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83
정도마신 82화
“강개 선배는 잠시 쉬십시오.”
산양자는 담담하면서도 힘 있는 음성으로 말했다.
기실 산양자의 무공은 강개보다 조금 뛰어났지만, 엇비슷한 수준이었다.
강개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밀렸다면, 산양자의 검이라고 해서 사완악을 제대로 상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산양자 혼자일 때의 이야기였다.
쉬이이익!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왼쪽에서 또 하나의 검이 날아왔다.
간결하고도 날카로운 쾌검이었다.
이 검초를 날린 도사는 화산오검의 셋째, 한청이었다.
한청은 화산파의 검술 중 가장 빠른 백팔식광풍쾌검(百八拭狂風快劍)을 익혔고, 강호에서는 섬서제일쾌검(陕西第一快劍)으로 불리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산양자와 한청 두 사람만으로는 사완악을 이기기 어려운 일.
하지만 그때 오른쪽에서도 하나의 검이 날아왔다.
그 검은 한청의 쾌검과는 반대로, 흘러가는 구름처럼 매우 유순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상승무공의 이치가 담겨 있어 막상 대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바로 무당칠자 중 넷째 도사인 왕양자의 검이었는데, 검술의 깊은 깨달음이 필요하다는 무당파의 절학 유운검법(流雲劍法)이었다.
세 사람의 검이 합공을 해 오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사완악은 얼굴을 굳히며 허리의 검을 뽑아 휘둘렀다.
세 명의 검을 상대하기에는 강맹한 파신마장보다 채보령의 환요검이 더 적절했기 때문이다.
까가강!
검과 검이 부딪치며 고막을 찢을 듯한 금속성이 산새들을 내쫓았다.
‘싸움을 길게 끌면 좋지 않겠군. 한 사람이라도 빠르게 쓰러뜨려야겠다.’
사완악은 그렇게 생각하며 산양자의 검과 왕양자의 유운검법에는 방어로 일관하고, 쾌검을 구사하는 한청에게 기습적으로 반격을 가했다.
한청은 깜짝 놀랐다.
무공의 고하(高下)를 떠나서, 속도만으로는 강호 팔대고수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던 그였다. 하지만 사완악의 검은 그의 검보다 더 빨랐다. 쾌검과 쾌검의 승부는 빠르게 결정나는 법이었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네 번의 초식을 주고받았는데, 한청은 마지막 일합에서 손목이 찌르르 울려 사완악의 다음 검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그때 화산오검의 대사형, 장완 도사가 한청의 옷을 힘껏 잡아당기더니 대신 앞으로 나서며 화산파의 구궁검법(九宮劍法)을 구사했다.
사완악은 간발의 차로 한청을 쓰러뜨리지 못했고, 다시 세 명의 합공이 이어졌다.
그리고 한청 도사 대신 장완 도사가 합류하자, 이번에는 무당칠자의 산양자와 왕양자가 뒤로 물러나더니 셋째인 불요자와 여섯째인 성학자가 나서며 검을 휘둘렀다.
사완악은 이들의 속셈을 알 수 있었다.
‘차륜전(車輪戰)이구나.’
차륜전이란 다수가 소수를 상대할 때 차바퀴가 굴러가듯 차례대로 돌아가며 싸워서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전법이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화산오검과 무당칠자는 각자 다른 무공을 전공(專攻)하여 경지에 올랐다.
이는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같은 명문대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특히 구파일방은 유구한 전통을 자랑했고, 긴 역사 속에서 많은 무공이 탄생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그 모든 무공에 정통할 수는 없는 일.
그렇기에 구파일방은 어린 제자들 중 무재가 뛰어난 아이들에게 각자 다른 무공을 익히게 하여, 그 무공이 사장(死藏)되지 않고 후대에 전해지도록 하는 것이었다.
열세 명의 고수들이 돌아가면서 각자 다른 무공을 사용하니 사완악으로서는 쉽게 적응하기 어려웠다.
깡까가강! 까가가강!
사완악은 정신없이 세 방향으로 환요검의 초식들을 펼쳐 댔다.
