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79
정도마신 78화
“글쎄?”
사완악은 별 관심 없다는 듯 말했다.
검을 휘둘렀던 중년인이 분개하며 말했다.
“너는 도백천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겠지?”
그 순간 사완악은 중년인의 검초가 낯익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당신들은 그와 같은 문파 사람들인가 보군.”
“그렇다. 백천은 우리의 사제이자 우리 문파의 미래였다. 채보령, 그 천한 요녀의 사악한 술법에 당하지만 않았더라면……!”
중년인은 분노와 슬픔이 차올라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다른 중년인이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긴 말 필요 없다! 그 간악한 년은 어디 있느냐? 바른 대로 말한다면 네놈의 목숨까지는 빼앗지 않을 것이다.”
사완악은 중년인의 마지막 말에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중년인은 눈에서 불을 뿜었다.
“그 웃음의 의미가 무엇이지?”
사완악은 말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당신들이 대신 해 주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뭐라?”
사완악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나는 당신들을 해치고 싶지 않아. 사부님이 어디 계시는지는 나도 잘 모르는 일이고, 당신들의 원한은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지. 그러니 내 앞길을 막지 않았으면 좋겠군.”
사완악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했고, 그 모습에 중년인들은 더욱 울컥하며 말했다.
“참으로 뻔뻔한 놈이구나! 네가 그 요녀의 행방을 말하지 않는다면 너는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할 것이다!”
사완악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당신들 실력으로는 어려울 것 같은데?”
“사대악인의 제자답게 오만한 녀석이구나.”
도백천의 사형이라는 네 명의 중년인은 크게 화를 내는 대신 오히려 침착해진 눈빛으로 이군과 구휘에게 말했다.
“자네들은 맹주님을…… 모시고 이곳을 빠져나가게. 이미 많은 무림의 동도들이 태산을 샅샅이 뒤지고 있네. 저기 쓰러져 있는 아이들의 사부들도 있겠지. 그들에게 저자의 흉악한 만행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게. 저자는 우리가 막고 있겠네.”
이군은 사완악을 한 차례 바라본 후 끄덕였다.
“저자는 맹주님과의 결투로 내력을 많이 소진했을 것입니다. 시간을 끌어 주시면 사람들을 데려오겠습니다.”
“알겠네.”
“부디 조심하십시오.”
“걱정 말게. 우리도 생각해 둔 바가 있으니.”
“예.”
그리고 이군은 구휘와 함께 양천상의 주검을 들고 사라졌다.
두 사람을 떠나보낸 중년인이 사완악에게 말했다.
“네 말이 맞다. 그 아이를 제외하면 우리 태영문(太英門)의 사형제들은 무공에 특출한 편이 아니었으니까. 맹주를 쓰러뜨릴 정도라면 우리 개개인의 능력으로는 너를 막을 수 없겠지.”
‘그 아이’는 도백천을 뜻했고, 중년인의 눈빛에는 그리움이 담겼다가, 다시 분노가 일렁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아이를 잃은 후, 오직 이날만을 위해 살아왔다.”
네 중년인의 눈에서 빛이 번뜩였다.
그 직후, 그들은 하나의 대형을 만들었다.
세 사람은 일렬로 뒤에 서고 한 사람이 맨 앞 가운데 서 있는 형태였다.
“이 진법의 이름은 군제불망진(君弟不忘陳)이다.”
진법의 이름에서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사제 군자신검을 잊지 않는다.
도백천의 죽음 이후, 태영문의 사형제는 피눈물을 흘리며 복수를 다짐했다.
하지만 요희요검 채보령을 다시 만난다고 해도 자신들의 무공으로는 그녀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네 사람이 힘을 합쳐 한 사람을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구파일방을 차례대로 찾아갔다.
구파일방은 유서 깊은 명문대파답게 다양한 무공이 존재했고, 그중에는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대형을 이루는 진법들도 있었다.
네 사형제는 구파일방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구파일방은 자신들의 절학을 완전히 알려 줄 수는 없었지만, 도백천의 죽음에 대한 위로의 의미로 그들이 알고 있는 진법의 기초와 원리를 조금씩 알려 주었다.
그리고 각 문파에서 배워 온 지식들을 연구하여 마침내 하나의 대형을 창안했으니, 그것이 바로 군제불망진이었다.
“우리는 지난 십 년간, 그 요녀의 행방을 쫓으며 오직 이 진법만을 수련해 왔다. 네놈이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결코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사완악은 특별히 할 말이 없었다.
사대악인이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고, 그들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자란 사실이었다.
사부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었고, 사완악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다만 사완악은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할 뿐이었다.
‘아까 말하는 것을 보니 이미 포위망이 펼쳐졌다는 건데…… 더 많아지면 쉽지 않다.’
사완악은 결코 천기자의 뜻대로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적들이 더 많아지면 그들의 안위까지 살피면서 포위망을 뚫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군다나 이군의 말대로 양천상과의 대결에서 어느 정도 힘이 소모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사부님의 행방을 몰라도 어쨌든 비켜 주지 않을 거란 소리지?”
“물론이다. 만약 그 요녀의 행방을 정말 모른다면, 사부의 죗값을 대신 받아야 할 것이다.”
“그래, 그럼.”
어차피 더 이상 말을 섞어 봤자 아무 소용없는 일.
사완악은 곧바로 그들을 향해 신법을 전개했다.
“오만한 놈!”
군제불망진의 맨 앞에 있는 중년인은 노성을 지르며 검을 곧추세웠다.
사완악은 그를 향해 곧바로 마룡일효의 초식을 펼쳤다.
간결하고 강맹한 장력으로 이 중년인들의 진법이 얼마나 강한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파앙!
사완악의 마룡일효와 중년인의 검이 격돌하며 파공음이 울렸다.
