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76
정도마신 75화
“마음대로 해.”
사완악은 청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목숨을 걸고 날 죽이든 제압하든 그거야 너희들 마음이야. 하지만.”
그 순간, 청운의 눈이 크게 뜨였다.
사완악의 신형이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한 줄기의 빛이 번쩍이는 것 같았고,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순식간에 십여 장을 갈랐다.
바로 잔혹신풍을 강호 칠대고수의 반열에 오르게 해 준 강호제일의 경신술, 승광신법(乘光身法)이었다.
“나는 마음이 바뀌었다.”
사완악은 군림혼혈공의 금나수법(擒拿手法)으로 손을 뻗어 청운의 혈도를 짚어 갔다.
청운은 과연 무림일룡이라 불리는 기재답게 그 갑작스러운 경공술과 기습에도 손목을 세워 사완악의 공격을 막아 갔다.
사완악은 재차 방향을 바꾸어 청운의 다른 혈도를 짚어 갔지만, 이번에도 청운의 손에 걸려 점혈을 할 수가 없었다.
이는 군림혼혈공과 무당파 무공의 차이였다.
군림혼혈공은 점혈을 하는 수법이 특이하고 그 위력이 강할 뿐, 상대의 손을 낚아채고 뼈를 꺾는 금나수법으로는 그리 뛰어난 무공이 아니었다.
반면 청운의 금나수법은 무당파의 절학 중 하나인 태극십삼세(太極十三勢)였다.
무당파의 절학인 태극검법의 묘리를 금나수법에 담아 열세 가지의 동작으로 만든 무공으로, 공격을 할 때보다 방어를 할 때 뛰어난 무공이었다.
아무리 사완악의 무공이 청운보다 뛰어나다고 해도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제압하려는 목적이다 보니 내공을 많이 사용할 수도 없었고, 오직 초식으로만 대응하자니 청운의 금나수법이 너무나 정교했다.
‘하여간 귀찮은 놈이군.’
사완악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청운과 손을 섞으며 말했다.
“빨리 도와줘.”
청운이 의아한 표정으로 사완악을 바라봤다.
“무엇을 말이오?”
“너 말고.”
“나 말고 누가 당신과……!”
청운은 깜짝 놀라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사완악과 말을 섞으며 방어를 하던 도중, 갑자기 우측에서 누군가 청운에게 검을 찔러 넣은 것이었다.
그 검의 주인은 물론 설린이었다.
청운은 설마 사완악 외에 적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다가 갑작스러운 공격을 당하자 당황하며 왼손은 검을 막고 오른손은 사완악을 막아 갔다.
하지만 곧 사완악의 손이 청운의 방어를 뚫고 들어가 일곱 군데의 혈도를 짚었다.
청운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시체처럼 굳어졌다.
“걱정 마. 이건 안 아픈 거니까.”
사완악은 씩 웃으며 청운을 볏짚 쓰러뜨리듯 땅에 던지고는 남아 있는 후기지수들에게 신법을 전개했다.
부상을 입지 않은 후기지수들은 모두 여덟이었지만, 청운이 무너지고 사완악이 전력으로 승광신법을 펼치며 손을 뻗자 삼사 합 만에 모두 혈도를 제압당했다.
사완악은 이미 내상을 입은 자들까지 수혈을 짚은 뒤, 설린에게로 다가갔다.
설린이 재빨리 말했다.
“또 재우려고요?”
사완악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려고 했는데, 왠지 또 깨어날 거 같아서 말이야.”
“맞아요.”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그건 비밀이에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 깨어나도 계속 잠이 든 척해. 그래야 저놈들이 뭐라도 말할 것 같으니까.”
사완악은 설린의 수혈을 짚어 잠들게 하고는 훌훌 신형을 날려 양천상의 앞에 내려섰다.
“도대체 너희 천기자 똘마니들은 모두 몇 명이냐?”
양천상의 미간이 움직였다.
“무슨 말이지?”
사완악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무도 듣지 못하니 솔직하게 말하자고. 저 꼬맹이는 팔군이라고 했고, 그때 봤던 그 백면서생 놈은 이군이라고 했었지. 너는 몇 군이지?”
양천상이 대답하지 않자 사완악은 다시 물었다.
“그래, 그건 중요하지 않지. 천기자 그 늙은이는 도대체 어디 숨어 있는 거냐?”
양천상은 후기지수들이 정신을 잃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네놈은 그분을 뵐 필요가 없다.”
사완악의 눈에 살짝 이채가 흘렀다.
양천상의 음성은 평소보다 더 낮고 근엄해서 마치 다른 사람 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사완악은 어쩌면 그의 무공도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더 뛰어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말했다.
“당신은 나와 끝까지 싸울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
“오히려 내가 저들을 모두 죽이고 나면,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지켜보는 역할이었겠지.”
양천상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하지만 사완악은 그 침묵이 인정의 뜻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를 죽이려는 것도 아니고, 내 손으로 저들을 죽이게 해서 당신들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사완악은 양천상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은 사완악이 어려서부터 갖고 있던 의문, 그리고 강호로 나와 반드시 알아내고 싶은 그것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저들은 어찌 보면 정파의 가장 소중한 인재들이라 할 수 있지. 그런 저들을 내가 죽인다면 저들이 속한 문파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나를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될 테고, 나 역시 나를 죽이려는 자들을 가만두지 않을 테니 끊임없이 그들과 싸우게 될 것이다. 게다가 정도맹의 맹주인 당신까지 나선다면 아마도 나는 우리 사부들을 뛰어넘는 대악인이자 무림공적이 되겠지.”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결국 너희들의 목적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단 하나. 나를 악인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양천상은 사완악을 바라보다가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완악, 너는…… 너는 언제나 지나치게 뛰어나구나.”