물론 이때 화산오검과 무당칠자, 강개는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녀석의 무공은 실로 대단하구나. 그리고 이 괴이한 무공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차륜전법을 선택한 것은 그들로서도 대단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사완악의 고강한 무공에 혹시라도 사형제들 중 누군가가 상처를 입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되도록 사완악을 생포할 계획이었다.
만약 자신들이 차륜전을 펼치면 사완악이 아니라 사대악인 중 가장 강한 염라대사 영환이 온다고 해도 충분히 제압할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사완악의 괴이하면서도 신묘한 검술에 그들의 예측은 산산조각이 났다.
만약 사완악이 파신마장을 사용했다면, 그들의 차륜전법에 금방 내력이 바닥났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사완악의 검술은 적은 내공을 쓰면서도 상대 전신의 가장 위험한 급소만을 노려 갔고, 유연하면서도 날카로웠으며, 검 끝이 어디서 어디로 향하는지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만약 자신들이 열세 명이 아니라 일대일로 사완악과 겨루었다면, 과연 몇 초식이나 버틸 수 있었을지 생각하니 자신들도 모르게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수세에 몰리는 것은 사완악이었다.
이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천기자의 삼군이자, 정도맹의 맹주인 양천상과의 결전 때문이었다.
양천상이 명성이 비해 부족했다고 하지만, 무당칠자나 화산오검과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또한 파신마장과 상성인 곤륜파의 무공을 상대하면서 사완악은 상당한 내공을 사용했다.
두 번째 이유는 사완악은 여전히 이들을 죽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무당칠자나 화산오검 정도의 고수를 상대로 할 때, 상대를 배려해 가면서 싸운다는 것은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이었다.
사완악은 몇 차례 상대를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서 자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천기자의 뜻대로 움직여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사완악의 이런 오기는 한번 발동되면 천하의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환요검법이 아무리 신묘하다고 해도 시간이 흐를수록 수세에 빠지는 것은 사완악이었다.
사완악은 어느 순간부터 반격을 하지 못했다. 합공해 오는 검을 피하거나 쳐 내고 유풍유권을 간간이 사용해 상대의 공격을 흘려 낼 뿐이었다.
반면 차륜전을 사용하는 이들은 싸우다 지치면 뒤로 물러나 운기조식을 하여 체력을 보충하니, 제아무리 사완악의 내력이 심후해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형국이었다.
사완악은 이 답답한 공세 속에 부아가 치밀어 말했다.
“그렇게 협의를 말하던 자들이 치사한 방법은 골라 쓰는구나.”
화산오검과 무당칠자는 그 말에 내심 부끄러웠으나, 산양자는 내색을 하지 않으며 말했다.
“사대악인의 제자이며 맹주를 시해한 무림공적을 잡는 일에는 예외를 둘 수 있겠지.”
“여인을 겁간하려고 했던 거지 새끼와 손을 잡고 말이냐?”
“아직도 그 개방귀 같은 소리를 지껄이느냐!”
“쓸데없는 소리에 흥분할 것 없습니다.”
강개는 버럭 소리를 질렀고 산양자는 사완악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묵묵히 검을 찔렀다.
사완악은 그들을 도발하여 빈틈을 만들 생각이었는데, 무당파의 산양자나 화산파의 장완 도사는 강호의 경험이 많아서인지 감정이 없는 사람들처럼 냉정해져 있었다.
이때 강개는 항룡십팔장의 초식을 연달아 세 번 날리고는, 화산파의 다섯째 검수와 교대했다.
지금까지 계속되었던 방식.
하지만 이때 강개의 눈이 악랄하게 빛나고 있음은 사완악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강개는 싸움에서 물러난 뒤, 운기조식을 하는 척하다가 신형을 은밀하게 움직여 사완악의 등 뒤로 이동했다.
그러고 보니 사완악은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동안 화산오검과 무당칠자는 사완악의 정면과 좌측, 우측에서만 합공을 가할 뿐, 상대를 가장 까다롭게 만드는 등 뒤에서의 공격은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바로 사전에 강개가 그들에게 보낸 전음 때문이었다.
