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8
정도마신 7화
염라대사 영환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무슨 말이냐?”
“보통 사람이라면…… 우리 사대악인의 과거를 들었을 때 거부감이 들겠지. 더구나 자신이 앞으로 살인이나 겁탈 같은 악행을 저질러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도 어떤 반응이라도 보여야 정상이다. 그런데 저 아이는 어땠지?”
순간, 다른 사대악인들은 ‘아!’ 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완악이는 아무런 동요가 없었군요.”
“킬킬, 그렇군. 저 아이는 그런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 거야. 허 참, 나도 저 나이 때는 그러지 못했는데…… 물론 우리의 영향 때문이겠지만, 볼수록 물건이로군.”
“나중에 구천살심공과 탈정미혼공의 마지막 구결까지 전수하면 완벽하겠군. 맹세도 진심이었다니, 하하! 강호 미녀들을 이 산골짜기에서 마음껏 주무를 날도 멀지 않았구나.”
사마소가 말했다.
“이제 남은 건 당신들의 몫. 육 년 안에 저 아이를 적어도 칠대고수의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뭐,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지만.”
사대악인은 다들 한 차례 미소를 주고받았다.
사완악의 재능이라면, 육 년 안에 어떤 괴물로 변할지 그들조차 짐작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 구득소, 영환 대사, 채보령은 물론, 신천마뇌 사마소조차 모르는 사실 한 가지가 있었다.
‘내가 악인이 되기 위한 안배를 해 두었다고?’
자신의 처소에 도착한 사완악의 눈빛.
그것은 여느 때보다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스으으으…….
사완악의 단전에서 각자 다른 세 가지의 기운이 피어올랐다가 하나의 빛으로 변해 갔다.
그것은 마치 세 가지의 다른 성질의 내공이 하나로 융합되는 듯한 장면이었다.
사완악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씩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사부들은 내가 악인이 되길 바라니까, 키워 준 은혜는 갚아야지. 사부님들조차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서운 일을 해 줄게.’
사완악은 자신의 단전에 완전히 하나로 자리 잡은 사대악인의 내공을 느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장난기 가득한 소년의 얼굴에는 어쩐지 신천마뇌 사마소를 닮은 미소 하나가 떠올라 있었다.
‘그런데 사부들, 난 사부들의 꼭두각시가 될 생각은 없단 말이지!’
* * *
일 년, 이 년, 삼 년, 사 년, 오 년, 육 년…….
세월은 유수와 같았다[歲月流水].
날짐승조차 범접하기 어려운 험준한 산골짜기.
사대악인의 은거지가 되어 버린 천의문이었다.
강산도 반절은 변할 법한 육 년의 시간.
그동안 이 산골짜기에는 단 하나의 변화만이 일어났다.
약관(弱冠).
열네 살 소년이었던 사완악이 어느덧 스물의 청년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청년 사완악은 환골탈태(換骨奪胎)라 할 만큼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변모해 있었다.
두 뼘 정도 쑥 자라난 훤칠한 키, 호리호리한 체형, 그리고 크지는 않지만 탄탄한 근육들은 마치 한 마리 날렵한 표범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사완악의 독특한 미모였다.
사완악의 얼굴은 곱상한 여인처럼 뽀얗고 입술은 붉었지만, 짙고 또렷한 눈썹은 사내답게 늠름했고, 두 눈동자는 어린아이처럼 해맑고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변한 것은 겉모습만이 아니었다.
쌔애애액!
쉬이이익!
두 개의 빛줄기.
바람조차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두 신형이 산골짜기를 경주하듯 질주했다.
한 바퀴, 두 바퀴…….
멈출 줄 모르는 두 빛줄기는 순식간에 서른 바퀴를 돌고 나서야 근소한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빌어먹을! 염화신공이 대단하긴 하구나.”
잔혹신풍 구득소가 한껏 짜증을 내며 중얼거렸다.
뒤이어 낭랑한 웃음이 들려왔다.
“하하, 당연하지. 구 사부의 구천살심공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버티지도 못했을걸!”
“이제 네놈을 당해 내지 못하겠구나. 허 참, 아무리 그래도 육 년 만에 날 따라잡다니…….”
사완악이 씩 미소를 지었다.
“구 사부만 따라잡힌 거 아니니까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
“네놈, 염라대사랑 붙으면 어떠냐?”
사완악은 ‘음.’ 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글쎄. 영환 사부는 갈수록 더 강해지니까…… 아직은 어렵겠지. 하지만 쉽게 지지는 않을 거야.”
“허, 이 도깨비 같은 놈.”
사완악이 대수롭지 않게 내뱉는 말에 구득소는 내심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완악의 말대로 염라대사 영환은 지난 육 년간 더욱 강해져 있었다. 그는 괜히 소림사 제일기재라 불린 게 아니었다.
만약 다른 칠대고수들의 실력이 예전과 같다면 능히 천하제일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염라대사가 어떤 괴물인데…… 벌써 그 정도까지 격차를 줄였단 말인가?’
물론 이 말이 사완악의 허풍일 리도 없었다.
배우기 어려운 것으로 따지면 그의 승광신법이 염라대사의 파신마장 못지않았기 때문이다.
“클클. 이제 네놈이 정말 강호로 나갈 때가 되었구나. 마침 사마소도 오늘 수련이 끝나면 널 데리고 오라더구나.”
“지금 가면 되겠네. 구 사부한테 배울 게 뭐 더 있다고.”
“이, 이놈이!”
사완악의 말에 구득소는 반박하지 못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사완악의 신형이 시위를 떠난 활처럼 멀어진 탓이다.