사완악의 눈이 번뜩였다.
양천상이 드디어 처음으로 솔직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사완악은 그에게서 알아내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았다.
“이유가 무엇이지? 어째서 나를 사대악인의 제자로 만들었고, 지금까지도 나를 악인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인가.”
사완악은 말을 할수록 가슴이 답답해지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네놈들은 대체 나를 갖고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거지?”
“…….”
하지만 양천상은 사완악을 무심히 바라볼 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사완악은 몰아붙이듯 말했다.
“정도맹의 맹주라는 놈이 저 녀석들을 모두 희생시키면서까지 이루려는 것이 무엇이냔 말이다. 너희가 이럴수록 나는 반드시 너희들이 원하는 반대의 행동만 할 것이다. 내가 저들을 죽이지 않는다면 이유가 어찌 됐든 네놈들의 계획은 틀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양천상은 사완악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상관없다. 죽였다면 더 확실했겠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이제 강호에서 네가 사대악인의 제자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대악인은 각각 저지른 악행만으로도 무림공적이 되었는데, 이제 그 모든 원한이 너에게로 향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사완악의 얼굴이 냉막하게 굳어졌다.
확실히 양천상의 말이 맞았다.
이곳에서 나가게 된다면 사완악은 이제 무림공적이 될 것이 자명했다.
어떻게 해도 그들의 계획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 이유조차 알 수 없는 상황.
사완악의 몸에서 진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너희는 나를 진심으로 화나게 만드는군.”
양천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완악은 문득 비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런데 참 대단하군. 나를 악인으로 만들 생각이면 왜 사대악인의 제자로 만들었을까? 천기자 본인이 나를 가르쳤으면 충분했을 텐데.”
갑작스러운 말에 양천상과 구휘는 의아한 눈빛으로 사완악을 쳐다봤다.
사완악이 말했다.
“그렇지 않아? 한 놈은 정도맹주라는 탈을 쓰고 그게 어떤 이유든 저 죄 없는 후기지수들을 모아 모두 죽게 만드는 음모나 꾸미고 있고.”
양천상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아무도 모르게 한쪽 손을 꽉 쥐었다.
사완악은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구휘를 바라봤다.
“한 놈은 아주 배은망덕하지. 만약 내가 너희들의 계획대로 이곳에서 저들을 모두 죽였다면, 그중 설린 문주가 포함될지도 모르는데 그걸 묵과했다는 거니까.”
구휘는 양천상보다 훨씬 크게 동요했다.
눈빛이 흔들렸고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으며,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을 간신히 삼키는 것 같았다.
사완악은 빠르게 다시 말했다.
“설린 문주는 너를 친동생처럼 여겼는데, 네놈은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군.”
구휘는 사완악의 말을 부정하며 말했다.
“그런 상황이 오면 설린 문주님은 내가 구할 생각이었습니다.”
사완악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웃기는군. 내가 만약 설린 문주부터 바로 죽여 버렸다면, 네가 과연 구할 수 있었을까?”
“…….”
“너희들이야말로 진정한 악인들인 셈이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쥐새끼처럼 숨어서 조종하면서도 강호에서는 제일기인이라고 불리며 존경받고 있는 천기자야말로 사대악인을 뛰어넘는 희대의 개새끼가 아닌가?”
“가, 감히 사부님을 모욕하지 마라!”
사완악은 구휘의 말에 눈을 빛냈다.
“단순한 똘마니가 아니라 제자들이었군. 하지만 제자들에게 이런 일을 시키는 늙은이를 개새끼가 아니면 뭐라고 불러야 하지?”
구휘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닥쳐! 당신은 아무것도 알지 못해! 사부님은 오직 강호를 위해서…….”
“팔군! 조용!”
양천상이 황급히 외쳤다.
구휘가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사완악은 이미 구휘의 입에서 흘러나온 몇 마디를 들을 수 있었다.
“강호를 위해서? 강호를 위해서 나를 악인으로 만들고, 저들을 모두 죽게 만든다고?”
구휘는 크게 자책하는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사완악이 중얼거렸다.
“어쨌든 너희가 꾸미는 모든 일들은 강호를 위해서라는 말이군. 그럼 역시…….”
사완악은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악인이 되는 것이 강호를 위한 일이라…… 그런데 사대악인의 제자인 내가 강호로 나와 오히려 협객 놀이를 하니까 너희는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막으려고 했던 거고. 그럼 내가 앞으로도 악행을 하지 않으면 너희들 똥줄이 타겠군. 무림공적이 되든 말든, 내가 숨기로 마음먹으면 아무도 날 찾지 못할 텐데. 어디 평범하고 작은 마을에 숨어서 착한 일이나 하면서 지내야겠다.”
양천상이 말했다.
“그렇게 평생을 숨어서 지내겠다는 소리인가?”
“너희들이 꾸민 계획에 놀아나느니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지.”
양천상은 문득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어쩌면 너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지. 하지만 강호의 이목을 피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거야 두고 보면 될…….”
사완악은 문득 말을 멈추고 양천상을 바라봤다.
양천상은 이때 매우 평온한 표정이었는데, 사완악은 그것이 매우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숨어서 지낸다면 악인이 될 일이 없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계획이 틀어지는 것인데 어째서 아무런 동요도 없는 것일까?
마치 그것은 할 수 있으면 해 보라는 것처럼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뭔가 준비해 둔 것이 있는 것 같은데?”
양천상의 입가에 비로소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설마 내가 이런 만약의 상황도 대비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