-우리가 비록 저자를 상대로 합공해야 하지만, 최소한의 자존심과 명예가 있으니 등 뒤에서는 공격하지 맙시다.
화산오검과 무당칠자는 합공과 차륜전 자체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고, 어려서부터 명문대파의 교육을 받으며 자라 왔기에 강개의 말에 흔쾌히 동의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것이 강개의 잔꾀라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
사완악의 무공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파악한 강개는, 사람들에게 말해 일부러 배후에서의 공격을 금지시켰다.
자연히 싸우는 사완악조차 어느 순간부터는 등 뒤를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강개가 노리던 한순간이었다.
강개는 사완악의 움직임이 조금 느려지고 예기가 무뎌졌다는 것을 느끼고는 자신의 계획을 결행했다.
“하앗!”
은밀히 사완악의 등 뒤로 이동한 강개는 어떤 경고성도 없이 몸에 있는 모든 힘을 끌어모아 사력을 다해 항룡십팔장을 내질렀다.
“엇!”
“강개 선배!”
화산오검과 무당칠자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아뿔싸!’
사완악도 뒤늦게 그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강개는 지금까지 내공을 최대한 아껴 왔고, 사완악은 이미 지쳐 있었다.
이 순간 전심전력을 다한 강개의 암습(暗襲)의 위력은 도저히 피해 낼 수가 없었다.
사완악은 다급히 내공을 끌어올려 등을 보호했다.
하지만 아무리 임기응변으로 대처한다 해도 큰 내상을 입을 것은 자명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아미타불.”
어디선가 그런 불호 소리가 은은히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꽝!
사완악의 등 바로 뒤에서 폭음이 작렬하며, 강개의 신형이 지면에서 떠올라 사, 오 장을 날아갔다.
강개는 땅을 한 바퀴 구르며 일어나 창백해진 안색으로 정면을 바라봤다.
도대체 누구기에 그의 온 힘을 다한 장력을 이토록 가볍게 상쇄시키며 날려 버린단 말인가?
화산오검과 무당칠자, 심지어 사완악도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강개의 장력이 격돌하며 피어올랐던 아지랑이가 걷히자, 그곳에 한 젊은 승려가 서 있었다.
승려는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으며 소림사를 상징하는 붉은 가사를 걸치고 있었다. 또한 그의 얼굴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존귀한 존재로 선택받은 사내처럼 빛이 났다.
그 짙은 눈썹에 조각 같은 이목구비를 본 사완악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떠오르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밝아지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현종!”
그는 틀림없는 현종.
소림 수호승이자 사완악의 유일한 벗이었다.
현종도 사완악과 눈이 마주치자, 그 눈빛에서 표현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반가움이 나타났다.
“완악.”
화산오검과 무당칠자, 강개는 갑자기 나타나 놀라운 무공을 보인 이 젊은 승려의 존재에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무량수불, 무당파의 순양자라 하오. 혹, 소림사에서 나오셨소?”
현종은 한 손으로 공손히 반장하며 허리를 숙였다.
“소림사의 현종이라 합니다. 무당칠자와 화산오검, 강개 선배님을 뵙습니다.”
현종이 소림사라 밝히자 사람들의 표정에는 안도의 빛이 흘렀다.
구파일방은 가족과 같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소림사는 무당파, 화산파, 개방, 이 세 문파와 모두 막역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궁금증도 생겼다.
그는 어째서 사대악인의 제자인 사완악과 매우 친밀해 보이는 것일까?
그리고 소림사의 현 자 배라면?
화산파의 장완 도사가 물었다.
“현 자 배라면 방장 대사와 같은 항렬이 아니오?”
현종이 말했다.
“제 사형이십니다.”
장완 도사는 현종의 말에 조금 놀랐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구파일방에서 항렬은 사부가 누구이냐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이고, 재능 있는 제자를 윗세대의 어른이 제자로 삼는 것이 아주 없는 일은 아니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현종과 사완악과의 관계였다.
“현종 대사님이셨구려. 그런데 현종 대사님은 저 사대악인의 제자와 아는 사이십니까?”
현종은 그 질문에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또박또박 말했다.
“예, 그는 저의 막역한 친우입니다.”