구득소는 그 모습을 보고는 뒷짐을 지고 휙휙 따라가며 실소를 터뜨렸다.
“흐흐. 내가 키웠지만 정말 끝을 알 수 없는 놈이로군. 화산파야 기다려라, 골 때리는 놈 하나가 네놈들을 찾아갈 테니까.”
* * *
“사부님들, 모두 모이셨군요.”
사마소의 처소에는 이미 영환 대사와 채보령도 먼저 와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신술이 제법이구나.”
사완악이 한 줄기 빛처럼 나타나자, 염라대사 영환은 무인으로서의 순수한 감탄을 내뱉었다.
영환 대사의 눈에 사완악의 파신마장은 완성되지 않았고, 환요검은 채보령과 마찬가지로 후반부 육 초식을 전혀 익히지 못했다.
그러나 경신술만큼은 확실히 잔혹신풍 구득소와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아 보였다.
신천마뇌 사마소는 사완악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늘 우리가 왜 모였는지 아느냐?”
사완악은 잠시 사부들의 면면을 살폈다.
묘한 흥분감에 젖어 있는 얼굴들.
사완악은 어렵지 않게 지금의 상황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 때가 되었군요.”
사마소의 눈빛에서 기이한 광채가 번뜩였다.
“그렇다. 드디어 너는 준비가 되었다. 아직 조금은 부족하지만, 오늘 우리가 널 완성시켜 줄 것이다.”
사완악은 가만히 사마소를 바라봤다.
완성시켜 준다?
아마도 육 년 전, 사마소가 말했던 안배(按排)를 뜻하는 것이리라.
사완악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구천살심공입니까?”
“클클. 너는 이미 알고 있었구나. 그래, 내 구천살심공을 너에게 전수해 주면 네 내공은 비약적으로 심후해질 것이다.”
“그리고 백 명의 목숨을 빼앗아야겠지요.”
“그렇다. 그 살인 충동은 결코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처음엔 약간의 살심이 치미는 정도지만…….”
구득소는 과거를 회상하며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치 악귀에 쓰인 것처럼 보는 사람은 무조건 죽이고 싶어지고, 한 명을 죽일 때마다 더 큰 쾌감이 정신을 지배한다. 그러니 너는 강호로 나가면 우선 죽이기 간편하고 아무 뒤탈도 없는 자들을 찾아라. 나처럼 화전민 마을을 돌아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게다.”
사완악은 어깨를 으쓱하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년기 시절 전부를 사대악인과 지낸 사완악은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성품에 영향을 받아서, 웬만한 소리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요?”
사완악은 이미 그 정도는 다 파악했다는 듯 사마소를 향해 물었다. 사완악의 그 당연하다는 표정을 보는 순간 사마소는 흠칫하며 숨을 들이켰다.
‘이 녀석은 언제나 내 예상을 뛰어넘는구나.’
육 년 전만 하더라도 사완악의 눈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알 수 있었다.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정안심공 때문이 아니었다.
영리하고 기민했지만 아무런 경험이 없는 순수한 소년. 신천마뇌 사마소의 심계는 언제나 사완악의 머리 꼭대기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읽히지가 않는군.’
달라졌다.
마치 수십 년 강호를 횡횡한 늙은 여우처럼.
이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정안심공도 소용없다.
이미 사대악인의 삼십 년 내공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 사완악의 내공은 사마소를 상회하고 있었다.
사마소는 사완악의 눈부신 발전이 만족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사완악의 마음을 더 이상 맑은 물속을 들여다보듯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 조금 껄끄러웠다.
그는 잠시 동안 골똘히 어떤 생각에 잠겨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다. 구천살심공이 전부는 아니지.”
요희요검 채보령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완악아, 내가 너에게 탈정미혼공의 마지막 구결을 알려 줄 것이다.”
사완악은 의외라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어머니, 탈정미혼공에 구결이 하나 더 있었습니까?”
“호호, 그래. 이 구결을 남자가 익히고 나면 몸 안의 양기가 끊임없이 솟구쳐서 더 많은 음기를 갈구하게 된단다. 여인을 취하지 않는다면 네 몸의 모든 혈관이 터져 나가게 된단다. 특히 너는 사내는 익힐 수 없는 환요옥영검과 극양의 무공인 염화신공을 익혔기에 그 증세가 더욱 심할 거다.”
채보령은 조금 안타까운 듯 사완악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하지만 일정 이상의 음기를 채우고 나면 그때는 음양의 조화가 완벽하게 되어 수화불침(水火不侵), 만독불침(萬毒不侵)의 몸이 되니 반드시 이겨 내야 한다.”
수화불침이란 몸이 더 이상 추위와 더위에 영향 받지 않는 것을 말했고, 만독불침이란 어떤 독에도 중독되지 않는 신체를 말했다.
사완악이 이번에는 조금 놀란 듯 미소를 지었다.
“수화불침이야 별거 아니지만…… 만독불침이라니!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하군요, 어머니.”
사마소가 그 말을 받았다.
“그래. 강호에서 독은 초절정의 고수라도 항상 경계해야 하는 법이니, 만독불침을 이룰 수만 있다면 목숨 하나를 더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겠지.”
그는 이어서 사완악을 응시하다가 물었다.
“너는 우리에게 한 맹세를 기억하고 있겠지?”
맹세.
그 단어가 사마소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사대악인들의 눈빛에서 이채가 번뜩였다.
사완악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사부.”
“너를 믿어도 되겠느냐?”
사완악이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믿어도 된다고 하면 믿으실 겁니까?”
사마소의 눈빛이 순간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