중년인은 잠시 어깨를 움찔했을 뿐, 아무런 타격이 없어 보였다.
사완악은 조금 놀란 듯 눈에 이채가 흘렀다.
‘이 느낌은…….’
사완악은 자신의 장력이 중년인의 검에 닿는 순간 세 갈래로 갈라져 뒤쪽에 서 있는 중년인들에게로 전달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혹시?’
사완악은 확인을 위해 다시 한번 쌍장을 내질렀다.
파신마장의 세 번째 초식인 마룡이화(魔龍二火).
마치 두 마리의 용이 불을 뿜듯, 양손에서 두 줄기의 장력이 중년인에게 쏘아졌다.
하지만 중년인의 검은 넓은 바다처럼 고요하게 사완악의 장력을 삼켜 버렸다.
그리고 이때 중년인은 앞으로 일보 나서며 검을 휘둘렀는데, 그 검에 담긴 위력은 아까 전 양천상의 무공과 비교해도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진짜 장난이 아닌데?’
사완악은 내심 감탄했다.
어떤 방법인지는 몰라도 이들 네 사람은 서로가 내공을 공유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내공이란, 한 사람의 내공에 다른 사람의 내공이 더해진다고 해서 정확하게 그만큼 더 강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의 진법은 달랐다.
개개인의 내공은 절정 고수라 볼 수 없었지만, 네 사람이 힘을 합치자 웬만한 절정 고수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모두 같은 내공심법을 익히고 있었기에 공격을 할 때에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었다.
‘곤란한데.’
사완악은 이 진법을 깨뜨릴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네 명의 중년인들의 목숨이 위험해지고, 사완악 자신에게도 부담되는 방법이었다.
‘꾀를 써야 해, 꾀를.’
사완악은 중년인들과 대치한 채로 그들을 무너뜨릴 방책을 궁리했다.
그러다 문득 사마소의 가르침 중 하나가 떠올랐다.
‘상대의 가장 소중한 가치를 파악해라.’
중년인들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
복수?
아니다.
사제, 도백천.
사람이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로지 복수를 위해 달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이들에게는 사제 도백천의 존재가 소중했던 것이다.
만약 도백천이 살아 돌아올 수 있다면?
남들이 들으면 황당무계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완악의 영악한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사완악은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인정하지. 당신들의 그 진법은 정말 대단하군.”
선두의 중년인이 냉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흥! 조금 전의 그 자신만만함은 어디로 갔지?”
사완악이 말했다.
“이 정도로 뛰어난 진법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 당신들에게 사제 도백천은 정말 소중한 존재였나 보군.”
중년인들의 눈에서 살기가 흘렀다.
“그 아이는 우리의 네 사람의 목숨보다 더 귀한 사람이었다! 무공도, 인품도! 감히 그런 요녀 따위에게 빛을 잃을 아이가 아니었다!”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길을 비켜 줘야 할 거야.”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사완악은 대답 대신 돌연 신법을 전개해 후기지수들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갔다가, 한 여인을 어깨에 메고 다시 돌아왔다.
네 명의 중년인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사완악은 여인을 다시 땅에 내려놓았는데, 다름 아닌 설린이었다.
설린은 지금까지 혈도를 제압당한 척 누워서 돌아가는 상황을 귀로만 듣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사완악이 자신을 왜 갑자기 일으켜 데려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때 사완악이 검을 뽑아 그녀의 목에 비스듬히 갖다 대며 말했다.
“당신들이 비키지 않으면 이 여자가 다칠 거다.”
설린은 깜짝 놀라 사완악을 쳐다봤다.
‘사 공자님?’
사완악은 그녀의 시선을 무시하며 중년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중년인은 사완악이 설린을 인질로 잡자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
“요녀의 제자가 슬슬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죄 없는 여인을 인질로 잡다니, 네가 그러고도 무인이더냐!”
“나는 사대악인의 제자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당신들은? 발군의 무공과 올바른 인품으로 군자신검이라고 불렸던 도백천의 사형들이 죄 없는 여인의 목숨을 외면하면서까지 길을 막지는 않겠지?”
순간 네 사람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사완악을 노려봤다.
하지만 십 년을 준비해 온 복수인 만큼 결코 물러설 수도 없는 일.
중년인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내가 말했다.
“모두 현혹되지 마라. 저자는 사대악인의 제자이다. 우리가 여기서 굴복하면 그는 강호로 나가 또 다른 악행을 저지를 것이다. 우리 사형제와 같은 사람들이 늘어나서는 아니 된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곳에서 저자를 막고, 백천의 한을 갚아야 한다!”
다른 세 중년인들은 그 말을 듣고는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그것은 그들이 원수를 갚기 위한 하나의 명분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그들의 의지는 더욱 단단해졌다.
그러나 이때, 사완악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만약 이 여인이 도백천의 핏줄이어도 그런 말을 할까?”
순간!
설린이 사완악을 바라보았고, 중년인들은 청천벽력을 맞은 사람처럼 눈을 부릅떴다.
“그, 그게 무슨, 무슨 말이냐!”
맏형으로 보이는 중년인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사완악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말 그대로인 것을 왜 다시 묻는 거지? 이 여자가 도백천의 핏줄이라니까. 당신들에게는 사질녀가 되겠네.”
설린은 사완악의 갑작스러운 말에 놀랐으나 일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년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백천에게 핏줄이라니!”
“도백천에게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지. 하지만 도백천은 우리 사부의 미혼술에 유혹당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여인은 도백천을 떠났다. 하지만 그때는 그 여인도 모르고 있었지. 자신이 도백천의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거짓말 마라!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사형제라고 해서 남녀 사이의 모든 일을 다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
중년인들은 혼란에 빠진 눈빛으로 설린과 사완악을 번갈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