 나가 반드시 행하겠느냐?”
사완악은 사마소가 진안심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린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거짓 맹세를 한다면 사마 사부의 눈을 속일 수 없을 테지. 하긴, 날 길러 주신 사부들의 명령이기도 하고…….’
사완악은 사대악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한 차례 살펴보고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제자, 사부들의 명령을 반드시 이행하겠습니다.”
사대악인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염라대사 영환이 말했다.
“좋다. 그러나 아직 너는 준비가 덜 되어 있다. 지금까지는 네 몸의 성장을 위해 가볍게 단련을 해 왔으니까…….”
염라대사 영환의 말은 놀라웠다.
지금까지 사완악은 눈을 떠서 잠이 들 때까지 언제나 수련과 학습을 반복해 왔다.
그리고 지금의 무공으로도 강호에 나간다면 능히 이름을 떨칠 만한 수준.
그런데 그 시간들이 그저 가볍게 단련을 한 정도였다니…….
“앞으로 육 년. 육 년 동안 너는 지옥을 경험할 것이다. 그리고 네 무공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게 되겠지. 그때가 되면 강호로 나가거라.”
* * *
사완악이 처소로 돌아간 후, 사대악인 사이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고요함을 참기 어렵다는 듯, 먼저 입을 연 것은 잔혹신풍 구득소였다.
“사마소, 아까 그 맹세는 확실했던 거지?”
“내 진안심공을 의심하는 건가?”
“아니, 아니. 그냥 확인차 물어본 거니 그렇게 노려보지 말라고.”
잔혹신풍 구득소는 사대악인 중 두 번째로 강하다. 그러나 그는 영환 대사와 채보령, 사마소를 각각 다른 이유로 어려워했는데, 그중에서도 사마소와는 결코 말다툼을 하지 않았다.
대신 염라대사 영환이 오랜만에 구득소를 거들었다.
“사실 그동안 의심이 안 되는 건 아니었지. 영겁사령환을 먹은 녀석치고는 지나치게 순수한 느낌이 있었으니까.”
영겁사령환을 복용한 자는 마음속에 마귀(魔鬼)가 자라난다고 했다.
그러기에 사대악인은 자신들의 30년 내공을 쏟아부으면서까지 사완악에게 영겁사령환을 흡수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사완악에게서 사악한 기운을 느끼기는 좀처럼 어려웠다.
사마소가 고개를 저었다.
“영환 대사의 생각은 틀렸다.”
“음?”
신천마뇌 사마소는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었으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진한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완악이의 재능을 어떻게 생각하지?”
“재능만큼은…… 천고(千古)의 기재라 할 수 있지. 나 역시 소림사에서 천재 소리 좀 들었지만…… 저놈에 비할 바는 아니지.”
염라대사의 말에 구득소와 채보령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완악은 불과 열네 살.
사완악이 자신들의 절기를 습득하는 속도는 경악을 넘어, 그야말로 공포(恐怖)라고 표현해야 했다.
“그렇지. 저놈은 결코 평범한 놈이 아니다. 천기자의 말이 맞았던 거야. 수호성의 기운을 타고난 아이. 그런 특별한 무엇인가만이 저 아이의 재능을 설명할 수 있지.”
잠자코 경청하던 요희요검 채보령이 물었다.
“사마 오라버니, 그게 영겁사령환의 마기와 무슨 상관이죠?”
사마소가 답했다.
“난 그동안 완악이를 진안심공으로 유심히 살펴 왔다. 진안심공으로 보면 저 아이의 심장에는 언제나 자색(紫色)의 기운이 서려 있었지. 영겁사령환의 검은 기운이 나타날 때마다, 마치 그것에 대항하듯 자색 기운은 격렬하게 흔들리며 심장 한가운데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 자색의 기운이 점점 퇴색되더니 지금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사라졌다.”
잔혹신풍 구득소가 신기하다는 듯 감탄을 터뜨렸다.
“그럼 영겁사령환의 기운이 저 아이의 수호성 기운을 제압했다는 건가?”
“그렇지. 그리고 저 아이의 특이한 점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